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에 그의 말을 물을만한 하나님이 안 계심이냐 “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병이 든 아하시야왕은 자신의 병세 회복을 묻기 위해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신하들을 보내는 것을 봅니다.
‘누군가에게 묻는다’
그 의미는 그 대상을 의지한다는 뜻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 묻지 않았다는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다는 뜻인 것 같습니다.
기도하는 시간보다
사람을 만나 하소연하거나 설명하는 시간이 더 길다면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의지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실수를 얼마나 많이 저질렀는지요….
하나님!
제가 더 의지하는 것이 무엇인가요?
기도보다 더 앞서는 것이 무엇인지요?
주님께 묻겠습니다.
주님께 기도하겠습니다.
주님을 의지하겠습니다. 아멘!
아합을 이어 왕위에 오른 아하시아 왕의 어리석음과 교만을 봅니다.
이방의 신에게 묻는 것도 모자라 이방의 풍습을 따라 자신을 저주했다고 생각하는 엘리야를 잡아다가 그 말을 취소하게 하거나 그를 죽이려고 했던 것이라고 합니다.
나의 삶가운데 있는 나도 모르게 학습되어지고 따르고 있는 미신적인 생각과 행동은 없는지 집어보게 됩니다.
당연히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야 함에도 나의 입술과 행동에 무심코 나오는 미신을 쫓는 행위는 없는지 다시 점검해 보게 됩니다.
늘 하나님의 말씀에 바싹 붙어 있어야 함을 묵상합니다.
일상의 생활 중에 하나님의 반대되는 행위를 무심코 하게 되지는 않는지 늘 말씀으로 점검하며 살아야겠습니다.
아합이 죽고 그의 아들 아하시야가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다락 난간에 떨어져 병이 듭니다.
그는 가까이 계신 하나님께 병이 낫게 되는지를 묻지 않고, 멀리 떨어져 있는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사자를 보내어 병 낫기를 묻습니다.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너희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느냐”(3절 b)
하나님을 찾지 않는 아하시야에게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고 예고하시며 강하게 경고하십니다.
이 때라도 회개를 하면 좋았을 텐데 아하시야는 오히려 말씀을 대언한 엘리야를 죽이려 사람을 보냅니다.
어렵게 모시고 온 엘리야에게도 바알세붑에게도, 돈도 사람도 명예도 해결책이 될 수 없었던 아하시야.
진정한 해결책은 하나님과의 관계회복뿐이었습니다.
열왕기를 읽을수록 하나님께 전심으로 기도해야 함을 묵상하게 하십니다.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기도하지 않고 마음만 답답했던 아합왕’처럼 되지 않고, 무시로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하며 간구할 수 있는 자녀 되길 간절히 원합니다.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안 계셔서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느냐? 그러므로 너는 지금 누워 있는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
"내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너와 네 부하 오십 명을 태워 버릴 것이다."
난간에서 떨어져 크게 다친 아하시야왕은
사람들을 바알세붑에게 보내어 자신의 다친 몸이 나을 수 있는지 물어보라 명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나라 이스라엘의 왕이 하나님을 철저히 무시하고 우상을 찾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경고의 말씀을 하셨지만 그는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많은 사람의 희생이 따랐습니다.
그럼에도 끝까지 돌이키지 못한 아하시야왕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하였습니다.
우리의 삶 전체를 만지시는 하나님을 깨닫지 못한 아하시야왕의 삶이 불쌍했습니다.
그럼에도 사랑하기에 몇 번의 기회를 주셨으나 끝내 깨닫지 못한 그가 안쓰러웠습니다.
그의 모습을 통해 나의 믿음의 생활은 어떠한가 돌이켜봅니다.
늘 나의 곁에 항상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무시하지 않기 원합니다.
나의 삶을 계획하시고 뜻하신바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잊지 않고 기억하며 그의 크고 귀한 사랑을 늘 항상 먼저 느끼며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이 되기 원합니다.
고통 가운데 아하시야왕은 하나님보다 바알세붑을 먼저 찾았고 그에게 자신의 미래를 맡기었습니다.
내가 늘 먼저 찾고 구하고 두드려야 할 이는 하나님이심을 잊지 않기 원합니다.
나의 생명은 세상도 우상도 줄 수 없고 지켜줄 수도 없습니다.
내게 생명을 주시고 돌보시는 하나님을 항상 기억하며 하나님만을 사모하고 섬기는 주의 백성되길 기도합니다.
아하시야왕이 병들어서 그가 살지 그렇지 않을지 물을 대상이 하나님이 아니라 바알세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문제의 답이 하나님께 있습니다.
나에게 듣기 좋은 대답이 아니라 나에게 가장 좋은 대답을 주시는 하나님께 늘 기도하는 사람 되기를 기도합니다.
문제 앞에 먼저 걱정과 근심이 앞서서 이것저것 잡생각을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모든 문제의 가장 좋은 답을 주시는 하나님께 가장 먼저 기도하고 하나님의 답을 기다리며 평안함을 누리겠습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저의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구하겠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안에서 저의 마음을 지켜주시는 것을 경험하게 하옵소서.
오늘 극동방송을 들으니 어느 목사님이 김장환 목사님이 해주신 말씀이 아직도 인상깊게 남아 있다면서 들려주신 말씀입니다.
“세상 어떠한 것도 이길 수 없는게 겸손한 사람이네 겸손한 사람이 되게나”
오십부장 세사람이 차례로 엘리야에게 왕의 명령을 전달하지만, 마지막 1명의 오십부장만 살아남습니다.
그는 엘리야 앞에서 겸손히 무릎을 꿇고 그의 권위를 인정하므로 자신뿐만 아니라 휘하의 오십명의 목숨도 구하게 됩니다.
세상엔 많은 지식과 지혜가 있지만 지혜의 근본이신 하나님 앞에서는 자랑할 것이 없음을 다시한번 고백합니다.
겸손히 설수 있도록 말씀가운데 나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