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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虎) 이야기》>>
올해는 단기 4355년,
서기 2022년, 불기는 2565년이다.
단기는 단군기원(檀君紀元)의 준말이다.
단기(檀紀): 고조선 건국 해, 서기전 2333년, 서기에 2333년을 더하면 단기가 된다.
서기(西紀): AD(Anno Domini: 주님의 해)
예수님 탄신년(誕辰年)을 말한다.
불기(佛紀)는 석가모니가 네팔 룸비니에서
탄신한 해로 서기에 543년을 더한다.
[ 쌍팔년도는 언제인가? ]
우리가 흔히 쌍팔년도(88)라고 말하는 해는
6.25 직후 단기 4288년(1955년)을 말한다.
국민소득 65달러로 세계 최빈국, 초근목피의 어려웠던 시절을 견주어 하는 말이다.
《한민족의 기원(紀元)》
고조선과 단군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중국의 '위서(魏書)'와 우리나라의 '고기(古記)'를
인용한 <삼국유사>이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천제(天帝) 환인(桓因)의
아들 환웅(桓雄)은 홍익인간(洪益人間)의
이념으로 천부인(天符印) 3개와 풍백(風伯)· 우사(雨師)·운사(雲師)와 무리 3천을 거느리고 태백산 신단수에 내려와 신시를 세우시며,
웅녀와 결혼해서 단군이 탄생했다고 전한다.
국조(國祖) 단군왕검(檀君王儉)께서
기원전 2333년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시고, 국호를 조선(朝鮮)이라 하신 그 해가 바로 단군기원(檀紀)의 원년이다.
단기 원년을 서기전 2333년으로 보는 근거는, 조선시대의 사서인 동국통감(東國通鑑)에서 고조선의 건국을 중국 요(堯)임금 즉위 25년 무진년(戊辰年)으로 본 것에서 기인한 것이다.
태백산(太伯山) 신단수(神壇樹) 신시(神市)와 아사달(阿斯達)은 같은 장소로 추측한다.
그곳은 평양(平壤)과 구월산(九月山)이라는
두 가지 설이 있다.
'단군'은 제사장, '왕검'은 정치 지도자를
뜻하는 말이므로, 당시 최고 지배자는 제사와
정치(祭政一治)를 다 주관했음을 알 수 있다.
단군신화는 三國遺事, 帝王韻紀, 應製詩註,
世宗實錄地理志 등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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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아 한반도 기원의
민족종교로 발전된 것이 1909년 나철(羅喆)이 세운 대종교(大倧敎)였다.
개천절은 이 종교에서 행하던 의식이었으나,
광복 후 정부에서 한민족 창업과 개국에 관한 국경일로 정하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사용한 단기(檀紀)는 고려 말 우왕(禑王)의 사부(師父) 백문보(白文寶)가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61년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은
연호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1962년
(단기 4295년) 1월 1일부터 단기를 서기로
바꿔 오늘에 이르고 있다.
《범(호랑이) 이야기》
2022년, 임인년(壬寅年)이다.
간지(干支)의 壬은 검은 색, 寅은 범을 뜻하니
올해는 <검은호랑이> 해이다.
범(虎)은 백수(百獸)의 왕이다.
우리나라 포유류 동물은 31과 125종으로 밝혀졌는데, 그 중 약 1/3은 이미 절멸했거나 멸종했고, 대부분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
<한반도 고양이과 동물>
범(虎:호), 표범(豹虎:표호), 스라소니(土豹:토표), 삵(山描:산묘), 고양이(家描:가묘) 5종이 있었으나 남한에는 삵과 고양이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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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신화에도 등장하는 범(호랑이)을
예전부터 우리 선조들은 <범>이라고 불렀지
<호랑이>라는 말은 쓰지 않았다.
호랑이란 말은 18세기 기록에 처음 등장한다.
3국시대나 고려시대엔 살생을 금하는
불교 영향으로 범을 신성시했다.
조선시대 유교는 사람은 만물의 영장(靈長),
사람을 해치는 동물은 용서하지 않았다.
