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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엽 신부의 성경 속 인물] (32) 아합 왕과 이제벨의 악행
중국 역사에서 고황후(高皇后), 측천무후(則天武后), 서태후(西太后)는 3대 악녀(惡女)로 불린다. 이들은 황제를 허수아비로 만들 정도의 권력을 휘두르고 무고한 신하들을 포함해 많은 수의 대신들을 숙청하는 공포정치를 펼쳤으며 나라를 크게 흔들었다.
조선시대에 악명을 떨쳐서 유명했던 악녀 중에는 오늘날까지 드라마와 연극 등에서 심심찮게 등장하는 장녹수와 정난정, 장희빈 등이 유명하다. 이 사람들의 공통점은 조선 왕이나 왕실을 등에 업고 권세를 휘두르다 결국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다는 것이다. 수렴청정이나 국정농단의 결과는 뻔하다는 결과를 보여 준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악명 높은 여자는 누구일까? 아합 왕의 부인 이제벨이 아닐까? 이제벨은 시돈의 왕 엣바엘의 딸이었는데, 아합과 정략결혼을 하였다. 결론적으로 이 결혼은 이스라엘에 엄청난 비극을 몰고 왔다. 아합도 어느새 바알을 숭배하고 이스라엘에는 이방 종교가 침투하게 된다. 이제벨의 유혹에 넘어간 아합은 사마리아에 바알 신전과 단을 건축했고 아세라 여신상도 세웠다. 이제벨은 이스라엘의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말살하기 위해 왕과 백성들을 꾀어 바알 숭배자들로 만들었다. 끝내 개종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무참하게 죽였다.
이제벨의 아버지, 엣바엘은 본래 아세라 신당에서 봉사하던 제사장이었다. 그가 정권욕에 눈이 어두워 역모를 통해 왕좌를 찬탈했다. 그는 하느님을 믿는 이스라엘의 종교까지 정복하기 위해 딸을 이용했다. 이제벨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지도 않고 자칭 선지자로서 자기의 말을 하느님의 말씀인 양 전하는 전형적인 사기꾼이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우상의 제물을 먹게 했다. 우상에게 바친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우상과 함께한다는 뜻이 있다.
복잡한 종교 환경과 자연재해로 인한 기근이 심해지는 상황에서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된 엘리야가 바알 선지자 450명과 겨루어 이기고 하느님이 진정한 하느님이심을 증명한다. 이제벨은 예언자들을 박해하고 죽였으며, 엘리야마저 살해하려 했다. 이제벨은 사람을 내세워 포도원의 주인인 나봇이 하느님과 왕을 저주했다고 거짓으로 증언하게 했다. 결국 이제벨의 음모대로 나봇은 살해당했고 그의 포도원은 빼앗겼다.
이제벨은 이런 악행으로 결국 하느님의 징벌을 받게 된다. 다행히 혁명이 일어나게 되고, 급기야 이제벨은 아랫사람들에 의해 2층에서 땅으로 내던져지고, 그 시신은 개들에게 먹히는 비극적인 종말을 맞이했다. 예후는 쿠데타를 일으켜 요람 왕을 죽이고, 아합의 집안을 멸망시켰했다. 쿠데타는 가장 측근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일반적인 공식이 증명된 셈이다. 예후는 바알 신앙 척결을 철저하게 이행하여 하느님으로부터 4대까지 왕조가 존치되는 것을 약속받기까지 한다. 이제벨은 이스라엘에서 부정한 단어로 쓰였으며 악인의 대명사가 되었다.
[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83)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
신약 중 가장 먼저 쓰인 경전, 깨어 있는 삶 강조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이하 테살로니카 1서)은 바오로 사도가 쓴 첫 번째 서간이며 신약 성경 가운데 가장 먼저 쓰인 경전입니다. 헬라어 신약 성경은 ‘Προs Θεσσαλονικειs Α’(프로스 테살로니케이스 알파)’, 라틴어 대중 성경 「불가타」는 ‘Ad Thessalonicenses Ⅰ’,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펴낸 우리말 「성경」은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으로 표기합니다.
