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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태복음 13장 24-30절 곡식을 위하시는 예수님
논에 모를 심으면 심지도 않은 피가 자랍니다. 이스라엘에도 곡식을 심으면 심지도 않은 가라지가 납니다. 가라지는 곡식이 먹어야 할 양분을 먹어가면서 곡식이 열매를 맺지 못하게 막습니다. 그래서 거라지의 영향을 받은 곡식들은 알곡을 맺히지 못하고 쭉정이만 맺히게 됩니다. 그것은 농사를 짓는 농부가 바라는 일도 아니고 또한 예상했던 결과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곡식과 가라지의 비유를 하시면서 예수님이 관심을 가지고 계시는 것은 곡식이지 가라지가 아니라는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다시 말해서 곡식은 하나라도 상하거나 죽는 것을 원치 않고 지키신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농부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곡식이지 가라지가 아닌 것처럼 예수님에게 있어서도 중요한 것은 참된 하나님의 자녀요 백성들이지 믿음없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믿음없는 사람들이나 잘못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의 알곡이 아닙니다. 그들이 이 세상에서 자기는 하나님의 복을 받았다고 말할 지라도 예수님을 믿고 영혼이 구원받은 사람이 아니라면 그는 알곡이 아닙니다. 그의 결과는 불타는 곳에 던져질 뿐입니다.
예수님은 그 비유를 통해 천국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 24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여기서 또 비유를 들으셨다는 것은 앞에 씨를 뿌릴 때 그 씨앗을 받는 네 가지의 땅에 대한 비유를 마치신 후 또 다른 비유를 이어서 하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바로 천국 비유입니다.
천국은 좋은 씨를 자기 밭에 뿌린 사람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 씨를 뿌리시는 분은 인자이신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직접 뿌리기도 하시고 종들을 시켜TJ 뿌리기도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자신의 땅인 이스라엘에 그리고 더 크게 보면 지구라는 땅덩어리에 하나님의 말씀의 씨요 진리의 씨를 뿌리셨습니다. 온전하고 완전한 복음의 씨를 뿌리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씨를 뿌리심으로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바라셨습니다.
하지만 사탄 마귀는 에덴 동산에서도 그러했던 것처럼 예수님이 복음을 전하신 이 땅에서도 역시 거짓된 가라지를 계속해서 뿌립니다. 특히나 교회 안에 계속해서 뿌립니다. 그들은 거짓된 믿음을 가지고 있으며, 또한 사도 바울이 말씀한대로 거짓 복음을 전하며 믿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25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원수 마귀는 사람들이 잘 때, 영적으로 어려운 때에 슬그머니 가라지를 예수님의 땅에 뿌립니다. 진화론이라는 씨도 뿌리고, 공산주의라는 씨도 뿌립니다. 그리고 이단이라는 씨도 뿌립니다. 이 세상에도 뿌리고, 교회에도 뿌립니다. 세상에 수많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상한 이론들과 사상들이 등장하는 때는 바로 교회가 영적인 잠을 잘 때입니다.
교회가 영적인 잠을 잘 때가 있습니다. 시험의 때를 말씀하기도 하고 교회가 교리적인 위협을 받을 때를 말하기도 합니다. 또 교회가 세상의 풍요에 취해있을 때도 역시 잠을 잡니다.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선포했습니다. 그동안 수많은 고통와 박해를 받던 교회들이 환호성을 쳤습니다. 그런데 그때부터 교회는 서서히 잠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기독교의 생명력도 성령의 역사도 사라졌습니다. 하나님은 새로운 새벽을 여시기 위해 마틴 루터의 영혼을 깨우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에 의해 놀라 깨어난 루터는 그 진리를 사람들에게 전했습니다. 그런데 로마 카톨릭교회는 잠을 깨우는 마친루터의 개혁을 저지하고 계속해서 영적인 잠을 자기 원했습니다. 그래서 마틴 루터를 박해했고 죽이고자 했습니다.
교회가 잠잘 때 여기저기 우후죽순처럼 가라지들이 뿌려지고 싹이납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보시듯이 원수 마귀는 곡식을 뽑는 일을 하지는 않습니다. 곡식을 뽑고 거기에 가라지를 뿌리는 것이 아니라 곡식이 뿌려진 밭 위에 가라지를 덧뿌립니다. 그래서 원수 마귀는 하나님의 밭에 가라지를 뿌려서 혼란을 주는 훼방자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구교나 신교나 똑같은 교회인데 왜 저렇게 자기들만이 진리라고 하는지 이해를 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참 진리가 무엇인지를 알지 못합니다. 잠자는 교회는 세상에 혼란을 주며 세상을 영적으로 죽게 합니다.
