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십령 고개를 넘으면 경상도 땅 항양입니다.
아득한 옛날, 신라 ~ 백제 시대의 국경이기도 하고 그 사이에는 가야가 차지한 때도 있었고.
먼지 덮힌 옛 지형도를 꺼내서 들여다 봅니다. 아마도 1971년 경 출판된 것으로 추정되는 1:5만 지형도,
한 장에 65원 하던 시절. 지형도입니다. 주민등록증 제시하고 외국 반출도 엄금되던 시절이었습니다.
육십령 고개는 붉은 점 표시부분이고 백두대간 산줄기와 그곳의 지명을 지형도로 보는 재미도 제법입니다.
(아직도 한글 전용화가 덜 된 시절이라 행정지명은 전부 한자입니다.
백두대간 육십령 생태터널 동쪽 바깥으로 경상도 함양 산줄기가 보입니다.
굴길(터널)을 넘으니 우측으로도 전적비 같은 것이 차창 밖으로 스치듯 지나갑니다. 우리 산하 곳곳이 치열한 격전지, 목숨 걸고 지켜낸 흔적들입니다. 피흘린 역사의 산하. 오늘이 그런 날이라서인지 유독 더 눈에 잘 뜨입니다.
(함양)서상면, 서하면 드디어 군자정 앞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거연정 가는 길로 들어섭니다.
화림동계곡임을 알리는 표석 아래로 길은 나 있습니다.
'선비문화 탐방로 안내도'도 보입니다.
병산서원으로 유명한 경상북도 안동을 <좌 안동>이라 하고 그와 반대 쪽 함양 지방을 <우 함양>이라 해서 선비의 고장임을 자랑합니다.
'선비'란 무엇인가 잠깐 생각해봅니다.
거연정 일원 안내도도 보입니다.
비탈길을 조금 내려 가니 계곡이 보이고 나무 사이로 건너 편에 정자가 보입니다.
거연정입니다.
이렇게 멀리서 거리를 두고 보는 것도 멋있어 보입니다.
무지개 같은 다리를 건느면 거연정입니다. 처음부터 이런 정자가 있었던 것처럼 착각하기 쉽습니다.
거연정 현판을 봅니다.
거연정(居然亭) 정자 현판이 무슨 뜻을 담고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누가? 왜 이렇게 이름지었는 지.. ? 그냥 짧은 지식으로 "살 거(居) 그럴 연(然)"하고 읽기만 합니다. .
신발을 벗고 정자 안으로 올라가 둘러봅니다.
몇 개의 < 거연정기>가 걸려 있습니다. 읽기가 어렵지만 그냥 사진 한 번 찍어둡니다.
언제 읽어나 볼려나. 시간에 쫒기기도 하고, 잘 보이지도 않고, 보인댓자 무슨 뜻인지도 더욱 모를 테고...
맨 끝의 숭정(崇禎) 연호가 많이도 보아온 연호인데 아마 명나라 때 연호이겠지. 몇년도인가?
거연정 안내판입니다. 한글이니 읽기가 쉽네요.
고려 말 전오륜의 7대손 화림재 전시서(全時敍)가 나오고.... 후손들이 옛터에 짓고...등등..
아래에는 영문 소개도 있고, 옛날 같으면 영문 대신 한문이 있었을 텐데....
정자 안에는 한 칸 크기의 내실이 있고 , 누군가가 명상을 하고 있습니다..
대충 둘러 보고는 신을 신고 내려 오니 계단 아래 발끝에 어린 소나무 하나가 보입니다.
푸른 소나무 한 그루가 거연정자 돌기둥 옆 암반 틈바구니에서 자라고 있습니다.
생명력에 무한한 경외심을 갖게 합니다. 아까 보고 온 진안 섬바위의 천년송만큼 클 수 있으려나 !
(거연정 주변 경치도 봅니다. 옛사람이 즐겼을 , 산과 나무와 바위와 계곡 푸른 물을 (泉石).. 혼자서, 때로는 벗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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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연정을 대강 보고는 다시 군자정 쪽으로 와서 군자정(君子亭)을 지나칩니다.
군자정이라 이름붙인 까닭도 생각만 해봅니다.
옛날 선비들이 그렸던 군자의 모습.
어떤 인간상으로서의 군자상을 가졌을가?
성인 군자가 되기 위해 책을 읽고 수신하고, 제가하고, 정치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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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정을 지나 이른 곳은 동호정(動湖亭)
올라가 보지도 못하고, 그냥 주변만 둘러보기로 합니다. ( 오후 두 시가 넘었으니, 점점 배도 고파지기 시작하고.)
여기에 웬 동호(東湖)인가? 또 다른 궁금증이 일어납니다. 안내판도 읽지 않았으니...
동호정 아래를 오른쪽으로 돌아 드니 나무 계단이 눈에 들어옵니다.
예사 보던 그런 계단이 아닌 통나무에 도끼로 깎아낸 듯한 투박스런 나무계단입니다.