테살로니카는 필리피에서 서쪽으로 약 160㎞ 떨어진 그리스 최대 항구도시로 예로부터 무역과 행정 중심지입니다. 마케도니아 카산드로스 임금이 기원전 315년 이 도시를 건설해 부인의 이름을 따서 ‘테살로니케’(라틴어 테살로니카)라 했습니다. 테살로니카는 기원전 168년 로마제국에 합병된 후 기원전 146년 마케도니아 속주 수도가 됩니다. 이후 기원전 42년 로마제국의 자유도시가 돼 지방행정관(총독)이 통치하게 됩니다.(사도 17,6-8 참조)
바오로 사도는 50~52년 제2차 선교 여행(사도 15,36-18,22) 때 실바누스(실라스)·티모테오와 함께 테살로니카에서 복음을 선포하고 유럽에서 필리피(사도 16,11-40)에 이어 두 번째로 그리스도교 신앙공동체를 세웁니다. 당시 테살로니카는 번창한 상업도시로 잡신을 섬기는 이방 민족들뿐 아니라 유다인들도 집단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먼저 시나고그를 찾아가 유다인들을 대상으로, 그다음으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베풀었습니다.(1,7-10; 2,14; 사도 17,1-14) 그의 선교 활동은 대성공을 거둡니다. 이를 시기한 유다인들은 불량배들을 동원해 소동을 일으키고, 시 당국자들에게 로마 황제 말고 예수라는 또 다른 임금을 섬긴다면서 황제의 법령을 어기고 있다며 바오로 사도 일행을 고발했습니다. 이에 바오로 사도는 테살로니카에서 안식일을 세 번밖에 지내지 못한 채 베로이아로 떠납니다.
하지만 바오로 사도는 이 짧은 3주간 동안 테살로니카에서 천막 짜는 일을 했고(2,9; 사도 18,3), 필리피 신자들로부터 두 차례 물질적인 도움을 받았으며(필리 4,15-16), 그가 세례를 베푼 신자들과 깊은 정을 나눴습니다.(1,8; 2,7-8. 17-20; 3,6) 바오로 사도의 헌신으로 테살로니카 교회는 마케도니아(필리피·테살로니카·베로이아 등)뿐 아니라 그리스 아카이아 지역(코린토·아테네) 신자들에게 모범이 될 만큼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테살로니카 1서는 바오로 사도가 제2차 선교 여행 도중 1년 6개월간 코린토에 머물 때 썼다고 합니다.(사도 18,11) 성경학자들은 이 시기를 50년 말에서 51년 여름 사이로 추정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추방되다시피 테살로니카를 급히 떠났기 때문에 갓 세례를 받은 그곳 신자들에 대한 걱정이 매우 컸습니다.(2,15-16) 하루빨리 테살로니카로 가서 그들의 부족한 믿음과 교리 지식을 채워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2,17-19; 3,10)
여건상 직접 갈 수 없었던 바오로 사도는 티모테오를 테살로니카에 보냅니다.(3,1-2) 테살로니카 신자들의 사정을 살피고 돌아온 티모테오는 그들이 어려움 속에서도 굳건한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3,2-10) 아울러 그는 테살로니카 신자들이 주님께서 언제 재림하시는지 그리고 주님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죽은 이들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한다고 보고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테살로니카 신자들을 격려하고 그들의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해 테살로니카 1서를 써보냅니다.
