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강 그물이 널려 있는 곳,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 왔다. 일본의 설치미술가 시오타 치하루의 <Between Us> 전시회를 보기 위해서이다. 동 전시회는 같은 시기에 한남 나인원 가나아트센터에서 동시에 개최되었다. 먼저 평창동 전시회를 소개하고, 그 아래 한남동 전시회를 이어서 올린다.
가나아트센터는 프랑스 건축가 장 미셀 빌모뜨(Jean Michel Wilmotte)가 설계했다. 그는 인천국제공항 세계자로도 유명하다.
<Strange Home>(2016), metal frame, thread
나는 예술 작품을 작가의 과거 스토리와 연결지어 해석하는 것을 그리 선호하지는 않는다. 관람객이 감동받으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브로셔나 보도 자료에서는 이 일본 작가를 설명하는데 어김없이 그녀의 과거 스토리를 드러낸다. 암 투병으로 인한 삶과 죽음 사이에서의 위험하고 불안한 줄타기가 작품 속에 내재되었다는 것이다. 작품을 감상할 때는 경험적으로 그런 스토리를 배제하는 것이 낳을 때가 많다.
검정 캔버스에 실로 이리저리 그어붙인 것이다. 제목이 피부이다.
<Skin>(2020) Thread on canvass
왼쪽부터 <Between us>(2020), <Behind Someone>(2020), <Making Notes>(2020), <Hole>(2020)
하얀 종이에 수채화와 크레파스로 그린 그림인데, 거기에 빨강 실을 이용해 융합 효과를 자아낸다. 그림을 보면 왼쪽부터 여러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나, 내 등뒤에서 나를 압박하거나, 혼자서 뭔가를 끄적거리거나, 알 수 없는 구멍 속으로 빠져들어가려 할 때에도, 빨강 실에 묶여 있어 자유롭지 못한 분위기다.
작품 '구멍'의 클로즈업이다. <Hole>(2020)
작품 '뒤에 누군가'의 클로즈업이다. <Behind Someone>(2020)
왼쪽은 <여행 Voyage>(2020), 오른쪽은 <파랑 드레스 Blue Dress>(2020)
배를 타고 여행하는데, 비눗방울인지 공깃방울인지에 빨강 실에 배가 매달려 있다.
<Side by Side>(2020), Watercolor, Crayon and Thread on paper
<In the Hand>(2019), Bronze, Metal wire
<In the Hand>(2020), Bronze, Brass wire
동으로 만든 '손 안에' 작품들을 관람하면 2층으로 올라가면 전시가 이어진다.
<Cell>(2020),Water, crayon and thread on paper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데 그 아래 지지 기반은 세포(cell), 사람의 실에서 퍼져나온 세포 덩어리이다. cell은 감옥 혹은 암자를 의미하기도 하는데, 타이틀을 보고 자기만의 고독한 방, 그리고 인간을 이루는 세포가 동시에 느껴졌다.
<State of Being>(2020), 네모난 금속 프레임에 배를 넣고 사방을 하양 실로 칭칭 감아 놓았다.
작가는 불확실하고 불안한 현대 사회를 묘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상자 안의 배는 정처 없이 타고 어디론지 흘러들어가는 인간의 위태로운 항해를 그리고 있는 듯 하다.
<State of Being>(2020)
사각의 메탈 프레임에 열쇠, 책, 가위, 꽃 등등을 넣은 후에 하양 또는 빨강 실로 감아 놓은 작품들의 제목은 동일하게 <State of Being>, 즉 '존재의 상태'이다. 실존주의 철학이 느껴지는 단어, Being이다.
<State of Being>(2020)
<State of Being>(2020)
<Out of Body>(2020) '몸 밖으로'라는 제목이 처음에는 무엇일까 했는데, 설치 작품 옆의 하양 실로 칭칭감은 상자 안에 들어 있는 것이 아기 모습의 사진을 품은 작품이 있는것을 보고 느낌이 왔다. 그것의 클로즈업은 아래를 보면 된다
<State of Being>(2020)
<Follow the line>(2017)
<State of Being>(2020)
왼쪽은 '빨강 지붕'의<Red Roof>(2020), 오른쪽은 '세포'의 <Cell>(2020)
<State of Being>(2020), 해부학 책그림이 안에 들어가 있다.
<Cell>(2020)
<Cell>(2020)
이제 가장 유명한 3번째 전시실로 입장한다. 작가가 직접 이 방을 손수 꾸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벽에 실을 이어 붙이고 스테이플러로 찍은 것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작품 '우리 사이에' <Between Us> 입구이다.
<Between Us>(2020), Wool, Chairs, Mixed Media
안으로 들어가 제2전시실을 바라본 모습이다. 누에고치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기도 하고, 거미줄에 걸려버린 것 같기도 하고, 태고의 엄마 뱃속이 이런가 하기도 한다.
<Between Us>(2020), Wool, Chairs, Mixed Media
마룻바닥에 조금씩 다른 디자인의 의자들이 드문드문 놓여 있고, 빨강 실이 의자에서 천장을 연결하고 있다. 위를 쳐다보면 빨강 실로 정신이 없다.
의자에 묶여 있는 실들을 보면, 의자는 사물이니 자유 의지로 움직임이 가능한 생물체인 인간은 안 묶여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는 없을까 혼자 스스로 위로해 본다.
한 켠에 둥그렇게 아치 모양으로 실들을 엮어 놓아 관람객이 걸어 나가는 통행로를 만들어 놓았다.
이제 밖으로 나간다. 빨강 실에 묶여 있는 곳은 여기까지이다.
같은 작가 시오타 치하루의 전시가 나인원 한남의 가나아트센터에서도 진행되고 있었다. 규모는 평창동보다는 훨씬 작은 방 같은 곳이었다.
이곳은 나인원 한남 아래의 고메이 494이다. 주상복합 나인원 한남에는 지드래곤, 장윤정, 이종석이 산다는 곳이다^^
이렇게 메탈 프레임에 갇혀 있는 작품들은 동일한 제목 '존재의 상태'인 <State of Being>이다. 안에 들어 있는 물건들만 다른데, 위의 까망 프레임 안에는 책들이 있다.
열쇠들이 들어 있는 '존재의 상태'
작품 내용 구성은 평창동과 유사하다. 2군데를 돌아보니, 그녀의 작품 패턴 2가지가 느껴진다.
1) 정방형 메탈 프레임에 소품을 넣고 색색의 실로 휘감아 빠져나오려면 그 줄들을 다 잘라버려야 할 것 같은 <존재의 상태 State of Being>
2) 크고 작은 동그란 형태의 꿀렁꿀렁한 것들(세포)이 사람과 연결되어 있어 분리될 수 없는 감옥처럼 느껴지는 작품은 <세포 Cell>
손에 brass wire을 감고 있는 이 작품을 보면, TV 프로그램이 다 끝나서 찌지직 하는 모습이 연상된다. 아마 아무것도 없이 이렇게 찌지직 하고 있을, 즉 '무'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될 죽은 이후의 모습을, 어떻게든 살겠다고 손이 부여잡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죽은 다음에는 뭐가 있을지도 모르니 그냥 현존을 열심히 사는 도리밖에 없다. 소크라테스가 죽기 전에 그랬다. 죽은 후가 생존 보다 낳을지는 아무도 모르지 않느냐고 말이다. Nobody knows after death! 그런데 인간은 모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너무 크다. 그래서 불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