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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봉서방
성경 용어 해설
거듭남
이 단어를 최초로 사용하신 분은 예수님 자신이다.
그 분께서는 잃어 버린 바된 인류에게 두 번째 출생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시기 위해 이 단어를 사용하셨다.(요3:3). 인간의 첫 번째 출생은 물리적인 것이고 그의 영은 하나님 보시기에 죽어 있다. 그러나 그가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할 때 그 사람은 거듭나는 것, 즉 다시 태어나는 것이며 그의 죽은 영이 "살리심"을 받는 것이다.(엡2:1). 성령께서는 거듭나는 순간 그 사람 안에 내주하시며(엡4:30)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 생명을 그에게 주신다.(갈2:20, 고후5:17). 모든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거듭난 사람들이며,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당신은 참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가? 베드로전서1:23을 볼 것.
거짓 선지자
거짓 선지자는 미래의 사건을 거짓 되이 예언하는 사람을 말한다.
요한일서4:1은 세상에 "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나왔다고 말씀하며,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24:11에서 이를 예언하셨다. 거짓 선지자들은 기적을 베풀고(마24:24, 계13:14) 정중한 말과 그럴 듯한 언변으로 다가오나(롬16:17-18) 그들이 하는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다(렘14:14). 거짓 선지자들은 대개 인류, 연합, 사랑, 과학, 교육, 통합, 세계평화 등의 문제에 대해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반면, 성경의 무오성이나,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구원을 받는다는 교리, 피의 속죄, 그리스도의 신성, 그리스도의 전천년 재림 등 성경적 교리에 대해서는 대단히 부정적인 견해를 갖는 특징으로 한다. 이사야 8:20과 신명기 18:20-22은 진짜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를 분별하려 할 때 반드시 명심해야 하는 구절이다. 또 마태복음 7:20의 "그러므로 너희는 그 열매들을 보고 나무들을 알게 되리라"는 말씀도 기억해야 한다.
겸 손
겸손한 사람은 자신에 대해 스스로 생각해야 하는 것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롬 12:3).
마태복음 18:3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어린 아이들" 같아야 된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때가 되면 우리를 높이실 것을 믿으면서 그 분의 목전에서 기쁜 마음으로 낮아져야 한다(골3:12, 약4:6,10, 벧전5:6). 잠언 15:33은 "...존귀에 앞서 겸손이 있느니라"고 말씀한다
경 륜
이 단어는 고린도 전서 9:17, 에베소서 1:10, 3:2, 골로새서 1:25에서 나온다. 경륜이란 기본적으로 하나님께서 인간(또는 민족)에게 특정한 책무를 부여하시고(dispense) 그 인간이 자신의 책무를 이룬 것 또는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해 보상하시거나 심판하시는 일정한 기간을 말한다.
성경에는 기본적으로 일곱 개의 경륜이 나오는데, 각 경륜마다 인간은 특정한 책무를 부여받는다. 각 기간은 인간의 실패와 하나님의 심판으로 끝난다.
1. 무죄 - 아담의 창조부터 아담의 타락까지
2. 양심 - 아담의 타락부터 대홍수까지
3. 인간 정부 - 대홍수부터 바벨탑까지
4. 족장(약속) - 아브라함부터 모세까지
5. 율법 - 모세부터 갈보리의 그리스도까지
6. 은혜 - 갈보리부터 재림까지
7. 의 - 그리스도의 천년 통치
경륜을 공부하는 것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는"(딤후 2:15) 것이며, 하나님의 경륜을 제대로 나누지 못할 때 교리적 혼란과 이단 교리가 생겨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오늘날 모세의 율법을 지킴으로써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믿는 모든 자를 위해 율법의 "마침"이 되셨기 때문이다(롬10:4, 요19:30, 골2:14). 율법과 은혜 사이에 정확한 구분이 있어야 하듯이 모든 경륜은 반드시 구분되어야 한다.
경 배
경배란 경배하는 대상을 하나님으로 여겨 존중하는 것을 말한다.
요한복음 4:24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은 영이시니, 그 분께 경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경배드려야만 하리라"고 말씀하셨다. 많은 사람들이 경배는 일요일에 교회에 모여서 드리는 예배(찬송가를 부르고, 기도를 하고, 헌금을 바치고, 성경을 읽고, 설교를 듣는 등)가 전부라고 생각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이사야 1:11-20에 따르면 하나님께서는 종교적인 의식 자체를 높이 평가하시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바리새인들은 외적으로는 당대에 가장 종교적인 사람들이었지만 주님께서는 그것을 조금도 인정해 주지 않으셨다(마 23장).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아신다(삼상 16:7, 렘 17:10). 따라서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 앞에서 올바르지 않으면 우리가 드리는 경배도 하나님 앞에서 올바르지 않은 것이다. 또 일주일에 한 번 모여서 드리는 예배뿐만 아니라 우리가 기도할 때나 그밖에 어떤 때라도 우리의 온 마음과 혼이 하나님의 어떠하심으로 가득 채워져서 그 분께서 이루신 일 때문이 아니라 그 분 자체에 대한 감사로 가득찰 때 우리는 그 분께 경배드리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에게 영과 진리로 경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요 4:23,24).
교 리(Doctrine)
교리란 모든 성경적 진리를 말한다.
교리는 성경이 우리에게 영감으로 주어진 가장 중요한 목적이며 (딤후 3:16-17), 교리를 공부하는 것은 성경 연구의 첫째 가는 목표가 되어야 한다. 성경을 공부하는 학생은 "우리 교회 또는 교단이 어떻게 가르치는가? 가 아니라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는가?(롬 4:3)를 항상 물어야 한다. 사도 바울에 따르면 우리는 교리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딤전 4:13) 그렇지 않으면 "마귀들의 교리"(딤전 4:1)에 빠지게 될 것이다. 이사야 8:20을 볼 것
교 회
보이지 않는 교회, 그리스도의 몸 교회라는 단어는 "불러냄을 받은 모임"을 뜻한다.
따라서 교회는 이 세상으로부터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신약에서 말하는 "교회"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교회 즉 '그리스도의 영적인 몸' 이며 다른 하나는 눈에 보이는 교회 즉 '지역교회'이다.
영적인 교회는 하나의 인위적인 '조직체'(organization)가 아니라 살아있는 '유기체'(organism)이다. 즉 성도들로 구성된 살아 있는 몸이라는 말이다.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모든 사람은 그 즉시 눈에 보이지 않는 그리스도의 영적인 몸의 지체가 된다. 어떤 교단에 속해 있는 것과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된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이 그의 몸의 지체들이다(요 1:12, 행 16:31, 요 5:24, 마 11:28, 롬 10:13 등).
한편 자신들의 교회가 유일하게 "참된 교회"라고 말하는 사람들(예를 들면 로마 카톨릭)을 주의해야 한다. 참된 교회는 그리스도 안의 성도들로 이루어진 영적 몸이지 종교적인 사람들로 이루어진 조직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교회, 지역교회
신약에서 "교회"라는 단어는 거의 대부분 그 지역에 모인 그리스도인들의 모임, 즉 지역교회를 언급하고 있다(롬 16:5, 고전 1:2, 살전 1:1, 빌2장). 그러나 어떤 특정한 교단이나 교회 건물을 교회라고 칭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지역교회의 임무는 복음을 전하는 것과 거듭난 성도들을 말씀으로 양육하는 것,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드높이는 것이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면 반드시 지역 교회에 속해야 하며, 지역 교회에서 주님을 섬기고,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배우며, 성도들과 교제를 나누어야 한다.
성경대로 믿는 교회
거듭난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떤 지역교회에 속하는지는 참으로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의 영적 성장과 교회는 뗄 수 없는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올바른 교회를 선택하는 문제는 어떤 문제보다도 중요하고 또 심각한 문제이며, 특히 많은 교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저 버리고 인간의 전통과 거짓 교리에 휩쓸려가는 이 때에는 더욱 그렇다.
그리스도인은 성경을 절대적이고 최종 권위로 인정하는 교회에 속해야 한다. 성경을 최종 권위로 인정한다는 말을 어찌 보면 너무 당연해서 강조할 필요가 없는 말같이 드린다. 하지만 말로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믿음과 실행의 최종 권위"로 인정하는 교회는 오늘날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성경에 있는 것은 하고, 성경에 없는 것은 하지 않고, 성경에 위배되는 것은 절대로 하지 않는 그런 교회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이것은 마지막 시대에 교회들이 얼마나 진리에서 멀어졌는지를 잘 보여 주는 것이다.
성경대로 믿은 교회들은 다음과 같이 특징을 가진다.
1. 성경(최초의 원본만이 아니라 지금 자신의 손에 들린 "보존된"성경. 한글로는<한글킹제임스성경>을 절대적이고 최종적인 권위로 믿는다.
2. 거듭난 성도들로 (학습하고 세례받은"교인"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구성되어 있다.
3. 침례식(세례식이 아니라)과 주의 만찬, 두 가지 의식만을 행한다.
4. 아기에게는 절대로 세례를 주지 않는다.
5. 구원은 영원히 잃어 버리지 않는다고 가르친다.
6. 모든 성도들이 거룩한 제사장임을 믿는다.(성직자들만이 아니라, 벧전 2:9)
7. 자치적이고 독립적으로 운영되며 어떠한 외부의 영향을(예를 들면 교단의 통제) 받지 않는다.
8. 그리스도의 "임박한"(언제라도 임할 수 있는) 재림을 믿고 사모한다.
9. "교리"(성경이 주어진 첫째 목적, 딤후 3:16)에 있어서는 바울 서신을 다른 성경의 책들보다 우선적으로 받아들인다.
교회의 계시가 바울에게 주어졌기 때문이다(엡 3장).
10. 성경을 거부하는 교회 및 단체와 어떤 모양으로든 제휴하지 않는다.
11. 로마 카톨릭 체제로부터 박해와 반대를 받는다.
12. 세상 권세에는 복종하며 모든 법을 지키고 의무를 다하나,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않으며 영적으로 세상과 반대되고 분리된다.
구 속(Redemption)
누군가를 '구속"한다는 말은 값을 치름으로써 그 사람을 자유롭게 풀어 주는 것을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죄들을 위한 대가로 자신의 피를 흘리심으로써 그리스도인들을 자유롭게 풀어 주셨다. 우리의 혼은 이미 구속되었으며(행 20:28, 롬 3:24, 엡 1:7, 벧전 1:18, 계 5:9) 우리의 몸은 주께서 우리를 데리러 다시 오실 때 구속될 것이다(롬 8:23, 엡 4:30, 눅 21:28).
구원의 영원한 보장
구원의 영원한 보장이란 한 번 받은 구원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잃어 버리지 않는다는 교리로서, 많은 사람들은 이 교리를 믿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이 교리가 논리적이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 교리는 대단히 성경적인 동시에 대단히 논리적이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받은 구원이 영원히 안전한 것은 구원이 나와 하나님 사이에 맺어진 "관계"에 의한 것이지 내가 그 분과 나누는 "교제"에 의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구원받은 것은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 분을 섬기기 때문이 아니다. 내가 구원받은 것은 내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맺었기 때문이다. 나는 한 때 마귀의 자녀였으며 진노의 자녀였으나(요 8:44, 엡 2:3) 이제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요 1:12, 요일 3:2, 롬 8:14, 갈 4:5).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함으로써 나는 구속의 날까지 성령으로 인침을 받았다(엡 4:30, 고후 1:22). 나는 내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받고 있다(벧전 1:5). 예수님께서는 나를 그 분의 피로 "사 주셨기 때문에 (행 20:28, 고전 6:19-20) 나를 버리시지 않을 것이다(히 13:5, 마 28:20). 내가 만일 계속해서 불순종하면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께서는 나를 징계하실 것이다(계 3:19, 히 12:4-8, 고전 11:30-32). 그래도 내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변함이 없다(요 5:24, 요일 5:11-13, 롬 8:38-39, 빌 1:6, 요 6:37, 10:28-29). 나는 그리스도안에서 영원히 안전하다.(당신이 관련구절을 찾아보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리스도의 신성
그리스도의 신성이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시라는 교리이다.
하나님께서는 삼위로 계시며(요일 5:7) 삼위의 둘째 위는 주 예수 그리스도시다. 요한복음 1:1은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으며 요한복음 1:14은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라고 말씀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육신으로 오신 말씀이시며 요한복음 1:1은 그 말씀이 하나님이셨다고 말씀한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는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하나님은 여호와의 증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서로 다른 두 하나님이 아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와 내 아버지는 하나니라"(요 10:30).고 말씀하셨으며,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나는 주요, 아무도 다른 이가 없나니 나 외에 다른 하나님이 없느니라"(사 45:5)고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20:28에서 도마가 자신을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 부르는 것을 허락하셨다. 또한 이사야 9:6에서 그 분은 "능하신 하나님"이요 "영원하신 아버지"라 불리며, 미카 5:2은 예수님께서 "영원부터"계셨다고 증거한다." [그 분께서 영원부터 계셨다는 말씀은 그 분이 하나님이심을 증거하는 것인데, 변개된 <개역한글판성경>은 이를 "태초"라고 함으로써 그리스도께서 어떤 시점에 존재하기 시작한 것으로 만들어 놓았다.]
우리 주님께서는 요한복음 10:38과 마태복음 14:33에서 사람들이 자신에게 "경배" 하는 것을 허락하셨으며, 그 분께서는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마 1:23)이시기 때문에 죄들을 용서하실 권세를 가지셨다.
그리스도의 신성은 그리스도인의 신앙에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이다. 예수님께서 육신으로 오신 하나님 ("주 예수", 롬 10:9)이신 사실을 믿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으며, 그리스도의 신성을 배격하는 것은 인류를 구원 없는 저주로 몰아 넣는 것이다. 성경은 그 분을 단지 위대한 존재로만 묘사하지 않는다. 그 분께서는 세상에 오시기 전부터 계셨으며, 그 분은 단 한 순간도 존재하지 않은 적이 없다. 그 분은 영원하시기 때문이다. 그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리스도인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구주로 믿은 사람을 말한다.
제자들은 안티옥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들"이라 불렸다(행 11:26).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입으로만 고백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주와 구주로 "소유하고" 있는 사람을 말한다
기 도
기도하는 말의 의미는 무언가를 구한다는 뜻이다.
기도는 하나님 아버지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성령의 능력을 통해 드려져야 한다(요 16:23-24, 행 12:5, 요 14:13, 엡 6:18, 판 1:20). 또 기도는 단순히 말의 반복이 되어서는 안된다(마 6:7).
하나님의 자녀는 자신의 필요와 요구를 기도해야 할 뿐 아니라 (약 4:2, 막 11:24, 눅 11:9-13) 다른 사람의 필요와 요구도 구해야 한다(눅 10:2, 골 1:9, 살전 5:17-25, 딤전 2:1-5, 약 5:14).
기도에는 조건이 있다. 우리는 기도할 때 용서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며(막 11:25)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심을 믿어야 하고(막 11:24, 약 1:6-7), 마음에 있는 어떤 죄악도 자백해야 하며(시 66:18),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하고(눅 22:42), 그 분의 계명을 지켜야 한다(요일 3:22).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 5:17에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말한다. 요한일서 5:14-15, 요한복음 15:7, 마태복음 7:7-8, 야고보서 5:16, 시편 55:17, 빌립보서 4:6,19, 히브리서 4:16을 볼 것.
뉴에이지 운동
뉴에이지 운동은 인류의 "공통된 유익"을 위해 모든 인종, 종교, 정부가 통합되는 "새 시대"를 가져오자는 운동이다.
에큐메니칼 운동처럼, 뉴에이지 운동은 궁극적으로 적그리스도 아래서 단일 세계 종교 및 정부로 이어질 것이다(계 13장).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뉴에이지 운동을 추진하는 단체만 거부하면 이러한 뉴에이지 교리들로부터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사탄은 대단히 교묘하며 그의 뉴에이지 철학은 거의 모든 분야에 속속들이 퍼져 있기 때문이다. 뉴에이지 사상은 정치, 교육, 음악, 언론, 종교, 심지어 새로운 성서들 안에 까지 퍼져 있는 것이다(게일 립링거의 <뉴에이지성경> 참조, 말씀보존학회간). 하나의 세계를 구축하려는 사탄의 운동을 막기 위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밖에 없다. 꾸준히 말씀 공부와 기도에 전념하는 그리스도인은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 외에 어떤 명목으로든지 인류를 하나로 모으려는 모든 시도는 사탄적인 것이다.
대환란
이 단어는 마태복음 24:21에서 주 예수께서 직접 사용하신 단어이다.
대환란은 이제 얼마 안 있어 닥칠 시기로서, 하나님께서 땅에 사는 자들에게 쌓아두신 진노를 부으시는 때이다.
요한계시록 6-19장은 대환란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사탄이 육신을 입은 존재인 적그리스도가 나타나 권력을 잡고 세상을 다스릴 것이며, 모든 사람들에게 경배를 요구할 것이다(계 13장). 대환란은 7년 동안 지속될 것이며, 후 삼년 반은 더욱 악해 질 것이다(계 11:3, 13:5). 적그리스도와 그를 숭배하는 자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계 19:11-21) 멸망당할 것이다.
대환란은 일차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은 유대인들이 심판받는 때이며, 이 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민족적으로 다루실 것이고 그리스도를 영접하도록 예비시킬 것이다. 다니엘 9:24-27은 이 시기를 "칠십째 주"라 부르고 있으며, 예레미야 30:7은 이 때를 "야곱의 고난의 때"라 부르고 있다. 이스라엘은 대환란 때 엄청난 고난과 박해를 통과한 후에 그리스도께로 돌이키고 구원받을 것이다(사 66:7-8, 롬 11:26, 신 4:30-31).
동정녀 탄생
동정녀 탄생의 교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에 의해 기적적인 방법으로 잉태되셨으며, 남자없이 처녀에게서 태어나셨다는 교리이다.
동정녀 탄생은 이사야 7:14에서 예언되었으며, 이는 예수께서 탄생하시기 약 700년 전에 기록된 것이다. 누가복음 1:34-35, 마태복음 1:24-25을 통해서 요셉이 마리아를 아내로 얻었으나 예수께서 태어나시기 전까지는 그녀를 알지 아니하였음을 알 수 있다.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잉태되시는 것은 필연적이었다. 예수께서 남자에 의해 잉태되셨다면 죄의 성품을 이어받으셨을 것이며(시 51:5, 롬 5:12) 그렇게 되면 그 분은 세상 죄를 제거할 수 있는 하나님의 죄 없는 어린 양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정녀 탄생은 우리의 구원에 절대적으로 필연적인 일이었다.
