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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신분석학> - 욕망을 다스리는 무의식의 힘!
초월적 자아에 대한 해석의 실마리 제공… 다양한 영역에서 사유의 폭 넓혀나가
시작하며
그러나 무의식은 일종의 근본적 역설 안에 있다.
왜냐하면 그것은 무의식이기 때문이다. 무의식이기에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고, 이게 바로 네 욕망이고,
이게 바로 네가 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말해주어도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건 알 수 없는 그 세계를 들여다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연유로 무의식에 대한 이론이나 사유는 크게 진전될 수 없었다.
다만 무의식에 관한 몇몇 개념만이 있을 뿐이었다.
20세기의 벽두에 프로이트가 개척한 정신분석학은 바로 이 점에서 남다른 면모를 갖고 있었다.
먼저 그는 무의식의 존재를, 그 세계에 접해보지 못한 사람도 확신할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하고 극적인 사례를 풍부하게
수집해 보여준다.
가령 신경증 환자들의 강박증적인 행동들은, 환자 자신으로서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다.
그는 그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의 밑바닥에, 환자 자신도 모르고 있는 어떤 상처나 사건, 경험이 묻혀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환자 자신의 경험이고 자신의 입에서 나온 것이기에 그 역시, 아니 그의 몸이 알고 있는 것이지만, 알고 있음을
모르고 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그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사실은 어떤 일반적인 욕망이나 욕구에 기초하고 있음 또한 보여주었고, 그것을 통해 이해할 수 없던 행동들을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변환시킬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러한 행동들이 단지 환자라는 극단적인 사람들만이 아니라 정상적인 우리들의 일상생활 속에도 마찬가지로 항존함을 보여주었다.
꿈, 말의 실수, 농담 등이 그것이다.
이로써 그는 무의식이 모든 사람들이 갖고 있는, 잠재적 형태로 항존하면서 일상적인 모든 행동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는
어떤 것임을 보여준 셈이다.
나아가 그는 이러한 무의식이 작동하는 방식과 동력까지 일반화해서 보여준다. 무의식의 기저를 이루는 것은 일차적으로
흔히 ‘리비도’라고 부르는 성적인 충동 내지 욕망(‘이드’ 혹은 ‘거시기’)이며, 거기에 그것을 제어하고 통제하려는 힘(‘초자아’)과, 이 두 힘 사이에서 양자의 대립을 조정하는 ‘자아’가 추가된다.
세 가지 힘들의 역학관계가 사람들의 모든 행동을 만들어낸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예술이나 진리를 추구하는 활동조차, 일차적으로는 성적 욕망이 이런 역관계 속에서 ‘승화’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가령 그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품과 글, 심지어 세탁표까지 분석해서 그의 작품이 사실은 모두 성욕과 관련된 것임을
보여준다.
이처럼 무의식에서도 일차적인 자리를 차지한 성적 충동은, 사람이 동물과 별로 다르지 않은 존재임을 보여주는 개념인
셈이다.
잠재된 형태로 일상에 커다란 영향력 행사
여기서 다시 출발하는 프로이트는 이제 사람들의 ‘인격’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설명하려고 한다.
모든 사람의 일차적인 본능의 자리를 차지한 성욕은 본질적으로 어머니와 하나가 되고 싶다는 욕망이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이기를 포기한’ 욕망이고, 따라서 허용될 수 없는 욕망이다.
아버지가 개입하고, 거세공포를 이용해 아이로 하여금 엄마와 자려는 욕망을 포기하게 한다.
이에 대한 반감에서 살부의 욕망이 무의식에 자리잡지만, 아이는 복종을 요구하는 규칙을 받아들이고, 불가능한 욕망을
포기하는 대신 아버지와 동일시하는 타협을 한다.
이 좌절된 욕망을, 그러나 결코 사라지지 않으며 잠재화된 이 욕망을 그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고 부른다.