테살로니카 1서는 5장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주님 재림을 기다리며 하느님의 뜻에 맞는 거룩한 삶을 꾸준히 살아야 한다는 게 주된 내용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자신이 테살로니카에서 선포한 것은 ‘하느님의 복음’(2,2), ‘하느님의 말씀’(2,13), ‘주님의 말씀’(1,8), ‘그리스도의 복음’(3,2)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리고 테살로니카 신자들이 복음을 받아들인 것은 바오로 자신의 언변 때문이 아니라 성령께서 여러분에게 임하시어 복음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하셨고, 이 복음을 받아들임으로써 우상들을 버리고 살아계신 참하느님을 섬기게 됐다고 칭송합니다.
그리고 바오로 사도는 아버지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구원은 성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얻어지며(5,9), 성령께서 주님의 영광스러운 재림이 이뤄질 때까지 하느님의 뜻에 맞는 합당한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이끌어 주실 것이니 그 성령의 불을 끄지 말아야 한다고 권고합니다.(4,8-5,19)
바오로 사도는 또 종말과 함께 마지막 심판에서 우리를 구해주실 분은 오로지 영광스럽게 재림하실 주 그리스도뿐이시라고 합니다.(1,10) 그리고 주님이 재림하실 때 먼저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이들이 다시 살아나고, 그다음으로, 그때까지 남아있게 될 우리 산 이들이 그들과 함께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 늘 주님과 함께 있을 것이라고 가르칩니다.(4,16-17)
바오로 사도는 희망과 믿음으로 그날을 고대하고, 그날이 올 때까지 어떠한 환난과 고통도 참고 견디며 항상 주님을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삶, 깨어있는 삶을 살아갈 것을 당부합니다.(1,10; 3,13; 5,4-10) 그리고 주님을 맞을 준비를 하는 삶은 복음대로 사는 삶이라며, 서로 모범이 되고 본받을 것을 권고합니다.(1,6; 2,14)
[허영엽 신부의 성경 속 인물] (31) 북이스라엘의 초대 왕, 예로보암
1974년 3월, 중국 시안(西安) 교외에서 주민들이 우물을 파다가 우연히 진흙으로 만들어진 토용과 청동 화살촉을 발견했다. 진시황의 무덤을 발견한 것이었다. 무덤 안에는 온통 구리를 녹여서 왕궁을 재현하고 수은을 환류시켜 은하수를 만들었으며, 천장에 이십팔수의 성좌를 그렸다. 죽어서 살 집의 규모가 이 정도라면 그가 생존했을 때 왕궁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그 이후 아방궁(阿房宮)은 초호화 건물의 대명사처럼 사용된다.
초대형 건물을 짓고자 하는 것은 독재자들의 꿈인 것 같다. 제2차 대전을 일으킨 아돌프 히틀러도 베를린 시내를 완전히 재건축하려 했다. 유럽을 지배하는 새로운 대(大) 게르만 제국의 수도로서의 위용을 갖추겠다며 세계의 수도 게르마니아(Welthauptstadt Germania) 건축계획을 세운 것이다. 세계 역사에서 초대형 공사가 이루어지면 가장 피해를 보는 것은 노력 봉사에 동원되는 힘없는 서민들이다.
솔로몬도 거대공사를 진행했는데 예로보암은 그 책임자였다. 솔로몬은 통치 기간 특별히 이방인 여성들을 후궁으로 받아들였는데 외국인 아내들을 위하여 그들이 섬기는 이방 신들에게 향을 피우고 제물을 바치도록 했다. 어떻게 보면 국방력과 경제력이 안정되어 너무 편안하고 부유한 생활이 그를 교만하게 만든 것이 아닐까.
어느 날 예로보암이 우연히 길에서 아히야 예언자를 만나는데, 아히야 자기 옷을 열두 조각으로 찢어 그중 열 조각을 예로보암에게 주면서 10개의 지파를 지배하는 왕이 된다고 예언했다. 소문이 퍼져 솔로몬의 귀에도 이 사실을 들어가 예로보암을 죽이려 하자, 예로보암은 이집트로 망명했다. 예로보암은 기원전 931년경에 솔로몬이 죽은 후 이스라엘로 돌아와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솔로몬을 이어 왕좌에 오른 르하브암에게 힘겨운 백성들의 과도한 노동력 동원과 무거운 과세를 가볍게 해달라고 청했다.