한편 많은 변개된 성경들이 고의적으로 이사야 7:14, 마태복음 1:25, 누가복음 2:33을 변개시켜 우리 주님께서 동정녀에게서 탄생하신 교리를 약화시키려 하지만 <한글킹제임스성경>을 통해 이 교리를 타협없이 보존될 수 있었으니,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마귀들
마귀들의 기원은 정확히 알 수 없다.
단지 육체가 없는 영들로서 루시퍼가 타락한 후에 생겨났을 것으로 추측할 뿐이다. 이 마귀들은 마태복음 8:16과 마가복음 5:12-13에서 "더러운 영들"이라 불린다. 성경에는 "마귀"(The Devil), 즉 사탄이 있고, 그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마귀들"(devils)이 있다(막 5:9, 눅 9:1, 11:15, 약 2:19). 마태복음 12:43-45 말씀에 따르면 이 마귀들은 인간의 몸에 거하기를 좋아하며, 마가복음 5:11-13은 그들이 동물의 몸에 들어갈 수도 있음을 보여 준다. 마귀들은 심한 질병과 고통을 줄 수 있으며(마 9:18-22,32-33, 12:22, 눅 8:26-35, 13:11-17), 거짓을 말하고 거짓 교리를 가르치도록 사람을 "미혹할"수도 있다(딤전 4:1, 왕상 22:22-23). 악한 영들에게 완전히 장악된 사람들을 성경은 "마귀 들렸다"고 말한다(마 4:24, 막 5장, 행 8:7). 마귀의 영향력에 대한 최상의 방어는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마 8:16, 엡 6:10-18)이며 마귀를 대적하는 것이 아니다(약 4:7).
마리아 숭배
카톨릭 신자들은 4세기부터 극악한 우상숭배를 자행해 왔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육신의 어머니였을 뿐이지만, 카톨릭 신자들은 마리아가 계속해서 처녀로 있었으며, 일생동안 죄를 전혀 짓지 않았다고 믿는다. 로마 카톨릭은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 또는 "하늘의 여왕"이라 부르며 숭배한다. 성 베르나르드는 하나님께서 마리아를 "하늘의 여왕"의 자리에 앉히셨으며, 현재 하늘의 보좌에 앉아 카톨릭 신자들을 위해 중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 거짓 가르침이다. 성경에서 마리아는 우리 모두가 똑같은 죄인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마리아는 자신에게 구주가 필요하다고 말했으며(눅 1:47), 자신의 죄들을 정결케 하기 위해 제물을 드리기도 했다(눅 2:24). 또 마태복음 1:25에 따르면 예수님께서는 마리아의 "첫아들"이었을 뿐이며(변개된 성경에는 "첫"이라는 단어가 삭제되었다.) 다른 자녀들을 낳았던 것이 분명하다(마 13:55, 갈 1:19, 시 69:8).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는 단 한 분의 중보자가 있을 뿐이며, 그것은 마리아가 아니라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시다(딤전 2:5). 마리아가 성경에서 마지막으로 등장하는 곳은 그녀가 제자들과 함께 기도하고 있을 때이며(행 1:14) 제자들이 그녀에게 기도하고 있는 모습은 성경 어디에도 없다.
로마 카톨릭의 전통이자 거짓교리인 마리아 숭배는 사실상 이교도들의 우상숭배에서 기원한 것이다. 이교도들의 여러 가지 이름의 여신을 숭배해 온 것을 역사가 보여 주는데 그러한 이름들 중 여러 가지가 성경에 언급되어 있으며(판 10:6, 삼상 7:3-4, 왕상 11:5, 왕하 23:13 등) "하늘의 여왕"(렘 44:16-25)도 그 중 하나다. 마리아는 은혜로 구원받은 죄인이었을 뿐이며,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이 세상에 데려오시기 위해 선택하사 사용하신 여인이었을 뿐이다. 성경 어디에도 마리아를 다른 사람 보다 높이고 있지 않다. 따라서 우리도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 만일 당신이 카톨릭 신자라면 마리아가 요한 복음 2:5에 남긴 유일한 명령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무신론자
무신론자는 둘로 나눌 수 있다.
우선 무신론자는 하나님과 성경에 대해 확실히 알 수 없다는 입장을 취하는 사람을 말한다(영어로는 agnostic). 이들은 어떤 것도 진짜로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아무 것도 확실히 알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 중에는 고등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많으며, 자신들이 "열린 마음"을 가졌다고 스스로를 높이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사도행전 17:22-23에서 사도 바울은 아테네에 있는 영지주의자들은 향해 설교했는데, 그들은 알지 못하는 신에게 바치는 제단을 세워 놓은 사람들이었다. 이들을 향해 바울이 한 말은 "내가 보니 너희는 매사에 너무나 미신적이니라"였다.
또한 무신론자들 중에는 알 수 없다는 입장보다 더 적극적으로, 하나님 같은 존재는 아예 없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영어로는 atheist). 그런 사람들을 성경은 어리석은 자, 즉 "바보"라고 부른다(시 14:1, 롬 1:20). 그런 사람들에게 성경은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해보이지 않는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존재하시는 것을 당연시 하고 있다. 어리석은 자는 자기 "마음"에 하나님은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머리로는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우주와, 생명과, 모든 자연 형상은 하나같이 하나님이 계신 것을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천년주의
이는 천년왕국(Millennium), 즉 그리스도께서 성도와 함께 이 땅에서 천 년 동안 통치하시는 왕국이 없다고 믿는 잘못된 신념이다.
요한계시록 20:1-7은 미래에 천 년 동안의 통치가 있을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며, 이에 대한 주요 관련 구절은 디모데후서 2:11-13, 누가복음 19:17-19, 요한계시록 5:10 등이 있다.
미 사
미사란 로마 카톨릭이 "주의 만찬"이라는 미명하에 접전하는 마귀적이고 이교도적인 종교 의식이다.
그들이 믿는 동그란 빵과 포도주는 미사 때 사제가 그것을 들어올리는 순간에 진짜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변하며, 그럼으로써 그 의식에 참여하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신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그러나 사람의 살과 피로 먹고 마시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명백히 금지된 일이 아닌가? (창 9:4, 레 17:11-14, 시 16:4, 행 15:29) 뿐만 아니라 그들은 미사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을 피없이 반복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성령을 통하여 단번에 영원히 완성하신 주님의 희생제사를 모독하는 일이다
믿는 것
성경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을 말한다.
참된 믿음은 지적으로 동의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왜냐하면 마귀들도 "믿고 떨기" 때문이다(약 2:19). 성경적 믿음은 마음을 다한 확신과 내어 맡기는 것을 포함한다. 그리스도를 전적으로 신뢰하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자신의 마음에 영접한 사람이다(요 1:12).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구원을 받기 위해 다른 것이 아닌 오직 그 분만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을 말한다(요 3:16,36, 5:24, 6:47, 11:25-26, 행 16:30-31, 롬 4:5, 10:9-10, 요일 5:10-13, 갈 3:22, 살전 2:13).
믿 음
"이제 믿음은 바라는 것들에 대한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증거니"(히 11:1).
믿음은 보지 않고 믿는 것을 말하며,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히 11:6).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며(엡 2:8)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롬 1:17, 갈 2:20). 예수께서는 도마에게 "...보지 않고 믿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요 20:29)라고 말씀하셨다. 왜 인가? 그것이 믿음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다. 우리의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돌아오시는 그 날에 "보는 것"으로 끝나게 될 것이다(행 1:11, 살전 4:13-18). 그러나 우리의 믿음은 보는 것에 기초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기록된 한 권의 책,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고 있다(요일 5;10-13). 갈라디아서 5:22에 따르면 믿음은 성령의 열매 중 하나이기도 하다.
박 해
박해란 그가 어떤 사람이며 무엇을 믿는가에 따라 그 사람을 잘못되이 대하는 것을 말한다.
성경은 디모데후서 3:12에서 그리스도 안에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박해를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으며, 예수님께서도 우리가 박해를 받을 때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기 때문에 기뻐하라고 말씀하셨다(마 5:10-12). 우리는 박해받는 것을 당연히 여길 뿐 아니라, 우리를 박해하는 자들을 축복해야 한다(마 5:44, 롬 12:14).
방 언
"사도들의 표적"을 볼 것
배 교
"배교라는 말은 어떤 입장에서 "떠내려간다"(failing away)는 뜻이다.
바울은 데살로니가후서 2:3에서 주께서 오시기 직전, 마지막 날들에 엄청난 배교가 있을 것이라고 적고 있다. 우리는 이 예언이 이루어지는 것을 목도하는 시기에 살고 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승천 이후 그 어떤 시대도 지난 50년 동안 보다 다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나간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느 곳으로 눈을 돌려도 배교가 진행되고 있음을 볼 수 있으며, 종교, 교육, 정치, 언론, 음악 등의 분야에서 배교는 더욱 두드러진 실정이다.
복 음
고린도전서 15:1-4에 따르면 시대의 "복음"은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들을 위해 죽으시고 장사되셨다가 셋째 날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기쁜 소식을 말한다. 이 복음은 "순종"한다는 것은 그것을 "믿는"것을 말하지(롬 10:16) 어떤 이들이 가르치는 것처럼 침례를 받는 것이 아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이는 이 복음이 믿는 모든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롬 1:16).
부 활
부활이란 죽은 자들로부터 다시 살아나는 것을 말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성도들이 부활할 것이라고 말씀하지만(마 22:30, 눅 14:14, 요 11:24-25, 고전 15:51-52, 살전 4:13-18) 성경은 모든 사람이 한꺼번에 부활한다고(one general resurrection) 말씀하지 않는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은 큰 백보좌 심판석에서 하나님 앞에 서기 위해 부활할 것이지만(계 20:11-15) 이 때 부활하는 그리스도인들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의 부활은 "첫째 부활"(계 20:5-6)이라 불리며, 이는 주 예수께서 재림하셔서 천년 왕국을 통치하시기 전에 일어난다. 이 첫째 부활에는 세 가지 부활이 포함되는데, 첫째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을 때 주님과 함께 일어난 구약 성도들의 부활이요(마 27:52-53, 엡 4:8-9). 둘째는 교회의 휴거요, 셋째는 대환란때 있을 환란 성도들의 휴거이다(계 7:14, 14:14-16). 고린도전서 15장은 부활에 대해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부활절
오늘날 교회에서 지키는 부활절 절기는 기독교의 전통이 아니다.
먼저 부활절을 뜻하는 "이스터"(Easter)라는 말자체가 이교도 여신 "아스타르테"에서 온 것이다. 또한 카톨릭에서 부활절에 앞서 40일 동안의 사순절을 지키는데, 그들은 이 기간 동안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을 애도하며 금욕한다. 하지만 이것은 칼데아 여신이 자신의 딸을 지옥의 신에게 납치당한 데 대한 극도의 슬픔 때문에 수많은 날 동안 먹기를 거부했다는 신화에서 유래한 것이다. 그들은 이 40일간의 금욕기간이 끝나는 날을 환희의 축제일로 기념했다. 그런데 카톨릭은 이교도들을 기독교로 회유하기 위해 기독교의 부활절과 이교도의 사순절 및 이스터를 합쳐 버린 것이다. 또 부활절 때 달걀을 나누어 주는 것 또한 이교도들의 전통이다. 바빌론에서는 하늘에서 거대한 알이 유프라테스 강으로 떨어졌는데, 이 알에서 아스타르테 여신이 나왔다고 믿었다. 로마 카톨릭은 아스타르테의 알 신화를 수용하여 그것을 그리스도의 부활의 상징으로 삼아 버렸고, 개신교 역시 이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사도들의 표적
마가복음 16:17-18에서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러한 표적들이 따르리니, 즉 내 이름으로 그들이 마귀들을 쫓아내고 또 새 방언들로 말하리라. 그들은 뱀들을 집을 것이요, 어떤 독을 마실지라도 결코 해를 입지 않을 것이며, 병자에게 안수하면 그들이 회복되리라"
은사주의자들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성경을 올바로 나누어 공부하지(딤후 2:15) 않기 때문에 초대 교회 시대의 사도들과 함께 끝나 버린 이러한 표적들이 오늘날도 일어나고 있으며 그 은사가 자기들에게 주어졌다는 잘못된 신념을 갖고 있다.
이 은사주의자들은 예수님께서 이러한 이적들이 "표적"이라고 말씀하신 사실을 끈질기게 무시하는데, 고린도전서 1:22은 표적들이 유대인들을 위한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표적과 더불어 시작되었고(롬 4:11, 출 4:8,9,17,23,28,30, 7:3, 8:23, 10:1,2 13:9, 31:13,17, 신 4:34, 6:22) 표적과 더불어 살았으며(신 11:18, 수 4:6, 삼상 10:7, 왕하 19:29, 사 7:14, 38:7,22, 겔 4:3, 20:12,20) 그리스도께도 표적을 요구한 민족이다(마 12:38, 24:3). [성경 교리에 대한 모든 잘못된 이해는 성경을 펴서 관련구절을 직접 찾아보지 않은 데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독자들은 명심하기 바란다.] 성경에는 '동정녀의 탄생'과 '성경의 영감'에 대한 교리를 합한 것보다 표적이 이스라엘에게 주어졌다는 교리를 뒷받침하는 구절들이 더 많다! 따라서 이 진리를 무시하는 사람은 사도들의 표적에 대해 가르치거나 설교하거나 글을 쓸 자격이 전혀 없는 사람이다. 히브리서 2:3-4을 보면 표적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확증"하기 위해 주어졌으며, 그 시제는 "과거"임을 알 수 있다. 신약 전체에서 표적이 계속적으로 등장하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들도 표적을 행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성경을 읽지(아니면 믿지) 않는 사람들이다. 표적은 신약 전체에서 계속적으로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바울은 밀레토에 트레피모를 아픈 채로 남겨 두었고(딤후 4:20), 디모데에게도 그를 고쳐주는 대신 의학적인 조언을 주었으며(딤전 5:23), 자신조차도 고칠 수 없는 질병을 안고 살았다(고후 11:30, 12:5-10). 만일 사도들에게 주어진 표적은 끝난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그 표적은 사도들의 사역초기에 이스라엘에게 진리를 확증해 보이기 위해서만 필요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오늘도 기적을 일으키실 수 있고, 원하시면 누구든지 치유하실 수 있다고 분명히 믿는다. 또한 하나님의 백성이 하는 기도는 그 분을 움직여서 기적을 일으키시게 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기도의 응답을 받는 것과, 사도들의 표적을 행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병을 고치시는 것을 믿지만, 오늘날 어느 특정인에게 그런 은사를 주셨다는 것은 믿지 않는다.
"그러면 성령을 통해 방언으로 말하는 것은 어떤가? 오늘날에도 알지 못하는 방언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지 않은가?" 하고 반문할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알지 못하는 방언"은 어느 시대 어느 이방 종교에나 다 있었다. 중도 방언하고, 거듭나지 못한 카톨릭 사제들도 방언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창세기 11장을 읽어 보았는가? 그것이 은사주의자들이 말하는 소위 "성령 세례"였는가? 사탄의 교회에 속한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방언으로 중얼거리는 것도 성령의 역사인가? 심리학자들도 환자를 앞에 앉혀 놓고 15분 동안 알지 못하는 방언으로 말하게 할 수 있다. 그런데 그것도 성령 세례인가? 사람들은 어리석게도 대단히 비정상적이나 기적적인 일만 보면 모두 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고 굳게 믿어 버리는 경향이 있다. 이제 곧 나타날 적그리스도는 바로 그런 분별력 없는 사람들을 미혹할 것이다. 그는 "표적들과 거짓 이적들"을 보임으로써 온 세상이 자기를 따르게 할 것이다(살후 2:8-12, 계13:13-14).
신약 어디에도 하나님께서 알지 못하는 방언으로 말하라고 명령하신 것은 찾아볼 수 없다. 성경에 "새 방언들"(막 16:17) "다른 언어들"(행 2:4)은 나오지만 이는 모두 "외국어"를 말하는 것이지 의미도 없이 소리를 중얼중얼거리는 것이 아니다. 사도행전 2장에는 알지 못하는 방언이 나오지 않으며, 고린도전서 14장에는 성령 침례가 나오지 않았다. 은사주의자들은 진리의 성령을 올바로 나누기를 거부하고 멋대로 성경을 적용함으로써 성령님께서 성경에 세워 주신 구분과 교리들은 무시한 채 멸망을 자초하고 있다. 사도들의 표적은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다. 표적은 1세기의 믿지 않는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확정하기 위해서 주어진 것이다. 성경은 오늘날 그러한 표적을 행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주의하라고 경고하고 있으며(고후 11:13-15, 마 7:15, 24:11, 딤전 4:1-2) 주께서는 에베소 교회가 거짓 사도들을 시험하여 그들이 거짓말쟁이임을 찾아냈기 때문에 칭찬하셨다(계 2:2).
사도신경
사도신경을 외우는 것은 전적으로 비성경적이다.
먼저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신경"을 만들어 놓고 그것을 외우는 사람들이 아니다. 우리가 믿는 것은 어떤 "신경"이 아니라 성경 그 자체,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전체를 다 믿기 때문이다. 이 사도신경은 원래 로마 카톨릭에 의해 세례를 받는 사람들이 사람들 앞에서 고백하게 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는데 언젠가부터 개신교회의 예배 시간에 외우는 기도문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인간이 만들어 낸 이 신조가 국가교회의 공회에서 공인되어 "믿음과 실행"의 모든 문제를 판단하는 최고의 권위가 되어 버렸다. 그리고 이 권위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이단으로 판단받게 되었다. 개신교회의 이단 판별법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것은 "사도신경"을 믿고 암송하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사도신경은 사도들의 믿음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사도신경이 만들어진 것은 모든 사도들이 죽은 지 200년 이상이 지난 때였으며, 어떤 사도도 교회국가를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도신경에는 "거룩한 공회(영어로는 "holy Catholic church"를 믿사오며"라는 부분이 나오는데, 이는 카톨릭 교회를 말하는 것이다.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라는 부분은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교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죽은 자의 영과 교제하는 것을 말한다.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라는 부분도 맞지 않다. 빌라도가 그리스도를 죽인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이 불법자들의 손을 빌어 그리스도를 죽인 것이다. 또 이 신경에 믿음의 근본사항이 들어 있다면 왜 그리스도께서 지옥에 까지 내려가신 사실은 언급하지 않는 것인가?
사도신경은 거듭나지 않았어도 그것만 암송하면 그리스도인 자격을 부여하는 카톨릭식 전통에서 유래된 것이다. 그리스도인도 아닌 교인이 그런 것을 의미없이 반복하고 있다 해서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거듭남은 신조나 신경을 믿는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살아계신 구세주를 영접하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사 탄
사탄은 그 이름부터 "대적하는 자"라는 뜻이다.
