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버라이어티한 17
INTRO
‘와, 여행이 한달 밖에 남지 않았네!!!’ 내가 인도네시아에서 문집을 쓰며 든 생각이었다. 우리가 여행을 시작한 게 그리 오래 전 일 같지가 않은데 벌써 이번 여행도 끝나가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놀라웠다. 올해, 그러니까 나의 17살의 해는 정말 특별한 한 해였다. 왜냐하면 남들에게 이야기해줄 수 있는 특별한 이야기들을 많이 만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나의 특별한 얘기들은 왜 남들에게 얘기해줄려고 하냐면 내가 여행하면서 만들었던 스토리들을 잊고 싶지 않고 누군가에게 나를 설명해야 하는 때가 왔을 때 이 얘기들을 해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난 내 또래 애들과는 다르게 세계 여행을 2년이나 했기 때문에 이 글로 베이스를 깔아 어딘가에서 면접을 볼 때 나의 특별한 얘기들을 흥미진진하게 정리해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자, 그럼 이제 내 이야기들을 풀어보겠다.
1. 3년만의 재회
‘정우 많이 멋있어졌네!’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의 첫 공연이 끝나고 나서 이모가 나에게 한 칭찬이었다. 나도 3년 만에 이모를 보니 정말 반갑고 기뻤다. 우리 이모와 이모부는 직장 때문에 5년 전에 헝가리로 이민을 가셨었는데. 그래서 3년 전에 한국으로 잠시 오셨을 때 이후로 처음 보는 것이었다. 만나고 나서는 이모께서 공연을 잘했다며 버거킹도 사주셨다. 그리고 그날 저녁에는 떠나기 전에 사촌들 얼굴도 봐서 좋았다. 다만 좀 아쉬웠던 것은 연락을 늦게 해서 마지막 날에 만났다는 것이었다. 좀만 일찍 했다면 이모네 집도 갈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런데 만약 내가 이모네 집에 갔다면 이모에게 발전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을까? 내가 생각해도 아직 난 다른 애들보다 부족한 모습이 많다. 일단 워커 분야에서 많이 뒤쳐진다. 그래서 내년 9기에 가면 대장님에게 워커를 더 열심히 배워서 이모가 돌아왔을 때 감탄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보여드릴 것이다.
2. 한손엔 두려움, 한손엔 스키 폴대
‘ 쓰러지면 아플 텐데... 그리고 경사가 너무 높잖아!’ 내가 타트라 산의 초급자 슬로프에 처음 올라왔을 때 든 생각이었다. 난 겁이 많아서 그런지 다른 애들과는 다르게 스키를 탈 때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슬로프의 경사를 보자 너무 무서웠고 겁 때문에 S자를 하다가 도중에 계속 쓰러졌었다. 그래서 처음 3일은 엄청나게 넘어지고 정말 포기를 하고 싶었다. 내가 그렇게 하도 쓰러지다 보니 보다 못한 준우가 계속 그렇게 쓰러지면 스키 폴대를 뺏어버린다고 겁을 주었다. 그래서 정말 마음을 굳게 잡고 그대로 속도를 내며 내려갔는데 속도가 너무 빨라져서 쓰러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내 몸은 S자를 그리기 시작했고 처음으로 넘어지지 않고 슬로프를 완주했다. 그리고 그 뒤로 적응이 되기 시작했다. 여기서 난 한 가지 중요한 교훈을 깨달았다. 때론 두려움을 이겨내려면 더 큰 두려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아직 자세가 불안정하다. 다른 애들은 몸을 모두 부드럽게 움직이며 S자를 그리는데 난 뻣뻣하게 움직인다. 그리고 아직도 A자를 안 푸는 경향이 있어 11자로 가는 연습을 더 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내년 9기에 갔을 때는 꼭 자세를 다시 연습해서 동군이처럼 멋있게 카빙을 하며 내려올 것이다.
3. 추울 땐 뜨거운 게 최고!
‘호호, 호로로록! 추운 베란다에서 따뜻한 죽을 먹는 이 오묘하고 황홀한 기분을 아는가!’ 슬로바키아는 매우 추웠기 때문에 가끔 답답할 때마다 난 베란다에 나가 몸을 냉각시키곤 했다. 그리고 인근 대형 마켓들이 많아서 먹을 거는 매우 풍부했었는데 그 많던 음식들 중 닭백숙과 닭죽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집 안에서 열심히 닭다리와 닭살들을 뜯다 보면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는데 거의 다 먹어갈 때쯤 닭죽이 완성이 된다. 이때 닭죽을 코펠에 받고 베란다로 나가면 몸에 난 땀들이 마르며 마치 혈이 뚤리는 듯한 느낌이 난다. 뜨겁게 김이 나는 닭죽을 창틀에 올려놓고 호호 불어먹으면 정말 별미가 아닐 수가 없다. 정말 슬로바키아에서 먹었던 닭죽은 평생 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그런데 문득 내가 혼자 닭죽을 해먹을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을 해보면 대장님이 닭을 손질하시고 모든 야채들을 손질하실 때 난 열심히 지켜보지 않았다. 만약 나에게 닭죽을 해보라고 하면 난 잘 해내지 못할 것 같다. 그러니 내년 9기 때는 꼭 대장님 옆에서 손질하는 과정과 만드시는 과정을 지켜봐야겠다. 그리고 나중에 내가 해먹어야지.