며칠 말미를 주고 르하브암은 솔로몬의 원로들을 불러 다양한 의견을 청취했다. 그런데 결론은 “내 아버지께서는 그대들을 가죽 채찍으로 징벌하셨지만, 나는 갈고리 채찍으로 할 것이오”라며 강대강으로 맞섰다. 이 무슨 황당한 소리인가. 결국 이스라엘은 남유다와 북이스라엘 두 개로 쪼개지는 분단의 상황이 시작된다. 자연스럽게 북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예로보암이 등극했다.
기세등등했던 예로보암은 에프라임 산악 지방에 스켐을 세우고 살다가, 그곳에서 나와 프누엘을 세웠다. 남유다의 침공이 두려워 군사 요충지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북이스라엘 백성들은 솔로몬의 노역과 무거운 과세로 고통을 받아 예로보암을 왕으로 세웠는데, 예로보암도 솔로몬이 했던 일을 똑같이 반복하는 것이었다. 또한 두 마리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겨 하느님께도 죄를 지었다. 권력을 잡은 예로보암은 귀에 거슬리는 말은 듣지 않고 간신들의 기분 좋은 소리에만 귀를 기울였다. 사람은 욕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배운다고 했던가. 북이스라엘 왕 19명 중, 예로보암의 성적표는 꼴찌였다.
[성경 속 기도 이야기] (4) 하느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모세의 기도(탈출기 32-34장)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를 탈출한 후 모세가 십계명을 받으러 산에 올라간 사이에 불안함을 느끼고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겼습니다.(탈출 32,1-6) 하느님은 이에 진노하십니다. “내가 이 백성을 보니, 참으로 목이 뻣뻣한 백성이다. 이제 너는 나를 말리지 마라. 그들에게 내 진노를 터뜨려 그들을 삼켜 버리게 하겠다. 그리고 너를 큰 민족으로 만들어 주겠다.”(32,10)
여기서 늘 자비를 베푸시는 분이라고 우리가 믿는 것과 완전히 다른, 화가 가득하고 복수하시려는 하느님 모습이 우리를 당황하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당신의 분을 참지 못하시기 때문이 아니라 바로 우리를 위해서 화를 내십니다. 레위인들이 이 일로 자기 형제와 친구와 이웃을 3000명이나 죽였다는 이야기(32,25-29)는 우리가 하느님을 충실히 섬기지 않고 우리 입맛에 따라 하느님 상을 조작할 때, 그것이 우리에게 식구를 잃는 것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모세의 중재 기도입니다. 모세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용서하시고 그들과 함께 가시도록 하느님을 여러 번 설득합니다.(32,11-14,31-34; 33,12-17; 34,8-9) 모세가 “그들의 죄를 부디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시지 않으려거든, 당신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제발 저를 지워 주십시오”라고(32,33) 말씀드리지만, 주님은 “나는 나에게 죄지은 자만 내 책에서 지운다.(32,34)는 말로 분명히 거부하십니다.