어떤 이름은 악의 상징적으로만 생각한다. 하지만 성경은 그가 실제적으로 살아 있는 인격체로서, 온 세상을 미혹하고 또 삼킬 자를 찾아 두루 다닌다고 말씀한다(요 8:44,약47,계12:9, 벧전 5:8).마귀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해서는 다음의 다섯 가지 사실을 기본적으로 알아야 하는데, 이것을 알 게 되면 20세기의 유수한 "신학자들"보다 몇십 광년은 앞선 지식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 다섯가지 사실은 다음과 같다.
1. 사탄은 언제나 하나님을 대적해 왔다. 그는 에스겔 28:13-19의 "기름 부음 받은 그룹"이었으며 이사야 14:12-15의 루시퍼이다. 그러나 자신의 교만으로 인해 그는 원래의 영광스러운 자리에서 떨어져 하나님의 가장 큰 원수, 대적자, 즉 사탄이 된 것이다.
2. 일반 대중이 알고 있는 바와는 반대로, 사탄은 하나님을 대적했을 때 지옥으로 던져지지 않았다. 그는 현재 "이 세상의 신"(고후 4:4)이며,"마귀"(마4:1, 엡4:27, 밷전5:8)이고, "공중 권세의 통치자"(엡2:2)이다. 그는 현재 이세상 나라들을 통제하고 있으며, 자기가 원하는 사람에게 그 권세를 넘겨준다(마4:8-9), 사탄은 하나님의 편에 서 있는 모든 사람을 미혹하고 멸망시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공격한다(욥1-2장, 마4:1-10;13;19;39, 눅 22:31, 행 5:3, 고전 5:5, 고후 11:14-15, 살전 2:18, 딤전 5:15, 히 2:14, 요일 3:8), 이 마귀를 대적하기 위해 그리스도인 이 쓸 수 있는 가장 큰 무기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이다(엡 6:10-18, 살전 5:17, 마26:41, 히 4:12)
3. 다가오는 대환란 때 사탄은 인간의 몸을 입고 적그리스도가 되어 나타날 것이다. 그는 온 세상을 자신의 악한 손으로 거머쥘 것이고, 자기에게 대적하는 모든 사람은 가차없이 죽일 것이다(살후 2:3-10,계 13:3-18),"적그리스도", "짐승", "대환란"을 볼 것
4.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성도들과 함께 다스리시는 천년왕국 때 사탄은 사슬에 묶여 천년 동안을 끝없이 깊은 구렁에 갇혀 있어"민족들을 다시는 미혹하지 못하게"될 것이다. 그러나 천년왕국이 끝나면 반드시 "잠시동안"풀려날 것이다(계20:1-3)
5. 마귀가 최후에 가게 될 장소는 불못이다. 요한계시록 20:10에 따르면 그는 불못에 던져져 그곳에서 영원무궁토록 밤낮 고통을 받을 것이다.
사형 제도
사형제도는 지극히 성경적이다.
태초부터 하나님께서는 생명에는 생명을 요구해 오셨다. 극형은 창세기 9:6에 처음 언급되는데, 이것은 모세의 법이 주어지기 훨씬 전의 일이며, 성경 전체에서 하나님의 율법의 책에 계속해서 기록되는 것을 알 수 있다(출 21:12, 민 35:16-31, 롬 13:1-4, 행25:11, 사도행전 25:11과 로마서 13:1-4, 행 25:11), 사도행전 25:11과 로마서 13:1-4에서 볼 수 있듯이 사형제도는 오늘날에도 동일하게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사형 제도를 세울 책임을 인간에게 주셨으며, 이 제도가 세워져 있지 않는 한 공의는 실현될 수 없다
삼위일체
삼위일체는 하나님께서 세 분의 인격, 즉 아버지 하나님, 아들 하나님, 성령 하나님으로 이루어 지셨다는 교리이다.
삼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그것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삼위일체의 교리를 믿는 우리들도 그것을 완전하게 이해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지만,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교리에 대해 말씀하신 바를 그대로 믿을 뿐이다.
주님께서는 삼위일체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가? "이는 하늘에서 중거하시는 이가 세분이시니,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이시요, 이 세분은 하나이시라"(요일 5:7, 변개된 성경에는 이 구절이 삭제되어 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가르치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레를 주며"(마 28:19), "주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제가 너희 모두와 함께 있을 지어다."(고후13:14), 마태복음 3:13-17에도 거룩한 삼위께서 모두 등장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본 사람은 아버지를 본 것이라고 말씀하셨으며(요 14:9), 베드로는 성령께 거짓말한 것이 하나님께 거짓말한 것이라고 했다(행5:3-4). 아버지 하나미도 하나님이시요, 아들 하나님도 하나님이시요, 성령 하나님도 하나님이시다."그리스도의 신성"과 "성령의 신성"을 볼 것
시편19:1-6, 로마서1:20은 우리가 자연을 통해 하나님을 배울 수 있다고 말씀한다. 자연을 공부해 본 적이 있는가? 삼위일체의 교리는 어디서나 발견할 수 있다. 시간도 세부분, 과거, 현재, 미래로 되어 있다. 공간은 길이, 넓이, 높이로 이루어져 있다. 물질은 에너지와 운동과 현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가족도 아버지, 어머니, 자녀들로 이루어져 있다. 자, 이제 삼위일체의 교리가 어디서나 발견된다는 것을 알 게 됐다. 우리는 그것을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것을 이해하라고 하신 적이 없다. 우리는 그것을 믿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삼위로 이루어지신 분이다. 세분이 한 분 안에, 한 분이 세분 안에 계시며, 그 가운데 계시는 분이 나를 위해 죽으신 것이다
새로운 탄생
"거듭남"을 볼 것
선 교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교회에게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할 임무를 위임하셨다(마28:18-20)
따라서 성경대로 믿는 교회에서 "선교"라는 단어는 그러한 우리 주님의 명령을 수행하려는 그리스도인들의 노력을 말한다. 오늘날 많은 교회 사역이 선교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나(예를 들면 교도소 선교, 거리설교 사역, 문서 선교 등) 대부분의 선교는 해외 선교 현장에서 이루어진다.
대부분의 교회는 선교를 위한 헌금을 따로 모아서 선교사들의 사역을 지원한다.
만일 당신의 교회가 선교 사역을 지원하지 않는다면 교회의 선교 사역에 대해 목사에게 건의할 수 있을 것이다.
사도행전 13-28장에서 우리는 사도 바울의 선교 여행을 볼 수 있으며, 빌립보서 4:10-19은
우리가 어떻게 선교 사역을 지원해야 하는지를 잘 말해준다. 고린도후서9장, 마태목음 10:40-42, 누가복음 6:38을
성 경
"성경의 영감"을 볼 것.
성경의 모순된 부분
성경에는 모순된 부분이 하나도 없다.
성경에는 겉으로 보기에 모순처럼 보이는 곳이 있지만, 기도하는 마음으로 자세히, 성경과 성경을 비교함으로써 살펴보면 모든 문제는 다 설명이 될 수 있는 것이다.(자신의 지혜를 의지하고 성경이 하나님의 절대 무오한 말씀이라는 사실을 믿짐 못하는 자들은 성경에서 모순처럼 보이는 부분에서 걸려 넘어지고 만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들이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시려고 성경에 모순처럼 보이는 부분을 두신 것이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되었으며(디모데후서 3장 16절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진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훈육하기에 유익하니")하나님께서는 모순과 혼란에 영감을 주시는 분이 아니다.(고린도전서 14장 33절 "이는 성도들의 모든 교회에서와 같이 하나님은 혼란의 창시자가 아니라 화평의 창시자이심이라.")
성경의 영감
성경의 영감에 대해서 말할 때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성경은 이 세상의 다른 어떤 책과도 같지 않다는 사실이다.
다른 모든 기록은 인간의 사상을 담고 있지만, 성경은 하나님께서 직접 인간에게 주신 계시이다.
인간은 이 성경을 기록하는 일에 도구로 사용되었을 뿐 인간은 성경의 저자가 아니다.
베드로후서 1장 20-21절은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먼저 이것을 알지니, 성경의 어떤 예언도 사사로이 해석할 것이 아니니, 예언은 예전에 사람의 뜻에서 나온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이 성령으로 감동을 받아 말한 것이니라."
이것이 보통 "축자적 영감설"(단어 하나하나가 영감을 받음)이라 불린다.
디모데후서 3장 16절은 모든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어졌다고 말씀한다.
즉 그 말씀이 기록되는 순간에 하나님께서 그 기록에 영감을 불어넣으셨다는 뜻이다.
성경의 영감에 대해서는 매우 강력한 증거들이 있다.
여기서는 그 중에서 다섯 가지 예만 들려고 한다.
1. 성경은 독특한 책이기 때문에 - 성경은 인류를 명백하게 정죄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고, 가장 좋은 상태에 있는 사람을 모두 합쳐도 헛것이며, 우리는 이미 정죄를 받았고,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구해 주실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다.
어떤 인간이 그런 책을 쓰겠는가? 성경은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가 쓴 책이 분명하다.
2. 성경은 그 권위에 있어 다른 모든 책과 다르기 때문에 - 성경의 저자께서는 성경 전체에 걸쳐 "나는 옳고 다른 모두는 틀렸다."고 말씀하신다.
(이사야 8장 20절 "율법과 증거에게라. 만일 그들이 이 말씀에 따라 말하지 아니하면 이는 그들 안에 빛이 없기 때문이라.")
(요한복음 14장 6절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사람이 아무도 없느니라.")
인간에게는 절대적인 최종 권위가 필요하며, 성경은 스스로 그 권위임을 주장하고 있다.
다른 어떤 책도 성경 같은 권위가 없다.
3. 성경은 절대무오한 책이기 때문에 - 성경에는 어떤 실수나 오류도 없다.
이 세상에 그 어떤 고대 문헌이 700,000개가 넘는 단어로 기록되었으면서 단 하나의 오류도 없 겠는가?
4. 성경으로 많은 이들이 복을 받았기 때문에 -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사람들에게 복을 주신다.
수백만의 사람들이 기록된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를 알게 되었으며, 수백만의 사람들이 성경을 읽음으로써 측량할 수 없는 기쁨을 발견했다.
성경을 최종 권위로 삼는 위대한 사역이 많은 열매를 맺어 왔으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의 약속을 통해 크나큰 위로와 평안을 발견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것이다.
이 책이 영감받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면 왜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겠는가?
5. 성경이 수천 년 동안 보존되었기 때문에 - 수백 년 동안 성경은 그토록 거세고 끈질긴 반대를 받아왔으면서도 어떻게 살아 남을 수 있었는가?
왜 그 누구도 이 책을 완전히 없애 버리지 못한 것인가?
그 유일한 답은 시편 12장 6-7절에 있다.
("주의 말씀들은 순수한 말쑴들이라. 흙도가니에서 단련되어 일곱 번 정화된 은 같도다.
오 주여, 주께서 이 말씀들을 간수하시리니 주께서 이 세대로부터 영원토록 그것들을 보존하시리이다..아멘~~!")
성 령
"성령의 신성"을 볼 것.
성령의 신성
성령님은 삼위의 세 번째 위이시며, 신성을 지니신다.(요한일서 5장 7절 "이는 하늘에서 증거하시는 이가 세 분이시니, 아버지와 말씀과 성령이시요, 이 세 분은 하나이시라.")
사도행전 5장 3-4절에서 베드로는 성령께 거짓말한 아나니아를 책망하는데, 그때 그는 아나니아가 "하나님께" 거짓말했다고 말한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영향력이나 힘 정도가 아니라 인격을 지니신 하나님이시다.
성령께서는 사도행전 13장 2절에서 바나바와 사울을 부르셨다고 말씀하시는데 이는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며, 성령께서는 그 밖에도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들을 하신다.
(요한복음 14장 16,26; 16장 8-14 "또 내가 아버지께 기도하겠고, 그분께서 다른 위로자를 너희에게 주시리니 그가 너희와 함게 영원히 거하시리라."
"그러나 위로자이신 성령을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시리니,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들을 가르치시며 또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들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고린도전서 6장 11절 "너희 가운데도 이런 일을 행하였던 자들이 더러 있었으나 너희가 주 예수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영으로 씻음을 받았고 거룩하게 되었으며 의롭게 되었느니라."
욥기 33장 4절, 시편 104편 30절, 에베소서 1장 13절; 4장 30절 "하나님의 거룩한 영을 슬프게 하지 말라. 너희가 그로 인해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성령께서는 어디나 계시며,(시편 139편 7-8절 "내가 주의 영으로부터 벗어나 어디로 가며, 주의 면전에서 벗어나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로 올라갈지라도 주께서는 거기 계시며, 내가 지옥에 잠자리를 마련한다 하여도, 보소서, 주께서는 거기 계시나이다.")
모든 것을 아시고,(고린도전서 2장 10-11절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것들을 우리에게 그의 영으로 나타내셨으니, 이는 성령께서는 모든 것 심지어 하나님의 깊은 것들까지도 통찰하시기 때문이다. 사람의 일을 그 사람 안에 있는 사람의 영이 아니면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이 아니면 아무도 모르느니라.")
영원하시다.(히브리서 9장 14절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을 통하여 흠 없는 자신을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죽은 행실에서 너희 양심을 정결케 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성령께서는 성경에 영감을 불어 넣으셨으며,(베드로후서 1장 21절 "예언은 예전에 사람의 뜻에서 나온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이 성령으로 감동을 받아 말한 것이니라.")
생명을 주신다.(요한복음 6장 63절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전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한 말들은 영이요, 생명이라. 요한복음 3장 6절 "육신으로 난 것은 육이요, 또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라.")
이러한 일들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성령께서는 하나님이시다.
또 성령께서는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시며,(요한복음 16장 13절 "그러나 진리의 영이신 그분이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로 인도하시리라. 그분은 스스로를 말씀하지 아니하시며, 무엇이나 들은 것을 말씀하실 것이요, 또 너희에게 다가올 일들을 알려 주시리라.")
성령 침례
이것은 우리가 구원받는 순간에 주님께서 직접 수행하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침례로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할 때 성령님께서 그 사람을 보이지 않는 그리스도의 영적인 몸 안에 잠기게 하시는 것을 말한다.
대부분의 은사주의 집단은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다음에 성령을 받는다고 가르치지만(그들에게 있어서 성령을 받는다는 것은 이상한 "방언"을 하는 것을 뜻한다.)
이것은 순전한 이단 교리이다.
로마서 8장 9절은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 안에 있지 아니하고 성령 안에 있나니, 이제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의 사람이 아니니라.")
성령을 지니고 있지 않은 사람은 그리스도께 속하지 않는다고 말씀하고 있다.
따라서 구원과 성령 침례는 동일한 것이지 별개의 것이 아니다.
성 화
성화란 죄와 더러운 것으로부터 분리됨과 동시에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위해 구별되는 것을 말한다.
내 혼은 그리스도를 내 구주로 영접했을 때 거룩하게 되었지만(사도행전 20장 32절 "이제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하나님과 그분의 은혜의 말씀에 의탁하노니 그 말씀이 능히 너희를 굳게 세워 줄 것이며 또 거룩하게 된 모든 사람 가운데서 너희에게 유업을 줄 것이라."
고린도전서 1장 2절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들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각처에서 우리 주, 즉 그들과 우리의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에게 편지하노니"
6장 11절 "너희 가운데도 이런 일을 행하였던 자들이 더러 있었으나 너희가 주 예수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영으로 씻음을 받았고 거룩하게 되었으며 의롭게 되었느니라."
히브리서 10장 10,14절 "그 뜻에 따라 한 번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드리심으로 우리가 거룩하게 된 것이라."
"이는 그가 한 번의 제사로써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기 때문이라.")
내 몸을 하나님께 복종시키고 희생제물로 드려진 삶을 사는 것은(로마서 6장 1-13절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가 넘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게 죽은 우리가 어떻게 더 이상 그 가운데 살겠느냐?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침례받은 우리가 그의 죽으심 안으로 침례받은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죽음 안으로 침례를 받아 그와 함께 장사되었으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인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켜지심과 같이 우리도 또한 생명의 새로움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의 모양으로 함께 심겨졌다면 또한 그의 부활하심의 모양과 같이 되리라. 우리가 이것을 아나니 곧 우리 옛 사람이 그와 함께 십자가에 처형된 것은 죄의 몸을 멸하여 더 이상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니라. 이는 죽은 자가 죄로부터 자유롭게 되었기 때문이라.
이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으며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켜지셔서 다시는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더 이상 그를 주관하지 못하는 줄 우리가 아노 라. 그가 죽으심은 죄에게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사심은 하나님께 사심이라.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정녕 죄에게는 죽은 자요,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는 산 자로 여기라.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 안에서 군림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정욕 가운데 죄에게 순종하지 말고 또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내어 주지 말고 다만 너희 자신을 죽은 자들로부터 살아난 자들처럼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고린도후서 6장 14-17절 "믿지 않는 자들과 멍에를 같이 메지 말라. 의가 불의가 어찌 관계를 맺으며 빛이 어두움과 어찌 사귀겠느냐? 그리스도가 벨리알과 어찌 조화를 이루며 또한 믿는 자가 믿지 않는 자와 어떤 부분을 같이하겠느냐? 사나님의 성전과 우상들이 어찌 일치되겠느냐? 이는 너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임이라.
하나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내가 그들 가운데서 살 것이며 그들 가운데서 다닐 것이며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그러므로 주가 말하노라. 너희는 그들에게서 나와 따로 있고 더러운 것을 만지지 말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를 영접할 것이며" 나의 책임이다.
즉 나는 성도(거룩하게 된 사람)이기 때문에 성도답게 살아야 하는 것이다. 성화는 단순히 죄를 짓지 않는 것이 아니다. (만일 죄를 짓지 않는 것이 성화의 의미라면 공동묘지야말로 가장 성화된 곳일 것이다. 거기에는 결코 죄를 짓지 않는 사람들로 가득 차있기 때문이다.)
참된 성화는 죄로부터 돌이켜서 하나님께로 향하는 것이다.
(데살로니가전서 1장 9절 "그들이 우리에 관하여 스스로 말하는 것은, 우리가 어떤 방법으로 너희에게 들어갔으며, 또 너희가 어떻게 우상으로부터 하나님께로 돌아서서 살아 계시며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자와,")
소돔인들
성경에서 소돔인은 동성연애자를 말하며, 성경은 이러한 죄악에 대해 매우 강력하게 정죄하고 있다.
(로마서 1장 26-28절 "이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을 수치스러운 욕정에 내버려 두셨으니,
심지어 여자들까지도 순리대로 쓰는 것에서 순리를 거역하는 것으로 바꾸었음이라.
