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영 도중 주연배우가 바뀌는 내홍을 겪고 있지만 SBS 드라마 <리턴>은 꽤 잘 만든 드라마다. 장르물로서 매 회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재미를 주는데다, 악당들의 저지르는 일련의 사건들을 추적해가는 과연은 자연스럽게 가진 자들의 비뚤어진 갑질 행태를 드러냄으로써 사회적인 의미까지 더해준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이야기만큼 등장하는 다채로운 자동차들의 향연이 또한 마니아들의 마음을 열광케 하는 면이 있다. ‘밤톨이’라 불리는 레토나가 가진 상징적 의미에서부터 렉서스, 벤틀리, 쉐보레 카마로, 람보르기니, 롤스로이스, 포르쉐 등등 등장하는 다양한 차들이 드라마 특유의 스토리와 절묘하게 엮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저 PPL이 아닌 하나의 캐릭터로 등장하는 자동차들. <리턴>은 본 칼럼이 지향하는 콘텐츠 속의 자동차의 포지션을 가장 잘 드러내는 작품처럼 보인다. 드라마 <리턴>과 그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차들이 가진 의미들에 대해 자동차 전문기자 강희수와 대중문화 칼럼니스트인 정덕현이 수다를 나눴다.
(1부에서 계속됩니다)
강희수(이하 강) : <리턴>에서 렉서스는 과감한 이미지 변신을 시도한다. 렉서스가 미국 시장에 진출할 즈음, 렉서스의 정숙성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광고 하나가 지금도 자동차 업계에 회자된다. 1989년 토요타는 ‘렉서스’라는 프리미엄 브랜드를 미국 시장에 출시하면서 주행시험장치에서 고정된 채 시속 140km로 달리는 LS400을 화면 가득 채운다. 놀라운 것은 그 차의 보닛 위에는 와인 잔이 피라미드처럼 겹겹이 쌓여 있었다. 고속 주행 중에도 와인 잔이 떨어지지 않을 만큼 정숙하다는 것을 극단적으로 보여준 광고였다.
정덕현(이하 정) : 차에 대해 잘 모르는 필자의 경우에도 아직까지 렉서스하면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정숙성’이다. 실제 차를 타본 사람은 누구나 알 것이다. 차가 120킬로 이상을 달리는데도 별로 속도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의 정숙성을 갖고 있다는 걸 말이다.
강 : 그런데 <리턴>에 나오는 렉서스는 결코 얌전하지 않다. 오태석(신성록)과 김학범(봉태규)이 모는 렉서스 RX450h와 RC-F는 요란하다 못해 거칠기까지 하다. 봉태규의 RC-F는 폭발하는 배기음을 내뿜으며 거리를 질주하고, 신성록의 RX450h는 사람을 앞에 세워 놓고 밀어붙일 태세로 내달리다 급정거하는 장면까지 연출한다. 예전의 렉서스였다면 이 같은 설정에 기겁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 렉서스는 일부러 조용함을 버렸다. 엔진이 덜덜거리고 시끄러워졌다는 게 아니다. 조용하고 매끄러운 엔진은 다를 바 없지만 일부러 심장 떨리는 배기음을 넣고, 의도적으로 엔진 사운드를 만들어 거칠게 ‘내 달리는 즐거움’을 주고자 했다.
정 : 물론 <리턴>은 장르적 성격상 거친 면들이 많이 등장할 수밖에 없다. 범죄 설정이 계속 이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악벤져스라 불리는 악당들은 차들을 마치 장난감처럼 거칠게 몬다. 그러니 렉서스라고 해도 이들이 모는 장면은 어딘가 언발란스하다는 느낌마저 준다. 하지만 그게 오히려 의도된 이미지 변신을 위한 거라는 건가.
강 : <리턴>에서 가장 확실한 이미지 변신을 하고 있는 차가 LS500h다. LS는 렉서스의 세단 라인업인 LS GS ES 중 가장 상위에 있는 플래그십이다. 렉서스 세단 라인업의 이미지는 이 차에서 만들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렉서스가 공을 들여 만든 모델이다. 극중에서 LS500h는 강인호 역의 박기웅이 탄다. 박기웅은 이 차를 순풍에 돛단배처럼 미끄러지듯 몰고 다니기도 했지만 시청자들은 LS500h의 정반대 이미지를 기억한다. 박기웅이 염미정(한은정)과 한강변 차안에서 거친 몸싸움을 하는 신이다. 비가 강하게 내리는 가운데 박기웅은 LS500h를 과격하게 몰아 염미정을 치려는 듯한 장면까지 찍었다. 보닛 위에 와인잔을 올려놓았던 30년 전 그 LS가 맞나 싶을 정도의 파격적 변신이다.
정 : 사실 그 장면에서 등장한 박기웅의 차가 렉서스였는지 실감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 외양도 점잖은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어 보였고.