다시 모세가 하느님을 달래기 시도합니다. “보십시오, 당신께서는 저에게 ‘이 백성을 데리고 올라가거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당신께서는 저와 함께 누구를 보내실지 알려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당신께서는 ‘나는 너를 이름까지도 잘 알뿐더러, 너는 내 눈에 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이제 제가 당신 눈에 든다면, 저에게 당신의 길을 가르쳐 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당신을 알고, 더욱 당신 눈에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민족이 당신 백성이라는 것도 생각해 주십시오.”(33,12-13)
모세는 주님께 애교를 부립니다. 자신이 더욱 주님 눈에 들게 해 달라는 청은 모세가 하느님의 마음을 돌리려는 밑밥입니다. 그의 본래 관심사는 그가 말미에 살짝 언급하는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이번에도 “내가 몸소 함께 가면서 너에게 안식을 베풀겠다”(33,14)고, 즉 모세만을 언급하십니다. 다급해진 모세가 자신의 의중을 단도직입으로 말합니다. “당신께서 몸소 함께 가시지 않으려거든, 저희도 이곳을 떠나 올라가지 않게 해 주십시오. 이제 저와 당신 백성이 당신 눈에 들었는지 무엇으로 알 수 있겠습니까? 저희와 함께 가시는 것이 아닙니까?”(33,15-16) 모세는 자신과 이스라엘 백성을 늘 함께 이야기하지만 하느님은 계속 모세만을 언급하십니다.(33,17)
모세가 주님을 뵌 뒤(33,18-23) 재삼 간청합니다. “주님, 제가 정녕 당신 눈에 든다면, 주님께서 저희와 함께 가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 백성이 목이 뻣뻣하기는 하지만, 저희 죄악과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 저희를 당신 소유로 삼아 주시기를 바랍니다.”(34,8-9) 그제야 주님은 ‘너의 온 백성’, ‘너를 둘러싼 온 백성’, ‘너희’라는 말로 이스라엘을 다시 받아들이시고 모세와 이스라엘과 계약을 맺으십니다.(34,10-28)
우리는 아픈 이들이나 어려움에 부닥친 이들을 위해 하느님께 기도를 드리곤 합니다. 모세는 입술과 마음으로만이 아니라 자신의 목숨까지 걸고 기도합니다. 그는 다른 이들을 위해서 무릎을 꿇고(34,8) 겸허한 자세로 하느님께 애원합니다.(32,11) ‘나는 잘못한 것이 없는데’ 하면서 타인을 단죄하는 모습에서가 아니라 타인의 잘못까지 품어 안는 우리의 자세에 하느님께서는 마음을 돌리실 것입니다.
[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헤브론을 차지한 여푼네의 아들 칼렙
「플랜더스의 개」는 어린 시절 인상 깊게 읽은 동화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이라이트는 추운 겨울날 주인공 소년이 그토록 꿈꾸었던 루벤스의 작품 <십자가에서 내림>을 본 뒤 굶주림과 추위에 떨다 자신과 동행한 개를 끌어안은 채 죽는 장면이었습니다. 가난과 냉혹한 사회 탓에 희망을 빼앗긴 소년의 비극적 삶을 그린 명작입니다. 소년의 거의 유일한 친구였던 플랜더스의 개는 전 주인에게 학대받고 버려졌으나 소년에게 구해져 죽음에 이르기까지 충성을 다하게 됩니다. 이런 충성스러움은 45년 동안 하느님의 약속을 믿고 노인의 나이에 이르러 그것을 실현시킨 칼렙을 떠올리게 합니다(여호 14,6-15).
칼렙은 히브리어로 ‘개’를 뜻합니다. 사람 이름에 ‘개’를 붙이는 일이 흔치 않고 성경에서 개의 이미지도 그리 긍정적이진 않지만(시편 22,17; 마태 7,6 등), 다른 한편으로 개는 충성스러움의 상징입니다. 고대근동에선 ‘마르둑 신의 개’를 의미하는 [칼비-마르둑]이란 이름도 존재하였습니다.
칼렙은 이집트 탈출 뒤 모세의 명령에 따라 가나안을 정탐한 정찰대의 일원이었습니다. 열두 지파의 대표로 구성된 정찰대는 가나안 땅이 좋다는 건 확인했으나, 그곳 주민들이 강력한 나필족이라 전하며 백성들의 의지를 꺾어 놓았습니다(민수 13,25-33). 칼렙과 여호수아만 가나안 정복을 주장합니다. 그럼에도 결국 이스라엘 백성은 정찰대의 중론에 휘둘려 가나안 진입을 포기하고, 이로써 탈출 1세대는 광야에서 죽는 운명을 맞게 됩니다(14,34-35).