4. 애도를 표하며
아우슈비츠... 그곳은 정말 충격과 공포였다. 말로만 듣던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폴란드에서 가게 되었는데 정문에서부터 한기와 오싹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사형장에 갈 때 이런 느낌일까? 일단 기차를 통해 유대인들이 이동하던 장소로 갔는데 정말 소름이 돌았다. 건물들이 다 황폐했고 철조망이 아직 남아있었는데 밤이 되면 원귀들이 돌아다닐 것만 같았다. 더 소름이 돌았던 것은 기차에서 유대인들이 내리자마자 바로 일할 수 있는 자와 없는 자(어린이, 여자, 노약자 등등)로 분류해서 일할 수 없는 자들은 바로 가스실로 보내졌다고 한다. 유대인들이 머물던 숙소도 가봤는데 차마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기껏해야 2~3평정도 밖에 안 되어 보이는 3층으로 되어있는 나무침대 같은 곳에 한층 당 5~6명 씩 쑤셔 넣었다고 하는데 마치 닭장 안의 닭들 이 눈앞에 연상되었다. 화장실은 뭐 말할 것도 없었다. 그렇게 기차 스테이션 쪽을 구경하다가 메인 동 쪽으로 갔다. 그곳에는 더 기막히는 것들이 즐비했다. 유대인들을 학살한 지하 벙커도 있었고 수용소로 쓰이던 곳들을 박물관으로 만들어놨는데 진짜 보면서 인간이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으로만 보던 유대인들의 머리카락이 쌓여있는 곳을 봤는데 정말 저절로 마음이 숙연해졌다. 그 외에도 회생당한 유대인들의 유물들을 보면서 치가 떨렸다. 일본이 우리나라에게 했던 짓이랑 다를 게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독일은 정말 대단한 것 같다. 과거의 잘못들을 반성하고 총리가 매년 이곳에 찾아온다고 하니 말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정말 기억 속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 이런 아픈 역사를 되돌이키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미래는 무슨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세계 3차 대전이 일어날 수도 있고 다시 식민지 지배가 시작될 수도 있다. 하지만 모두가 이런 역사를 잊지 않고 계속 기억을 한다면 이런 역사는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도 한국에 가면 서대문 형무소를 한번 더 가볼 생각이다.
5. 오늘은 내가 셰프!
‘요리는 재밌어!’ 우린 우크라이나의 리비브에서 요리 경연 대회를 했었다. 저녁과 후식을 만드는 것이었는데 난 이미 메뉴 구상을 끝내놓아서 내가 우리 팀을 진두지휘하게 되었다. 나의 메뉴는 돼지고기 덮밥과 호떡이었는데 작년에 석진 형님과 같이 덮밥 메뉴를 많이 만들어 봤었기 때문에 자신이 있었고 호떡은 내가 가장 잘 만드는 밀가루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리더인 나는 애들에게 주재료들을 사오라고 시킨 다음 야채들을 깎으며 기다렸다. 재료가 오자 모든 재료들을 손질하고 볶고 소스를 만들기 시작했다. 돼지고기는 더 맛있게 하기 위해 재웠는데 찬희쌤의 도움으로 거의 A+++급 고기가 되어버렸다. 고기가 정말 맛있게 돼서 성공할 줄 알았지만... 간을 실수로 너무 짜게 맞추는 바람에 좋은 평가를 듣지 못했다. 호떡은 잘 되었지만 앞으로는 간을 잘 맞춰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을 잘 맞추기 위해서는 내 스스로 자극적인 음식을 적당히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어머니도 나에게 늘 간이 짜다고 말씀하시는데 내가 맵고 자극적인 음식들을 많이 먹어서 그런 것 같다. 앞으로는 간을 적당히 맞추기 위해서 식습관을 좀 바꿔야겠다.
6. 바비Q 파티!
리비브 에서의 인상 깊었던 일은 요리 경연대회 말고 바비큐 파티도 있었다. 리비브 에는 공원 같은 곳이 있었는데 곳곳에 불을 피울 수 있는 공간이 있어서 리비브 에서의 마지막 날 대장님께서 바비큐 파티를 해주셨다. 그런데 꼬치는 자신이 알아서 구해서 와야 했기 때문에 빨리 먹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였다. 게다가 고기를 떨어뜨리면 10분을 못 먹게 되기 때문에 신중하게 나뭇가지를 골라야 했다. 그래서 꽤 튼튼한 것 같은 나뭇가지를 골라서 고기를 구웠는데 불에 너무 집어넣는 바람에 나뭇가지가 끊어지고 말았다. 하... 정말 10분을 쉬는데 1시간처럼 느껴지는 이 기분을 아는가? 10분이 정말 길게 느껴졌다. 10분을 쉬고 나서는 절대 끊어지지 않기 위해 엄청 두꺼운 나무로 창을 만들어버렸다. 그래서 그 뒤로는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각자 자기만의 꼬치로 이렇게 고기를 구워 먹으니 정말 별미였다. 그리고 마치 캠핑을 온 것 같은 느낌이 오기도 해서 좋았다. 한국에서 만약 캠핑을 간다면 이런 식으로 바비큐를 해먹어도 좋을 것 같다. 그런데 내가 만약 친구들하고 캠핑을 갔을 때 대장님처럼 완벽하게 준비해갈 수 있을까? 아마 힘들 것 같다. 어떻게 그 많은 양의 고기와 야채들을 혼자서 준비하셨을까? 내가 했다면 아마 엄청 오래 걸렸을 것이다. 그래서 더욱 대장님에게 워커를 잘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9기를 갔다 오고 나면 가족들이나 친구들이랑 캠핑을 갔을 때 멋있게 바비큐를 구울 수 있도록 대장님에게 잘 배울 것이다.
7. 때론 신이 있는 듯하다.
