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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추석이 다가옵니다.
다른 해 보다 일찍 찿아온 한가위가 아직 한 낮에는 푹푹 찌고 있어 그런지 우리 고유의 최대 명절이라는 기분이 영 나지 않네요. 나는 집사람과 고향이 같아 명절 귀성길이 비교적 수월합니다. 우리 집사람은 내가 다닌 중학교 일년 후배이고 장인 어른은 그 당시 그 학교 국사 선생님이셨기에 낮 설지 않고, 어색하지도 않으며, 색다른 게 없다 보니 편하고 좋은 게 많습니다. 모르긴 해도 아마 나쁜 것도 있겠지요…?^^!
양가의 부모님들은 올해 저희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다 돌아 가셨고 자식들은 모두 밖에 나가 살고 있으니 두 집이 다 텅텅 비어있지요. 우리집은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지은 오래된 집이라 빈집으로 묵혀도 그리 아깝지 않은데 처갓집은 멋드러진 한옥으로 지은 지 10년도 안된 새집이 텅 비어 있어 풀이 나고 곰팡이도 쓸고 조금씩 썩고 있으니 아깝기 그지 없습니다. 고향에 내려가면 두 집 공히 빈집 문 따고 들어가서 청소부터 해야 합니다.
늘 그렇듯이
연휴가 되면 어김없이 어떻게 든 내 혼자 즐기는 놀이로 살짝 빼먹을 못된 궁리를 합니다. 자전거타기, 등산, 달리기입니다. 가족들로부터 비난도 많이 듣곤 하지만 못 고치는 병입니다. 안 고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번 연휴에도 고향도 가고 좋아하는 산행도하고자 잔 머리를 마구 굴려봅니다.
산행이라
고향에서 가까운 큰 산이 소백산인데…아주 좋은 산입니다.
백두대간 허리춤으로 한나절에서부터 며칠이라도 제 입맛대로 헤집고 다닐 수 있는 곳입니다. 설악산이나 지리산처럼 골짜기는 그리 좋은 곳이 없지만 마루금을 따라 내쳐 걷기에는 더 없이 좋은 산입니다. 쭉 뻗어 태백산까지 이어지는 백두대간 길이 구미가 당기고 눈이 안 떨어 집니다. 죽령, 연화봉, 비로봉, 국망봉, 고치령, 마구령, 박달령등 걷기도 편하니 뛰어 다녀도 누구도 말릴 사람 없습니다.
이번 추석은 연휴가 짧습니다.
일요일이 추석이라 노는 날 이틀이 사라져 버렸네요. 일을 마치고 금요일 저녁 처음부터 출발을 국도로 시작했습니다. 귀성 전쟁터인 6시간짜리 고속도로를 비웃으며 3시간 반 만에 영주에 도착하니 막 자정을 넘기고 있습니다. 만만한 손아래 동서를 반 강제로 몰아세워 죽령고개까지 차를 움직이게 하였습니다. 죽령고개에 도착하니 추석 대보름 전날 누런 달이 휘영청 반겨줍니다. 기분이 그지없이 좋고 가슴이 부풀어 옵니다.
“어휴 형님! 혼자 차 몰아 돌아가기도 무서운데 어쩌라고 이 야밤에 혼자서…”
“수고했네 빨리 가서 자게. 내 걱정은 말고”
문이 닫힌 휴게소 평상에 앉아 행장을 점검하고, 화장실에 물을 채워 출발하니 9월 13일 토요일 새벽 2시반 입니다.
연화봉까지 허연 포장 길을 걸어야 합니다.
소백산 연화봉엔 천문대가 있고 그곳까지 차가 오가는 길이라 시멘트 포장이 되어 있네요. 걸으면서 계속 “이 길 자전거타기 좋은 길이구나” 속으로 외칩니다. 산행 중에 가끔씩 임도나 수월한 길을 걷다 보면 자전거 타고 싶을 때가 벌컥 벌컥 납니다.
“아으! 이걸 그냥 자전거로 내리 꽂으면… 10분도 채 안 걸릴 탠데…” 산길을 타박 타박 걷는 것도, 임도 위를 자전거의 두 바퀴를 굴리는 것도 다 그 나름의 재미가 있는 것입니다.
연화봉 천문대 옆을 지나는데 산토끼 한 마리가 톡 튀어나옵니다.