그에 비해, 칼렙과 여호수아는 가나안 진입을 허락받는데요, 여호수아는 가나안 정복을 이끄는 지도자가 되고(신명 1,38) 칼렙은 상속 재산을 차지하리라는 약속을 받은 것입니다(민수 14,24; 신명 1,36). 그리고 여호수아기에서는 가나안 정복 후 땅의 분배에 대해 서술하는 대목(14-15장)에서 칼렙이 맨 앞에 나옵니다. 그가 약속대로 헤브론을 차지했음을 밝히고(14,13) 그를 백성의 모범으로 세우려 한 것입니다. 칼렙은 주님께 대한 믿음과 진취성이 약속의 땅을 차지하는 일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보여준 인물입니다. 아무리 하느님의 약속이라도, 믿고 실행하려는 인간의 노력이 없다면 과연 그것이 실현될 수 있을까요? 하느님의 뜻과 백성의 의지가 하나로 만날 때 주님의 약속이 결실을 맺을 수 있습니다. 칼렙은 장장 45년(14,10)을 기다려 약속의 실현을 이끌어 냈습니다. 에프라임과 므나쎄 지파의 경우에는, 평야 지방의 가나안인들에게 철 병거가 있다며 그곳을 차지하기 꺼려했지만(17,14-18), 당시 여든다섯 살이던 칼렙은 주님께서 함께하시면 아낙인의 땅도 차지할 수 있다며 자신감을 드러냈습니다(14,11-12).
주님의 약속을 끝까지 신뢰한 칼렙은 자기 이름의 의미처럼 무덤까지 주인을 따르는 개의 충직함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는 이러한 한결같음으로 헤브론을 차지하고 백성의 모범이 될 수 있었습니다.
[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82) 콜로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새 삶, 생활과 교회에서 살아야
콜로새는 소아시아 프리기아주 남서부에 위치한 소도시입니다. 에페소에서 동쪽으로 약 170㎞ 떨어져 있으며 라오디케이아와 히에라폴리스가 인근에 있었습니다. 라오디케이아는 에페소와 함께 요한 묵시록에 나오는 아시아의 일곱 교회 가운데 한 곳으로 초대 교회 당시 이 지역 그리스도교 신앙 공동체의 중심이었습니다.(묵시 1,11; 3,14) 콜로새는 양 사육과 양모 섬유업으로 번성했으나 61년 지진 피해를 크게 본 후 점차 쇠락해졌습니다.
콜로새는 바오로 사도가 직접 선교하지 않았습니다. 바오로 사도가 2차 선교여행을 마치고 에페소에서 27개월간 머물며 주변 지역을 선교하던 시기에 그의 동료(제자)인 에파프라스가 고향 콜로새를 비롯해 라오디케이아와 히에라폴리스에서 복음을 선포하고 신앙공동체를 세웠습니다.(1,7; 4,13) 바오로 사도는 콜로새에 가본 적이 없지만, 동료가 세운 교회이기에 직접 얼굴을 보지 못한 콜로새 신자들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1,24─2,5)
그 예로 감옥에 갇혀 있던 바오로 사도는 에파프라스로부터 콜로새 교회가 신앙 문제로 시련을 겪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들을 돕고자 자신을 대변할 수 있는 티키코스와 콜로새 사람 필레몬의 종인 오네시모스를 보냅니다. 그러면서 편지를 써서 그들 편으로 콜로새 신자들에게 전합니다.(4,3-18) 이 서간을 헬라어 신약 성경은 ‘Προs Κολοσσαειs’(프로스 콜로새이스), 라틴어 대중성경 「불가타」는 ‘Ad Colossenses’,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펴낸 우리말 「성경」은 ‘콜로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이하 콜로새서)이라고 표기합니다.