우크라이나 오데사에서의 마지막 날, 정말 어이없는 일이 일어났다. 한 방에 담요가 원래부터 없었는데 숙소 주인이 우리를 도둑으로 몰아간 것이었다. 우리는 배를 타야 했기 때문에 시간 낭비를 하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원래는 전 날에 탔어야 했는데 다음 날로 연착이 되어서 가까운 곳에 있는 숙소에서 하룻밤을 머물게 되었다. 그런데 주인아줌마가 굉장히 깐깐스러워 보였다. 뭔가 우리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듯한 눈빛이었다. 하지만 가까운 숙소가 그곳 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곳에 머물러야 했다. 그런데 호준이 방에 원래 담요가 없었고 다음 날 체크아웃을 하는데 우리가 담요를 훔쳐갔다고 몰아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오랫동안 그 숙소아줌마와 실랑이를 벌였는데 보면서 정말 나중에 저런 어른은 되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우리가 가방을 다 열고 안 훔쳤다는 것을 증명을 하자 그제야 보내줬다. 그렇게 우린 모두 기분이 언 짧은 상태로 길을 걷고 있다가 잠시 주유소에서 쉬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떤 아저씨가 우리에게 말을 걸려고 다가왔다. 알고보니 우리가 전에 연락을 했던 배에서 일하는 사람이었는데 운 좋게 만난 것이었다. 그래서 배까지 편안하게 버스를 타고 들어갈 수 있었다. 그때는 그 깐깐한 아줌마를 욕하기만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만약 그때 그 아줌마가 우리를 붙잡지 않았다면 아마 우린 배까지 힘들게 들어갔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가끔 이런 상황들을 보면 때론 신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듣다. 정말 신이 존재한다면, 난 지금보다 더 착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식도 서로 나누고 남들이 봤을 때 이기적이지 않도록 노력하고 행동도 더 잘해야겠다. 내가 스스로 복을 쌓는다면 신도 분명 나에게 더 좋은 일이 일어나게 해주겠지.
8. 내 인생 첫 크루저 숙박
문득 저 멀리에 있는 지평선들을 보니 마음이 매우 평온해졌다... 바다 한가운데에서 크루저를 타고 있는 것은 매우 꿈만 같았다. 내 인생 첫 대형 크루저였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난 조그만 배들 밖에 안 타봐서 배가 다 거기서 거기일줄 알았다. 그리고 난 뱃멀미도 꽤 심한 편이기 때문에 작은 배를 탈 때마다 매우 고통스러웠었다. 그래서 이번에 크루저를 탈 때도 좀 걱정을 했었는데 내 걱정과는 다르게 매우 좋았다. 일단 배가 커서 그런지 흔들림이 크지 않아 멀미가 나지 않았고 객실도 꽤 깨끗하고 좋았고 활동할 수 있는 범위가 꽤 넓었다. 식당 쪽도 매우 넓어서 앉아서 내가 할 것들을 할 수 있고 옥상에 올라가면 벤치들과 운동기구들이 있어서 심심할 때마다 올라가서 바다를 바라보며 생각을 하거나 운동을 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음식도 훌륭했다. 매 끼니마다 메뉴도 바뀌고 종류들도 꽤 풍부하고 맛이 예상 외로 정말 맛있었다. 그래서 2~3번씩 먹었다. 정말 훌륭한 배였다. 그리고 우리가 뱃사람들을 위해 공연을 해서 선장실도 구경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 배도 우리나라 조선소에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나라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우리나라의 기술력도 정말 대단한 것 같다. 어쨌든 내 인생 첫 크루저 숙박은 훌륭했고 기회가 된다면 나중에 또 크루저 여행을 해보고 싶다. 그런데 크루저 여행을 하려면 돈을 많이 벌어야 하는데 내가 과연 이대로 크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을까? 내가 생각해도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반하 2년을 통해 난 정말 변한 점이 많긴 하지만 아직 게으름이 너무 많다. 그래서 내가 9기를 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게으름을 없애기 위해선 하반하가 가장 최적의 장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9기 때는 정말 새로운 마음으로 뭐든지 열심히, 열정적으로 할 것이다.
9. 바람이 되어
윈드서핑은 정말 매력적인 레저 스포츠이다. 내가 스스로 돛을 조종하여 바다를 가르는 그 짜릿한 기분... 정말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단순한 스포츠가 아닌 매우 과학적인 스포츠이다. 바람의 힘을 이용해 미는 힘으로 앞에 가는 것인데 그래서 내가 바람을 읽고 각도를 맞추어야 한다. 각도가 좀만 틀려져도 속도가 안 나거나 중심이 무너진다. 그래서 수시로 움직여줘야 한다. 마치 바람과 혼연일체가 된다는 느낌으로 하면 된다. 물론 초반에는 매우 힘들었는데 어느 정도 하다 보니 균형을 잡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바람을 잡는 것은 매우 힘들었다. 그래서 난 항상 배에게 구조되었다. 날이 갈수록 바람이 쌔져서 통제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찌저찌하여 자격증은 받았지만 좀 많이 아쉬웠다. 내가 애들 중에서 가장 못 탔기 때문이다. 그래서 뭐가 문제였을까에 대해 생각을 해보았다. 생각을 해보니 내가 다른 애들에 비해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다른 애들은 기술들을 시도하다가 계속 물에 빠지는데 난 물에 빠지지 않기 위해 한계를 도전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윈드서핑을 또 타게 된다면 그땐 몸을 사리지 않고 최선을 다할 것이다.
10. 찬희쌤의 손은 미다스!
찬희쌤은 정말 하반하의 영양사같은 분이시다. 아무리 똥이어도 다시 황금으로 만드시는 손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이다. 찬희쌤의 요리는 정말 지금까지 한 번도 맛없었던 적이 없었다. 우크라이나에서 요리 경연 대회를 했었을 때도 찬희쌤이 고기랑 호떡 소만 만져주셨는데 음식이 정말 황금이 되어버렸다. 같은 고기여도 품질을 다르게 만드시는 찬희쌤의 손은 여기서 멈추시지 않았다. 페티에 때 가장 활발하게 움직이셨는데 매일 저녁마다 우리에게 엄청난 간식들을 해주셨다. 특히 알리오 올리오 파스타와 까르보나라 파스타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찬희쌤이 해주시는 이 두 가지의 파스타는 정말 마치 미슐랭 쓰리스타 급의 자태를 뽐낸다. 찬희쌤의 알리오 올리오 파스타를 맛보면 입안에서 마늘과 고추 향이 서로 손을 잡고 춤을 추며 올리브 유가 화려한 피날레를 장식해준다. 그리고 까르보나라 파스타를 맛보면 마치 병아리가 입안에서 탄생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파스타 말고도 찬희쌤이 해주신 프렌치 프라이와 오꼬노미야끼도 잊을 수가 없다. 프렌치 프라이를 케찹 칠리 소스와 함께 약간 볶아서 해주셨는데 겉은 촉촉하고 안은 바삭하여 감자가 살아있는 듯한 착각을 준다. 오꼬노미야끼도 만만치 않다. 마치 내가 일본 현지에 온 듯한 착각을 주며 내 자신이 양배추가 된 것 같은 환상을 보게 된다. 내가 페티에에서 김치찌개를 했었을 때도 시래기를 정말 김치 맛이 나도록 간을 해주셔서 너무 소름이 돌았다. 정말 아직도 찬희쌤의 손맛을 잊을 수가 없다. 나도 찬희쌤의 손을 따라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나도 찬희쌤만큼 요리를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찬희쌤은 자취를 하면서 요리 실력이 많이 느셨다고 하는데 역시 경험이 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항상 워커가 귀찮아서 뒤로 내뺐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후회스럽다. 내가 워커를 좀 더 적극적으로 했다면 경험도 많이 쌓고 호준이처럼 일도 잘하는 학생이 되었을 텐데 말이다. 그래서 내년 9기 때는 대장님이 뭔가를 시키시면 뭐든지 앞장서서 해야겠다.