마찬가지로 남자들도 여자들을 순리대로 쓰는 것에서 벗어나 서로 음욕이 불일듯하니,
남자들이 남자들과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자기 자신들에게 받았느니라. 뿐만 아니라 그들은 자기들의 지식 가운데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니,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림받은 마음에 내버려 두시어 온당치 아니한 일을 하게 하셨도다."
레위기 18장 22절;20장 13절, 창세기 19장 1절, 열왕기상 14장 24절;15장 12절;22장 46;23장 7절, 신명기 23장 17절)
현대 의학과 과학이 주장하는 바와는 상관없이, 하나님께서는 그 어떤 여자나 남자도 태어날 때부터 동성연애자로 만들지 않으셨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는 죄인이 마귀에게 미혹당하고 자의적으로 그러한 죄악에 머물기를 선택함으로써 더욱 더 악한 상황에 빠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죄악을 너무나 가증스럽게 여기시기 때문에 소돔과 고모라 전체를 불로써 심판하시기까지 했다.
신 유
"사도들의 표적"을 볼 것.
심 판
성경에는 여러 종류의 심판이 나오며,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눔으로써만 그러한 심판들을 적절히 구분할 수 있다.
여기서는 네 가지 심판만을 간략하게 다루겠다.
1. 죄의 심판 - 죄는 그리스도께서 세상 죄를 짊어지셨을 때 갈보리에서 심판되었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갈보리에서 그리스도께 내려졌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가 되셔서 율법의 저주로부터 우리를 구속하셨으니, 기록되기를 "나무에 매달린 자는 누구나 저주받은자라."고 하였도다."
고린도후서 5장 21절 "하나님께서 죄를 알지도 못하는 그를 우리를 위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골로새서 2장 14절 "우리를 거스르고 우리를 대적한 손으로 쓴 법령을 지워 버리고, 또 그것을 그의 십자가에 못 박아 없애셨으며")
2. 백보좌 심판 - 그리스도를 거부한 죄인들은 자기들의 죄 가운데서 죽으며, 죽은 즉시 지옥으로 가게 된다.
(누가복음 16장 22-23절 "그러다가 그 거지가 죽었는데 천사들이 그를 아브라함의 품으로 옮겼 고 그 부자도 죽어서 장사되었더라. 부자가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에 눈을 들어 저 멀리 아브라함을 보았더니 나사로가 그의 품에 있는지라.")
그리스도의 천년 통치 이후에 사망과 지옥이 그들 안에 있던 죽은 자들을 넘겨주고 그들은 큰 백보좌 심판대에 서서 책들에 기록된 대로 자기들의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을 것이다.
이때 그들의 행위는 하나님 앞에 받아들여질 수 없음이 판명되어 그들은 영원한 불못에 던져질 것이다.
(요한계시록 20장 11-15절 "또 내가 큰 백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분을 보니, 그의 면전에서 땅 과 하늘이 사라졌고 그들의 설 자리도 보이지 않더라. 또 내가 죽은 자들을 보니, 작은 자나 큰 자나 하나님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져 있으며 또 다른 책도 펴져 있는데 그것은 생명의 책이라. 죽은 자들은 자기들의 행위에 따라 그 책들에 기록된대로 심판을 받더라. 바다도 그 안에 있던 죽은 자들을 넘겨 주고 또 사망과 지옥도 그들 안에 있던 죽은 자들을 넘겨주니 그들이 각자 자기들의 행위에 따라 심판을 받으며 사망과 지옥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이 심판 때 대환란과 천년왕국에서 온 사람들도 함께 심판받을 것으로 여겨지는데, 그리스도인들은 아무도 이 자리에서 심판받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다른 심판이 있다.)
오히려 그리스도인들은 이때 주님과 함께 심판할 것이다.
(다니엘 7장 10절 "불같은 강이 흘러 그분 앞에서 나오니 수백만 명이 그분을 섬기고 수천만 명이 그분 앞에 섰는데, 심판이 준비되었고 그 책들이 펼쳐졌더라."
고린도전서 6장2절 "너희는 성도들이 세상을 심판하리라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세상이 너희에 게 심판을 받을진대 너희가 지극히 작은 일들을 심판할 역량도 없느냐?")
3. 그리스도의 심판석 - 로마서 14장 10절과 고린도후서 5장 10절에 "그리스도의 심판석"이라는 말과 함께 이 심판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이는 그리스도인들만이 받는 심판으로, 그리스도인으로서 섬긴 것을 심판받고 상을 받는 자리이다. 고린도전서 3장 11-15절에 따르면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이때 많은 상을 잃게 되지만, 구원을 잃어버리고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로마서 14장 10절 "그런데 너는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냐?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 느냐? 우리가 모두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서리라."
고린도후서 5장 10절 "이는 우리 모두가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석 앞에 나아가서, 선이든지 악 이든지, 각자가 자기 몸으로 행한 것들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라."
고린도전서 3장 11-15절 "이 닦아 놓은 기초 외에 아무도 다른 기초를 놓을 수 없나니, 이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시라. 이제 누구든지 이 기초 위에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짚이나 그루터기로 지으면 각 사람의 일한 것이 나타나게 되리니 그 날이 그것을 밝힐 것이라. 이는 그것이 불로써 드러나고, 또 그 불은 각 사람의 일한 것이 어떤 종류인지를 시험할 것이기 때문이라. 만일 어떤 사람의 일한 것이 세운 그대로 있으면 그는 상을 받을 것이요 만일 어떤 사람의 일한것이 불타 버리면 그는 손해를 당하리라. 그러나 그 자신은 구원을 받게 되지만 불에 의해서 그렇게 되리라."
4. 자신에 대한 심판(판단) - "만일 우리가 우리 자신을 판단한다면 판단받지 않으리라"(고린도전서 11장 31절)
그리스도인들은 판단받지 않기 위해 자신을 판단해야 한다고 바울은 말하고 있다.
여기에는 자백과 회개가 동반된다.
주님께 자신의 죄들을 자백하고, 그분께 용서를 구해야 한다.(요한일서 1장 9절)
십일조
십일조란 십분의 일을 드리는 것을 말한다.
성경에서 십일조가 처음으로 언급되는 것은 창세기 14장 20절("너의 원수들을 네 손에 넘겨주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송축하라."하니, 아브람이 모든 것의 십일조를 그에게 드리더라.)인데, 여기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자신의 소유의 십분의 일을 바쳤다.
야곱도 창세기 28장 22절("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며, 주께서 내게 주실 모든 것에서 내가 반드시 십분의 일을 주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에서 십일조를 바칠 것을 맹서했다.
십일조는 모세의 율법 아래서 요구되는 것이기도 했다.
(레위기 27장 30-32절 "땅의 모든 십일조는 그것이 땅의 씨앗이든 나무의 열매이든 주의 것이니, 그것은 주께 거룩한 것이니라. 어떤 사람이 자기의 십일조들을 아주 다시 사려면, 그는 거기에다 오분의 일을 더할지니라. 소떼나 양떼의 십일조에 관해서는, 막대기 아래로 통과하는 것이 무엇이든지 열번째 것은 주께 거룩한 것이니" 민수기 18장 21-28절, 신명기 14장 22절)
모든 수입의 십분의 일을 레위지파 제사장들의 생활과 주님을 섬기는 일을 위해 드려졌다.
십일조를 하라는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축복이 약속되어 있다.
(말라키 3장 8-10절 "사람이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내 것을 도둑질하였도다. 그래도 너희는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하니, 십일조와 제물들이라. 너희가 저주로 저주를 받았으니, 이는 너희와 이 온 민족이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음이라. 만군의 주가 말하노니, 너희는 모든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와 내 집에 식량이 있게하고, 이제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의 창문들을 열어 너희에게 복을 부어 주지 않나 보라. 그것을 받을 만한 충분한 장소가 없으리라.")
오늘날 우리는 모세의 율법 아래 살고 있지 않지만, 성경대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십일조를 드린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율법이 주어지기 전부터 십분의 일을 받으셨기 때문이다.
자기의 죄값이 지불되지 않은 구약의 유대인도 자신의 모든 수입의 십분의 일을 주님께 드렸다면, 그리스도의 보혈로 모든 죄를 씻음 받은 우리는 얼마나 더 많이 기꺼이 드려야 하겠는가?
하나님께서는 기쁨으로 드리는 자를 사랑하신다.
(고린도후서 9장 7절 "각 사람은 미리 마음 속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이나 억지로는 하지 말아야 하리니 이는 하나님께서는 기쁨으로 드리는 자를 사랑하심이니라.")
대부분의 성경대로 믿는 교회들은 십분의 일은 최소한으로 드리는 것이라고 믿으며, 십일조는 교회의 기본적인 필요를 충당하는 데 사용하고, 선교를 위한 헌금은 대개 따로 모아 사용한다.
십자가
오늘날 십자가는 기독교의 상징으로 알려져 있으며 예배당 지붕 꼭대기와 강당 정면 벽에 십자가를 걸어 놓지 않은 교회가 거의 없다.
기독교인들은 이 십자가를 장신구로 만들어서 목에 걸거나 손가락에 끼기도 한다.
그러나 과연 십자가는 기독교의 상징인가? 십자가는 기독교의 상징이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기독교가 시작되기 훨씬 전부터 이교도들이 이 표시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십자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 2000년 전에도 종교적인 상징으로 아프리카, 유럽, 아시아, 아메리카 등에 존재했었다.
두 걔의 막대로 된 십자가 모양은 고대 칼데아에서 기원한 것이며, 칼데아와 이집트를 포함한 인접 국가에서 탐무스 신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1세기의 그리스도인들은 십자형 상징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으나 후에 배교한 교회들이 이교도들의 전통을 그대로 교회 안에 수용함으로써 탐무스의 첫글자인 "T"를 조금 변형시킨 "†"를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받아들인 것이다. 뿐만아니라 십자가는 저주의 상징이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가 되셔서 율법의 저주로부터 우리를 구속하셨으니, 기록되기를 '나무에 매달린 자는 누구나 저주받은 자라.'고 하였도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아무리 십자가에 달리셨기로서니, 왜 그 상징을 교회에 걸어 두어야 하는가?
예수님께서 전기 의자로 죽음을 당하셨다면 조그만 전기의자를 만들어서 목에 걸고 다닐 것인가?
우리는 그분의 죽으심을 기념하고 전해야 하지만 (고린도전서 11장 26절 "너희가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 분이 오실 때까지 선포하라.")
그분께서 죽임당하신 도구를 기념해야 할 필요는 없다.
아마겟돈
이 단어는 요한계시록 16장 16절에 나오며, "므깃도 골짜기" 또는 "므깃도 성읍"을 뜻한다.
므깃도는 팔레스타인에 있는 전쟁터로, 바락이 이곳에서 카나안인들을 이겼으며,(재판관기 4장 15절) 기드온 역시 이곳에서 미디안인들을 이겼다(재판관기 7장).
사울왕도 이곳에서 죽었는데(사무엘상 31장 8절)이것은 미래에 적그리스도와 그의 군대가 그곳에서 치러질 커다란 전쟁에서 멸망할 것을 예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양 심
사람의 양심은 기본적으로 내적인 자각이다.
하나님께서는 유리에게 양심을 주심으로써 우리에게 해를 끼치는 것과 우리에게 유익한 것이 무엇인지를 자각할 수 있도록 하셨다.
(디모데전서 1장 5절 "이제, 계명의 목적은 순수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가식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거늘")
디모데전서 3장 9절 "순수한 양심 안에 믿음의 신비를 가진 사람이어야 하느니라."
디모데후서 1장 3절 "선조 때부터 순수한 양심으로 내가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함은 나의 밤낮 기도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기억함이며,")
어떤 사람이 자신의 양심을 영적인 것, 즉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 복음전파 등으로 채우지 않는다면 그는 자신의 양심을 더럽히는 것이고,
(디도서 1장 15절 "정결한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정결하나 더렵혀진 자들과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아무것도 정결한 것이 없고, 도리어 그들의 마음과 양심이 다 더렵혀져 있느니라.")
화인맞게 하는 것이며(디모데전서 4장 2절 "그들 자신의 양심이 화인을 맞아 위선으로 거짓을 말하리라.")약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8장 7절 "그러나 이 지식은 사람마다 있는 것이 아니기에 어떤 사람들은 우상에게 바쳐진 것으로 알고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양심을 가지고 먹으므로 그들의 약한 양심이 더러워졌느니라.")
우리의 양심은 알람시계와 같다. 잘 맞추어 놓고 작동하게 해 놓지 않는다면 아무 쓸모없는 것이다.
에큐메니칼 운동
이 사악한 운동은 20세기에 와서 현대주의자들과 자유주의자들이 일으킨 기독교 통합 운동을 말한다.
사탄은 적그리스도 아래 온 세상을 하나로 통합시키기를 원하기 때문에 (요한계시록 13장 3절 "또 내가 보니, 그의 머리들 가운데 하나가 상처를 입어 죽게 된 것 같았으나, 그의 치명적인 상처가 나으니 온 세상이 기이히 여겨 그 짐승을 따르더라." 12장 9절 "그리하여 그 큰 용이 쫓겨나니 그는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는 옛 뱀, 곧 온 세상을 미혹하던 자라. 그가 땅으로 쫓겨나고 그의 천사들도 그와 함께 쫓겨나더라.")
종교적 통합 운동은 사탄의 입장에서 보면 필연적인 것이다.
대부분의 에큐메니칼 운동가들은 어떤 진리에 대해 절대적인 확신을 보이지 않는다.
뿐만아니라 기독교의 근본적인 가르침을 부인하며, 성경의 절대무오성도 부인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운동의 우두머리는 교황이 되는 것이다.
어떤 이는 에큐메니칼 운동을 현대판 "바벨탑"이라 부르기도 한다.
바벨탑을 쌓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이 운동 역시 하나님의 개입과 심판으로 곧 끝나게 될 것이다.
(스카랴 3장 8절 "오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너와 네 앞에 앉은 네 동료들은 이제 들으라. 이는 그들이 기이히 여김을 받는 자들임이라. 보라, 내가 내 종 가지를 낼 것이라."
마태복음 13장 40절 "그러므로 독보리를 거두어서 불에 태웠듯이, 이 세상의 끝에도 그렇게 되리라.")
열 심
주님을 향한 열심을 보이는 사람은 주님을 섬기는 일에 참여하는 것을 기쁘게 여기는 사람이다.
(고린도후서 9장 2절 "이는 내가 너희 마음의 열성을 알기 때문이라. 내가 너희를 마케도니아 사람들에게 자랑하기를 '아카야에서는 지난 해부터 준비했노라.'고 하였으니, 너희의 열정이 많은 사람을 분발케 하였느니라."
디도서 2장 14절 "그가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주신 것은 우리를 모든 죄악에서 구속하시고 자신을 위해 정결케 하사 선한 일에 열심을 내는 독특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계시록 3장 19절 "내가 사랑하는 자마다 책망하고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열심을 내고 회개하라.")
영적 할례
이 단어는 골로새서 2장 11-15절에 나오는데, 성경은 우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다고 말씀한다.
("또한 너희가 그의 안에서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그리스도의 할례로 육신의 죄들의 몸을 벗어 버린 것이라. 너희가 침례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고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너희도 그와 함께 살아났느니라. 너희의 죄들과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게서 그와 함께 살리셔서 우리의 모든 허물을 용서하셨으니 우리를 거스르고 우리를 대적한 손으로 쓴 법령을 지워 버리고 또 그것을 그의 십자가에 못 박아 없애셨으며
정사와 권세를 벗겨 내어 그것들을 공개적으로 나타내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인간은 몸,혼,영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거듭나기 전에 우리의 혼은 육신의 죄들의 몸에 달라붙어 있기 때문에 몸의 정욕을 따라 죄를 지으며 살게 된다. 그러다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순간 성령께서 그 사람의 혼을 몸에서부터 분리시키시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죄들의 모미을 벗어 버리고 영 안에서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비록 몸을 입고 살기는 해도 그 혼이 더 이상 몸에 달라붙어 있지 않기 때문에 썩을 육신이 구속받은 혼을 부패시키지 못한다.
예수 그리스도
"예수"라는 이름은 "구주"의 뜻을 담고 있으며 "그리스도"는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뜻이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기름부으신 구주라는 뜻이다.
그분께서는 동정녀에게서 태어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이사야 7장 14절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한 표적을 너희에게 주시리라. 보라, 한 처녀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마태복음 1장 23절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한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해석하면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라")
세상의 죄를 위한 희생제물이 되시기 위해 죄 없이 이 세상에 태어나신 분이다.
(요한복음 1장 29절 "그 다음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오시는 것을 보고 말하기를 "보라, 세상 죄를 제거하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
요한계시록 13장 8절 "세상의 기초가 놓인 이래로 죽임당한 어린 양의 생명의 책에 그들의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땅에 사는 모든 자는 그에게 경배할 것이라.")
그분의 탄생과 생애, 사역, 십자가 처형은 하나님의 마음 속에서 미리 계획된 일이었으며, 그분께서는 죽음에까지 순종하셨다.
(빌립보서 2장 8절 "그리하여 사람과 같은 모습으로 나타나셔서 자신을 낮추시고 죽음에까지 순종하셨으니, 십자가의 죽음에까지라.")
예수님께서는 죄 없는 삶을 사셨고 이 세상의 죄값을 치르기 위해 자신을 내어 놓으셨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의롭다하심을 위해 부활하셨으며, (로마서 4장 25절 "예수께서는 우리의 범죄함을 인하여 드려지셨고, 우리의 의롭게 하심을 위하여 다시 일으켜지셨느니라.")
현재 하나님의 오른편에 우리의 대제사장이요 중보자로서 앉아 계신다.
(로마서 8장 34절 "누가 정죄하리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분은 그리스도시라. 그 분은 또한 하나님의 오른편에 계셔서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시느니라."
히브리서 3장 1절 "그러므로 하늘의 부르심에 참여하는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고백하는 바 사도이며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히브리서10장 12절 "이분은 한 번의 속죄제를 영원히 드린 후 하나님의 오른편에 앉으셔서"
디모데전서 2장 5절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시라.)
그분께서는 곧 이 땅에 돌아오셔서 자신의 성도들을 하늘로 영접하실 것이며,
(요한복음 14장 1-3절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너희가 하나님을 믿으니 또한 나를 믿으라.내 아버지 집에는 많은 저택들이 있느니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리라. 나는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마련하러 가노라.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내가 있는 그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현 악한 세상의 나라들을 차지하실 것이다.
