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모습 제대로 보기

[20기 법륭 장영순]

 
    🗼공부, 자기모습 제대로 보기🗼
 
- 부산 범어사 조실 지유 스님과의 인터뷰 -

지유 스님은 오랜 욕심과 번뇌를 녹이기 위해서는 매시간 치열하게 정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떻게 오셨어요?”

“스님 뵈러 왔습니다.”

“잘 보고 가시오. 허허“

뭐라고 답할 수 있단 말인가?
스님은 분명히 내 앞에 앉아 있으나 스님의 마음 한 자락도 헤아리지 못하고 보니 막막할 뿐. 범어사 조실 지유 스님을 뵙기 위해 비 오는 산길을 30분 남짓 걸어 올라온 원효암.

빗줄기와 안개로 인적이 드문 금정산 원효암으로 오르는 길은 없는 듯 이어져 결국엔 원효암 부도탑까지 이어졌다. 언젠가 누군가도 이 길을 올랐구나.

20년 전부터 이곳에 주석하는 지유 스님의 발자취 위에 진정한 깨달음을 구하는 수좌들의 그것이 겹쳐지고, 법회날마다 이곳을 찾는 불자들의 한 발 한발이 또 모여 이 길이 되었구나.

이런 저런 생각으로 한달음에 오른 원효암 지유 스님의 방에서 그만 뚝 길이 끊어져 버린 것이다.

“차 한 잔에 전체가 들어 있어요. 차 한 잔 속에 불성이 다 들어 있다는 말이지. 마음을 깨닫는 성불을 어디 먼 곳에서 구할게 아니라 차 한 잔에서 발견할 수 있어야 해요.

내가 18세에 출가했는데 미륵암에 올라가 보니 마루에 심시불(心是佛)이라는 글귀가 써 있어요. 그 글을 읽기 전에는 그렇게 멀었던 삼천년 전 부처님이 내 안에 들어와 버렸어.

마음 안 가진 이 없으니 이보다 더 반가운 소식이 어디 있어요? 참 환희심이 절로 났지.”

이런 저런 생각을 턱 내려놓고 앞에 놓인 차 한 잔부터 제대로 마셔보라는 스님의 일갈이다.

‘심시불’이라는 말에 ‘역시 출가하길 잘했다’고 생각했다는 스님. 일본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그곳에서 보내고 중학교 과정까지 마친 스님은 해방후 한국으로 건너와 속가 동생이던 법종스님과 함께 출가자의 길을 걷게 된다. 젊은 나이에 몸을 바꾼 법종스님은 철저한 수행과 정진으로 청담스님의 각별한 아낌을 받았던 스님이다.

지유스님은 출가 후 6·25 전쟁의 어지러운 시절을 보내면서도 수행을 늦추지 않았다. 이십대에 마음의 깊은 세계를 맛본 스님은 밤잠을 잊고 공부에 전념했다. 잠이 습관이라고 생각한 스님은 정진이 끝나도 잠자리에 들지 않고 산 하나를 걸어서 왕복하며 어슴프레 밝아오는 새벽을 맞이했고, 새벽예불로 일과를 시작하곤 했다. 수행자에게 가장 큰 장애물이라는 수마를 그 시절에 이미 조복받은 셈. 지금도 스님은 특별히 장좌불와라고 생각지 않는 가운데 장좌불와를 하고 있다.

“눕지 않는다는 생각에 매이는 순간 그것은 진정한 장좌불와가 아니예요. 무슨 일을 하더라도 그 생각에 매이지 않는 것이 진정한 자유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나는 이런 것을 한다’거나 혹은 ‘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붙들고 있지만 그것은 아무 소용없는 이름에 불과한 것입니다.”

스님의 회상에서 오래 지낸 사람들이 입을 모으는 한 가지가 바로 이 부분이다. 인연닿은 대로 오는 것을 취하되 한 번도 어떤 것에 매이시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한다.

스님은 세간이나 출세간에서 흔히 이야기하는 무소유가 물건을 취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 물건에 마음이 동하지 않는 것임을 항상 실천으로 보여준다. 세상에 존재하는 숱한 고정관념들, 큰스님은 이래야 한다거나 공부는 이런 것이다 라는 통념을 한꺼번에 날려버리라는 스님의 말씀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 진다.

굳이 특별한 법회를 따로 열지 않아도 인연있는 사람은 찾아와서 공부하게 되어 있다는 스님의 믿음대로 원효암에는 많은 수좌들과 재가불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매월 첫째 주 일요일마다 열리는 원효암 법회는 불법의 정수를 구하려는 진지한 눈빛들을 만날 수 있는 곳으로 정평이 나 있다.

“불법은 자기의 모습을 말함이요, 자기의 모습을 보도록 가르친 것이 불교입니다. 자기의 모습이란 곧  마음을 말합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부처님과 같은 맑은 마음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모든 것의 근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알면 모든 문제의 근원을 해결할 수가 있어요.

