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자비경선(慈悲鏡禪) - 1) 걸으며 하는 명상
지난 6월 23일 한강 여의도공원 물빛무대에서 한국명상지도자협회주관으로 소외계층기금마련 한강걷기명상대회 ‘명상, 한강을 걷다’가 열렸다. 참가자는 2000명, 현장접수 시민들은 300여 명이 참여했다. 보통 걷기대회는 출발할 때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지만 끝날 때는 모이지 않고 모두 흩어진다. 하지만 이번 걷기명상대회는 그냥 걷는 것이 아니라 걷는 순간순간 명상이기에 그 많은 사람들이 출발을 기다릴 때도 명상을 하고, 출발지로 되돌아와서도 명상을 하면서 마무리했다. 전무후무한 일이라고 평가한다.
무분별의 거울 만들기 위해
긴장 풀고 마음 내려놓는다
있는 그대로 사물 비추듯이
의식적으로 대상 알아차려야
주말이 되면 수만 명이 산으로 간다. 단순히 건강을 위한 산행수준이라면 아쉬운 점이 한둘이 아니다. 우리는 산이 아니더라도 일상에서 기본적으로 걷는다. 바삐 가기만 한다면 귀중한 시간을 허비하는 셈이다. 하지만 명상이 된다면 집중과 지혜가 생기고, 나아가 의식의 공간이 넓어지기만 해도 불안증세나 분노조절 장애 등 정신적 문제가 효과적으로 해소된다.
우리가 걸을 때 머릿속에서는 많은 생각이 일어나고 사라진다. 감정의 변화도 일어난다. 이것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집중과 지혜로 바꾸고 자비가 생긴다면 이보다 좋을 수 없다. 궁극에는 숨 쉬지 않고 땀 흘리지 않는 참마음을 찾는다면 삶과 죽음의 갖가지 괴로움에서 벗어나 대자유인이 될 것이다. 이것이 걷기명상이다. ‘명상, 한강을 걷다’에서 2300여 명이 걸으면서 명상했던 것은 출발, 알아차림, 멈추고 쉼, 묵언이었다. 많은 인원이 참가하였기 때문에 출발신호를 녹색기로, 멈추고 쉼을 붉은색 기로 표현했다. 원고에서는 걷기명상과 관련된 조금 세부적인 의미와 방법을 소개한다.
빨간색(불의 요소)-출발(베풂)
빨간색의 심리는 의욕이며 베풂이다. 삶의 고달픔에서 벗어나고자하며 자유로워지려는 의지를 일으킨다. 탐욕이라는 부정적인 것을 버리고 이타심을 내어 베푸는 기쁨을 일으키는 심리이기도 하다. 그래서 빨간색 깃발을 들 때는 새롭게 자유로운 인생을 의욕적으로 시작하는 출발이다.
방법: 발을 땅에 디딜 때 의식을 발바닥에 두고 뒤꿈치를 먼저 디디면서 엄지발가락까지 땅에 디뎌야 한다. 항상 이렇게 딛고 걸으면 발바닥 감각 알아차리기가 쉬워진다.
노란색(흙의 요소)-알아차림(평등·소통)
노란색의 심리는 자존감을 파괴당하는 불평등을 극복하고 자아평등을 실현한다.
방법: 노란색 깃발을 들 때는 걸어가면서 발바닥 감각을 알아차린다. 알아차림이란 머리로 생각하지 않고, 아는 것은 모두 알아차림이라고 생각하고 땅과 발바닥의 감각을 알아차리는 훈련을 계속하면 의식이 깨어난다. 나아가 불어오는 바람의 접촉 피부, 햇빛의 접촉, 보이는 사물의 접촉으로 일어나는 감각을 알아차린다. 자신과 상호 의존하는 모든 것은 평등하고 소통한다는 것을 생각한다.