11. 살벌한 동네
‘퍽퍽, 으아아앙!’ 우리가 터키 셀축의 공원 같은 곳에서 간식을 먹고 있었을 때 일어난 일이었다. 옆에서 한 무리의 산동네 아이들이 놀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떤 애가 일방적으로 맞는 것이었다. 보면서 옳지 않다는 생각을 했고 말리려고 했지만 선생님들은 끝까지 책입져 주지 않을 거라면 함부로 개입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가만히 있었고 이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과연 상황을 보고 말려야 하는 것인가? 이건 생각해볼 고민거리였기 때문에 이 주제로 디베이트도 해보았다. 역시 다른 애들도 일단 말리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애들이 더 많았다. 나는 정말 이건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요즘에는 학교에서 싸움이 나면 말리는 애들보다 구경하는 애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나는 방관자의 역할에 더 충실했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왜 그랬나 라는 생각도 들고 싸움을 말리지 않았던 내가 한심하게 보인다. 그러나 지금은 생각이 많이 바뀌었고 많이 성숙해졌다. 앞으로는 싸움이 난다면 내가 가장 먼저 말리는 사람이 될 것이다.
12. 찬희쌤 군대 송별식
찬희쌤... 그는 갔다. 여행 전부터 예견되어 있었던 일이지만 막상 이 때가 오니 믿겨지지 않았다. 찬희쌤이 군대를 가실 때가 온 것이었다. 항상 우리에게 잘해주시고 우리의 영양을 챙겨주시던 찬희쌤은 6월 30일, 우리의 배웅을 받으며 기차를 타고 떠나셨다. 찬희쌤이 떠나시기 전에 송별식을 했는데 송별식 노래를 준비하지 못해 너무 아쉬웠다. 게다가 찬희쌤은 우리 모두에게 엽서를 한 장씩 돌렸는데 업셔 내용을 읽고 나서 너무 감동을 받았었다. 정말 송별식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한이 되었다. 요즘도 가끔 찬희쌤을 떠올리곤 하는데 너무 그립다. 물론 요즘 찬희쌤이 군대에서 잘 지내고 계신다고 하니 참 다행이지만 여행을 끝까지 못한 것이 너무 아쉽다. 그리고 그동안 찬희쌤의 말을 잘 안들은 것이 후회스럽다. 찬희쌤은 항상 우리를 위해 조언도 해주시고 화도 내시며 우리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갈려고 애쓰셨는데 난 항상 그때의 감정에만 치우쳐서 나도 삐져서 찬희쌤의 뜻을 알아듣지 못한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어리석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꼭 찬희쌤과의 약속을 지켜서 면회를 찾아갈 것이다.
13. STOP-THINK-ACT
‘멈추고, 생각하고, 행동해라’ 이집트의 다합에서 스쿠버 다이빙 레스큐 과정을 배울 때 가장 먼저 배운 요령이다. 난 작년에 어드밴스 과정까지 땄었기 때문에 이번 년도에는 레스큐 과정을 도전하게 되었다. 그런데 처음부터 많은 어려움이 겪었다. 터키에서 코감기에 걸린 채로 이집트에 도착을 했는데 콧물 떄문에 코가 막히다 보니 부비동에 문제가 생긴 것이었다. 점점 물 아래로 내려갈수록 코와 이마가 지끈거리고 끊어질 듯이 아파서 참아보려고 했지만 결국 핫산에게 이상신호를 보내고 물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강사들에게 물어보니 감기 때문이라고 해서 감기가 다 나을 때까지 스쿠버 다이빙을 할 수가 없었다. 감기가 낫자 다시 레스큐 수업을 듣기 시작했는데 수업을 할 때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사람을 구하는 방법을 배우는 수업인 만큼 신속하고 정확하게 해야 하는데 생각보다 쉽지가 않았다. 특히 행동이 빠르지 않은 난 애들 사이에서 가장 뒤쳐졌다. 그리고 평소에 이런 상황이 오면 침착하지 않은 나는 실전 시험을 볼 때도 가장 실수를 많이 했다. 멈추고, 생각하고, 행동해라 라는 말이 그때서야 이해가 되었다. 오히려 급하게 하려고 하니 실수가 더 많이 나왔기 때문이다. 그래도 다행히 이론 시험은 잘 봐서 자격증은 받았지만 좀 찜찜했다. 과연 내가 실제로 이런 상황이 오면 사람을 잘 구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실전 시험 때도 느꼈지만 나는 막상 그런 상황이 오면 침착하지 못하고 허둥지둥 거린다. ‘멈추고-생각하고-행동해라’ 이 요령을 잘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먼저 인내심을 길러야겠다. 난 정말 참을성이 없는 편인데 그래서인지 평소에 침착하지 않은 모습을 많이 보인다. 그래서 앞으로 참을성을 기르긴 위해선 가만히 있는 연습을 할 것이다. 특히 책상에 오래 앉아있는 습관을 만들어야 겠다. 왜냐하면 난 항상 침대에 누워서 뭔가를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꼭 인내심을 길러서 인생의 어느 순간에는 인정받을 수 있는 내가 되어야겠다.