불을 비추니 꼼짝도 하지 않고 눈깔에 빨간 빛만 흘리고 있기에 기념사진 한 장을 찍어 주었습니다. 사방이 툭 터진 비로봉 가까이에 오니 어둠이 가시고 주변이 붐하게 밝아옵니다. 비로봉 계단을 오르다 잠시 쉬었습니다. 배낭을 벗고 바닥에 주저앉아 멀리 바라보고 신선하기 그지 없는 소백의 아침 정기를 마음껏 들어 마십니다. 곧장 비로봉 정상에 도착합니다. 큰 산 정상은 언제나 여러 사람들로 붐비는 것만 경험해서인지 사람하나 없는 비로봉 정상이 쓸쓸합니다. 이 시간에 누군가는 올라와 있을 것만 같았는데 역시 나 혼자이군요. 멀리 동녘이 붉게 불타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를 밝힐 태양이 힘차게 떠오르기 위해 산 밑에서 몸을 풀고 있네요.
일출이 언제부터 시작될지도 모르고 굳이 정상에 머물러 일출을 볼 필요가 없으니 곧장 국망봉를 향해 출발합니다. 이슬이 너무 많아 물 방울이 철철 흘러 넘치고 허리 아래가 흠뻑 젖어 물이 뚝뚝 떨어집니다. 얼마간 지나니 신발 속에도 물이 고여 질퍼덕 거립니다. 빨리 해가 뜨고 이슬을 말려 주면 좋겠습니다. 국망봉을 향해 멀리 막 솟아오를 것같은 해맞이를 하며 걷다가 이슬에 젖은 경사진 바위에 미끄러져 심할 정도의 엉덩방아를 찢고 말았습니다. 몸을 수습해 일어나 보니 걷는 데는 지장없고 왼쪽 팔 뒤꿈치가 까지고 쑤시네요. 다행입니다. 만약 걷지 못할 상황이었다면 휴대폰도 안 터지고 추석 전날 이곳까지 등산 올 사람도 없을 테니 소백산에서 영원히 못 내려갈 뻔 했습니다. (살아서ㅠㅠ!!)
넘어진 김에 쉬어 가기로 했습니다. 흐르는 피를 지혈시켜 약을 바르고 있는데 이글거리며 떠 오르는 해가 나뭇잎 사이로 보입니다. 주욱 주욱 지체 없이 솟구쳐 올라옵니다. 순간 부드런 햇살이 쫘악 펼쳐집니다. 저 빛나고 밝은 태양을 아무 댓가없이 그대로 볼 수 있을 만큼 나의 속 사람의 인격이 흠이 없지 않았나 봅니다. 아무도 없는 산속에 자빠트려 깨 닭게 합니다. 더 낮아지라고 더욱 겸손해지라고 그리고 혼자만 생각하지 말고 남도 좀 돌아보며 살아 보라고.. 고마운 메시지입니다. 그리고 이후 오늘 하루는 절대 보장하니 안심하라는 뜻까지 느껴집니다. 이렇게 마음을 정리하고 저 밝디 밝은 태양을 바라보니 우렁찬 함성이 터질 것 같은 기쁨과 만족과 고마움이 넘쳐 납니다. 지금 이 순간 소백의 아침이 이렇듯 감동과 환희로 펼쳐지고 있습니다.
아침 여덟시를 전후해 소백산 국망봉에 도착합니다.
여전히 이슬로 바짓가랑이와 신발은 젖어있고 얼굴에 칭칭 감기는 거미줄이 영 반가운 게 못됩니다. 그 동안 6시간 여를 걷는데 소모된 에너지는 뱃속에 차있던 연료를 고갈시켜 버렸습니다. 산길을 걷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달리기를 하면 뱃속의 연료는 정말 잘 탑니다. 무른 것이나 딱딱한 것 맛있는 것, 맛없는 것 가릴 것 없이 무엇이든지 잘 태워 에너지를 만들어 냅니다. 민망할 정도로 뱃속의 가스는 연신 가죽피리를 불어 재키면서 빠져나가고 이내 속은 텅텅 비고 허기가 느껴집니다. 이제 연료를 채울 때가 되었습니다. 신발 속의 물도 빼주어야 겠습니다. 국망봉 정상 양지 바르고 편안한 곳에 자리잡아 찹쌀떡과 물로 배를 채웠습니다.
전화가 터지네요.
올 여름 지리산을 몇 번 같이 다녀온 산우가 있습니다. 산을 엄청 좋아합니다. 산을 사랑하고, 산을 탐내고, 언제나 산에 대해 껄떡거리는 껄떡쇠입니다. 그래서 살짝 염장성이 내포된 문자를 날렸습니다. “시방 소백산 국망봉” 곧 이어 “좋겠다. 혼자서.. 조심해라” 답이 왔습니다.