(요한계시록 11장 15-17절 "그 후에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부니, 하늘에서 큰 음성들이 있어 말하기를 "이 세상의 나라들이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왕국들이 되어서 그 분이 영원 무궁토록 통치하시리라."고 하더라. 그러자 하나님 앞 그들의 좌석에 앉은 스물 네 장로가 얼굴을 대고 엎드려 하나님께 경배드리며 말씀드리기를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앞으로 오실, 오 전능하신 주 하나님, 우리가 주께 감사드리는 것은 주께서 주의 크신 권세를 가지고 통치하셨기 때문이니이다."
요한계시록 19장 11-21을 보세요.^^*)
그 날이 올 때까지 누구든지 그분을 믿기만 하면 영원한 생명을 받으며 하늘의 영광으로 들어갈 것이다.
"그리스도의 신성"을 보세요...^^
용서받을 수 없는 죄
(성령을 모독하는 죄)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계시는 동안 성령의 능력을 통해 기적을 행하심으로써 자신의 신성을 나타내셨다.
마태복음 12장 22-32절에서 바리새인들은 주님께서 기적을 베푸시는 모습을 본다.
그런데 그들의 예수님을 믿는 대신 그분이 마귀의 능력을 통해 기적을 베푸는 것이라며 비난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사람과 인자에 대한 모독은 용서될 수 있으나 성령을 거슬러 모독하는 것은 결코 용서받지 못하고 영원한 정죄의 위험에 처한다고 말씀하셨다.
마가복음 3장 30절에도 같은 내용이 나오는데, 이 구절을 통해 왜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그 말씀을 하셨는지 알 수 있다.
"이는 그들의 말하기를 '그가 더러운 영을 지녔다.'고 함이더라."중요한 사실은 갈보리 사건 이후에는 이 죄에 대해서 언급된 적이 단 한번도 없다는 것이다. 이 죄는 그리스도의 지상 사역, 즉 그분께서 성령의 능력을 통해 기적을 행하실 때에만 성립되는 것이다.
또 하나님을 모독하는 죄는 말로 짓는 죄라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된다. 자신의 생각 또는 행동으로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죄를 지을 수가 없다. 따라서 "용서 받을 수 없는 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탄의 능력을 힘입어 일하신다고 공개적으로 비난할 때에만 성립되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 죄를 오늘날에도 지을 수 있다고 가르치지만 전혀 성경적 근거가 없는 소리다.
예수님께서 후에 성령께서 오셔서 믿는 자들 안에 내주하신다고 말씀하셨을 때 성령께서 세가지, 즉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서 세상을 책망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성령께서 세상을 죄에 대하여 책망하실 때는 한 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않기 때문이요"(요한복음 16장 7-11절)
성령을 모독하는 용서받을 수 없는 죄가 이 시대에 가장 큰 죄였다면 예수님께서는 그 말씀을 하시면서 그 죄에 대해 우리에게 반드시 경고하셨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렇게 하시는 대신 믿지 않는 죄에 대해 경고하셨던 것이다.
어떤 은사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성령을 통해 능력을 행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자신들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게는 "성령을 모독하는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짓고 있다."고 말하는 습관이 있다.
예를 들면 어떤 은사주의자들은 내가 이 책에서 그들이 이상한 방언을 말하는 것과 신유의 은사를 가졌다고 주장하는 것이 사실은 더러운 영에 의한 것이라고 성경적으로 반박했기 때문에 내가 성령을 모독하는 죄를 지었다고 말하려 들 것이다. 이는 말도 안되는 소리다.
만일 그들이 그 모든 일들을 진짜 성령을 통해서 행하는 것이라 하더라도(사실은 그렇지 않지만)그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죄"가 될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서 이루시는 위대한 사역을 처음에는 비방했다가 나중에 구원을 받았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이 그 좋은 예이다.(사도행전 8-9장)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케 해 주신다.
(요한일서 1장 9절 "우리가 우리 죄들을 자백하면 그는 신실하시고 의로우셔서 우리 죄들을 용서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이 시대에 용서받을 수 없는 죄는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서 믿지 않고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것밖에 없다.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하라.
그러면 백보좌 심판석에서 하나님 앞에 섰을 때 결코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우상 숭배
우상숭배란 기본적으로 하나님보다 못한 어떤 것을 경배하는 행위를 말한다.
우리가 그 어떤 것이라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더 소중히 여긴다면 우리는 우상숭배의 죄를 짓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우상숭배는 새긴 형상이나 행성, 별, 또는 다른 인간이나 동물등 '물질적인 대상'을 숭배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은 완고한 마음의자세도 우상 숭배와 같다고 말씀한다.(사무엘상 15장 23절 "이는 거역함은 마법하는 죄와 같고 완고함은 행악과 우상 숭배와 같음이니이다. 왕이 주의 말씀을 거역하였기에, 주께서도 왕을 거절하여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더라.
골로새서 3장 5절 "그러므로 땅 위에 있는 너희의 지체를 죽이라. 곧 음행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색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아시기 때문에 그분께서 우리 마음의 첫째 자리에 계시지 않으면 우리는 우상 숭배의 죄를 범하는 것이다.
유대인
유대인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자손을 말한다.
"이스라엘"을 볼 것.
율 법
"율법"이라고 하면 보통 모세를 통해 주어진 구약에 기록된 율법을 말한다.
율법은 세가지, 즉 이스라엘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밝힌 법(출애굽기 20장 1-26), 사회로서의 이스라엘을 통치하기 위한 법(출애굽기 21장 1절-24장 11절), 종교적 의식을 규정하는 법(출애굽기 24장 12절-31장 18절)으로 나뉜다.
율법의 주된 목적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그가 죄인이라는 것과 그에게 구주가 필요함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다.
(로마서 3장 20절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는 그분 앞에 의롭게 될 육체가 없나니, 이는 율법을 통해서는 죄의 깨달음이 있음이니라.")
바울은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선생"이라고 말했다.
(갈라디아서 3장 24절 "그리하여 율법이 유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선생이 되었으니 이는 우리를 믿음으로 의롭게 하려 함이라.")
오늘날 우리는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믿는 모든 사람에게 의가 되시고자 율법의 끝이 되셨느니라."(로마서 10장 4절)
"내가 율법이나 선지서를 폐기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기하러 온 것이 아니라 이루려고 왔노라."(마태복음 5장 17절)
은사주의 운동
은사주의 운동은 20세기에 일어난 운동으로(하나님의 성회, 오순절 운동, 순복음 운동 등) 성령의 사역과, 방언, 신유, 표적 등에 대해 거짓 교리를 가르치는 것을 그 특징으로 하고 있다.
잃어 버린 혼들을 그리스도께로 이겨오는 대신 은사주의자들은 다른 그리스도인들의 '영성'과 '거룩함'을 문제 삼는 데 모든 시간과 노력을 소비하고 잇다.
은사주의자들은 체험은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하면서도 성경적 사실에 대해서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모순을 보인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11장 4절에서 "또 다른 예수" "또 다른 영" "또 다른 복음" 을 가지고 오는 자들에 대해 경고하고 있는데, 이 은사주의자들이야말로 그런 자들이다.
(고린도후서 11장 4절 "만일 누가 와서 우리가 전파하지 아니한 또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너희가 받지 않은 또 다른 영을 받거나 너희가 영접하지 않은 또 다른 복음을 전파하면 너희가 그를 잘 용납하는도다.")
그들은 그럴 듯하게 보이고 그럴 듯하게 말하고 그럴 듯하게 찬양할지 모르나 그들의 교리는 치명적이다.
"사도들의 표적"을 보세요..^^
은 혜
은혜란 기본적으로 '분에 넘치는 호의'를 말한다.
우리가 아직 죄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구원하시고 복 주시고자 하신 것은 순전한 은혜이다.
은혜로 인해서 우리는 값없이 무언가를 얻는다.
에베소서 2장 8-9절은 우리가 은혜로 구원을 받았다고 말씀하며 요한복음 1장 14절은 주 예수께서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셨다고 말씀한다.
은혜를 한마디로 정의 내리자면 그리스도께서 지불하신 대가로 주어진 하나님의 풍요함이다.
(에베소서 2장 8-9절 "너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복음 1장 14절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므로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으로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이 단어는 우리가 살고 있는 현 세대를 일컬을 때 사용되기도 하는데, 성경은 지금이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
(에베소서 3장 2절 "과연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을 너희가 들었을진대")
이라고 말씀한다.
또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처럼 매일의 삶 속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어야 한다.
(에베소서 4장7절,29절 "그러나 우리 각자에게 그리스도의 은사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으니",
"너희 입에서 어떠한 더러운 말도 나오지 아니하게 하고 오직 서로를 세우는 데 필요한 좋은 것만을 말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골로새서 4장 6절 "너희의 말이 항상 은혜와 더불어 있게 하고 소금으로 맛을 내듯 하라. 이는 각 사람에게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가를 알게 하려는 것이라.")
음 악
음악이 무엇인지는 모르는 사람이 없다.
하지만 어떤 음악이 좋은 음악이고 어떤 음악이 나쁜 음악인지를 구분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따라서 이 부분을 간략하게 짚고 넘어가도록 하겠다.
성경에서 좋은 음악은 아름다운 소리를 내며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을 돌린다.
(에베소서 5장 19절 "시와 찬송과 영적인 노래들로 너희에게 말하고, 너희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곡조를 만들고,"
골로새서 3장 16절 "그리스도의 말씀이 모든 지혜로 너희 안에 풍성히 거하게 하되 시와 찬송과 영적인 노래로 서로 가르치고 권면하며 너희 마음 속에서 은혜로 주께 노래하고"
사무엘상 16장 23절 "그러므로 하나님으로부터 온 악령이 사울에게 임하면 다윗이 하프를 들고 그의 손으로 하프를 탔으니, 그렇게 하면 사울이 힘을 얻고 나았으며 악령이 그에게서 떠나더라."
역대상 23장 5절 "사천 명은 문지기들이요, 사천 명은 다윗이 말하기를, "내가 찬양하려고 만든 악기들로 주를 찬양하리라."한 자들이라.
시편 150편 "너희는 주를 찬양하라. 그의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의 권능의 창공에서 그를 찬양하라. 그의 능하신 행적들로 인하여 그를 찬양하며 그의 뛰어난 위대하심을 따라 그를 찬양하라. 나팔 소리로 그를 찬양하며, 솔터리와 하프로 그를 찬양하라. 탬버린과 춤으로 그를 찬양하며, 현악기들과 오르간들로 그를 찬양하라. 큰 소리 내는 심벌즈로 그를 찬양하며, 높은 소리 내는 심벌즈로 그를 찬양하라. 호흡이 있는 모든 것들로 주를 찬양케 하라. 너희는 주를 찬양할지어다."
요한계시록 5장 8-10절 "그가 그 책을 취하니 네 짐승과 스물 네 장로가 각자 하프와, 향으로 가득한 금호리병들을 가지고 그 어린양 앞에 엎드렸으니, 그 향은 성도들의 기도라. 그들이 새 노래를 부르며 말하기를 "주께서 그 책을 취하시며 그 봉인들을 열기에 합당하시니이다. 이는 죽임 당하셨던 주께서 하나님께로 각 족속과 언어와 백성과 민족 가운데서 우리를 주의 피로 구속하여 우리 하나님 앞에 우리를 왕들과 제사장들로 삼으셨음이니, 우리가 땅 위에서 통치하리이다." 라고 하니라.)
하지만 나쁜 음악은 "전쟁의 소리" 같으며 거짓 신들에게 찬양과 영광을 돌린다.
(출애굽기 32장 17-19절 "백성들이 소리지르니 여호수아가 백성의 소리를 듣고 모세에게 말하기를 "진영에 전쟁의 소리가 나나이다." 하니 모세가 말하기를 "그것은 이기라고 소리치는 음성도 아니요, 패배해서 부르짖는 음성도 아니고, 내가 듣기에는 그들이 노래하는 소리니라."하고 그가 진영에 가까이 오자 송아지와 그 춤추는 것을 본지라, 모세가 격노하여 자기 손에서 돌판을 던져 산 아래서 깨뜨리니라."
다니엘 3장 5-7절 "너희가 뿔나팔과 피리와 하프와 사베카와 솔터리와 덜시머와 모든 악기 소리를 들으면 엎드려 느부캇넷살왕이 세운 금상에게 경배하라. 누구든지 엎드려서 경배하지 않는 자는 즉시 불타는 뜨거운 용광로 속으로 던져질 것이니라." 하더라. 그러므로 그 때 모든 사람들이 뿔나팔과 피리와 하프와 사베카와 솔터리와 모든 악기 소리를 들을 때에 모든 백성과 민족들과 언어들이 엎드려서 느부캇넷살이 세운 금상에 경배하더라.")
좋은 음악은 깨끗한 춤을 동반하기도 한다.
(출애굽기 15장 20-21절 "아론의 누이 여선지자 미리암이 그녀의 손에 작은 탬버린을 드니 모든 여인들이 탬버린과 춤으로 그녀를 뒤따라 나오더라. 미리암이 그들에게 대답하기를 "너희는 주께 노래하라. 이는 주께서 영광스럽게 승리하셨으며 말과 그 탄 자를 바다 속에다 던지셨음이라." 하더라."
전도서 3장 4절 "울 때와 웃을 때, 애도할 때와 춤출 때며"
시편 150편 4절 "탬버린과 춤으로 그를 찬양하며, 현악기들과 오르간들로 그를 찬양하라.")
반면 나쁜 음악은 성적 욕망을 불러 일으키는 춤을 동반한다.
(마태복음 14장 6절 "그러나 헤롯의 생일이 되었을 때에, 헤로디아의 딸이 그들 앞에서 춤을 추어 헤롯을 기쁘게 한지라.")
당신이 듣고 즐기는 음악과 춤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결정할 수 없다면, 다음의 두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 보기 바란다.
(1)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음악을 들으시겠는가?"
(2) "그분께서 나처럼 춤을 추시겠는가?"
이 문제는 올바른 관점에서 보면 대단히 단순한 문제인 것을 알 수 있다.
......기독교 현대음악(CCM, Christian Contemporary Music)......
CCM은 1960년 초반에는 "예수 음악" 또는 "지저스 록"이라 불렸으며 최근에 와서 CCM이라는 말로 바뀌었다.
CCM은 한국뿐 아니라 중국, 인도, 러시아, 케냐, 필리핀, 프랑스, 남아프리카공화국, 일본등에 대중적으로 퍼져나갔다.
CCM의 정의를 내린다면 "시대의 음악적 흐름을 따르는 대중적 스타일의 기독고 음악"이라고 할 수 있다.
음 행
세상 사람들은 음행을 "혼전성교"나 "자유 연애" 같은 잘못된 용어로 부르고 있으나, 혼인하지 않은 사람들끼리의 육체적 교류는 "음행"이며, 성경에서
엄격히 금하고 있는 행위이다.
혼인한 사람의 침상은 더럽혀진 것이 아니나 (히브리서 13장 4절 "혼인은 모든 면에서 귀한 것이니 침상을 더럽히지 않게 하라. 음행하는 자들과 간음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리라.") 음행은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스러운 죄악이다.
(로마서 1장 28-29절 "뿐만 아니라 그들은 자기들의 지식 가운데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니,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림받은 마음에 내버려 두시어 온당치 아니한 일을 하게 하셨도다. 그들은 모든 불의, 음행, 사악, 탐욕, 악의로 가득 찼으며,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하며, 수군거리는 자들이요,"
고린도전서 7장 2절 "음행하지 않기 위해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의 남편을 둘지니라."
고린도전서 10장 8절 "우리는 그들 중 어떤 사람들이 행한 것처럼 음행하지 말자. 그들은 그러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느니라."
고린도전서 6장 13-20절 "음식은 배를 위하고 배는 음식을 위하나 하나님께서는 이것과 저것 둘 다 폐하시리라. 이제 몸은 음행을 위하지 아니하고 주를 위하며, 주께서는 몸을 위하시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주를 살리셨으니, 그 분의 능려기으로 우리도 살리시리라. 너희의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녀의 지체로 만들수 있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또한, 창녀와 합하는 자는 한 몸인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그가 말씀하시기를 "둘이 한 몸이 되리라."고 하셨느니라. 그러나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지만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짓는 것이라.
또한,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바 너희 안에 계신 성령의 전인 것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니라. 너희는 값을 치르고 산 것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의 것인 너희 몸과 너희 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갈라디아서 5장 19-21절 "이제 육신의 일들은 분명히 나타나나니, 곧 간음과 음행과 더러운 것과 음욕과 우상 숭배와 마술과 원수 맺음과 다툼과 질투와 분노와 투쟁과 분열과 이단들과 시기와 살인과 술취함과 흥청거림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내가 전에 말한 바와 같이 미리 말하노니, 그런 짓들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할 것이라.")
고린도전서 6장 9-10절에서 음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한다고 말씀한다.
의롭게 됨(칭의)
칭의는 하나님께서 죄인을 그분 보시기에 죄 없게, 의롭게 보시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갈보리에서 완성된 그리스도의 사역의 기반 위에서 가능하게 되었다.
(사도행전 13장 39절 "너희가 모세의 율법으로는 의롭게 되지 못하였던 그 모든 일에 있어서도 믿는 자는 모두 그분을 통하여 의롭게 되느니라."
로마서 3장 24-28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을 통하여 그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게 되었음이라. 하나님께는 그의 피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그를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 가운데서 이전에 지은 죄들을 사하심으로 인하여 그의 의를 선포하려 하심이요, 곧 이때에 자기의 의를 선포함은 자신도 의롭게 되시고 또한 예수를 믿는 자도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그러므로 자랑할 데가 어디 있느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에 의해서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이 율법의 행위들이 없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단정하노라.")
로마서 5장1,9절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게 되엇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화평을 갖느니라.",
"그러므로 이제 그의 피로 의롭게 되었으니, 더욱더 우리가 그를 통하여 진노로 구원받게 되리라."
로마서 8장 30절 "그리하여 예정하신 이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이들을 또한 의롭게 하시고, 의롭게 하신 이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이 단
이단 교리는 진리에서 떠난 것, 거짓 선지자들과 거짓 교사들(소위 "이단들")이 퍼뜨리는 거짓 교리를 말한다.
베드로후서 2장 1절은 "저주받을 이단들"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그러나 백성 가운데도 거짓 선지자들이 있었던 것처럼 너희 가운데도 거짓 교사들이 있으리라. 그들은 저주 받을 이단들을 비밀리에 불러들여서 자기들을 사신 주마저 부인하며 급격한 파멸을 스스로 불러들이느니라.")
그러나 현재의 이단들은 우리를 놀라게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고린도전서 11장 19절은 "너희 가운데는 이단들도 있어야만 하리니, 그래야만이 너희 가운데 인정받는 사람들이 나타나게 되리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하나님의 진리의 빛은 이단들 사이에서 더욱 밝게 빛난다는 뜻이다.