14. 안녕, 친구들
때는 7월 30일, 우린 모두 이집트의 뜨거운 땡볕 아래에서 열심히 수세미로 나무 식탁들과 의자들을 닦고 건물 대청소를 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새로운 친구들이 오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너무 기대가 되었고 마치 어린아이처럼 기분이 들떠 있었다. 대청소가 끝나고 나서는 빨리 방도 옮기고 깨끗하게 샤워도 한 다음 시즌 아이들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그리고 마침내 시즌 애들을 태운 버스가 오자 너무 반가웠다. 먼저 우리를 위한 보급품들과 시즌 애들의 짐들을 나르고 대면식을 했다. 얼굴들을 보니 왠지 다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한 달이 너무 기대가 되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내가 정말 많이 바뀌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즌 애들이 음식을 남기는 거나 별 것도 아닌 것에 불평을 하는 것을 볼 때마다 마치 하반하에 오기 전 내 모습이 생각이 났다. 2년사이에 정말 많은 것이 바뀐 것 같다. 어쨌든 그래도 애들이 다 착하고 재밌어서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그리고 애들이 많아지니 확실히 시끌벅적해져서 좋았다. 참 기대가 되었던 한 달이었다.
15. 5개월 만에 만난 한국 반찬들과 내가 만든 수제비!
시즌이 오면서 좋았던 것은 바로 보급품들과 한국 반찬들이었다. 늘 부족한 자원들 속에서 살아왔던 우리는 필요한 보급품들이 도착하자 정말 살 것 같았고 5개월 만에 한국 음식들을 마주하니 너무 행복했다. 정말 그동안 얼마나 먹고 싶었는지 김치와 밥만 먹어도 밥도둑이었다. 김치가 계속 밥을 훔쳐가니 평소보다 더 많이 먹게 되었다. 게다가 라면도 와서 진짜 내가 용이 되어 승천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김치, 라면 말고도 정말 다양한 반찬들과 짜장 가루, 국물 내는 멸치 팩 등등 다양한 조미료들과 음식들이 왔기 때문에 매 식사시간이 너무 기대가 되었다. 그리고 가장 인상 깊었던 음식은 바로 내가 만든 수제비였다. 써니쌤이 어느 날 아침에 수제비를 만들 것이니 나에게 수제비 반죽을 만들라고 말하셨다. 지금까지 전, 튀김. 호떡 반죽은 많이 만들어 봤지만 수제비 반죽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매우 긴장이 되었다. 망치면 아침의 메인 메뉴가 빠지는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만들었다. 농도도 조심스럽게 조절하고 계속 열심히 반죽을 만들었다. 한 30분쯤이 되자 반죽이 거의 완벽해졌고 40분 정도 되었을 때 완성을 했다. 처음 만든 것 치곤 너무 탱탱하고 쫄깃해서 나 스스로도 놀랐다. 연구부장님과 써니쌤도 잘 만들었다고 칭찬해주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이렇게 반죽을 잘 만들 수 있게 된 이유는 써니쌤의 말을 잘 듣고 배워서 그런 것 같다. 옛말에 어른들 말은 틀린 게 없다고 내가 만약 작년에 써니쌤에게 밀가루 반죽하는 법을 배우지 않았다면 지금 이렇게 만들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또 하반하에 와서 느끼는 것은 어머니의 말이 틀린 게 없다는 것이다. 항상 어른들은 나 잘되라고 좋은 말씀들을 해주셨는데 지금까지 난 다 귓등으로 흘러 보냈었다. 앞으로는 어른들이 말하시는 조언들을 잘 새겨들어서 더욱 발전하는 내가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16. 사막의 밤
다합을 떠나 4성급 호텔인 오아시스 호텔을 거쳐 우리가 간 곳은 시화 사막이었다. 시화 사막은 작년에도 갔었던 사막으로 진짜 오아시스도 있고 내가 슬리퍼를 잃어버렸던 곳이다. 작년에는 리조트에서 잠을 잤었는데 이번 년도는 사막 한가운데에서 잠을 자기로 했다. 그래서 리조트에서 하룻밤을 자고 바로 사막으로 향했다. 작년처럼 밴을 타고 사막을 활주하는데 갑자기 차가 붕 떠서 정말 너무 스릴 넘치고 재미있었다. 계속 그렇게 달리다가 사막의 언덕에서 사진도 찍고 오아시스에 가서 수영도 하고 저녁엔 해지는 것까지 본 다음 우리가 잘 곳으로 이동했다. 사막 언덕이 뒤에 둘러싸여 있는 곳이었는데 그래서인지 좀 아늑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도착하자 자리를 펴고 저녁을 먹은 다음 별들을 구경했다. 아무런 빛도 없으니 정말 하늘은 마치 수많은 보석들처럼 별들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누워서 보고 있으니 마음이 편안해졌고 기분 좋게 잠들 수 있었다. 내 인생에서 사막에서 잘 날이 또 있을까? 아마 없을 것 같다. 정말 시화 사막에서 잤던 추억은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17. 지상낙원
우리가 사막 투어를 끝내고 간다고 한 곳은 national park 라는 곳으로 모기와 야생동물들이 득실득실 거리는 곳이라고 했었다. 그래서 당연히 별 기대를 안 하고 오아시스 호텔에서 버스에 올라탔다. 하룻밤을 지나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오랜 시간 끝에 도착한 곳은 정말... 믿기지가 않았다. 왜냐하면 내 눈 앞에는 지상 낙원이 펼쳐져 있었다. 거대한 정문 뒤에는 워터 파크와 호텔들이 있었고 로비는 굉장히 화려했다. 그리고 레스토랑은 정말 내가 한국 뷔페에 온 듯한 착각을 주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밥만 먹으러 온 것이겠지 라는 생각을 했지만 밥을 먹고 가방을 들고 로비로 들어갔을 때 나의 기분은 정말...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내가 살다 살다 이런 호텔에 머물게 될 줄이야... 진짜 이곳에서의 3박 4일은 꿈만 같았다. 바다도 너무 아름다웠고 모든 게 그냥 다 행복했다. 나중에 내가 결혼을 한다면 이런 호텔로 신혼여행을 올 것이다.