그리하여 걸을 때는 의식을 발바닥(발가락)과 손가락에 동시에 두고 걷는다. 나아가 발가락-손가락-정수리에 의식을 동시에 두고 걷는다. 그러면 온몸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게 되고 의식의 공간이 그만큼 넓어진다. 의식의 공간이 넓어지면 불평등한 생각이 사라진다. 스트레스를 효과적으로 방어하고, 분노조절이 되는 힘이 생기고, 불안감 등이 사라진다.
이뿐만 아니라 성차별과 갑질 등 계층 간의 차별이 없어진다. 나아가 사물과 한 공간을 이루면 보이고 들리는 모든 것과 한 공간을 이루고 일체감을 가지고 걸을 수 있게 된다. 그러하면 자아로 인한 모든 것에서 평등해지고 자유로워진다.
녹색(바람의 요소)-멈추고 쉼(평화)
녹색의 심리는 시기질투를 버리고 평온과 평화를 바란다. 그래서 멈추고 쉬는 것은 시기 질투하고 싸우는 심리를 평화롭게 하는 것이다.
방법: 녹색 깃발을 들 때는 보이는 것에 매달리지 말고 들리더라도 들으려 하지 말고 느낌도 느끼려고 하지 않는다. 생각하려고도 하지 말아야 한다. 하려는 생각을 멈추는 것이다. 단지 그냥 보고 그냥 듣고 그냥 느끼고 그냥 알아차리고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스위치를 끄듯이 가만히 있기만 한다. 이것이 마음을 쉬는 것이며 마음이 쉬면 몸도 같이 쉬어진다. 내면의 평화가 찾아오는 것이다. 또는 보이더라도 내버려두고 들리더라도 내버려두고 느낌이 있더라도 내버려두고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내버려두고 스위치를 끄듯이 마음의 움직임을 끄고 평온과 평화를 실현하는 것이다.
흰색(물의 요소)-묵언(치유, 자비)
흰색의 심리는 사랑과 연민, 그리고 관용과 용서하는 심리를 일으켜 분노를 조절하고 증오심을 완화하고 없앤다.
방법: 흰색 깃발을 들 때는 걸으면서 생각을 쉬는 묵언이다. 걸으면서 과거 지나온 나는 지나가서 없고, 미래의 나는 아직 오지 않아 없으며, 현재 걷고 있는 나도 머물지 않음을 알아차린다. 그래서 현재 이 순간뿐임을 알아차리고 깨어있다. 과거의 집착과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불안감으로 왕래하는 불평등한 생각을 쉰다. 지나온 삶을 이렇게 되돌아보고 쉰다.
자비경선이라 불리는 이유
자비경선은 자비선(慈悲禪)의 하나이다. 경선(鏡禪)은 거울명상이다. 여기에는 앉아서 하는 좌경선과 걸으면서 명상하는 행경선이 있다. 특히 행경선을 걷기명상 또는 걷기선(禪)명상이라 한다. 자비경선이라 한 것은 자비가 필요 없을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경선, 즉 거울명상이라 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숨 쉬지 않고 땀 흘리지 않는 마음’은 그 성격이 공성이다. 지혜와 자비의 근원이 바로 공성이기 때문에 경선 즉, 걷기명상하게 되면 공성이 거울같이 되어 자비심이 일어난다. 그러므로 자비경선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비수관이나 자비다선을 수행한 수행자에게는 자비심이 배양되어 있으므로 탐욕과 분노, 슬픔과 해치고자하는 부정적인 심리가 줄어들어 적다. 이 때문에 산행 경선을 할 때 마음거울이 잘 형성되고 그 마음거울을 통해 ‘숨 쉬지 않고 땀 흘리지 않는 놈’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러나 비록 자비수관과 자비다선 수행을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자비심이 풍부한 이들은 자비경선이 잘된다. 자비경선에는 경-환-공-화의 네 단계 깨달음의 경지가 있다.
경(鏡)-환(幻)-공(空)-화(華) 네 단계 깨달음의 경지는 거울이 가지고 있는 네 가지 기능에 근거한다. 즉,
① 거울(鏡)은 비치는 모든 사물을 비교 분별하지 않는다.