(디모데후서 2장 15절에 따르면 우리는 하나님게 "인정받기" 위해서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공부해야" 한다.
디모데후서 2장 15절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나누어 자신이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일꾼으로 인정받도록 공부하라.")
이방인
교회 시대에 있어 "이방인"은 그리스도인이나 유대인이 아닌 사람을 말하며,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유대인과 이방인과 하나님의 교회로 나누신다.
(고린도전서 10장 32절 "유대인에게나 이방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게나 아무도 거치는 자가 되지 말라.")
한편 구약 때에는 그리스도인이 없었기 때문에 이방인이라 하면 유대인이 아닌 모든 사람을 말했다.
이스라엘
이 단어는 창세기 32장 28절에 처음으로 나오며, "하나님과 함께 권세를 갖는다"는 뜻을 가진다.
야곱은 하나님의 천사와 씨름한 뒤에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되었는데, 이 이름은 성경 전체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 즉 유대인을 칭하는 이름으로 사용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언약을 세우셨는데, 이는 아브라함의 자손을 위대하게 만들고 복된 민족으로 만들며 그들에게 땅을 주신다는 약속을 내용으로 한다.
(창세기 12장 2절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할 것이며 네게 복을 주고 네 이름을 위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되리라."
창세기 15장 18-20절 "그 날에 주께서 아브람에게 언약을 세워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 땅을 이집트 강에서부터 큰 강 유프라테스까지 네 씨에게 주었으니 켄인들과 크니스인들과 캇몬인들과 싯인들과 프리스인들과 르파인들과~~")
하나님께서는 한 민족을 택하셔서 그 민족을 통해 영광을 받으시고, 또 그 선택된 민족에서 메시야 즉 세상의 구주를 일으키시기를 원하셨다.
유대인들이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A.D.1세기에 온 세상의 이방 민족 가운데로 흩어졌지만, 20세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팔레스타인인 땅으로 돌아오게 하시고 독립 국가로 세우셨다.(1948년 발포아 선언)
이제 얼마 안 있으면 하나님께서는 대환란 기간 동안에 그들을 엄중하게 심판하실 것이고, 그 뒤에 그리스도의 지상 재림이 있을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은 예수 그리스도께 회심할 것이며 다가올 천년왕국 기간 동안 하나님의 본래의 계획을 완성할 것이다.
(예레미야 23장 5-8절 "주가 말하노라. 보라 그 날들이 오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키리니 한 왕이 치리하고 번성하여 지상에서 심판과 정의를 실행하리라. 그의 날들에 유다는 구원을 받고 이스라엘은 안전하게 거하리라. 이것이 그의 이름이니 그는 '주 우리의 의'라 불리리라. 그러므로 주가 말하노라. 보라, 그 날들이 오리니, 그들이 더 이상 "이집트 땅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인도해내신 주께서 살아 계시거니와."라고 말하지 않고 "이스라엘 집의 씨를 북쪽 나라와 내가 몰아냈던 모든 나라로부터 인도하고 이끌어 준 주께서 살아 계시거니와."라고 말하리니 그들이 그들 자신의 땅에 거하리라.")
에스겔 37장 21-25절 "그들에게 말하라. 주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이스라엘의 자손을 그들이 간 이방 가운데서 빼어내어 사면에서 그들을 모아서 그들의 본토로 데려와 이스라엘의 산들 위에 있는 땅에서 그들을 한 민족으로 만들 것이니 한 왕이 그들 모두에게 왕이 될 것이요, 그들이 다시는 두 민족이 되지 아니할 것이며, 그들이 결코 다시는 두 왕국으로 나뉘지 아니하리라.
그들은 그들의 우상들로나 그들의 혐오스러운 것들로나 그들의 범법 중 어떤 것으로도 그들 자신들을 더 이상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내가 그들이 죄를 지은 모든 처소에서 그들을 구원하여 그들을 깨끗케 하리니,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내 종 다윗이 그들 위에 왕이 될 것이며, 그들 모두에게는 한 복자가 있으리라. 그들은 또한 나의 명령대로 행하고 나의 규례들을 준수하며 그것들을 행하리라. 그들은 내가 내 종 야곱에게 주어 너희 조상들이 살았던 그 땅에서 거하리니, 그들, 즉 그들과 그들의 자손과 그들 자손의 자손이 영원히 그 안에서 거하리라. 내종 다윗은 영원히 그들의 통치자가 되리라.")
아모스 9장 14-15절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사로잡힌 자를 다시 데려오리니, 그들이 황폐한 성읍들을 세워 그곳에 거주할 것이요, 또 그들이 포도원들을 만들어 그 포도주를 마시겠고, 그들은 또한 정원들을 만들어 그 열매를 먹으리라. 내가 그들을 그들의 땅에다 심으리니, 그들이 다시는 내가 그들에게 주었던 그들의 땅에서 뽑히지 아니하리라. 주 너의 하나님이 말하노라."
사도행전 15장 14-17절 "하나님께서 그의 이름을 위하여 이방인들 가운데서 한 백성을 취하시려고 처음에 어떻게 그들을 찾으셨는가를 시므온이 설명하였으니 이것은 선지자들의 말과 일치된 것이라. 기록된 바와 같이 '이 일 후에 내가 다시 돌아와서 쓰러진 다윗의 장막을 다시 세울 것이며, 또 거기에 파괴된 것들을 다시 세워 일으키리라. 그리하여 남은 자들로 주를 찾게 할 것이며, 또 내 이름을 부르는 모든 이방인들도 그러하리라. 이 모든 일을 행하시는 주가 말하노라."
로마서 11장 26-27절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 기록된 바와 같이 "구원자가 시온에서 와서 야곱에게서 경건치 아니한 것을 제거하리라. 이는 내가 그들의 죄들을 없앨 때 그들에 대한 나의 언약이 이것임이니라."함과 같으니라.
자 백
자백한다는 것은 무언가를 인정한다는 뜻이며, 성경에서 이 단어는 대개 자신에 대한 어떤 사실을 인정하는 것을 뜻한다.
구원받기 위해서는 자신의 죄인된 상태를 자백해야 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구주로 영접함으로써 자신의 죄들을 버려야 한다.
(잠언 28장 13절 "자기 죄들을 숨기는 자는 번성하지 못할 것이나. 죄를 자백하고 버리는 자는 누구나 자비를 얻으리라."
마태복음 10장 32절 "그러므로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시인하며, 나도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로마서 10장 9-10절 "네가 네 입으로 주 예수를 시인하고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이는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에 이르기 때문이라."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죄 용서를 받고 하나님과의 교제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들의 죄들을 자백해야 한다.
(요한일서 1장 9절 "우리가 우리 죄들을 자백하면 그는 신실하시고 의로우셔서 우리 죄들을 용서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죄인들은 "주님께" 고백해야 하며 인간(카톨릭 사제나 마리아를 포함해서)에게 고백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유일한 중보자시기 때무너이다.
(디모데전서 2장 5절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시라.")
장 로
성경에서 장로는 목자를 말한다.
많은 교회에서 목사와 장로를 구분해서 집사들 중에서 선별된 사람들에게 장로 직분을 준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히 비성경적인 것이다.
베드로와 요한도 장로였다. 그러면 그들이 목사 아래 있는 장로였다는 말인가?
그렇지 않다. 성경에서 장로는 목자를 가리키는 것이다. "감독" 역시 목자를 지칭하는 말이다.
(디모데전서 3장 1절 "만일 어떤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원하면 그는 선한 일을 사모한다는 그 말은 참되도다."
디도서 1장 7절 "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비난받을 것이 없고 자기 고집대로 아니하며, 쉬 화내지 아니하고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고 더러운 이익을 탐내지 아니하며")
따라서 교회 안에서 성경적인 직분은 목자와 집사, 둘뿐이다.
성경대로 하지 않는 교회에서는 이 두 직분 외에도 여러 가지 직분을 만들었으며(권사,전도사,강도사,안수집사...),
이는 로마 카톨릭도 마찬가지다. (신부,수녀,주교,대주교,추기경,교황 등)
재 림
그리스도의 재림은 매우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예언적 사건이다.
예수님께서 첫 번째로 오셨을 때 실제적으로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몸을 입고 오신 것처럼 두 번째에도 그와 동일하게 오실 것이다. 어떤 이들은 재림이 실제적인 사건이 아니라고 가르치기도 한다. 그러나 성경은 이에 대해 매우 분명하게 말씀한다. 예수님께서 첫 번째로 오셨을 때 그분은 세상 죄를 제거하는 "하나님의 어린 양"(요 1:29)으로 오셨지만, 두 번째로 오실 때에는 "유다 지파의 사자"요 "왕 중의 왕"(계 5:5; 19:16)으로 오실 것이다. 초림 때 주님은 이 세상 나라들의 통치권을 거절하셨지만(마 4:8-10) 재림 때에는 그 나라들을 다스리실 것이다(계 11:15).
구약은 주님께서 의의 왕국을 세우시고 이스라엘이 모두 민족들의 머리가 된다는 사실에 대한 예언으로 가득 차 있다(창 49:10, 렘 23:5; 25:30-31, 사 2:2-4; 11:1-6; 42:13-14, 욜 3:16-21, 겔 36:48, 시 2:1-8, 슼 14:16-21, 말 4:1-3 등). 이 예언들은 그리스도의 초림 때에는 성취되지 않았으며 재림 때 이루어질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유대인들이 그리스도를 자신들의 왕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이 예언들이 더 이상 효력이 없으며, 그것들을 영적으로 또는 은유적으로 해석해서 교회에 적용시킨다. 그러나 이것은 완전한 이단 교리이다. 이스라엘에게 실제적으로 성취될 이 모든 예언들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모두 이루어질 것이다.사도행전 1:6-7; 15:14-16, 히브리서 8:8-10, 로마서 11:25-26, 누가복음 1:31-33, 요한계시록 6:12-17; 19:11-16 등을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재림에 대한 예언들을 조금도 잊지 않으셨음을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땅을 의로 통치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6천 년 동안 인간이 땅을 다스려 왔지만, 인간은 의와 평화를 이룩하는 데는 전적으로 무능함을 입증하였다. 따라서 재림 때 주님께서는 그 일을 이루실 것이다. 주님께서는 재림 전에 교회를 데리러 오시어 구원받은 자들을 불러내실 것이다("휴거"와 "부활"을 볼 것).그리고 나서 이 땅에는 대환란 기간이 시작되는데, 이 기간은 약 7년이다("대환란"을 볼 것). 대환란 끝에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로부터 자신의 성도들과 함께 돌아오셔서 땅의 왕국들을 차지하실 것이다. 악한 자들은 멸망당할 것이고 천년왕국은 세워질 것이며 ("천년왕국"과 "전천년주의"를 볼 것) 하나님의 아들은 민족들을 다스리실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의 말씀이다.
적그리스도
이는 사탄에게 완전히 장악되고 사탄에 의해 조종당하게 될 미래의 인물이다.
적그리스도는 단일 세계 종교와 세계 정부, 세계 경제를 통제할 것이며(계 13장, 살후 2:3-4, 계 19:19) 자기가 세운 사악한 제도에 순응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죽일 것이다.
성경은 적그리스도를 "작은 뿔"(단 7:8), "멸망의 아들"(살후 2:3), "짐승"(계 13장), "북쪽 왕"(단 11:6), "장차 올 왕"(단 9:26)이라 부르고 있다. 적그리스도와 그의 추종자들은 재림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 멸망당할 것이다.
전가된 의
전가된 의란 믿는 자에게 전가된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말한다.
죄인이 "자기 의"를 버리고 그리스도를 온전히 신뢰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의 의를 그 사람에게 전가해 주신다(롬 4:5-8).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영접할 때 우리의 죄들은 그분께 지워지고(고후 5:21, 갈 3:13) 그분의 의는 우리에게 전가된다.
전천년주의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요한계시록 20장 1-7절에 약속된 천년 통치를 하시기 직전에 문자 그대로 이 땅으로 돌아오셔서 직접 왕국을 세우시고 통치하실 것이라는 성경 교리이다.
요한계시록 19장에서 그분의 재림이 묘사되고 그 뒤 20장에서 즉시 천년 통치가 이어진다는 사실은 이 교리가 성경적이라는 사실을 뒷받침해 준다.
천년왕국에 대해서는 오직 전천년주의만이 올바른 관점이다.
요한계시록 20장 1-7절 "또 내가 보니, 한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데, 그의 손에는 끝없이 깊은 구렁의 열쇠와 큰 쇠사슬을 가졌더라.
그가 그 용을 잡으니, 곧 마귀요 사탄인 옛 뱀이라. 그를 천 년 동안 묶어 두니 그를 끝없이 깊은 구렁에 던져서 가두고 그 위에 봉인하여 천 년이 찰 때까지는 민족들을 다시는 미혹하지 못하게 하더라. 그 후에는 그가 반드시 잠시 동안 풀려나게 되리라.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그들이 그 위에 앉았는데 심판이 그들에게 주어졌더라. 또 예수에 대한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목베임을 당한 사람들의 혼들도 보았는데, 그들은 그 짐승에게나 그 형사에게 경배하지 아니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의 표를 그들의 이마 위에나 손에도 받지 아니하였더라. 그러므로 그들은 살아서 그리스도와 함게 천 년을 통치하더라.
그러나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 나머지는 천 년이 끝날 때까지 다시 살지 못하리라. 이것이 첫 번째 부활이라. 첫 번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는 복되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오히려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들이 되어 천 년 동안 그와 함께 통치하리라. 그 천 년이 끝나면 사탄이 그의 감옥에서 풀려나"
죄사함(Remission)
이것은 "구속"과 비슷하기는 하지만 똑같은 것은 아니다.
신약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죄들을 사함받은 것"이라고 말하면(마 26:28, 눅 24:27, 행 10:43, 롬 3:25)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피를 통해 우리의 죄들을 완전히 용서받은 것을 말한다. 그러나 구약에서 성도들의 죄들은 동물 제사를 통해 용서받고 가려졌지만(레 4:20,26,31,35; 5:10,13,16; 18:6,7, 민 15:25-26, 시 130:3-4) 그들은 죽은 뒤에 셋째 하늘에 갈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의 혼이 아직 구속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죄들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용서되었을 뿐 하나님의 기록(민 14:18, 출 34:7)으로부터 완전히 지워진 것은 아니었다. 황소들과 염소들의 피로는 죄들을 제거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히 10:4). 따라서 구약 성도들은 죽은 뒤에 지하의 "아브라함의 품" 즉 "낙원"(눅 16:22, 23:43)으로 갔다. 거기서 그들은 구속주이신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모든 죄를 위한 값을 완전히 치러 주실 때까지 기다린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값을 치러 주셨고 그 성도들을 데리고 하늘로 올라가셨다(엡 4:8-9, 마 27:52-53). 하나님께서는 동물 제사를 근거로 해서 구약 성도들의 죄를 용서하기는 하셨지만 (구약적 의미의 죄사함), 이 모든 제사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죄를 영원히 제거하시는(구속) 유일한 희생제사를 예표하는 것이었다. "보라, 세상 죄를 제거하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요 1:29).
주기도문
대부분의 교회에서는 예배나 각종 모임의 시작 때 소위 "주기도문"을 외운다.
이것은 마태복음 6:9-13에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주님께서 그 바로 앞인 7절에서 이교도들이 하는 것처럼 헛된 반복을 하지 말라고 명령하신 사실이다. 따라서 주기도문을 반복해서 외우는 것은 주님께서 하지 말라고 하신 일을 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기도는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기도가 아니다. 그 기도는 대환란 때 유대인들이 할 기도이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왕국이 임하옵시며"라는 구절은 천년왕국이 오기 직전 대환란에 처한 유대인들이 속히 환란이 끝나고 왕국이 오기를 고대하는 것이다. 또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는 부분은 대환란 때는 짐승의 표를 받지 않으면 아무 것도 살 수 없기 때문에 표를 받지 않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기에서 이스라엘을 기적적으로 먹이신 것처럼 대환란 때도 적그리스도를 피해 광야로 도망온 이스라엘을 먹이실 것이다. "우리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하옵시고, 악에서 구하여 주옵소서."라는 구절은 대환란 때는 적그리스도의 표를 받으면 구원을 잃어버리고 지옥에 가기 때문에 시험을 끝까지 이길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기도이다. 물론 우리도 그 내용을 영적으로 적용해서 기도할 수는 있다. 하지만 대환란의 상황에 처한 유대인이 아닌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기도는 교리적으로 적용되지 않으며, 따라서 이 기도를 매주 암송하면서까지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주의 만찬
주의 만찬은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 주님께서 세우신 의식이다(마 26:26-29, 막 14:22-25).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22:19-20에서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억하라."고 하셨고, 이 의식은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그 분의 죽으심을 선포하기 위한 것이다(고전 11:23-26).
어떤 이들은 주의 만찬을 매주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성경에서 그렇게 명하고 있는 부분은 없다. 고린도전서 11:26의 문맥을 잘 살펴보면 ("마실 때마다") 주의 만찬을 얼마나 자주 행하는지에 대해서는 규정해 놓지 않고 우리가 정할 수 있는 부분으로 남겨 놓은 것을 알 수 있다.
로마 카톨릭은 이 주의 만찬을 왜곡시켜서 미사가 갈보리에서 단번에 영원히 이루어진 그리스도의 희생을 "피없이 반복하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그리스도의 희생과 소위 "성체성사"의 희생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것이다. 또한 미사에 참여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피와 살을 "실제적으로" 받아 먹고 마시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이것은 비성경적인 것이요 그리스도를 모독하는 것이다(히 10:10-14, 행 15:29, 시 16:4, 레 17:11-12, 창 9:4).
중 생(Regeneration)
중생이란 새롭게 하는 것 즉 새로운 탄생을 말한다.
이 단어는 성경에 두 번 나오는데, 첫 번째는 마태복음 19:28에서 예수님께서 돌아오실 때 이 땅이 새롭게 태어난다는 문맥 속에서 사용되었고(사 11:6-9, 롬 8:21-23), 두 번째는 디도서 3:5에서 믿는 자가 성령에 의해 새롭게 태어나는 것을 언급하는 문맥에서 사용되었다.
증거함
증거한다는 것은 어떤 특정한 주제에 대해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말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사도행전 1:8에서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라는 명령을 받는다. 따라서 증거한다는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영접하는 모든 사람에게 값없이 주시는 구원에 대해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것을 뜻한다. 진실된 그리스도인이라면 주님을 증거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막 8:38, 롬 1:16, 10:11).
지 옥
지옥은 지구의 중심에 있는 실제적으로 불타는 장소이다.