마음은 거울과 같습니다. 어떠한 사물이 와도 그대로 비추는 거울과 같은 마음을 우리 모두 본래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놀라고 걱정하며, 불안해 하는 이런 생각들로 굴곡이 생겨 실체 그대로 비추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상황판단을 정확하게 하지 못하고, 갈등과 고통 속에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욕심과 감정에 사로잡히면 거울에 굴곡이 생겨 버리죠.

그럴 때는 그 굴곡이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굴곡이 가라앉아 사물을 있는 그대로 비출 수 있을 때 비로소 부처님께서 설하신 소소영영한 마음에 귀결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물과 파도를 비유해서 설하자 한 거사가 

“근본자리에서 보면 물과 파도는 둘이 아니고, 물과 파도 또한 없는 것이 아닙니까?”

하고 질문했다.

“물과 파도는 하나지만 다른 점이 있습니다. 좋다거나 나쁘다고 하는 생각들로 끊임없이 출렁거리는 것이 마음의 파도인 셈인데, 물과 파도가 둘이 아니라고 해서 가만히 있는 물을 파도라고 할 수 없는 것이죠.

그러니 이런 저런 상황에서 일어난 파도를 가라앉혀서 사물을 비추는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깨달아야겠다 거나 고요해져야겠다는 생각에 매이면 또 그것이 파도를 일으키게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파도가 일렁이면 파도를 쳐서 없애려고 하지말고 가만히 지켜보면 저절로 파도가 자고 고요한 마음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지요.”

몇 번이고 반복되는 질문에도 스님은 세세한 비유와 설명으로 자상하게 일러준다. 법회가 끝나고 스님 방으로 찾아온 이들에게도 스님의 세심한 공부지도는 이어진다.

“눈앞의 것을 바로 볼 줄 알아야 해요. 온갖 생각으로 출렁이는 마음으로는 눈앞의 것을 볼 수가 없어요.

나를 찾아온다고 무엇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마음을 돌이켜 보아서 정말 꽉 막히는 의구심이 나야 해요. 그것이 마음을 아는 출발이예요.”

“요즘은 너무 얕게 살아요.  좋으면 금방 웃고, 싫으면 또 금방 찌푸리고, 또 마음에 조금 맞으면 너무 쉽게 수긍해 버리죠.

그러나 마음 깊은 곳에 간절하게 와 닿아 깊이 깊이 고개가 끄덕여 지고 수긍이 가야 합니다.

사람들과의 인연도 진정으로 화를 내고 진정으로 기뻐하는 묘가 있어야 해요. 겉으로만 화내고 겉으로만 웃어주는 피상적인 것으로는 안돼요.”

진정으로 화를 내라니. 마음의 고요를 말씀하시던 스님이 불쑥 던진 한 마디가 또 오리무중이다. 목석이 아닌 인간이 희노애락의 감정까지 자유롭게 조절하는 경지가 아니고서는 쉽사리 흉내낼 수 없는 자비와 엄함을 넘나드는 경계를 맛보라며 건네주는 스님의, 알사탕같이 자상한 말씀을 마음에 넣고 굴려보니 더욱 달고 깊어 말이 끊긴다.

깨달음을 원하면서도 구체적인 실천이나 수행은 하지 않고 뜬구름 잡는 식으로 하는 공부는 스님에게 통과되지 않는다.

어묵동정(語默動靜) 행주좌와(行住坐臥), 그 언제라도 참선할 때의 마음을 놓치지 않는 것, 그것이 참된 공부라는 것이다. 형식에 매이지 않는 스님의 일면을 잘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스님께서 범어사 주지로 있을 때의 일이다. 하안거 해제 후 수좌들과 함께 바닷가로 갔다. 다들 바다에서 수영을 하는데, 물살을 거스르며 해야 하는 수영이고 보니 젊은 수좌들도 금방 지쳐 쓰러지는데 스님은 5~6시간 수영을 계속했고, 숨을 헐떡이는 수좌들을 향해 말했다.

“앉아 있는 것만이 참선이 아니야. 앉아 있거나 걸을 때나, 수영을 할 때나 언제라도 마음이 한결같아야 해. 앉아서 삼매에 들 수 있다면 수영할 때는 온 마음으로 수영을 하는 것 또한 삼매인 것이지.”

이날 수영삼매에 누가 오래 드나 보자는 스님의 말씀에 한철 잘 공부했다고 우쭐대던 수좌들은 혼쭐이 났다. 평소 공부를 하려고 해도 일상에 바빠 공부할 수가 없다고 짐짓 자신의 게으름을 위안하는 모든 이들을 향한 스님의 방(棒)인 것이다.

칠순을 넘긴 지금도 수영 등 스님의 스포츠 실력은 젊은 사람을 능가한다. 스포츠를 하는 것이 여실히 깨어있는 자신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면 그것 또한 제대로 된 수행이 되는 것이다.

정형화된 염불이나 기도만이 공부가 아니라 일상에서 부딪치는 모든 것들이 공부이며, 본래 가지고 있는 본성을 밝히는 재료가 된다는 가르침이다.

지유 스님은 물론, 원효암에 머무는 스님들이나 신도들은 하루 일 식(一食)만을 한다. 그리고 오후에는 모두가 일을 한다. 교통이 불편한 암자이고 보니 먹을거리를 자급자족하기 위해 텃밭을 일군다.