강 : LS500h는 얼굴부터가 예전의 얌전한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특유의 스핀들 그릴은 전면부를 거의 다 뒤덮을 정도로 강렬하고 눈빛에 해당하는 헤드라이트는 금방이라도 먹이의 살점을 쪼아댈 것 같은 매의 부리를 닮았다.
정 : 그렇다면 렉서스는 아예 디자인 이미지부터 애초 가졌던 정숙성의 이미지를 탈피하려 했다는 건데, 그 이유는 뭔가.
강 : 렉서스는 5세대 LS에서 고급차의 개념을 재정립하기 위해 모든 것을 제로(0)에서부터 재검토 했다고 한다. 초기 LS의 DNA를 계승은 했지만 조용함을 버리는 대신 ‘기분 좋은 드라이빙의 맛’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설명이다.
------------------- 강희수의 이 차는 : 렉서스 LS500h는 엔진의 성능도 스펙이 화려하다. 최대출력 299마력(6600rpm)의 V6 3.5리터 자연흡기 가솔린 엔진을 기반으로 2개의 전기 모터를 달아 시스템 총출력이 359마력이나 된다. 최대토크도 35.7kg.m(5100rpm)에 이르러 치고 나가는 힘이 대단하다. 플래그십답게 가격도 AWD 플래티넘이 1억 7,300만 원, AWD 럭셔리가 1억 5,700만 원, 2WD 럭셔리가 1억 5,100만 원이나 된다. 변속기로는 10단 자동 변속기에 준하는 유단 기어가 조합 됐다. 2,400와트의 출력을 내는 23개 스피커가 곳곳에 숨어 있고, 마크레빈슨 레퍼런스 3D 서라운드 사운드 시스템까지 탑재해 LS500h의 실내는 생생하고 풍부한 음색이 살아 있는 움직이는 공연장이다. -------------------
정 : 그러고 보내 여주인공인 최자혜(고현정, 박진희)가 타는 렉서스 역시 그저 얌전한 숙녀의 이미지는 아니었다. 아주 과격한 추격 신에도 등장했을 정도니 말이다.
강 : 최자혜가 타는 LC500h도 파워풀하기는 마찬가지다. 렉서스 브랜드의 슈퍼카로 개발 된 이 차는 1억 8000만 원짜리 럭셔리 쿠페다. ‘렉서스의 미래’라 부르며 렉서스가 각별히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LC500h는 모터쇼에서 소개 된 콘셉트카를 원형 그대로 양산차로 만들어 낸 사연으로 유명하다. 대개의 콘셉트카는 디자인 완성도에 더 치중해 있기 때문에 그 모양 그대로 양산차로 만들어내는 작업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LS500h와 마찬가지로 V6 3.5리터에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얹어 시스템 총출력은 359마력에 이른다. 최자혜는 LC500h를 타고 박진감 넘치는 추격 신을 만들어 냈다. 혼수상태로 요양원에 있던 서준희를 서울로 옮기는 과정에서 앰뷸런스를 탈취 당하자 위험을 무릅쓰고 스릴 넘치는 추격 신을 펼친다. 널찍한 고속도로라면 LC500h이 앰뷸런스를 따라붙는 정도야 식은 죽 먹기였겠지만 도로 폭이 좁은 지방의 국도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추격 끝에 앰뷸런스 앞을 가로막는데 성공한 최자혜와 LC500h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몰아쉬었다.
정 : 어떤 면으로 보면 렉서스의 그런 힘이 넘치는 차의 야성적인 면들은 최근 자동차들이 갖는 인공적인 느낌들 속에서 오히려 향수가 되어가는 자동차 본연의 아날로그적인 맛을 끄집어내는 것처럼 보인다.
강 : 그렇다. 이쯤 되면 렉서스가 <리턴>에서 위험천만한 추격 신도, 신사 이미지를 벗어 던지는 과격한 몸짓도 마다 않은 이유가 뚜렷해진다. 렉서스는 드라마 <리턴>을 통해 또 하나의 ‘리턴 투 네이처(Return To Nature)’를 외치고 있다. 태초의 자연은 고요하기만 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폭풍도 있었고 천둥 번개도 있었으며, 한바탕 광풍이 휘몰아 친 뒤에야 따사로운 햇살과 싱그러운 미풍을 만날 수 있었다.
epilogue. 문명은 진화해도 굳이 본질로 회귀하려는 이유
이제 자동차가 스스로 운전하는 시대가 머지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과거에는 일일이 운전자가 작동했던 동작들을 자동차 스스로 알아서 하는 ‘스마트한’ 운전의 시대는 이미 열렸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더 안전해지고 더 편리해졌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아쉬움을 토로하는 운전자들도 적지 않다. 모든 걸 자동차가 알아서 하다 보니 ‘운전하는 맛’을 모두 빼앗기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차라리 극단의 테크놀로지의 진화 속에서 오히려 본질로 회귀하려는 움직임 또한 생겨나는 것일 게다. 그리고 이건 자동차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문명사회에서 살아가는 삶 어디에나 적용되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