어디선가 본 듯한 계단, 아, 안동 병산서원 올라가는 계단도 저랬는데.. 생각이 납니다.
열대지방 야자수도 저런 계단식으로 홈을 파서 열매를 따내리고, 중국은 아예 돌을 저렇게 쪼아서 만들기도 했고...
(동호정 주변 경치를 즐겨 봅니다.)
먼 산과 하늘. 정자와 소나무, 암반,
거대한 바위 위에 소나무들... 이런 자연 경관 속에 사는 것을 우리 선인들은 이상향으로 삼았을까?
동호정 구경까지 마치니 간식 먹은 지도 오래고 배는 고파 오고,
다음 일정을 망설입니다.
그냥 나선 길, 농월정 가는 길에 만나는 초계국수집 식당에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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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크 타임일텐데, 주인이 기꺼이 점심을 준비해줍니다.
시장하던 차에 맛있게 먹습니다.
맛있게 먹고, 에너지를 담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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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후경으로 농월정(弄月亭)을 찾아갑니다. 제법 기다란 산책로를 따라 있는 계고 넓고 너른 너럭바위들,
한 켠에 농월정이 기품스럽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달 밝은 밤에 오면 더 어울릴 듯한 이름의 농월정.
옛날에는 밤놀이 문화가 주로 보름달을 중심으로 있었을 테니. 정월 대보름달, 8웛 한가위 보름달..
낮에는 해가 있어 좋고 밤에는 별과 달이 있어 좋고..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놀고, 쉬고...
음풍농월의 농월정을 뒤로 하고 냇가로 내려가봅니다.
농월정 안내문을 읽어볼 겨를도 없이 냇가 바위 계곡 매력에 홀딱 반합니다.
농월정 중건기 사진으로만 찍어두고.. 하도 많아서 다 읽을 수도 없고, 뭐가 뭔지..
그냥 몇장의 사진으로 찍어봅니다.
농월정 주변 경관을 둘러봅니다.
농월정 오른쪽 암반에 붉은 색 흔적이 남아있는 큰 글씨의각자가 눈에 들어옵니다.
< 지족당 장?지소.> 지족당이 장구지처가 아닌가 하고 지나갑니다. ?표는 "구"자일 텐데.
복잡한 굴자인 "구"자를 저리 새겨놓으니 잘 몰라봅니다. 안내문에 있는 것도 나중에야 압니다
"구"자 屨 신 구, 옥편에는 삼신 구로 나옵니다. 麻鞋 삼으로 엮은 짚신으로 생각됩니다. 지팡이와 삼신으로 다닌 곳이니 지족당 선생이 노닐던 곳이려니 합니다. <장구지소> 대신 <장구지처>로 쓰인 곳도 여럿 있으니까요.
농월정기가 국한문 혼용으로쓰인 현판입니다.
역시 아름다운 농월정 주변 경관입니다.
널따란 냇가 바위에 자연이 깨끗하게 닦아 놓은 반석 위에 새겨진 글귀들... 이름들...
글씨도 아름답고 무슨 글 내용인지는 몰라도 멋져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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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서 농월정까지 보고는 다시 왔던 출발지를 향해서 원점회귀로 들어갑니다.
무풍을 지나고, 라제통문 굴도 지나고, 드디어 무주로 들어섭니다.
함양에서논 컴컴했던 세상들이 이곳으로 나오니 해는 아직도 두 뼘도 더 되게 남은 듯 햇살은 환하기만 합니다.
왼쪽으로 무주 적상산 향로봉(1024m)이 보입니다.
왼쪽 차창 밖으로 무주 적상산이 보입니다.
향로봉 아래 왼쪽 수평진 부분은 양수발전소 상부댐 제방 부분으로 보이고요..
적상산사고가 있어 더욱 유명한 곳, 당연히 산성도 있고, 안국사, 호국사(터)가 있고...
집에 와서 꺼내들은 지형도 속에서 거연정, 군자정을 찾아 봅니다. 주변의 높은 산들, 괘관산은 1251m나 되고..
황석산성이 있는 황석산이 지도 오른쪽에 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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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추억이 서린 적상산도 뒤로 하고 금산으로 돌아옵니다.
국도로만 다닌 길.
마달령을 지나 대전에 오니 280km이상 달린 드라이브 길이었다고. 운전기사는 말합니다.
에어컨도 켜지 않은 채 시원하게 한 드라이브 길이었네요.
대전에 도착하니 저녁 8시가 넘었고, 지나는 길가 한화 이글스 파크에서는 함성이 들리고.
무더운 여름 6월 25일 한국동란 발발 기념일에 시원한 나들이였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라에 감사하고, 조상님께 감사하고, 모든 이들에게 감사한 하루였습니다.
(2024.07.02. 카페지기 자부리 씀)
(*거연정의 뜻, 동천의 의미. 동호정, 황석산성 등에 관한 의문점들은 다른 자료를 찾아서 보충하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