많은 이단들이 가르치는 것처럼 지옥은 무덤이 아니다(특히 여호와의 증인들이 그렇게 가르친다). 왜냐하면 무덤에 묻혀 있으면서 불타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눅 16:23-24, 신 32:22, 막 9:43-48). 지옥은 원래 마귀와 그의 천사들을 위해 예비된 곳이나(마 25:41) 인간이 죄와 죽음의 영역에 들어가기를 스스로 선택하기 때문에 지옥은 인간의 고통의 장소도 되어 버렸다. 요한계시록 20:14에 따르면 지옥은 마지막에 가서 "불못"에 던져질 것이다. 지옥불을 설교하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지옥불을 처음으로 설교하신 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시라는 사실이다(마 5:22, 막 9:47). 어떤 사람이든지 지옥에 가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벧후 3:9). 그러나 그리스도를 거부하고 지옥에 가겠다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지옥으로 보내시는 것이다.
짐 승
곧 나타날 적그리스도와 그의 사악한 제국은 요한계시록에서 "짐승"이라 불린다.
짐승의 표
짐승의 표는 요한계시록 13:17; 16:2; 19:20에 언급되어 있으며, 이것은 짐승의 "숫자"와 "이름"과 연관된다.(계 13:17-18; 15:2; 14:11).
미래에 나타날 적그리스도인 이 짐승은 온 세계의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오른손이나 이마에 이 표를 받게 함으로써 자신이 세운 악한 체제에 순응하게 만들 것이다. 이 표를 받기를 거부하는 자들은 목베임을 당할 것이다. (계 13:15, 20:4).
이 짐승의 표가 어떻게 나타날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오늘날과 같이 발달된 현대 기술로 미루어 보아 그것은 컴퓨터나 스캐닝 장치와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믿어진다. 바코드나 영구 컴퓨터 칩 같은 것을 피부에 이식할 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 표가 없이는 아무도 사거나 팔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성경의 예언대로 적그리스도가 경제를 통제하게 될 것이다.
찬 양
찬양의 의미는 기본적으로 모든 형태의 인정, 감탄, 찬사를 말한다.
시편을 몇 편만 읽어 보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배울 수가 있다. "찬양"이라는 말은 시편에서만 150번 이상 나온다. 히브리서 13:15은 그분을 계속적으로 찬양하는데 우리의 입술을 사용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다.
창 조
이것은 땅과 온 우주가 어떤 인격적인 존재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교리이다.
창세기 1:1은 "태초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느니라."고 말씀하며, 요한복음 1:3은 "만물이 그에 의하여 창조되되...", 히브리서 1:3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만드셨다고 말씀한다.
예수님께서는 당연히 창조를 믿으셨으며 마가복음 13:19에서 그렇게 말씀하셨다. 따라서 진화론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성경에 반대되는 가짜 이론이다
천 국(Kingdom of Heaven)
사람들은 대개 하나님의 나라와 천국이 똑같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두 왕국은 결코 똑같지 않다.
"하나님"과 "하늘"이 똑같지 않은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와 천국은 똑같지 않다. 하나님은 영이시나(요 4:24) 하늘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물리적인 공간이다(창 1:1). 하나님의 왕국은 영적 왕국인 반면 천국은 실제적이고 물리적인 왕국이다.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1:28에서 아담에게 이 왕국의 통치권을 넘겨 주셨다. 그것은 지상의 왕국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왕국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곳이 되기를 원하셨다(마 6:10). 하나님께서는 이 왕국에 계속해서 사람들을 왕으로 임명하신 이 사실을 우리는 구약을 통해 알 수 있다(노아, 아브라함, 다윗, 솔로몬 등). 그런데 예레미야 22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코니야의 자손 중에서 다윗의 보좌에 앉아 다스릴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맹세하심으로써 이 천국은 떠나 버렸다. 이것으로 이스라엘은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감과 동시에 "이방인의 때"(눅 21:24)가 시작되었으며, 바빌론에 이어 메데-페르시아, 그리스, 로마 등의 왕국이 뒤따랐다. 누가복음 4:6에 따르면 사탄은 이 세상 왕국들을 관장하고 있으며, 자기가 원하는 사람에게 그 왕국을 넘겨준다. 고린도후서 4:4은 사탄이 "이 세상의 신"이라고 말한다.
그 뒤에 유대인의 왕이요 메시야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에게 왕국을 약속하신 사실을 알고 있었다(창 49:1, 사 2:1-5, 사 49:5-13, 시 2편, 렘 23:5, 눅 1:30-33 등). 침례인 요한과 예수님께서는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전파하셨다(마 3:2; 4:17). 하지만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왕을 거부하고 이방인의 왕인 카이샤를 택했다(요 19:15). 따라서 그 왕국은 이스라엘에게 회복되지 않았다.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은 "이 때에 이스라엘에 그 왕국을 다시 회복하시겠나이까?"(즉 실제적이고 물리적이며 눈에 보이는 왕국, 곧 천국)하고 물었지만, 예수님께서는 "...너희에게는 그 때나 시기를 알게 하신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자신의 권한에 두셨느니라."(행 1:6-7)고 답하셨다. 이때 제자들은 영적인 하나님의 나라(롬 14:17)를 회복하실 것이냐고 물은 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 왕국은 아직 시작 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실제적이고 물리적인 천국이 회복되기를 원했던 것이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면 하나님의 나라와 천국은 하나가 되어 이 땅에 실현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이 두 왕국을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된다. 하나님의 나라는 영적 왕국이요, 천국은 물리적인 왕국이다.
천년왕국
이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성도들이 천 년 동안 통치하는 왕국을 말한다.
요한계시록 20:1-6은 이것이 지상에서 실제적이고 물리적이며 가시적인 통치로 이루어질 것을 말해 주고 있다. 이 세상의 왕국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들이 될 것이요, 그 분의 의로 세상을 다스리실 것이다.
현재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받기를 자처하는 사람들은 곧 다가올 천년왕국에서 그분과 함께 다스릴 것이다(딤후 2:11-13, 눅 19:12). 이사야 2:2-4; 9:6; 11:1-6, 시편 2:1-8, 누가복음 1:32, 스카랴 14:16-19을 볼 것
천 사
히브리서 1:14에 따르면 천사들은 "섬기는 영들"로, 이들의 주된 임무는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는 것이다.
천사들은 인간의 창조 이전에 지음을 받았으며(욥 38:4-7) 초자연적인 존재인 이들은 인간보다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다(사 8:5). 성경에서 모든 천사는
남성으로 나오며,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날개를 갖고 있지 않다.
청지기
청지기란 무엇인가를 경영하고 관리하도록 책임을 맡은 사람을 말한다(창 15:2, 눅 12:42-48; 16:1-13).
베드로전서 4:10에 따르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그리스도인을 청지기로 삼으셨다. 당신이 구원받았으면 당신은 하나님의 소유인 것이다(고전 6:19-20). 따라서 당신이 소유한 모든 것은 하나님의 소유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의 삶 전체를 그분의 뜻에 따라 적절히 경영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인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시간과, 재능과, 재물에 대한 선한 청지기가 되어야 한다. 언젠가 하나님께 그것 모두에 대해 설명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롬 14:12).
침 례
침례란 물에 잠기는 것을 말한다. [세례(물을 뿌리는 것)는 성경적 방법이 아니다.
물을 뿌리는 것이 올바른 방법이라면 성경에서 왜 모든 사람들이 강에서 침례받는 것으로 나오겠는가?] 따라서 침례를 받았다는 것은 무엇인가에 완전히 잠겼다는 뜻이다.
어떤 이들은 "침례"하면 모두 물로 받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마태복음 3:11에서 침례인 요한은 한 구절 안에 세 가지 침례, 즉 물 침례와 성령 침례, 불 침례를 동시에 언급하고 있다. 첫째는 물에 잠기게 하는 것이고, 둘째는 그리스도의 몸에 집어넣어 주는 것이며, 마지막은 지옥 불에 던지는 것이다. 이렇게 침례에는 여러 가지가 있기 때문에 각각의 경우에 구분해서 이 단어를 쓸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주와 구주로 영접한 순간에 성령 침례를 받는다(고전 12:13). 이 특별한 침례는 영적인 침례이며, 이 침례를 물 침례와 혼동해서는 안된다. 많은 사람들이 이 두 가지 침례를 구분하지 못해 오류 또는 이단 교리에 빠진다. 이 영적 침례는 고린도전서 12:13, 에베소서 4:5, 로마서 6:3-4, 창세기 3:27에서 볼 수 있다. 이것은 물 침례가 아니다. 물 침례는 우리를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넣어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로(엡 2:8-9) 구원을 받는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침례를 주게 하려고 자신을 보내신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보내셨다고 고린도전서 1:17에서 말하고 있으며, "복음"에는 물 침례가 포함되지 않는다(고전 15:1-4).
그렇다고 해서 물 침례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인가? 그렇지 않다. 물 침례는 대단히 중요하다. 그것이 그리스도와 함께 한 죽음과 장사, 부활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베드로전서 3:21은 그것이 우리를 구원하는 "모형"이라고 말하고 있다. 순종하는 그리스도인은 물 침례의 명령에도 순종할 것이나, 그것을 구원의 수단으로 여겨서는 절대로 안된다. (그랬다가는 영락없는 지옥행이다. 행위는 은혜를 은혜 되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우리의 구원은 은혜로 값없이 받는 선물이다.) 예수님 옆에 달린 강도는 물 침례를 받지 않고서도 구원받았다(눅 23:42-43). 사도행전 8장의 에디오피아 내시도 그리스도를 믿은 다음에야 침례를 받았다(행 8:37-38). "믿는 것"을 볼 것.
침례에 의한 중생
이것은 물 침례가 구원받지 않은 사람의 죽은 영을 실제적으로 살려 주며 새로운 탄생을 가져온다고 하는 거짓 교리이다.
성경은 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께서 그 일을 하신다고 말씀하고 있다(고전 12:13). 이교도들은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수천 년 전부터 이 교리를 믿어 왔고 자신들의 종교에 입교하는 사람에게 물에 잠기는 의식을 치루게 했다. 침례로 구원받는다는 이 교리는 성경대로 믿는 기독교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그러나 로마 카톨릭이나 그리스도의 교회는 침례(또는 세례)를 받을 때 성령을 받는다고 가르친다.
칼빈주의
칼빈주의를 믿는 사람은 16세기 스위스의 종교개혁가인 존 칼빈의 신학적 신념에 동의하는 사람을 말한다.
칼빈주의는 크게 다섯 가지로 요약될 수 있는데 이 중 다섯 가지 모두 거짓 가르침이요, 성경을 완전히 왜곡시키는 것이며, 죄인으로 하여금 구원받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1. 완전한 타락 - 이 거짓 교리는 인간이 너무나도 타락했기 때문에 죄인된 자신의 상태도 볼 수 없고 구원받기 위해 주의 이름을 부를 수도 없다는 것이다. 모든 인간이 날 때부터 죄인인 것은 물론 사실이다(롬 3:23; 5:12, 시 51:5). 그러나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영접하라고 명령하신 것 또한 사실이다(행 17:30-31, 요일 3:23, 눅 13:3). 하나님께서 순종할 수도 없는 인간에게 왜 명령을 주셨겠는가? 인간은 참으로 완전히 타락한 존재이나, 자신의 의지를 사용할 수 없는 상태가 된 것은 아니다(벧후 3:9, 요 1:12; 3:16, 수 24:15, 출 35:5,21,22
29). 다시 말해서 전적 타락은 전적 무능력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2. 무조건적 선택 - 이는 에베소서 1:4-5, 로마서 8:29 같은 구절을 철저하게 왜곡시켜 만들어 낸 이단 교리이다. 칼빈주의자들은 하나님께서 각인이 가지고 있는 자유 의지와는 전적으로 무관하게 창세기 1:1 이전에 모든 사람의 길을 미리 정해 놓으셨다고 믿는다. 즉 인간이 태어나기도 전에 누가 하늘나라에 가고 누가 지옥에 갈지를 정해 놓으셨다는 말이다. 그러나 성경을 잘 읽어 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택하셨으며(엡 1:4) 그것도 자신의 아들의 형상과 일치하게 하시려고 택하신 것을(롬 8:29)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민족적으로 선택하시고(이스라엘) 자신의 사역을 맡기시기 위해 사람들을 선택해 임명하시기는 하지만, 개개인의 구원으로 사람들을 산택하시지는 않는다.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는 것이다(딤전 2:4). 그런데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지 않는 이유는 그 사람이 그 구원을 거절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자유 의지를 꺽으시고 그를 구원하시거나 저주하시는 분이 결코 아니다.
3. 제한적 속죄 - 이것은 제한된 수의 사람들만이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들을 씻음 받을 수 있다는 가르침으로, "선택된 사람들"만이 구원을 받는다는 교리의 당연한 귀결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셔서 교회를 사랑하셔서 교회를 위해 자신을 내어 주셨기 때문에(엡5:25) 그리스도의 피는 교회를 위해서만 흘려졌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이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다. 디모데 전서 2:6은 그리스도께서 선택된 사람들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신을 몸값으로 주셨다고 말씀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다.(롬 3:23). 따라서 그분께서는 "모든 사람"을 위해서 죽으셨다. 그러나 그분은 자신을 영접한 사람들만을 구원하시는 것이다.
4. 저항할 수 없는 은혜 - 이것 역시 거짓 교리이다. 이것은 성령 하나님께서 죄인을 강권하셔서 그 죄인이 자의적으로 성령께 굴복하지 않더라도 그를 구원하신다는 가르침이다. 그러나 우리가 앞서 살펴본 것과 같이 인간에게는 자유 의지가 있으며, 그리스도를 주와 구주로 믿기로 "결심"하지 않고서는 어떤 사람도 구원받을 수 없다. 저항할 수 없는 은혜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원하는 것은 거부할 수 있는 자유 의지를 주셨기 때문이다(행 7:51, 딤후 3:8, 약 4:7). 물론 찔림을 주시는 성령께서 대단히 강력하게 역사하시는 때가 있기는 하나, 그때도 역시 죄인은 자신의 의지로 받아들일 수도 있고 거부할 수도 있다. 어떤 사람도 자신의 의사에 반대되게 구원받지 않으며, 어떤 사람도 그리스도를 영접하고자 결정하기 전에는 구원받을 수 없다.
5. 성도의 견인 - 이것은 성도의 구원은 영원히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것으로, 한 번 구원받은 성도가 하나님의 손 안에서 영원히 보호받는다는 것 자체는 바른 교리이다(요 10:28). 그러나 칼빈주의에서 가르치는 "성도의 견인"은 조금 다르다. 그것은 구원받기로 택함받은 자들이 침례를 받고 스스로 거룩한 행위를 함으로써 끝까지 견인하기로 예정되었다는 것이다. 그들의 교리 뒤에는 끝까지 견인하지 못하는 자들은 애초부터 택함 받은 사람이 아니라는 무시무시한 교리가 숨어 있다.
크리스마스
매년 12월 25일은 많은 교회들이 그리스도의 생일로 지키는 날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이 절기를 지켜 흥청망청 즐기고 선물을 주고받는다. 그러나 이 절기는 성경적으로 볼 때 그리스도와는 전혀 무관한 날이다. 우선 그리스도께서는 이 날에 태어나시지 않았다. 천사들이 목자들에게 나타나서 그리스도의 탄생을 알렸을 때 그들은 들에서 묵고 있었는데(눅 2:8) 아무리 팔레스타인의 기후가 따뜻하다 하더라도 동지 때는 양떼를 야외에 둘 수 없을 정도로 춥다. 이스라엘에서는 겨울에 양무리를 먹일만한 초원이 마땅히 없기 때문에 목자가 직접 먹이를 구해다 먹여야 한다. 따라서 예수님의 생일은 동지가 될 수 없다.
이 크리스마스는 사실은 태양신의 생일이다. 태양신을 숭배하는 이교도들은 지구가 태양의 영향력에서 가장 멀어지는 때인 동지를 그의 생일로 정하고 그 날을 지켰던 것이다. 그들은 그 날 마시고 즐기며 술취하고 아기들을 바알에게 희생제물로 바치곤 했다(알렉산더 히슬롭의 [두 개의 바빌론] 참조). 이러한 이교도의 전통이 기독교 안으로 들어와 예수님의 생일날로 둔갑한 것이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초기의 그리스도인들이 그분의 생일을 기념했다는 것은 찾아볼 수 없으며 그 날을 기념하라는 명령도 찾아볼 수 없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분의 탄생이 아니라 그분의 죽음을 기념해야 한다(고전 11:26).
킹제임스 성경
하나님께서 보존하신 영어 성경으로, 하나님께서 사용하시고 마귀는 미워하는 성경이다.
영국의 제임스 왕 1 세의 명령으로 42명의 유수한 학자들이 모여 1604년부터 1611년 사이에 번역하였다. [킹제임스 성경]은 종교 개혁을 가져온 원문인 "텍스투스 리셉투스"(Textus Receptus) 즉 "표준 원문"(Received Text)에서 영어로 번역된 성경이다. 이것은 [킹제임스 성경]이 현존하는 모든 필사본 증거의 95%와 일치한다는 사실을 뜻한다. 이 성경을 제외한 모든 영어 성경은 그 나머지 5%의 증거에 근거해서 변개된 성경들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신학 대학 교수들을 포함해서)은 ASV, NIV, RSV, NASV 등의 새로운 번역본들이 [킹제임스 성경]의 "개정본"이라고 믿고 또 가르친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과 전혀 무관하다.
모든 새로운 역본들은 웨스트코트와 홀트가 만든 새로운 헬라어 원문(원어를 좀 안다고 하는 사람들이 "헬라어 원문"이라고 말할 때는 바로 이 원문을 말하는 것이다.)에 근거해서 만들어졌다. 웨스트코트와 홀트는 영국의 "학자들"로서 이들은 거듭난 그리스도인들도 아니었고 마리아를 숭배했으며, 악한 영들과 교제하는 자들이었다. 그들이 극도로 부패하고 외경이 첨가되어 있는 단 두 개의 로마 카톨릭 필사본(바티칸 사본과 시내 사본)을 근거로 해서 새로운 헬라어 원문을 만들었는데, 그들은 현존하는 기독교를 혼란시키고 전복시킬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그 원문을 만들었다. 모든 새로운 역본들은 이들이 만든 헬라어 원문을 근거로 하고 있기 때문에 모든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은 새로운 역본들을 거부한다.