18. 이별
8월 21일, 우린 시즌과의 작별을 했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았는데 벌써 3주란 시간이 흘렀다. 작별 인사를 하면서 이 정든 애들과 헤어진다고 생각하니 마음 한 구석이 시려왔다. 특히 이번 시즌은 너무 많이 정들어서 보내고 싶지 않았다. 눈물이 터지기 직전까지 왔지만 애들에게 우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참고 작별 인사를 해주었다. 작별 인사를 하고 버스에 올라타니 갑자기 너무 슬펐다. 그래서 결국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울면서 나도 참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년에는 정말 눈물이 없었는데 이번 년도에는 감수성이 풍부해진 것 같다. 특히 이번 시즌은 정이 많이 들어서인지 후유증이 컸다. 그래서 몇 칠 동안은 조금 우울했다. 이번 시즌을 통해 느낄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성격이 많이 바뀌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작년 시즌 때까지만 해도 시즌 애들에게 딱히 좋은 평가들을 받지 못했었는데 이번 시즌 때는 애들에게 착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고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여자애들에게도 좋은 평가를 많이 받았는데 이건 정말 나에게 엄청난 발전이었다. 작년 시즌 때까지만 해도 여자애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면에 비병 애들에게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너무 시즌 애들하고만 놀아서 비병 애들에게 신경 쓰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안한 마음이 든다. 좀 더 비병 애들한테도 잘해줬어야 하는데 말이다. 그러니 이번 시즌 때 느낀 점들을 통하여 내년 9기 때는 시즌이 왔을 때 모두에게 잘해서 시즌과 9기 둘 다에게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내가 되어야겠다.
19. 신세계, 그리고 승마
우리가 이집트 공항에서 fly emirates를 타고 향한 곳은 바로 미지의 세계인 인도였다. 그동안 인도에 대해서 매우 안 좋은 소문들만 들었었기 때문에 난 살짝 걱정이 되었다. 어떤 나라일까 내심 기대가 되기도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걱정도 했다. 어쨌든 인도에 도착하기 전 두바이에서 경유를 했는데 정말 부자의 도시는 스케일이 달랐다. 공항 시계도 다 로렉스이고 부르즈 할리파도 저 멀리 창문 너머로 보이고 항공사에서 무료로 아이스크림을 나누어 줬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10개는 먹었다. 그리고 핸드폰 매장과 면세점 등등 구경할 것도 많았다. 그래서 다시 인도로 가는 비행기에 탔을 때는 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어쨌든 비행기를 타고 인도에 도착했는데 확실히 지금까지의 나라들과는 다른 기운이 느껴졌다. 냄새도 신비한 냄새가 났고 내가 생각한 그림보다는 좋아 보였다. 써니쌤이 평소에 많이 얘기를 해주신 비셸 아저씨라는 분이 마중 나와 계셔서 차를 타고 마테란으로 향했다. 마테란은 산 중턱에 있는 마을 이여서 산길을 꼬불꼬불 올라가는데 멀미가 나서 토할 뻔했다. 그렇게 험난한 과정을 거치고 기차를 타고 마테란에 도착한 우리는 비셸 아저씨의 숙소에 갔다. 안 좋을 줄 알고 전혀 기대를 하지 않고 갔는데 뜻밖에도 숙소가 너무 좋았다. 그리고 음식도 너무 잘 맞고 생각보다 깨끗했다. 게다가 승마도 너무 재미있어서 마테란에서는 정말 너무 행복했다. 처음에는 어렵고 무서워서 매일매일 타는 게 너무 힘들었지만 타다보니 어느새 노하우가 생기고 적응이 되었다. 그리고 알라딘이라는 가장 작은 말이 있는데 처음에 그 말을 타기 시작했다가 정들어 버렸다. 왜냐하면 다른 말들보다 훨씬 말을 잘 듣고 너무 귀엽게 생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상 알라딘에게만 말 과자를 주고 쓰다듬어 줬다. 그래서 마테란을 떠날 때 너무 아쉬웠다. 그리고 인도에 대한 소문들은 다 편견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렇게 좋은데 소문들만 듣고 오기 전까지 인도를 안 좋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앞으로 뭐든지 내가 확인해보기 전까지는 함부로 생각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상생활에서도 소문에만 의존할 때가 많아서 단호하게 결정하지 못할 때가 있고 이유 없이 내 생각으로 남을 오해할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항상 후회를 하는데 앞으로 내 주관을 정확히 잡아서 돌아다니는 소문에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20. 야영생활
‘쿵, 콰직!’ 거대한 돌로 코코넛을 까먹는 그 통쾌한 기분을 아는가? 우리가 마테란에서 다음으로 이동한 곳은 벵갈로르라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라자라는 사람이 운영하는 생태 농장 같은 곳에서 머물게 되었는데 정말 야생 그대로에서 살았다. 흙으로만 만든 집도 있었고 주변에는 다 풀들과 나무와 농경지 밖에 없었다. 정말로 자연과 하나가 되어 살 수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뭐든지 아껴 썼다. 천연 비누를 쓰고 물은 물탱크에 있는 걸 써야 했기 때문에 낭비할 수 없었다. 그리고 밥도 장작을 때워서 불을 피워 요리했다. 자는 건 텐트에서 잤는데 바닥에 돌이 있어서 뒤척일 때마다 너무 불편했다. 그런데 생각보다 살만 했다. 먹는 것도 꽤 풍족하게 먹었고 가장 좋았던 것은 주변이 다 코코넛 나무였다는 것이었다. 코코넛을 따서 거대한 돌기둥으로 내려찍으면 정말 쉽게 깨지는데 안에 있는 과육이 너무 담백하고 맛있다. 가끔 물이 가득 차 있는 코코넛도 있는데 정말 끝내준다. 정말 이렇게 살아보니 사람이 이런 환경에서도 살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평소에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낭비하고 있었는지도 깨달았다. 분명 엄청나게 거대한 물탱크가 있었는데 3~4일만에 다 써버린 것이다, 그래서 물을 더 아껴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샤워 시간도 좀 더 줄이고 세수도 물을 받아서 하고 설거지도 거품질을 먼저 한 다음 한꺼번에 씻어야겠다. 우리 모두가 물을 아껴쓴다면 먼 후손들까지도 물을 잘 쓸 수 있을 것이다. 나도 몸소 실천하도록 노력해야겠다.