예전에 히스기야 왕때 앗수르왕이 군대를 몰고 유다를 쳐들어 왔습니다. 그때 산헤립은 편지 한 통을 자기의 신복은 랍사게를 통해 히스기야왕과 백성들에게 읽어주라고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 전에 히스기야왕은 백성들에게 오신 만군의 주이신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앗수르의 사신이 와서 뭐라고 말하든지 간에 침묵하라고 명령했습니다.
얼마 후에 랍사게는 예루살렘에 도착해서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앗수르왕과 앗수르의 신을 높이면서 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항복하지 않고 대적하여 싸우는 일은 무모한 일이라고 하면서 히스기야왕이 가르친 것은 어리석은 말이라고 하면서 유다의 하나님 여호와와 히스기야왕이 백성들에게 가르친 말을 훼방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이사야 37장 17절을 보면 “여호와여 귀를 기울여 들으시옵소서 여호와여 눈을 뜨고 보시옵소서 산헤립이 사람을 보내어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훼방한 모든 말을 들으시옵소서”하면서 그 외에 여러 가지를 자신의 신앙고백과 함께 하나님 앞에서 아뢰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이사야선지자를 통하여 히스기야왕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 37장 21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사람을 보내어 히스기야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네가 앗수르의 산헤립 왕의 일로 내게 기도하였도다 하시고”
그리고 나서 이사야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앗수르왕 산헤립을 향하여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히스기야왕에게 전해주고 있습니다. 23-25절입니다. “네가 훼방하며 능욕한 것은 누구에게냐 네가 소리를 높이며 눈을 높이 들어 향한 것은 누구에게냐 곧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에게니라 네가 네 종을 통해서 주를 훼방하여 이르기를 내가 나의 허다한 병거를 거느리고 산들의 꼭대기에 올라가며 레바논의 깊은 곳에 이르렀으니 높은 백향목과 아름다운 향나무를 베고 또 그 제일 높은 곳에 들어가 살진 땅의 수풀에 이를 것이며 내가 우물을 파서 물을 마셨으니 내 발바닥으로 애굽의 모든 하수를 말리리라 하였도다”
앗수르왕 산헤립은 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할 것이지만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면 기도했던 히스기야왕은 들었고, 또한 하나님께서 자신이 하신 말씀을 어떻게 이루실지를 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렇게 하나님의 곡식인 하나님의 백성에게 전해지지 가라지를 뿌리는 원수 마귀에게 전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가라지에게도 물론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대적하는 가라지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어려움과 고통을 줍니다. 그리고 교회가 진리의 말씀을 붙들고 순종하면서 사는 것을 계속적으로 훼방합니다. 그로인해 교회는 완전한 하나님 나라로 들어갈 때까지 계속해서 어려움을 당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성령은 원수의 강한 압박에도 견딜 힘과 인내를 허락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가 하나님의 자녀요 백성들에게 있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때부터 마귀가 뿌린 가라지인 이단의 뿌리는 싹을 내었고 지금까지도 그들의 가르침을 받는 사람들이 꾸준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예수님 말씀대로입니다. 26절입니다.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싹이 날 때도 보였던 가라지가 결실할 때까지 계속해서 보여집니다. 초대교회에 나타났던 이단들의 가르침을 받는 무리들이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들은 자기들의 세력을 키우기 위해 계속해서 교회를 공격합니다. 교회 안팎에서 계속 공격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어려움을 당합니다. 한 번 당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오셔서 그들을 심판하시는 그날까지 계속해서 어려움을 당합니다. 하지만 곡식같은 성도들의 참된 보장은 예수님께 있습니다.