여기서 부터 소백산 능선이라기보다 백두대간 길이 되겠네요. 가는데 까지 가볼 예정입니다. 한참을 가다가 삼거리가 나옵니다. 늦은맥이재라는 곳인데 여기서 드디어 알바를 하기 시작합니다. 무엇에 홀린 것처럼 마루금을 벗어나 단양쪽 계곡 길을 계속 내려갑니다. 내려가면서도 ‘이 길이 아니야 이 길이 대간길 일리가 없어” 한시간 가까이 내려가다 ‘절대로 백두대간 길이 아니다. 동네로 하산하는 길이다’ 라는 것을 확신하고 다시 돌아섰습니다. 한 순간에 힘이 쭉 빠져 나가버리고 땅에 주저 않아 엉엉 울고 싶네요. 이런 바보 같이 두 눈 멀쩡히 뜨고 너무도 잘되어 있는 이정표를 보고도 엉뚱한 길로 이렇게 멀리까지 오다니… 참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런데 변명 같으나 늦은맥이재 삼거리에 가보면 아마 백두대간 하시는 분들이 친절하게도 나 같은 초짜 산객은 헷갈리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마루금을 벗어나 단양쪽 길로 알록달록한 리본들을 주렁주렁 붙어 놓았네요. 정작 가야 될 마루금 길은 하나도 없고 엉뚱한 길에 리본을 잔뜩 붙어 놓았으니 ‘아! 이 길로도 대간 길이 형성되어 있나 보다. 혹시 식수를 구할 수 있고, 가다 보면 마루금길과 만날 수 있는 샛길이 틀림없어. 역시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들 착하고 친절해. 이렇게 자상하게 리본으로 길 안내를 해 주다니..’ “착각은 자유요 상처는 너의 몫!!!” 이라는 명언이 너무 너무 실감나게 느껴집니다. 다시 원위치로 올라 오는데 거반 시간반이 소요됩니다. 그러니 도합 두시간 반의 아르바이트를 공짜로 하고 나니 산행이 영 재미가 없어집니다.
국망봉에서 먹은 찹쌀떡이 벌써 다 에너지로 변해 소모되고, 방귀가 되고, 땀이 되어 날아가고 똥만 뱃속에 남아 있습니다. 다시 찹쌀떡 한 개를 보충하고 마당치와 고치령을 향해 가는데 해는 중천에 떠서 내리쫴나 나무그늘에 가려 그리 덥지않고 길이 좋아 걷기에 편하니 슬슬 잠이 오기 시작합니다. 졸음 운전도 위험하지만 졸음 산행도 위험하기는 마찬가지 어디서 한잠 자고 가야 겠습니다. 적당한 장소를 물색 배낭을 배고 잠을 청하니 깊은 잠은 들지 않네요. 열 두시 점심때를 넘기니 힘이 빠지고 걷는 속도가 뚝 떨어지며 배가 고파 밥 생각이 간절합니다. 사실 어제 아침부터 밥 구경을 못했지요. 어제 아침은 우유, 점심은 칼국수, 저녁은 굶고, 오늘 아침은 찹쌀떡 한 개, 그리고 간식으로 찰떡 한 개 더, 이제 남은 식량으론 찰떡 한 개 밖에 없네요. 내가 즐기는 놀이(등산, 자전거타기, 달리기)를 할 때 마다 늘 겪는 이 지독한 배고픔에서 어떤 즐거움 같은 것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산행 때도 먹을 것은 그다지 챙겨넣지 않고 마구 다닙니다. 마지막 남은 찰떡 한 개를 마저 털어넣고 고치령을 향해 갑니다.
아무래도 오늘 목표는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고치령까지로 해야 될 것 같습니다. 그래도 쓸데없는 알바까지 포함하면 30키로는 족히 넘는 산행입니다. 남은 구간 마구령, 선달산, 박달령등이 진짜 가보고 싶었던 길인데 아껴두기로 하고 가을이 깊어지면 다시한번 와야겠습니다. 또 추석 전날인데 날이 저물어 집에 들어가기 보다 좀 일찍 들어가는 것이 나을 듯 싶네요.(뻔뻔한 놈..!^^??)
오후 2시10분쯤 고치령에 도착했습니다.
