친구 부부와 성경공부를 하면서 본문을 읽으면 나는 먼저 어떤 단어가 눈에 들어오는지, 반복되고 있는지 묻는다.
친구 부부는 적어도 성경 중 서신서의 논리 전개 방식에 익숙해진 것 같다.
이제는 본문을 읽으면 반복을 통해 강조하는 부분을 찾는다.
이 방식은 짧은 문단 뿐만 아니라, 한 장에, 66권 중 한 성경에, 66권 전체에 적용해도 사실 별 무리가 없다.
성경 초보자가 성경 보는 재미를 붙일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본다.
로마서 5장 6절부터 11절에는 교리적으로도 아주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
짝수인 6절, 8절, 10절 각 앞부분에 비슷하게 반복되는 표현이 있다.
6절의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8절의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10절의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내가 ‘연약’, ‘죄인’, ‘원수’를 차례로 종이에 쓰고 물었다.
“이 단어들의 세기가 어떤 것 같냐?”
“점점 세지는 것 같아요”
친구 아내가 답했다.
“예, 그렇게 보입니다. 문학적으로는 분명 점점 세지는 점층법으로 보입니다”
나는 단어들 사이에 부등호를 표시했다.
“그런데 하나님께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각각 치르신 대가가 무엇인지 보세요”
6절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8절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10절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사람에게는 ‘원수’란 단어는 부담스럽고 ‘연약’이란 단어가 부드러워 쉽게 사용합니다. 교회에서 대표기도 중 종종 ‘하나님, 우리가 연약해서…’라고 기도하는 것 들어보신 적 있지요?”
“예”
“그런데 하나님 입장에선 ‘연약’이나 ‘원수’나 똑같습니다. 성경에서 확인하신 바와 같이 치르신 대가가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아까 표시한 부등호 옆에 등호를 그려 넣었다.
친구 부부는 그걸 보면서 사람과 하나님의 시각 차를 기호로 느끼고 있었다.
“각각의 때에 우리가 주목할 단어가 또 있습니다”
6절의 “기약, 기약은 ‘약속’입니다”
8절의 “사랑”
10절의 “화목”
“약속의 성취, 사랑의 확증, 화목의 적용을 바로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10절 마지막에 그렇게 구원을 받는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종이에 도표를 하나 그렸다.
‘사람’과 ‘하나님’을 좀 떨어뜨려 적고, 하나님에게서 사람으로 향하는 화살표를 그으며 ‘연약’, ‘죄인’, ‘원수’라고 적고, 사람에게서 하나님으로 향하는 화살표를 그으며 ‘두려움’이라고 적었다.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가 이래. 그런데 그 사이에 예수님이 들어오신 거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예수’를 적었다.
“하나님은 사람을 보기 전에 사람을 위해 죽은 예수님을 보고 만족하고, 사람도 심판의 하나님을 보기 전에 자신을 위해 죽으신 하나님인 예수님을 보고 만족하는 거지. 이처럼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가 회복되었으니 11절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한다’라는 표현이 나오는 거야”
여기까지 하겠다고 하자, 친구가 질문했다.
“왜 다른 목사님들은 너처럼 설교하거나 책을 쓰지 않냐?”
친구는 로마서 관련 책을 읽기도 하고 설교도 들어 본 모양이다.
“솔직히 난 목사가 되고 15년 동안 로마서가 어려웠어. 주석이나 다른 책을 읽어도 속시원히 이해되지 않더라고. 그래서 양심상 로마서 설교를 하지 못했지. 15년째 어떤 기회로 로마서를 매일 한 번씩 수십 번 읽으니 로마서가 보이긴 하는데 딱 이 수준이야. 성경만 읽어서 이해한 정도, 너같이 성경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대략적으로 이해하도록 설명하는 정도. 다른 목사님들이 보기에 나는 얕은 수준이야. 나는 그분들 이야기가 어렵더라고. 그런데 교인들 중에는 아주 심오한 것 궁금해 하고 질문하는 사람들도 있거든. 나는 그런 질문 대답 못해. 그러니까 어려운 책들도 있는 거지. 나는 사실 그만한 깊이까지 관심도 별로 없고 초신자들에게 쉽게 설명하고 싶은 마음밖에 없어. 그래서 내가 다른 책 읽고 어려운 질문 하지 말라고 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