조선 후기엔 사람을 해치는 범(虎:호)과
늑대(狼:랑)를 합쳐 <호랑>이라 불렀고,
시랑(豺狼)은 승냥이와 늑대를 가르켰다.
그때까지 '호랑'은 범을 뜻하지는 않았다.
일본엔 범과 표범이 서식하지 않았다.
한반도를 강점한 일제(日帝)는 호피를 탐내며 해수(害獸) 구제란 구실로 맹수류를 남획했다.
그때 범과 늑대를 '호랑(虎狼)'으로 부르던 것이 지금은 범을 뜻하는 말 '호랑이'로 굳어졌다.
일제의 맹수류 남획은 범·표범·스라소니·
늑대·승냥이·여우가 사라지는 계기가 되었고,
6.25 전쟁과 쥐약·농약 등도 한몫 거들었다.
《범》은 우리 조상 대대로 써 왔던
호랑이의 순 우리말이다.
범·표범·물범·범나비·범띠·범골·범바위,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 등,
범이란 말이 생활 주변에 아직 많이 남아 있다.
이제라도 일제의 잔재에서 벗어나서
백수의 왕인 <범>의 제 이름을 찾아주자.
《호랑이를 <범>이라고 부르자》
《범》
범(호랑이)은 9아종(亞種)으로 분류하는데
발리, 자바, 카스피 아종은 이미 멸종했고
시베리아, 벵골, 남중국, 인도차이나, 말레이, 수마트라호랑이 등 6종이 서식한다.
범은 모두 멸종위기종으로 전 세계에 야생
개체 수는 약 4.000마리 정도, 가장 큰
시베리아호랑이는 겨우 500마리가 남아 있다.
돌연변이에 의한 백호, 금호, 은호가 있고
가끔 진귀한 흑호가 나타나기도 한다.
한국범은 시베리아호랑이 아종에 속한다.
남한에서는 1922년 경주 대덕산에서 수컷 1마리가 사살되고, 1924년 강원도 횡성에서
1마리가 포획된 기록이 마지막이다.
《표범》
표범은 9아종으로 나뉘는데 한국표범은 이무르표범에 속했으나, 지금은 만주와 러시아 극동지역에 100마리 미만이 서식하는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아프리카표범 외 8아종은 멸종위기종이다.
한국표범은 1962년 경남 합천에서 1마리가 생포되 창경원 동물원에서 1973년에 죽은
것이 마지막이었다.
《호식장(虎食葬)》
옛날에는 한반도에 범이 참 많았던 것 같다.
아직도 깊은 산골에 가면 호식장(虎食葬)의
전설과 호식총(虎食塚)이 남아 있다.
호식장은 범이 사람을 잡아먹고 남긴 시신을 거두어 장사지내는 의례이며, 주로 화장한 그 무덤을 호식총이라 한다.
호식총은 돌을 쌓아 만든 돌무덤인데 시루를
엎어 놓고, 시루 구멍에 물레 가락을 꽂아 두는 특이한 형태의 무덤이다.
본인은 1980년대, 강원도 태백에서 이런
호식총을 여러 곳에서 목격했다.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담배는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피우던 것을,
신대륙 발견으로 1558년 스페인 필립 2세 때 유럽에 전해졌다.
우리나라에 담배가 전해진 것은 이수광의 지봉유설에 의하면 1611~12년 사이 일본에서 들어왔다는데,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에서 전해졌다는 설도 있다.
프랑스에 담배를 보급시킨 '장 니코'에 의해
'니코틴'이란 말이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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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8년 한국을 최초로 외국(유럽)에 소개한
하멜 표류기에, 조선에는 담배를 대여섯
살부터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피운다고 썼다.
이 책의 원명은 《바타비아 출발 일본행 스페르베르호의 불행한 항해 일지》였는데,
바타비아는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이다.
그 당시 조선에서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담배를 피우며, 어른들과 맞담배도 하고
기호품으로 자유롭게 즐겼던 것 같다.