21. 여기가 인도인가? 그리고 음식을 사와도 왜 먹질 못하니...
우리가 벵갈로르 다음으로 간 곳은 오르빌이었다. 오르빌은 옛날에 더 마더라는 사람이 황무지를 개척해서 만든 마을이라고 했다. 그래서 오르빌에 살려면 오르빌리언이 되야 한다. 그래야 오르빌에 있는 시설들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방문객도 허가증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인지 오르빌에는 외국인들이 많이 살았다. 그래서 인도인데 인도 같지 않은 느낌이 들어서 신기했고 예쁜 서양 누나들도 많았다. 하지만 오르빌에서는 좋은 기억이 딱히 없다. 왜냐하면 골키퍼를 하다가 다쳤는데 고름이 생긴 것이었다. 여기 오르빌은 신기하게도 상처가 생기면 잘 낫지가 않아서 고름이 생기기 일쑤였다. 그래서 기름진 음식들을 먹지 못하게 되었다. 기름진 음식을 못 먹게 되니 정말 지옥이 펼쳐졌다. 거의 모든 음식에 기름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특히 인도 음식은 더욱 기름지다. 그래서 먹을 수 있는 것들이 매우 한정되어 있어 마치 그림의 떡을 보는 것 같았다. 앞에서 고름 없는 애들이 맛있는 것들을 먹을 때 우리는 이들리, 맨 식빵 같은 것들만 먹어야 했는데 정말 고통이었다. 정말 매일매일 몸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내 자신에게 너무 화가 났다. 좀만 몸 조심을 했다면 맛있는 음식들을 먹었을 텐데... 이번 경험을 통해 다시 한 번 어른들의 말은 틀린 게 없다는 걸 깨달았다. 어른들은 흔히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다 잃는 것이라고 하는데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고름 하나 났다고 이렇게 많은 음식들을 못 먹지 않는가. 정말 다음부터는 몸을 좀 사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는 고름이 나지 말아야지.
22. 명예로운 1등
오르빌을 떠나기 전, 우리는 마라톤 대회를 했다. 그 주는 스포츠 위크였기 때문에 일주일 내내 경기를 했었다. 이제 마지막은 마라톤으로 승부를 보는 것이었는데 마라톤을 지면 이길 수가 없었기 때문에 꼭 이겨야 했다. 그래서 시작하자마자 페이스를 잘 유지하며 뛰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을 달리는 것은 호흡이 무너지면 망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천천히 뛰다가 조금씩 속도를 올리며 호흡량을 조절했다. 그러면서 한두 명씩 제치기 시작했다.(처음 시작할 때 빨리 뛴 애들은 뒤쳐질 수 밖에 없지.)계속 뛰다 보니 어느새 솔라 키친이 나와서 초코파이를 골랐다. 초코파이 중에 고추냉이가 섞여있는 것이 있었기 때문에 나의 모든 오감들을 동원해 다행히 아닌 것을 골라내었다. 초코파이를 먹으니 힘이 나서 더 빨리 뛰어갔다. 다음 포인트는 방문자 센터였는데 그곳에는 그냥 물과 소금물이 있었다. 그래서 물을 자세히 보고 그냥 물인 것을 골랐다. 소금물은 자세히 보면 알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물까지 안전하게 마시고 나서는 마지막 포인트인 더 파더 동상에서 사진을 찍고 집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뛰다 보니 어느새 난 2등이 되어 있었고 1등은 호준이, 3등은 호근이가 유지하고 있었다. 호준이도 어차피 우리 팀이었기 때문에 난 호근이를 계속 견제하며 2등을 내주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새 호준이는 어딘가로 사라지고 앞에 아무도 없어서 벌써 호준이와의 간격이 너무 멀어진 줄 알고 슬슬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집에 도착하기 직전에는 갑자기 호근이가 전력 질주를 하길래 나도 전력 질주를 해서지지 않고 무사히 2등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갑자기 내가 1등이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 호준이가 안 들어온 것이었다. 그래서 의문의 1등을 하게 되었다. 2등인 줄 알았는데 막상 1등을 하니 너무 뿌듯하고 내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호준이는 나중에 8등으로 들어왔는데 알고 보니 길을 잃었었던 것이다. 어쨌든 이번 마라톤 1등을 하면서 느낀 것은 내 체력이 정말 많이 늘었구나를 깨달았다. 하반하에 오기 전엔 학교에서 체력 측정을 하면 항상 거의 꼴찌였었는데 지금은 몇 십분을 뛰어도 체력이 금방 회복이 된다. 그리고 근육도 많이 늘고 모든 면에서 체력이 많이 늘은 것 같다. 그래서 이제는 게으름만 잡으면 될 것 같다. 항상 게으름 때문에 하고 싶은 게 생겨도 맨 날 미루다가 못하곤 했었는데 9기 때는 게으름을 뿌리 뽑을 계획이다. 그러기 위해선 항상 잠잘 때 외에는 침대에 있지 말아야겠다. 그리고 아무리 힘들어도 지금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않을 것이다. 열심히 노력해서 꼭 부지런한 내가 되어야겠다.