② 비치는 사물이 거울과 사물의 인연에 의해 나타나는 것이므로 가고 오는 주체가 없다. 그래서 비치는 사물이 마치 환(幻)과 같다.
③ 오염물이 비치더라도 거울은 오염되지 않는다. 거울의 바탕은 허공과 같이 비어있기(空) 때문이다.
④ 거울 자체가 비어 있기 때문에 거울은 상황에 따라 그 상황대로 형상을 나타낸다. 이것은 내 마음거울에 중생의 괴로움이 비칠 때 그 중생을 도와주는 거울인 것이다.
⑤ 네 가지 거울을 동시에 명상한다.
이와 같이 마음도 네 가지 거울과 같이 하여 걸으면서 명상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는 가장 기본적인 경선인 걷기선(禪)명상만을 설명하려고 한다. 그런데 ‘명상, 한강을 걷다’의 걷기선 명상은 트래킹 할 때 응용한 걷기명상이다. 이 트레킹 명상은 무수탕 또는 티베트 수미산에서 실시한 실전경험과 그 효과를 따로 설명할 것이다.
무분별의 거울
경선할 때는 무분별의 거울이 생기는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즉, 경선을 하기 위하여 먼저 몸을 이완하는 몸 풀기를 한다. 다음으로 우선 숨을 들이쉬고 내쉬면서 어께에 힘을 빼고 몸의 긴장을 풀고 척추를 곧게 세운다. 이때 온 몸은 모든 사물을 받아들이는 무분별의 거울 같은 상태로 만들어진다. 몸은 거울 면이 되고 마음은 사물을 비추는 거울 빛이 된다고 생각하면 쉽다. 그리고 또는 그렇게 상상한다.
거울은 대상을 분별하지 않는다. 사람이 오면 사람을, 동물이 오면 동물을 비출 뿐이다. 그래서 거울은 무분별이다. 마음을 거울 같이 쓰면 무분별의 인식이 일어난다. 그러나 말과 같이 쉽지 않다. 직접 인식의 훈련을 반복해야 무분별의 거울 같은 마음이 나타난다. 그 방법은 의식의 작용으로 대상을 염(念)하는 것이다. 이 ‘염’을 알아차림이라고 한다. 알아차림이란 머리로 생각하고 판단하기에 앞서 대상을 즉각 아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반복 사물을 인식하면 자연 대상에 집중력이 높아지고 무분별이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무분별은 대상에 집중할 때 일어나는 것이다. 이 무분별을 거울에 비유한다. 그러나 무분별이 공성은 아니다. 그래서 공성의 무분별과 구별해야 한다.
무분별을 이루는 알아차림을 숙달하도록 연습을 해야 한다. 알아차림에 의해서 마음의 고요함인 선정과 공성을 아는 지혜가 생긴다. 선정은 공성을 드러내는데 필요한 조건이다. 선정 속에서 공성을 공성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정을 의지해서 지혜가 생긴다고 하는 것이다.
알아차림은 즉각 대상을 아는 것이므로 대상에 의미부여하거나 다른 것과 결부시키거나 감정과 생각을 덧붙이거나 또는 대상을 없애겠다는 생각 등의 생각과 감정이 일어나기 전에 즉각 대상을 파악하는 방법이다. 그리고 정신현상 과정과 물질 현상의 과정을 즉각 구분하고 현상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조건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이것은 알아차림을 통해서 지혜를 계발하는 것이다. 그리고 즉각 아는 것은 다른 감정과 생각의 개입이 불허하기 때문에 선정이 생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네 가지 기본적인 자비경선은 첫째 걸으면서 발바닥 감각 알아차리기, 둘째 소리 무상 관찰하기, 셋째 몸과 마음 휴식하기, 넷째 소나무에 기대어 관계성 통찰 사유하기 등이다.
출처 : 현대불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