예수님의 열심있는 종들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마태복음 13장 27절입니다.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집주인의 종들은 좋은 씨만 뿌렸습니다.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선교를 했던 선교사들은 좋은 씨만을 뿌렸습니다. 교회를 개척하는 목회자들 역시 좋은 씨만 뿌립니다.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곡식들의 싹이 올라오는 데 보니까 드문드문 가라지들의 싹도 올라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놀란 예수님의 종들이 묻습니다. “주여 우리는 주님이 주신 좋은 씨앗들만 뿌렸는데 어떻게 가라지가 생겼는지 모르겠습니다.”그러자 주인이 대답합니다. 28절입니다. “주인이 이르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원수가 가라지를 뿌렸다는 주인의 말씀을 들은 주인을 사랑하는 열심있는 종들이 묻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을까요”그러자 주인이 대답합니다. 29절입니다.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이것이 교회가 잘 때 생긴 수많은 사상들과 이단들과 교회 안의 가라지들을 그냥 두게 하시는 이유입니다. 왜냐하면 가라지를 뽑다보면 곡식이 뽑히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저도 밭에 나가서 곡식을 위해서 풀을 뽑다보면 곡식들이 더러 뽑히는 것을 경험합니다. 예수님에게 있어 한 영혼은 수만명의 가라지보다 더 소중합니다. 예수님에게 있어서 여러분 한 사람은 수만명의 믿지 않는 사람들이나 아니면 거짓된 믿음을 가진 사람들보다 더 소중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기독교가 가라지 같은 그들 때문에 힘들고 교회가 그들 때문에 힘들어도 그냥 두게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30절입니다.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심는 때가 있으면 거둘 때도 있습니다. 예수님 역시 추수할 때가 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때까지는 곡식도 그냥 두고 가라지도 그냥 두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그냥 두라는 말씀은 방치하라는 말씀이 아니라 곡식을 키우느라고 들어가는 영양분을 가라지가 빼앗아 먹으면서 곡식을 힘들게 할지라도, 다시 말해 성령으로 난자를 육체가 난 자가 괴롭힐지라도 계속해서 곡식들이 계속해서 자라도록 힘쓰라는 말씀입니다. 갈라다아서 4장 29절을 보면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하고 말씀하십니다. 이러니 성령으로 난 하나님의 자녀요 백성들이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자녀들을 괴롭히는 육체로 난 자들이 보일지라도 그들을 그냥 두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실제로 장로교회에서나 감리교회에서는 권징제도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죄를 범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 교회에서 권고하거나 내보내는 제도입니다. 그런데 이런 제도를 사용하다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큰 상처를 주거나 교회를 떠나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이유는 신앙이 어린 성도들은 교회 자체를 사랑덩어리로 압니다. 실제로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교회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가라지같은 교인들이 계속해서 문제를 일으키니까 그들을 징계하였을 때 그 어린 성도들은 마음에 상처를 받습니다. 사랑이 넘쳐야할 교회가, 그리고 잘못한 사람이 있으면 용서하라고 가르치는 교회가 잘못한 사람들을 가차없이 잘라낸다는 생각을 하면서 “이 교회는 사랑이 없어”하고 실족하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진리로 평가하기에는 너무 어립니다. 그래서 교회가 하는 권징에 상처를 받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신천지같은 사람들이 교회에 와서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는데 그냥 두라는 말씀은 아닙니다. 그들을 빨리 분별하고 내보내야 합니다. 그들은 소속이 다른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라지는 원래 교회 안에서 있거나 다른 교회에서 왔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바탕이 마귀에게 속하였기 때문에 복음의 말씀, 진리의 말씀을 들어도 전혀 선한 영향력을 받지 않습니다. 그들은 가라지가 싹을 내고 자라는 것처럼 자라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가라지가 처음에는 곡식과 비슷하게 자라는 것처럼 참된 성도와 거짓된 성도는 비슷하게 성장하고 있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근원이 다릅니다. 참된 성도는 진리이신 예수님의 터 위에 세워져 주님의 복음을 전적으로 믿고 신뢰하면서 자랍니다. 하지만 거짓된 교인은 몸으로 봉사는 하고 교회의 활동에 열심히 참여할 지라도 그의 내면에는 성령이 계시지 않기 때문에 참 평안이나 기쁨이 없습니다.
주님과의 친밀한 사랑의 관계가 결여된 사람들의 영혼은 늘 곤고합니다. 그리고 하늘로부터 오는 평안을 누리지 못합니다. 그리고 자기 중심적인 마음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하늘 나라의 열매인 성령의 열매가 맺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거듭난 여러분들은 성령으로 났기 때문에 당연히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여러분들을 극진히 사랑하시기에 여러분 주변에 있는 가라지를 그대로 두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 가라지는 불못에 던져질 때가 오며, 성령으로 난 곡식인 여러분들은 하늘 나라 천국 창고에 불러올리실 때가 옵니다. 그때를 바라보며 힘써 인내하면서 주님이 주신 말씀대로 순종해 나가시는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