[킹제임스 성경]은 현대 역본들과 완전히 다른 원문에서 나왔다. 바로 "비잔틴" 또는 "시리아" 계열의 원문으로, 이 필사본 계열은 제자들이 최초로 "그리스도인"이라 불린(행 11:26) 시리아 안티옥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사 전체를 통해 이 원문을 존중하셨으며 이 원문에서 종교개혁의 열매를 주셨고, 1611년 이후에는 [킹제임스 성경]을 높이 들어 쓰셔서 이 성경을 전파하고 가르칠 때 수백만의 잃어버린 혼들이 구원받는 역사를 이루셨다. 이 성경은 참으로 "책 중의 책"이다. 왜냐하면 이는 마지막 시대의 세계 공용어인 영어로 주어진 순수하고 보존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섭리로 보존된 성경], [킹제임스 성경의 신비]) 참조, 말씀보존학회 간)
성경은 우리 민족에게 최초로 주어진 참다운 하나님의 말씀이다. 1988년 사복음서를 [새성경]이란 명칭으로 출간한 것을 시발로 하여 1992년에 신구약이 완성되었으며, 이 성경을 통해 영과 진리로 경배드리며(요 4:23) 하나님의 말씀의 절대무오성과 절대권위를 믿는 교회와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이 한국에도 탄생하게 되었다.
[한글킹제임스 성경]의 구약은 처음부터 히브리 맛소라 원문을 영어로 가장 잘 전수한 [킹제임스 성경]에서 번역되었고, 신약은 처음에는 희랍어 표준원문에서 직역했으며, 신약 제3판을 [킹제임스 성경]과 대조하면서부터 [킹제임스 성경]에 철저하게 어휘를 맞추었고, 구약의 어휘는 히브리 맛소라 원문과 비교, 투영시킴으로써 히브리어, 희랍어, 영어와 우리말과의 간격을 최대한 좁혔다.
바른 성경 없이는 바른 신앙도 없다. 성경은 교리를 재는 잣대인데, 틀린 잣대로는 교리를 올바로 잴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많은 사람들이 한국 교회 내에서 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으나 방법을 몰라 이리저리 헤매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개혁을 이루는 것은 오직 변개되지 않은 성경으로 돌아가서 하나님의 말씀의 절대 권위를 인정할 때에만 가능한 것이다. 하나님은 "책"을 통해서 자신의 뜻을 계시하신다(삼상 3:1,7,19,21). 또 성령님은 성경이 말씀하신 대로 성도들을 인도하신다(요 16:13).
주님의 재림이 임박한 이 마지막 때에 변개되지 않은 성경이 우리 민족에게 주어진 것은 단 한 사람이라도 더 하나님의 구원의 복음으로 거듭나게 하시려는 주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다.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모든 일들이 이루어지리라. 하늘과 땅은 없어져도 내 말들은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 24:34,35).
개역한글판성경 (개역성경)
개역성경은 한국 교회들이 거의 통일되게 사용해 온 성경으로, 변개된 원문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신약에서 2,200단어 이상이 삭제되었고, 신구약 전체에서 바른 원문과 30,000군데 이상의 차이를 보인다. 개역성경 신약에서는 13구절이 삭제되어 "없음"이라고 되어 있으며(마 17:21; 18:11; 23:14, 막 9:44,46; 11:26; 15:28, 눅 17:36; 23:17, 행 8:37; 15:34; 28:29, 롬 16:24) 그리스도의 신성(딤전 3:16)과 삼위일체를 증거하는 구절(요일 5:7을 삭제하고 6절을 둘로 나누어 7절로 만들었음)이 삭제되었고, 지옥의 실체(막 9:44,46), 피의 속죄(골 1:4), 예언의 성취, 예수님께서 육신으로 오신 것(요일 4:3) 등 성경적 기독교의 핵심 교리와 연관된 구절들이 손상을 당했다. 또 창세기 22:8과 스카랴 14:12을 변개시킴으로써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약의 여호와 하나님께서 육신으로 오신 분이심을 가렸다(직접 비교해 보라!) 또한 이사야 14:12에서는 사탄의 이름인 "루시퍼"대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인 "계명성"(새벽별, 계 22:16)을 집어 넣었다. 참으로 마귀는 교묘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손상시킴으로써 그 말씀이 살아있고 활력이 있는, 양날이 있는 어떤 칼(히 4:12)보다도 예리하게 되지 못하게 만든 것이다.
이와 같은 변개들은 개역성경의 모체가 된 성경들이 그 시작부터(1882, 로스역) 웨스트코트와 홀트가 만든 변개된 헬라어 성경에 기초했기 때문이다. 개역성경을 비롯해 동일한 뿌리에서 나온 기존의 모든 한글 성경들은 영어성경의 변개의 역사와 맥을 같이하고 있어 원문상의 변개에 있어서는 모두가 동일하다.
순수한 복음이 변질되고 바른 교리가 부재했던 한국 기독교의 개탄스러운 현 상황은 변개된 성경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틀린 성경으로 교리를 정립시키고 변개된 성경을 열심히 연구했기 때문에 이단 교리들이 무성하게 된 것이다. 이제 한국의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은 변개된 개역성경을 버리고 참된 하나님의 말씀인 [한글킹제임스성경]으로 돌아와야 할 때다.
타 락
타락이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고귀한 부르심의 상을 위하여 그 푯대를 향해"(빌 3:14)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뒤로 미끄러지는 것을 말한다. 이 단어는 예레미야 3장에서 자기들의 죄로 다시 돌아간 하나님의 백성에게 사용되었으며, 오늘날 이 단어는 믿음을 저버린 신실하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사용되며, 타락은 어떤 모양으로든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날 때 시작된다
탐 욕
탐낸다는 것은 어떤 것을 갈망하는 것을 말하며, 대개 자신이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을 갈망하는 것을 뜻한다.
그리스도인들은 "만족"할 줄 알아야지 탐욕을 품어서는 안된다(빌 4:11, 딤전 6:6-8, 히 13:5). 주 예수께서는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열세 가지 악 중에서 탐욕을 언급하셨으며(막 7:21-22), 누가복음 12:12에서는 탐욕을 주의하라고 명령하셨다. 바울은 골로새서 3:5에서 탐욕은 우상숭배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 또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위에 있는 것들에 우리의 마음을 두어야지 땅에 있는 것에 두어서는 안된다(골 3:2
표적과 이적들
"사도들의 표적"을 볼 것
피의 속죄(Blood Atonement)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인한 속죄는 기독교의 핵심 교리 중 하나다.
이 교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희생당하신 하나님의 어린 양이 흘리신 피로 멸망당할 인류의 죄들이 구속되었으며(요일 1:29, 히 9:22) 이 죄 없는 피가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자비석에 뿌려졌다는(히 9:11-12) 교리이다. 구약에서 희생된 모든 동물은 그리스도의 피의 속죄를 예표한 것이었다. 아담과 이브의 죄를 덮기 위해 죽임당한 죄 없는 동물은(창 3:21) 우리의 죄들을 위해 죽임 당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하나님께서 받으신 아벨의 제사는 그의 첫배 새끼를 드린 것이었는데(창 4:4) 이 역시 그리스도의 피의 속죄를 예표한 것이었다. 성경에는 피의 속죄의 예표가 많이 나오는데, 그 중 가장 위대한 것은 출애굽기 12장에서 하나님께서 유월절 양의 피를 보시고 사람들은 구속하시는 것이었다.
이 완성된 피의 속죄가 과거에 이미 이루어진 상태에서 오늘날 모든 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오직 그분만을 통해 하나님께 다가갈 수 있다. 사도행전 20:28은 하나님께서 교회를 "자신의 피"로 사셨다고 말씀한다. 요한계시록 1:5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피로 우리의 죄들에서 우리를 씻기신다고 말씀한다. 또 로마서 5:8-9은 우리가 그분의 피를 통하여 의롭게 되었으며, 골로새서 1:20은 우리가 그분의 피를 통해 화평을 갖는다고 말씀한다. 구원을 가능하게 한 것은 그리스도의 죽음만이 아니다. 우리의 죄들을 없애는 그분의 피의 속죄가 필요했던 것이다.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 장소, 사물을 창조하신, 유일하시고 전능하신 존재이다(창 1장).
따라서 그분은 모든 사람, 장소, 사물보다 월등하시다.
사탄과 그의 악한 군대도 하나님께 복종하며, 하나님의 허락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욥 1:6-12; 2:1-6, 사 14:12-15, 슼 3:1-2, 마 4:3-11, 골 2:13-15, 롬 16:20, 고전 8:5-6).
하나님께서는 많은 놀라운 속성을 갖고 계신다. 그 중 몇 가지만 들자면, 그분은 영원하시고(시 90:2), 거룩하시며(사 6:3, 삼상 2:2), 의로우시고(스 9:15), 공의로우시며(신 32:4), 오래 참으시고(벧후 3:9, 출34:6), 사랑하시며(요일 4:7-8), 질투하시고(나 1:2), 자비로우시고(신 4:31, 시 103:8), 모든 것을 아시며(욥 34:22, 고후 16:9), 어디에나 계시고(시 139:7-10), 전능하시다(욥 42:2, 렘 32:27).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세 가지 방법으로 자신을 계시하신다. 자연을 통해서(시 19:1-4, 롬 1:20), 기록된 말씀을 통해서(잠 22:20, 벧후 1:20-21, 딤후 3:16-17), 또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히 1:2, 요 1:1,14, 딤전 3:16) 하신다.
오늘날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자기들의 죄들을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값없이 제공되는 구원을 받는 것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 없이 하나님을 믿겠다고 하는 자들을 우리는 주의해야 한다.
하나님을 두려워함
오늘날 사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른다.
이는 로마서 3:18 말씀과 정확히 일치하는 현상이다. "그들의 눈 앞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도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고 순종하는 삶을 살며, 그 분께서는 거룩하시고 결코 죄를 간과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언제나 유념하는 사람이다. 시편 111:10은 "주를 두려워함이 지혜의 시작이라."고 말씀한다. 또 잠언 15:16은 "소유가 적어도 주를 두려워하는 것이 큰 재물로 인하여 고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말씀한다. 인간은 아무리 교육을 많이 받았고 아무리 부자라 할지라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어리석은 자요 가난한 자이다. 솔로몬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의 계명들을 지키라. 이것이 사람의 모든 의무니,"라고 적고 있다(전 12:13).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어떤 사람도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모든 사람을 두려워하게 된다. 하나님을 최고 자리에 두고 다른 어떤 존재보다 그분을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행복하고 풍성한 삶을 사는 열쇠이다. 시편 118:6, 마태복음 10:28, 잠언 29:25을 볼 것.
하나님의 나라(Kingdom of God)
로마서 14:17, 누가복음 17:21에 따르면 이것은 현재 하나님의 백성의 마음 안에 있는 영적 왕국을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한 사람들은 이 위대한 왕국 안으로 옮겨지게 된다(골 1:13, 엡 1:3, 2:6). 그리스도인 당신은 이미 하나님의 나라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이다. 이 나라는 당신 안에 있다.
하늘나라
하늘나라는 우주의 북쪽 너머에 있는 실제적인 장소를 말한다(시 48:2, 75:6-7, 사 14:13, 겔 1:4-5).
그 나라는 결코 죄나 죽음의 저주로 더러워질 수 없는 순결하고 거룩한 장소요, 하나님과 천군 천사의 실제적인 주거지이다(미 6:9, 22:30,26:53, 요 14:1-3, 롬 8:34, 계 19:11-14).
요한계시록 21,22장은 새 예루살렘 도성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묘사하고 있는데, 이 도성은 영원 세계에서 모든 성도들이 살 영광스러운 집이 될 것이다. 그곳은 행복과 평화의 장소요, 그곳에는 눈물과 죽음, 슬픔, 울부짖음, 고통, 배고픔도 없을 것이다(계 7:16, 21:4). 인간의 모든 욕구가 충족되는 이 하늘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서만 갈 수 있다. 바울은 골로새서 3:2에서 우리의 마음을 이 곳에 두라고 명령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본향 하늘을 그리워해야 한다. 이 세상은 우리의 집이 아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지나갈 뿐이다.
헬라어 원문
누군가가 "헬라어 원문"(The Original Text)이라는 말을 사용할 때 여러분은 조심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는 것처럼 속이고 있기 때문이다. 번역된 성경 본문을 이야기하면서 "헬라어 원문에는 이렇게 되어있다..."고 말하면 마치 유일하고 절대적인 기준이 되는 하나의 헬라어 성경이 있는 것처럼 들리게 된다. 그러나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최초의 헬라어 원본은 사도들에 의해 기록된 후 얼마 안돼서 닳아 없어져 버렸다. 오늘날 아무도 최초의 원본을 보지 못했다. "헬라어 원문"을 들먹이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모국어로 주신 명령에 순종하기 싫어하는 사람이다.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발견된 5000개가 넘는 헬라어 사본이 있는데 그 중 어떤 것도 최초의 원본은 아니다. 아무도 최초의 원본에 뭐라고 기록되어 있는지 모른다. 오늘날 아무도 그것을 가져본 적이 없고 아무도 그것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롬 1:22을 볼 것).
혼의 소멸
이 거짓 교리는 여호와의 증인 같은 이단들이 가르치는 교리로 그들은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 영원한 불못에서 형벌받지 않는다고 믿는다.
혼의 소멸이란 악인의 혼이 미래의 어느 시점에 가면 완전히 없어지기 때문에 영원한 고통의 장소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그러나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와는 정반대로 말씀하셨다(마 25:41, 눅 16:24).
화목제물
화목제물이란 어떤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치러진 값을 말한다.
성경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들을 위한 화목제물이라고 말씀한다(롬 3:25, 요일 2:2, 4:10). 그 분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위한 값을 지불하셨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리스도의 희생제물을 받으셨기 때문에 그 분만이 우리의 유일한 화목제물이 되실 수가 있는 것이다.
회 개
회개한다는 것은 어떤 것에 대해 마음을 바꾸고 그 바뀐 방향으로 계속해서 나아가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죄인에게 자기들의 죄들을 회개하고 구원을 받기 위해 하나님께로 돌이키라고 명령하고 계신다(행 17:30-31, 눅 13:3). 진심으로 회개한 사람은 (1) 자신의 죄에 대해 슬퍼하고(고후 7:9-10, 시 51편), (2) 자신의 죄들을 버리며(마 3:8, 행 26:20), (3)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다(행 9:6). 이에 미달되는 회개는 성경적 회개에 미달되는 것이다
후천년주의
이것은 그리스도의 천년 통치가 교회에 의해 시작될 것이며, 예수님께서는 평화와 의로 가득찬 천 년 기간이 지난 다음에야 돌아오신다고 하는 잘못된 믿음을 말한다. 이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가르침이다. 인간은 단 한 번도 평화와 의를 이룩해 본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결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재림과 연관해서 오직 전천년주의만이 올바른 교리이다.
휴 거
이 단어는 성경에 직접 나오지는 않지만 성경에서 예언하고 있는 사건을 잘 묘사해 주는 말이다.
영어로 휴거는 "rapture"인데 이 단어는 라틴어 "랍토"에서 유래했으며, "재빨리 중단하다" 또는 "강제로 중단시키다"라는 뜻을 갖는다. 신약 교회의 부활(고전 15:51-52, 살전 4:13-18)은 갑자기 일어나기 때문에 "휴거"라는 말로 일컬어진다. 이 때 그리스도 안에서 잠든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살아남아 있는 성도들은 갑자기 눈깜짝할 사이에 변화되어 공중으로 들려 올라갈 것이다. 우리는 주님을 만나볼 이 날을 날마다 고대하며 살아야 한다. 아멘, 그러하옵니다.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성경의 위대한 장
거룩함 - 골로새서 3장
겸손 - 빌립보서 2장
경건한 사람 - 시편 1편
경건한 집 - 시편 84편
경배 - 시편 95편
고난받으시는 구주 - 이사야 53장
그리스도께 집중함 - 빌립보서 3장
그리스도의 기도 - 요한복음 17장
그리스도의 우월하심 - 히브리서 1장
그리스도의 탄생 - 누가복음 2장
깨어 있음 - 데살로니가전서 5장
나사로를 살리심 - 요한복음 11장
낙담한 자를 위로하심 - 시편 42편
내주하심 - 요한복음 15장
늙었을 때 - 전도서 12장
만족 - 빌립보서 4장
믿음 - 히브리서 11장
믿음과 행위 - 야고보서 2장
바울과 아그립파 - 사도행전 2장
베드로와 코넬료 - 사도행전 10장
부활 - 누가복음 24장 (마 28장, 막 16장, 요20장)
사랑 - 고린도전서 13장
산상수훈 - 마태복음 5-7장
생명의 빵 - 요한복음 6장
생수 - 요한복음 4장
선교 - 시편 96편
선한 목자 - 요한복음 10장
선한 목자의 시 - 시편 23편
섬김 - 누가복음 10장
성령 - 요한복음 16장
성별 - 고린도후서 6장
승천 - 사도행전 1장
시대의 표적들 - 마태복음 24장
시온의 영광 - 이사야 60장
시험 - 마태복음 4장
십계명 - 출애굽기 20장
십자가 사건 - 요한복음 19장(마 27장, 막 15장, 눅 23장)
악기를 동반한 음악 - 시편 150편
어리석은 자 - 잠언 26장
영원한 생명 - 고린도전서 15장
영적 생명 - 고린도전서 12장
오순절 - 사도행전 2장
왕중의 왕 - 시편 72편
용기 - 여호수아 1장
위로 - 요한복음 14장
유월절 - 출애굽기 12장
육과 영 - 로마서 8장
은혜 - 에베소서 2장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분 - 시편 121편
이스라엘의 만족적 선택 - 로마서 9장
인간의 타락 - 창세기 3장
인격을 형성 - 고린도전서 3장
자애 - 시편 103편
자연이 하나님을 계시함 - 시편 91편
자유함 - 갈라디아서 5장
적그리스도 - 데살로니가후서 2장
전도자들 - 고린도전서 2장
죄로부터의 자유 - 로마서 6장
죄의 굴레 - 로마서 7장
주께서 모든 것을 아심 - 시편 139편
주께서 통치하심 - 시편 97편
주의 만찬 - 고린도전서 11장(마 26장, 막 14장, 눅 22장)
중생 - 요한복음 3장
지혜 - 잠언 4장
짐을 지는 것 - 갈라디아서 6장
징계 - 히브리서 12장
짧은 인간의 생명 - 시편 90편
찬양 - 시편 148편
창조 - 창세기 1장
청년 - 잠언 3장
출애굽 - 출애굽기 13장
칭의 - 로마서 5장
피난처와 요새 - 시편 91편
하나님을 신뢰함 - 시편 46편
하나님의 갑옷 - 에베소서 6장
하나님의 말씀 - 시편 119편
하나님의 위대하심 - 이사야 40장
하나님의 자비 - 시편 136편
하나됨 - 에베소서 4장
하늘의 집 - 요한계시록 22장
헌신 - 로마서 12장
혀 - 야고보서 3장
형제 사랑 - 요한일서 4장
회개 - 시편 5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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