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 밑으로 가라앉는 하현달
눈을 뜬다. 붕뜬 감각에서 수면위로 올라오는 의식을 인식하며 (인식? 그게 정확히 무슨 뜻이었지?) 천천히 눈을 뜬다. 질리는 것을 초월해서 이젠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는 밋밋한 천장이 동공에 비추어진다. 온몸이 식은땀 투성이에다가 무겁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무래도 오늘도 가위에 눌린 모양이다. 몸과 마음이 튼튼하면 가위에 눌리지 않는 다는 것도 다 뻥이다. 이불에 가려진 채로 천천히 위 아래로 움직이는 식스팩을 생각하며 몸에서 힘을 뺀다. ‘하나 둘 셋...’ 일주일에 네번은 가위에 눌리다 보니 가위눌리는 것에 대해 요령이 생겨버렸다. 스스로도 어이없게 생각하지만 사실이니 어쩔수가 없다. 내 9평 남짓의 집에는 테이블이 없음으로 바닥, 구체적으로는 침대 밑에 놓여있는 시계를 주워 시간을 본다. 9시 45분. 평소 기상시간보다 늦은 시간. 하지만 아무 문제도 없다. 다행히 오늘은 일요일. 닫혀져 있는 커텐 사이로 호기심 많은 개구쟁이들처럼 살며시 햇볕이 내 방을 엿본다. 기분이 나빠져 커텐을 더욱 확 닫는다. 불이 꺼진 극장처럼 다시 방안에 완전한 어둠에 잠겼다. 침대에서 일어나 손을 더듬거리며 전등 스위치를 눌렀다. 보고 싶지도 않을 만큼 싫은 집이 모습을 드러냈다. 현관문 앞에 코마이누처럼...... (아니 적어도 하치로 정정하도록 하자.) 늠름하게 절대 무너지지 않겠다는 각오를 한 것처럼 보이는 꽉찬 쓰레기 봉투들이 자리하고 있고 관광버스에서 쓸만한 냉장고가 싱크대 바로 옆에 놓여있다. 그리고 처음 여기 올때부터 있던 나무 옷장과 그 옆에 콘센트에 꽂혀 오늘도 내 전기세를 흡혈귀처럼 쪽쪽 빨아먹는 낡은 노트북 한 대가 놓여있다. 텅텅 비다시피한 냉장고를 열어 생수통을 꺼냈다. 한여름이라 푹푹 찌는 방안에서 이런 물은 내게 있어선 초신수 (드래곤볼에서 힘을 내게 해주는 신비한 물) 이나 다름없다. 꿀꺽꿀꺽 물통의 물을 목에다 넘기고 나니 가까스로 정신이 정돈되어갔다. 아 설명하는 것을 잊어먹었는데 침대 밑쪽에는 얼마 전에 가까스로 산 커다란 스피커와 음악재생기가 있다. 친구에게서 받은 음악cd를 재생기에 넣고 재생 버튼을 눌렀다. 이 음악재생기와 스피커를 산 후부터 생긴 작은 버릇이었다. 곧 작은 방안이 순식간에 활력을 되찾았다. 마치 죽은 시체 몸안에서 심장만이 시끄럽게 뛰는 느낌. 그럼 난 뭘까 죽은 몸안에 사는 기생충? 뭐 아무래도 좋지만.
침대에 앉아 차가운 생수통을 든 채로 음악을 듣는다. 음악의 재목이나 작곡가 가수 따윈 모른다. 사실 음악이라는게 뭔지도 나는 잘 모른다. 아니 음악뿐만이 아니라 예술 자체에대해서 별로 감응이 없다. 아마 이런 게 마음이 식었다는 것이겠지. 그런 내가 이 스피커를 산 것은 어쩌면 내가 남들처럼 살아있다는 것을 흉내내기 위한 행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무렇게도 느껴지지 않던 잔잔하면서도 묘하게 날카로운 이 음악이 갑자기 내 가슴을 움켜쥔다. 깜짝놀라서 얼른 리모컨으로 음악을 껐다. 다시 정적.
사실 난 이래뵈도 훌륭한 배우다. 역할이 뭐냐고? 그건바로 톱니바퀴다. 공장에 들어가서 같은 부품을 같은 제품에 끼는 것이다. 몇시간이고 계속 머리와 가슴을 차갑게 식히고서 연기에 몰입하는 것이다. 내가 유능한 배우이기 때문에 얼마전엔 조금이나마 보너스도 받았다. 술값으로 다 날렸지만. 뱃속에 물을 집어넣고 보니까 가까스로 내 자신이 허기지다는 것을 자각했다. 그래보았자 냉장고에는 아무것도 없는데....... 결국 잠옷으로 입은 져지채로 지갑만 들고서 밖으로 나섰다. 벌써 3달째 삼각주먹밥 신세다. 어제는 참치주먹밥 그저께는 춘천닭갈비 주먹밥 그저저깨는 호화롭게 스팸이 들어간 1000원짜리 삼각주먹밥. 이게 모두 왜 비싼지 알 수 없는 스피커 탓이다. 직장을 스피커 공장에 취직했으면 좋았을 탠데 가끔 후회한다.
일요일 아침의 길거리는 의외로 횅하다. 뜨거운 햇빛에 길 여기저기에 구멍이 뚫린 듯 길 위로 물이 고여있다. 물위로 내가 흐릿하게 비추어진다. 찡그리는 건지 웃는 건지 구분이 안된다. 어쩌면 우는 건지도 모른다고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 눈물에 빠져 익사하는 것일지도......