몇 년전 불사를 할 때도 케이블을 직접 설치하고 원효암 내의ㅈ모든 전기 시설을 상좌와 함께 했을 정도다.

이처럼 스님의 일상은 보편적이고 평범하며, 특별한 것이 없다. 밥 먹고 잠자는 가운데 도가 있다는 가르침이 원효암 곳곳에서, 지유스님의 일거수 일투족을 통해 살아나고 있었다.

“빨래를 하면서 '아이구, 내가 공부를 해야 하는데 빨래 때문에 못하네!' 하고 망상을 피우면서 빨래를 해요. 그러나 빨래를 하는 것도 공부예요.

빨래는 할 때에는 오로지 빨래 밖에 없어야 해요. 과거의 망상 부리던 것을 없애고 목전에 있는 것이 전부임을 아는 것이 바로 된 공부입니다. 무엇을 하는 동안 시간이 지루하게 느껴지는 것은 망상번뇌가 꽉 차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생각에 빠지지 않고 일념으로 한다면 일겁이 무량겁이 되고 무량겁이 일겁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마음을 우리가 본래로 가지고 있는데 욕심과 번뇌에 가려 모를 뿐입니다. 그러니 부지런히 정진해야 해요.”

스님은 덧붙여 또한번 현재의 중요성을 일러주시며, 현재의 실천과 현재의 한 걸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신다.

“일체유심조라 했는데 마음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중생들은 업이 있어 조절하기 어렵습니다. 업을 조금씩 조금씩 조절해 나가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어요.

속수무책으로 있다보면 업의 세력이 커져 버려서 나중에는 막을 수가 없게 됩니다. 부산에서 서울을 갈려면 한꺼번에는 못 가요.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정확하게 떼어놓아야 서울에 바로 갈 수가 있듯이 업을 조절하기 위한 노력도 끊임없이 해야 합니다. 천년 동안 한다는 마음으로 해 보세요.

천년을 왜 못 참느냐? 당장 되려는 욕심이 앞서서 그렇습니다. 눈에 보이는 절을 하나 짓는 불사도 당대에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수십억겁 동안 쌓인 업의 세력을 몇 마디 염불이나 돈 몇 푼에 갚았다거나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조금씩 갚는다는 생각으로, 천년 동안 하겠다는 발심으로 꾸준히 하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나라 안팎의 크고 작은 문제들을 걱정하자

“요즘 살기 어렵다고 하지만 명예와 권력, 권속이 있다고 해서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이 모두는 허망한 것이라 언젠가는 나에게서 떠나게 됩니다.

그러니 자신의 영원한 보배를 챙겨야죠. 그리고 세상 돌아가는 것이 어딘가 바르지 못하다면 자신부터 마음을 바로 잡고 안팎으로 변화를 추구하다 보면 세상은 저절로 변화하게 되어 있습니다. 크고 거창한 것을 말하지 말고 목전의 차 한 잔 잘 마시는 것으로 출발하세요.”

단호한 말씀이다.

“당연한 사실을 사실대로 보는 것이 본심이예요. 사실을 사실대로 보는 데는 아무런 재주나 기교가 필요치 않아요. 순수무구한 본심에는 일체 티를 찾아 볼 수가 없어요.

붉은 사과를 붉다고 하고, 해가 뜨면 밝아지고 해가 지면 어두워지는, 이렇게 만인이 공감하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보는 마음을 밝혀 알아야만 인생의 근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거예요.”

지유 스님은 동산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유머를 곁들여 쉽게 법문을 하는 스님을 대하고 나니 무척이나 까다롭고 접근하기 어려운 스님일 것이라는 고정관념이 여지없이 무너진다.

“사람들이 가끔 오는데, 와서는 인사만 하고 불상처럼 앉아만 있어요. 차를 주어도 쓰다 달다 말도 없고…

나를 보러 왔다고 하면서 나만 멀뚱멀뚱 쳐다보지요. 그러면 나는 속으로 저 사람 혹시 나를 감시하러 왔나 하고 생각합니다. 하하하!”

신도들이 따라 웃는다. 유머감각이 돋보이는 말씀이기에 그 가르침이 한결 가슴에 와 닿는다. 차 한 잔에서 우주를 보는 스님만이 대중들에게 건낼 수 있는 마음의 선물처럼 보였다.

평소 막연한 기대로 무언가 신비적이고 색다른 가르침을 기대하며 지유스님을 친견하러 오는 사람들을 경책하는 것이리라.

<현대불교 미디어센터 ⓒ 2005, 대담 및 정리: 천미희 기자>

[19기 화엄 김종호]

일상에서 부딪치는 모든 것들이 공부이며, 본래 가지고 있는 본성을 밝히는 재료가 된다는 가르침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여민성 고순자(7기)]

작년 원효암에서 어렵게 운좋게 친견한 지유스님의 법문이 생각납니다.
"마음은 거울과 같다. 거울에 때가 끼면 그대로 비춰지지 않듯 마음에 때가 끼면 있는 그대로 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