부산 고교시절 한국으로 수학여행을 온
일본 학생들이, 일본에서는 부모님 앞에서도
담배를 핀다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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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光海君)은 몸이 쇠약했다고 한다.
신하들이 조정에서 담배를 피우면 왕이 기침을 심하게 하니까, 대궐 구석으로 가서 피우다가
차츰 궁궐에서는 금연을 하게 되었다.
18세기 유득공의 <경도잡지>에는 천민은
양반 앞에서 담배를 피지 못하고,
피우다가 발각되면 벌을 준다라고 기록했다.
18세기에 접어들면서 젊은 여자나 어린이는
금연, 천민들은 숨어서 피는 엄격한 제도로 바뀌면서 담배는 양반들의 전유물이 되었다.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은 호랑이가 담배를 피었다는 게 아나라, 담배가 처음 도입돼
너도 나도, 개도 소도, 호랑이까지도, 누구나
규제 없이 맘대로 피던 시절 17세기를 말한다.
<호랑이가 담배 피던 시절>이란,
신분제도의 굴레에서 예전 자유롭게 담배를 즐기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민초들의 원망과 향수가 짙게 담겨진 넋두리였던 것이다
- 범 내려 온다 -
▶맹호도(20세기 초) 우석 황종하(1887~1952)의 그림이다. 호랑이 그림은 예로부터 호랑이의 용맹함에 기대어 액을 물리치는 벽사의 의미로 많이 그렸다. 호랑이에 얽힌 이야기 임인년, 검은 호랑이의 해가 시작됐다. 호랑이는 우리나라에서 12지지 동물 이상의 매력을 뽐냈다. 멀리는 단군신화의 호랑이부터 가까이는 1988 서울올림픽의 ‘호돌이’와 2018 평창동계올림픽의 ‘수호랑’까지. 한민족을 대표하는 상징으로 늘 호랑이가 등장했다. 호랑이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를 국립민속박물관에서 발간한 <한국민속상징사전: 호랑이 편>과 특별전 <호랑이 나라>를 통해 알아본다. 방대한 호랑이 흔적 “조선 사람들은 반년 동안 호랑이 사냥을 하고 나머지 반년 동안은 호랑이가 조선 사람을 사냥한다.” 120여 년 전에 출간된 비숍의 여행기 기록에서 보듯 예전에는 호랑이가 민가에 자주 출몰해 가축이나 사람을 해칠 정도로 그 개체수가 많았다. 호랑이와 관련해 <한국구비문학대계>에서는 1000여 건의 설화를, <조선왕조실록>에서는 700여 건의 기사를 확인할 수 있다. 구술과 기록으로 대표되는 두 문헌에 나타난 방대한 호랑이의 흔적은 오랫동안 호랑이가 우리의 삶과 함께 했다는 증거다.