편의점안에 들자 시원한 바람이 몸을 감쌌다. 인사도 하지 않은 채 멍하니 앉아있는 아르바이트생을 지나 삼각김밥 코너로 들어갔다. 벽과 컵라면진열대의 비좁은 사이에서 엉덩이를 쭉 뺀 체 삼각김밥을 하나하나 고르고 있다.‘ 얼마전에 참치마요네즈 삼각김밥 먹었으니까 오늘은 좀 다른 것을 골라보자.’ 이런식으로 말이다. 참고로 결국 고른 것은 참치마요네즈 김밥이었다. 계산을 치르고 귀찮다는 이유로 전자레인지에 돌리지도 않은 채로 삼각김밥을 뜯고서 차가운 냉기가 그대로 남아있는 김밥을 한입 베어물었다. 차가워서인지 아무런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마요네즈와 참치의 느끼 짭쪼름한 맛만이 밥 속에서 가끔씩 모습을 드러낼 뿐이었다. 어째서인지 모르지만 밥을 씹을 때마다 입천장과 잇몸이 따갑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름 살벌한 식사를 끝내고서 편의점문을 열고 나왔다. 기분좋게 서늘했던 몸이 갑작스럽게 뜨거워 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서 다시 집으로 들어갈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오늘 하루는 밖에서 보내기로 결심하였다. 마침 지갑에도 이만원 정도 들어있었기에 아껴 쓴다면 오늘 하루는 버틸 수 있을 수 있었다. 다만 샤워를 못해 부스스한 머리와 지저분한 얼굴은 좀 걸렸으나 오늘 하루정도는 이렇게 다녀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내가 내얼굴을 보는 것도 아니니.
시간이란 자신의 주인에게 한없이 반항적이라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 바랄때는 거북이 보다 천천히 움직이고 천천히 지나가길 바랄 때는 한 없이 빨리 지나간다. 그리고 지금은 내가 바로 그 피해자. 한 여섯시간은 지난 듯 한 대 실제로는 2시간이 조금 안 지나 있었다. 그 두시간 동안 무얼 했는 가하면...... 뭘 했지? 어째서인지 기억이 흐릿하다. 마치 없었던 시간인 것 마냥, 공장에서 똑같은 부품을 똑같은 기계에 끼워 넣는 식의...... 무가치한 시간이었기에 잊어버린 것인가. 하고 스스로 납득해버렸다. 뇌란 원래 주인에게 필요한 기억만을 끌여다 쓸 수 있다고 하니까 딱히 이상한 일도 아니다. 그날 나는 pc방 주인이 내 시간에 채찍질 하는 대가로 8000원을 바쳤다.
pc방에서 나오자 어느새 하늘이 오렌지 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빛과 어둠이 섞여 경계가 흐릿하다. 바지 주머니에 손을 꽂고서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여전히 길 여기저기 얕게 고여있는 물 구덩이는 내 몸을 한 없이 어디론가로 끌어당겨서 나를 익사시킨다. 그 어딘가는 무료함인가 시간인가 나는 모르겠다.
달콤한 설탕의 밤고양이
확하고 눈을 뜬다. 산채로 시망박동기로 맞은 것처럼 몸이 벌떡 일어났다. 심장도 스파크를 점점 올리고 있었다. 아직도 눈동자에 남아있는...... 이름조차 모르는 사람의 최후가 신기루처럼 어둠속으로 사라져간다. 옆에 누워있는 (절대 남편은 아니다.) 50대의 뚱뚱한 남자가 잠결에 손을 더듬거려 내 젓가슴을 만졌다. 치울 기분도 안나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그보다 오늘 꾼 꿈이 더욱 신경 쓰인다. 날카로운 송곳과 그 송곳을 비치는 한 여자의 눈동자, 밤의 어둠과 자동차 소리에 가려져버린 비명소리 그리고 피. 마치 젓가슴을 애무하듯이 여자의 상반신을 조금씩 적셔가는 핏물이 눈에 선하다. 툭하고 가슴을 어루만지던 손이 이불에 덮힌 내 무릎위로 떨어진다.
침대에서 내려와 옷을 입는다. 팬티 셔츠 검은 스타킹 치마 외투 순으로. 담담해 보이지만 역시 성급하게. 남자는 아직 자고 있었다.
학대 받던 집에서 도망쳐나와 창녀 짓을 시작한지 어느덧 3년이 지났다. 떳떳하진 않지만 부끄럽지도 않은 직업. 귀찮지만 먹고 살려면 어쩔 수 없이 일을 해야만 하는사회가 낳은 똥같은 존재다 보기도 싫지만 배출 안 할 수도 없는. 핸드백 속에 들어있던 담배각속에서 한 개피를 꺼냈다. 마침 딱 한 개피만 남아있었다. 담배각을 구겨 아무렇게나 버렸다. 그리고 담배 연기로 머리에 천천히 시동을 걸었다.
첫댓글 안녕하세요. 문예창작학교 대학생연구반 장학회원 하영한이라고 합니다. 우선 글을 보니 미완이라고는 하지만 제목과 글의 주제가 어떤식으로 연결되는지 잘 모르겠네요. 소설은 구체적 사건들을 통해 주제를 만들고 그것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제목을 붙여 작가의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데, 이 글은 소설이나 꽁트라기 보다는 작가의 생각을 소설 형식에 빗대어 쓴 메모에 가깝네요. 또 문장이 어색한 부분이 많네요. 예를 들면 '불이 꺼진 극장처럼 다시 방안에 완전한 어둠에 잠겼다.' 라는 문장은 '방안이~잠겼다.' 등으로 고쳐야 문법에 맞지 않나 싶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더 좋은글 기대할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