23. 잠과의 사투
우리가 인도 오르빌을 떠나 다음으로 간 곳은 우리가 매우 기다리던 인도네시아였다. 인도네시아에 도착하기 전 인도에서 나, 준우, 재훈, 준휘, 민수는 인도네시아에서 72시간 수면 프로젝트를 하기로 약속했다. 왜냐하면 한 번쯤은 잠만 자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봤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도네시아에 도착해서 저녁을 먹고 바로 시작을 했다. 일단 첫 날은 잠이 아주 잘 왔다. 그래서 24시간은 아주 쉬웠다. 그런데 2번째부터 큰 문제가 생겼다. 잠이 오지 않기 시작한 것이었다. 잠이 오지 않으니 갑자기 배고파지고 갈증도 나고 미칠 것 같았다. 그래서 포기하겠다고 말씀드렸는데 한 번 선택한 건 책임을 지라고 하셔서 정말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내가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계속 벽만 보며 누워 있으니 사람이 미칠 것 같았다. 그런데 다행히 저녁에 부르시더니 포기할 것이냐고 물어보셔서 바로 포기한다고 대답했다. 정말 이건 사람이 할 짓이 못 되기 때문이다. 배고픈 것은 둘째 치고 못 움직이고 벽만 보고 있으니 정말 정신병에 걸릴 것 같았다. 이번 수면 프로젝트를 통해서 느낀 것은 뭐든지 과하면 안 좋다는 것을 깨달았다. 잠도 적당히 자야 상쾌하지 이렇게 하니 정말 오히려 몸이 더 피곤했다. 앞으로 잠도 적당히 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난 항상 혼자서 못 일어나는데 혼자서 일어나는 습관을 기르고 낮잠도 적당히 자야겠다. 다시는 잠을 오래 자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말아야겠다.
24. 엄마, 나 맞았어.
‘퍽, 으아아악!’ 서핑을 타러 간 첫 날, 첫 날이니 무난하게 바디보드를 타고 있었는데 갑자기 재훈이가 넘어지면서 서핑보드를 나에게 날렸고 난 얼굴에 맞고 쓰러졌다. 눈 쪽 가까이에 맞았는지 눈을 뜰 수가 없었고 잇몸까지 얼얼하고 마치 뼈가 으스러지는 듯한 고통이 몰려왔다. 그래서 비명을 지르며 울었다. 정말 진짜 너무 아파서 기절하는 줄 알았다. 어쨌든 그렇게 난 중도 포기를 하고 집에 왔는데 진짜 눈이 만화에서 보던 것처럼 시퍼렇게 탱탱 부어있었다. 그래서 정말 2~3일 동안은 눈 뜨는 게 너무 힘들었다. 물론 지금은 다 나았지만 이번 사건을 통하여 난 매사에 신중해야겠다는 교훈을 얻었다. 그때 재훈이랑 간격을 좀 더 벌려서 탔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 것이다. 앞으로는 항상 주변을 둘러보고 신중해야겠다.
25. 문집을 마무리하며...
솔직히 이번 문집을 마무리하면서 좀 힘들었다. 24개의 에피소드들을 어떻게 간결하고 임팩트있게 쓸지 많은 고민과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다행히 잘 마무리가 되었고 내가 다시 내 문집들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내가 작년보다 이번 년도에 더 많은 교훈들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일단 옛날보다 부정적인 면들이 많이 없어졌고 많이 발전을 했지만 아직 나의 부족한 면들을 많이 느끼며 난 써니쌤, 대장님에게 배울 점이 많다는 사실을 우선적으로 인식했다. 하반하 2년을 통해 많이 바뀌었지만 아직 난 완전히 바뀌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난 정말 고집이 쌔서 남들이 지적하는 것들을 귓등으로 들었었늗데 써니샘, 대장님은 몸소 방법을 알려주시고 난 올바른 길로 인도하셨다. 그래서 내가 과연 한국에서도 잘할 수 있을지, 아니면 9기에 갈지 생각을 하다가 9기에 가서 대장님, 써니쌤에게 더 많은 가르침을 받기로 결정했다. 내년에는 고집을 줄이고 남의 지적들을 잘 귀담아들어서 내 자신을 탄탄하게 만들어야겠다. 이렇게 기나긴 내 2년의 여행이 끝났는데 나에게 여행이란 좀 더 넓은 시각으로 내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여행을 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상황들에 직면을 하는데 그러면서 다양한 생각들을 공유하고 경험들을 쌓으며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그래서 여행을 하면 과거의 나에 대해 반성하고 더욱 더 발전해나갈 수 있는 것 같다. 그러므로 난 여행은 단순히 노는 것만이 아닌 내 자아를 찾고 내 꿈과 목표를 실현해나갈 수 있는 아주 중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난 내년 9기를 통하여 더 많은 것을 깨닫고 내 꿈을 향한 노력을 할 것이고 하반하가 끝나도 나 스스로 여행을 할 수 있다면 서슴치 않고 갈 것이다. 오르빌 할머니가 말씀하셨던 것처럼 나도 adventure하고 freedom하게 버라이어티한 인생을 살아갈 것이다.
|
첫댓글 혼자 스스로 뭔가를 해보겠다고 생각하는것만으로도 뿌듯합니다, 새로운것에 움찔하지않고 당당하게 맞설수있는 하반하동기생들 최곱니다. 감사합니다.
24개의 임팩트한 에피소드들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라면 맛을 용이 승천하는 기분이라는 표현은 정말 마음에 쏙 드네요.
하반하 10개월을 통해 더 섬세하게 더 단단해진 정우를 만난 느낌입니다.
2019년에도 행복하게 성장하는 정우가 되기를 바래봅니다.
- 준휘 엄마 -
정우의 24개의 에피소드를 읽으며 참 많은 경험과 느낌들을 알 수 있었어~ 자신의 부족함을 더 채우기 위해 9기를 선택한 정우를 응원하며, 3년차 정우의 하반하 인생으로 멋진 성장을 할거라고 믿으며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