▶십이지신도-인신(1977) 불법을 수호하는 호랑이 신장 그림이다. 반은 인간이고 반은 동물의 모습을 하고 있다. 십이지신도는 절에서 큰 행사를 할 때 해당 방위에 걸어 잡귀를 막는 역할을 한다. 예로부터 산신령으로 불리던 동물 단군신화에서 환웅의 배필 자리를 놓고 호랑이와 곰이 경쟁을 벌여 곰이 승자가 됐다. 그러나 우리 민속에서 호랑이는 곰보다 월등하게 많이 등장한다. 이는 구술과 기록에 나타난 수많은 호환의 흔적으로 유추하건대 호랑이에 대한 두려움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이며 그 결과 호랑이는 우리 문화에서 숭배의 대상으로 자리 잡는다. 호랑이를 신으로 삼고 제사를 지낸 <삼국지 위서 동이전>의 기록, 호랑이를 산군이라 부르며 무당이 진산에 도당제를 올린 <오주연문장전산고>의 기록 등 호랑이는 우리 땅에서 산신, 산군, 산신령 등으로 불리며 신으로 섬겨졌다. 전시에서는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은산별신제에서 썼던 산신도’를 비롯해 초창기 민속학자 석남 송석하(1904~1948)가 일제강점기에 수집한 ‘산신도·산신당 흑백사진’ 등을 통해 오래전부터 호랑이를 산신으로 섬긴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산신도(1890년대) 충청남도 부여군 은산면 은산리에서 지내는 은산별신제에 사용하였던 산신도이다. 우리 민속에서 호랑이는 산신으로 좌정하거나 산신을 보좌하는 동물로 나타난다. 대문 위에 걸린 호랑이 예로부터 호랑이는 그림이나 부적 등에 새겨 나쁜 기운, 즉 액을 막는 벽사의 수단으로 쓰였다. 새해 첫날 호랑이 그림을 그려 붙이는 세화, 단오에 쑥으로 호랑이 형상을 만드는 애호 등은 모두 호랑이의 용맹함에 기대어 액을 물리치고자 했던 조상들의 풍속이었다. 이번 전시에 소개하는 <열양세시기>에서 세화와 애호의 풍속을 확인할 수 있고 더불어 삼재를 막기 위해 만든 ‘삼재부적판’, ‘작호도’ 등을 통해 호랑이의 용맹함에 기대어 액을 막고자 했던 조상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오늘날 ‘까치호랑이’라고 풀어 부르는 ‘작호도’는 대문 양쪽에 호랑이와 용을 그려 붙이는 ‘용호문배도’와 함께 문배 그림 중에서도 인기 있는 소재였다. 이번 전시에는 두 점의 ‘작호도’를 선보인다. 한 점은 까치에게 강퍅하게 성을 내는 호랑이의 모습이고 다른 한 점은 바위 사이를 날렵하게 뛰어넘는 표범의 모습이다. 옛사람들은 줄무늬범과 표범을 모두 호랑이로 불렀다. 조선시대에는 신부가 타는 혼례용 가마 위에 호랑이 가죽을 덮었다. 호랑이의 위용을 빌려 먼 거리를 무사히 이동하길 바라는 기원이다.
▶작호도(19세기) 호랑이와 나뭇가지에 앉은 까치를 소재로 그렸다. 각기 호랑이는 벽사와 보은, 소나무는 장수, 까치는 기쁨을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하거나 호랑이와 까치를 강자와 약자에 비유하여 해석하기도 한다. | 국립민속박물관
호환 방지 범굿
동해안 지역에서는 호랑이에게 물려 죽은 사람의 영혼을 위로하고 호환을 방지하기 위해 ‘범굿’을 지냈는데 대표적으로 포항의 ‘강사리 범굿’을 들 수 있다. “이 범을 잡아야 될 거라야 그놈 참 머 험하기도 험하다”라는 무가(巫歌)로 시작해 “옛날에 모두 옛 조상들데 논 이 호랑이굿을 이래 불러주고 위해줍니다”라는 무가로 범굿을 마치는데 이를 통해 호환의 두려움과 오래전부터 범굿이 전승됐음을 알 수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한국의 굿’ 시리즈로 유명한 사진작가 김수남(1949~2006)이 1981년에 촬영한 강사리 범굿의 사진을 슬라이드 쇼 형태로 소개한다.
▶강사리 범굿의 호랑이(1981) | 국립민속박물관 호랑이 나라! 세계인의 축제인 올림픽 개최는 우리 역사에 딱 두 번 있었다. 1988 서울올림픽에서도, 30년 뒤 평창올림픽에서도 마스코트는 호랑이였다. 또 아시아의 호랑이로 불리는 국가대표 축구팀의 유니폼에는 호랑이가 엠블럼 형태로 부착돼 우리나라를 상징하고 있다. 서울올림픽 마스코트 ‘호돌이’, 평창동계올림픽 마스코트 ‘수호랑’ 모두 이번 전시에 선보이며 ‘2002년 한일월드컵 기념 축구공’, ‘남아프리카공화국월드컵 기념 티셔츠’ 등을 통해 여전히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동물로 위상을 떨치는 호랑이를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