성경학자들은 콜로새서를 에페소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이하 에페소서), 필리피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필레몬에게 보낸 서간과 함께 ‘옥중 서간’으로 분류합니다. 바오로 사도가 감옥에 있을 때 쓴 서간이라는 것입니다. 콜로새서는 바오로 사도가 직접 썼다, 아니다 하는 ‘친저성 논란’이 있는 서간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친서로 주장하는 학자들은 콜로새서가 바오로 사도가 에페소 감옥에 갇혀 있을 때(54~57년) 쓰였을 것이라고 합니다.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과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이 쓰였을 때와 비슷한 시기입니다.(1코린 15,32; 2코린 1,8-10) 친서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61년 대지진 후 필레몬에게 보낸 서간을 쓴 직후 콜로새 교회에 대한 책임감을 가진 바오로의 동료(제자)가 콜로새서를 썼다고 봅니다. 또 어떤 학자들은 바오로 사도가 순교한 후 1세기 말엽에 쓰였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이들은 콜로새서가 바오로 사도가 친서에서 강조했던 ‘종말’에 관해 관심이 현저히 줄어 있을 뿐 아니라 영지주의에 맞서 사도의 권위를 내세우는 것을 근거로 제시합니다.(2베드 3,15-16 참조)
콜로새서는 신자들 사이에서 유다교 율법 중심주의를 강요하고, 헛된 철학을 논하는 이들을 경계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충만한 새 삶을 살아갈 것을 권고하기 위해 쓰였습니다. 콜로새서는 에페소서와 주제 및 구성이 참으로 닮은 서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보편적 화해’라는 두 서간의 중심 주제가 더욱 그렇습니다.(2,12-13; 3,1; 에페 2,5-6) 또 ‘그리스도의 신비’(1,26-27; 2,2; 4,3; 에페 5,32),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1,18-24; 2,19; 에페 5,23-30),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부활’(2,12-13; 에페 2,5-6), ‘옛것을 벗고 새것을 입음’(3,5-14; 에페 4,17-24) 등에 대한 가르침이 두 서간에 함께 나타납니다.
아울러 두 서간은 표현과 구조도 비슷합니다. 서간의 수신자를 “성도들 곧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형제 신자들”(1,2; 에페 1,1)이라고 표현하고, 그리스도인 가정에 대한 권고를 아내와 남편, 자녀와 부모, 종과 주인 관계 순으로 다룹니다. 하지만 주 관심사가 에페소서는 ‘교회’라면, 콜로새서는 ‘그리스도’로 차이를 보입니다.
콜로새서는 4장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인사 및 복음 전파에 대한 감사의 말(1,3-8), 신자들을 위한 기도(1,9-14), 그리스도를 우주의 머리로 기리는 찬가(1,15-20), 복음에 따라 살아가는 하느님과 화해한 공동체(1,21-23), 콜로새 신자들을 위해 노력하는 바오로 사도의 사도직(1,24-2,5),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이루는 충만한 새 삶(2,6-3,17), 그리스도인 가정과 그리스도인 삶에 대한 여러 권고(3,18-4,6), 끝인사(4,7-18) 순으로 전개됩니다.
콜로새 교회는 바오로 사도가 선교한 소아시아의 여러 교회처럼 유다계 그리스도인들과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신앙공동체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콜로새 신자들에게 이민족 사이에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말씀과 고난을 완성으로 이끌어 가야 한다고 강조합니다.(1,24-2,5) 그리고 이단 설교가들이 전파하는 교리와 그 실천에 따르는 위험을 경고합니다.(2,6-3,4) 앞서 설명했듯 바로 콜로새서를 쓴 이유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언제나 내 존재의 중심을 “그리스도 안에” 두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라 합니다.(2,16-3,4)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인들은 옛 인간을 벗어 버리고 새 인간을 옷처럼 입은 사람이 됐습니다. 새 인간의 새 삶은 그리스도교 공동체 안에서 실생활과 전례를 통해 실현됩니다.(3,5-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