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죽음-2
지난 시간에 이어서 올립니다.
불교에서는 사람은 죽으면
무거운 육신의 껍질을 벗어버리게 되어
비 할 수 없이 홀가분함을 느끼게 된다고 합니다.
‘걷는 것도 헝겊자리요,
앉는 것도 헝겊자루,
헝겊자루 벗어 버리니 이 얼마나 자재로우냐!’
이처럼 가볍고 장애가 없으며
유유자작하다고 보는 것입니다.
지혜가 있든 우둔하든,
어질든 불초하든 죽음이란 종류가 다르고
빠르고 낮음의 차이가 있을 뿐
모든 사람은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인 것입니다.
진시황처럼 설사 세간의
모든 것을 소유하고 정복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장생불사를 누릴 수는 없습니다.
전설 속의 인물인 팽조처럼 팔십 백세까지
수명을 누린다 해도 우주 전체로 보면
그것 역시 아침에 태어나 저녁에 죽는 하루살이에 불과합니다.
다만 죽음의 상황이 천차만별일 뿐
일체 중생은 태어남이 있으면 반드시 죽기 마련입니다.
첫째는 '수명이 다하여 죽는 죽음'
빠르고 늦고의 차이에 따라
아침에 태어났다 저녁에 죽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봄에 태어났다가 겨울에 죽는 경우도 잇을 것이고
십년을 살다가,
혹은 2 ~ 30 년을 살다가,
혹은 50 줄에......
이 모든것을 보면 태어나면
반드시 죽음을 피할 수 없는 것을 알 수 있지만
사람으로 태어났다면 어쩔수 없는 시한부 인생인데
너무 악다부리로 돈에 눈이 어두워 타인을 눈물 빼고,
너무 잔인하게 남을 업신여기며 살면서 재산을 긁어 모아보았자
어차피 갈 때는 두 손에 아무것도 쥐고 가질 못하는 것 아닙니까?
둘째는 '복이 다하여 죽는 죽음'
경에 이르기를 '세간 사람들은 생사를 모르고,
육안으로는 죄와 복을 모른다.'고 했습니다.
일체중생의 목숨은
마치 물거품 같이 기氣가 다하면 소멸 된다고 하였습니다
.
자신이 지니고 있는 복의 과보가 다하면 죽는 것입니다.
이 같은 경우는 많은 조상으로 부터 재산을 물려받았던 사람이
흥청망청 다 써 버리고
마침내는 알거지로 전략하여 굶어 죽는 경우나 같은 이치라 했습니다.
세째는 '뜻 밖의 죽음'
이 경우는 흔히 말하는 횡사,
인데 원래는 죽지 않아야 하는 사람이
갑자기 죽게 되는 경우로 전사戰死라든가,
교통사고라든가,
화재로 인한 사고라든가,
타살이라던가,
짐승에게 물렸다 거나
사전에 미리 알 수 없는 그야말로 졸지의 죽음을 말합니다.
넷째는 '자유 자재한 죽음'
앞 의 세 가지의 죽음은 모두가 예측할 수도 없고,
또한 자기 마음대로 할 수 도 없는 경우지만,
자유자재한 죽음은 사전에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으로
불가에서는 이런 죽음을 생사자여生死自如한 경계라 합니다.
죽음이란 끝나는 것이 아니며,
모든 것이 멈추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경계의 시작인 것입니다.
그 동안 살아 온 육신을 빠져 나온 영혼은
수십 년 간 자라온 인간 세계를 떠나
또 다른 다른 생명의 전개를 위해 출구를 찾기 시작합니다.
세상에 나온 후에는
과거 생의 기억을 잊어 버리게 되는데,
이것을 ‘격음지미激陰之迷’라 하며
이와 같이 전생의 일을 잊어버리는 현상이 있기 때문에
금생에 과거생의 모든 고통을 기억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육신이 죽은 다음에는
우리의 생명은 어떻게 될까요?
우리는 죽은 가족을 생각하면서
죽은 후에 어떻게 되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매년 제삿날이 되면
그들의 왕생극락을 위해 경을 읽고 안녕을 기원합니다.
이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더 해보겠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죽음에 대해서
조금 더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오늘의 따끈따끈한 글을 여기서 마칩니다.
2024년 07월 07일 오전 08:20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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