이 고치령은 8년 전 2000년 8월 강원도 속초에서 내 고향 마을까지 백두대간길 근접해서 자전거를 타고 내려올 때 넘었던 길입니다. 고개너머 동네가 경북 영주시 단산면 미락리 조금 더 가면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 의풍리 반대쪽 고개 아래 동네가 역시 영주시 단산면 좌석리. 정말 감회가 새롭네요. 8년 전 여름 땀을 뻘뻘 흘리며 넘었던 고개입니다. 그 당시 인터넷에 올린 여행기가 내 블로그에 있어 다시 한번 읽어 보니 내가 쓴 여행기에 내가 감동이 되네요. 두 번째 보는 고치령 장승과 산령각이 낮 익고 반갑기 조차합니다.
산령각 옆에 자그마한 텐트가 하나 쳐 있네요. 조금 있으니 차 한대가 올라오고 30대쯤 보이는 남자가 내립니다. 텐트 주인인가 봅니다. 다가가서 물었습니다. 여기서 무엇하시냐고? 기도하고 있는 중이랍니다. 벌써 일 주일이 지났고 앞으로 며칠 더 있을 예정이랍니다. 왜 하필이면 여기서 기도냐고 물으니 특별한 인연이 있어서 그렇다고 하는데 잘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밤에 무섭지 않냐고 물으니 사람이 무서운데 밤엔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모쪼록 기도 잘 하시라는 말을 남기고 단산면 방향으로 하산을 시작 했습니다. 예전에는 비포장도로였는데 지금은 시멘트 포장이 되어 있네요. 얼마간 시멘트 길을 타박 타박 걸어서 내려오니 차가 옵니다. 아직은 차를 타고 싶지 않은데 차를 세우고 타라고 하니 안 탈 수도 없지요. 송이를 채취해서 영주, 봉화 송이 판매상에게 넘기는 중이 랍니다. 차 안에 송이 냄새가 물씬 풍깁니다. 목적지가 나와 같은 봉화라니 재수가 딱 좋습니다. 송이 얘기, 시골 얘기를 들으면서 편안하게 내 고향 봉화에 곧바로 도착했네요. 오늘 소백산과의 하루는 정말 행복했습니다. 며칠 동안 잔 머리 굴리면서 계획했던 산행은 끝이 나고 곧바로 추석 집안 분위기에 몰입합니다. 끝.
연화봉에서 만난 토끼
비로봉 정상
비로봉 일출전 풍경
일출
국망봉 정상
알바 시작점
고치령 장승
고치령
고치령 산령각
신내림 기도중인 분의 차량과 텐트
첫댓글 소백산하면 눈덮힌 산하와 칼바람 그리고 신록이 우거진 소백철쭉이 가장 먼저 생각납니다.겨울바람속에 주목대피소에서 돼지찌개 잊을수가 없습니다.소중한 축억이 묻어나는 소백산 산행 다시한번더 생각해봅니다.
네번 찾아가서 능선을 한번도 못본 독술이는 소백산을 무지 실어함돠.누운풀님가치 소백산신령이 저리 멋진 능선을 보요주묜 영원한 소백산마니아가 될텐데 인격이 덜되어 허락안하는 모양임돠~~잘 일거씀돠~~~
독술이님, 어쩌다 네번씩이나 능선길을 못 오르셨나요? 비로봉을 전후해서 이어지는 소백의 능선을 참으로 좋습니다. 꼭 한번 경험해 보실 기회가 있겠지요. 철쭉이 만발하는 봄이나, 단풍의 계절 가을은 말할 것도 없고 눈덥히 설산은 더욱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죽령에서 고치령까지 거침없는 질주를 하신 것 같습니다. 고향이 가까워 정이 더 느껴지는 좋은 산, 백두대간의 맥이 흘러가는 좋은 산, 소백산 종주를 축하합니다.
고향이 봉화시군요. 아마 알바한 지점이 오른쪽 동네로 내려가는 길인 것 같습니다. 고치령에서 단속을 많이 하니, 모 산악회에서 그리로 길을 만든 모양입니다. 알바하면 힘이 많이 빠지죠. 그래도 행복한 산행이었을 것 같습니다. 행복한 산행이어 가세요..^^
글 잘보았습니다,,,,전 추석다음날 죽령에서고치령까지 가족산행을 하엿는데 ,,,같은 코스를 가신것같습니다,,,안산하시길~~
가족이라!! 참으로 부럽습니다. 제 소원이 가족과 함께 오붓하게 산행을 해 보는 것입니다. 제 집사람은 산은 좋아하나 체력이 영 아니고 제 자식놈들은(재수생딸과 고1아들) 꿈쩍 안합니다. 엄청난 일당을 제공한다면 조금 움직일 것 같은데 제가 그건 못합니다. 행복한 산행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