알다시피 테베의 왕인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인 왕비와 결혼한 오이디푸스 왕의 비극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이러한 복종이 법이나 규칙에 대한 복종의 출발이며, 이로써 가족의 질서, 친족의 질서, 사회의 질서가 가능하게 된다.
문명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 바로 이런 계기를 통해서다.
하지만 그 문명은 아버지에 대한 불만처럼 근원적으로 소멸되지 않은 불만을 담고 있다.
대부분 풍부한 임상사례로 가득 찬 그의 이러한 분석은 놀랄 만한 설득력을 갖는 것이었다.
그가 말한 내용은 처음 들었다면 누구라도 반발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이론은 무의식에 대한 진정한 과학을 창안하고 발전시킨 것으로 인정받았다.
이후 융이나 아들러, 클라인, 라이히 등의 탁월한 정신분석학자는 나름의 새로운 방향으로 그의 이론을 밀고 갔지만,
누구도 무의식의 문제에서 프로이트가 이룬 업적은 부정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시간이 더 흐르면서 프로이트의 영향력은 정신의학이나 심리학을 넘어 문학이나 예술은 물론 인류학이나 신화학, 철학,
사회학 등으로 확장된다.
특히 프랑스의 사회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와 자크 라캉은 이러한 확장과 일반화에서 중요한 분기점을 만들어낸
사람이다.
레비―스트로스는 거의 모든 종족의 혼인제도와 신화에 나타나는 근친상간 금기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대응시켰고,
그것을 통해 친족관계의 구조를 심층적인 차원에서 보여주려고 했다.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라캉은 구조언어학의 연구와 결합하여 프로이트의 이론을 철학적인 차원으로 확장하고 일반화했다.
프로이트이 선구적 연구로 철학적 차원 접근
레비―스트로스는 무의식이란 개념을 통해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근대철학의 출발점이 되었던 데카르트의
명제를 비판한다.
즉 그것은 나라는 주체 내지 자아를 오로지 의식적인 존재로 가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무의식이라는, 자신이 알지 못하고 있는 심층이 있으며, 그것에 의해 내가 행동하고 욕망한다면, 차라리 이렇게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생각한다. 고로 나는 생각하지 않는 곳에 존재한다.”
여기서 ‘존재하지 않는 곳’이란 의식 내지 의식적 주체인 내가 존재하지 않는 곳이고, ‘생각하지 않는 곳’이란 의식이 생각
하지 않는 곳이다.
그곳은 무의식이란 이름으로 불리는 곳이다.
결국 나라는 주체 내지 자아 안에 무의식이 존재한다는 것은, 의식이 알 수 없는 영역과 의식으로 그 주체(자아)가 분열돼
있다는 것을 뜻하며, 의식이나 생각이라는 특징으로 주체를 정의할 수 없음을 뜻한다.
주체란 개념은 불가능하다는, 현대 철학의 매우 중요한 명제가 바로 여기서 명확하게 이론적으로 자리잡게 된다.
반복이지만, 프로이트는 모든 욕망을 성욕으로, 오이디푸스적인 욕망으로 정의했고, 다른 욕망이나 활동, 심지어 성욕과
무관한 창조활동이나 성욕에 반하는 욕망조차 이런 성욕이 승화된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가족이나 친족관계, 결혼과 관련된 관계에서 사람들의 행동은 적절하게 설명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거기를 벗어난 활동을 그걸로 설명하는 데는 무리와 억지가 따른다.
혹은 모든 작품이나 활동, 태도나 증상에서 성욕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발견할 수 있다는 프로이트의 신념에 따르면,
어떤 분석도 결론은 정해져 있는 셈이다.
그렇지만 세상사가 그렇게 단순하고 명료하리라고 생각한다면 지나치게 순진한 것이다.
모든 욕망이 성욕이며, 엄마―아빠―나라는 오이디푸스 삼각형 안에 갇혀 있다는 것은 증명할 수 없는 명제일 뿐이다.
철학자 질 들뢰즈와 함께 쓴 책에서 정신분석가 가타리는 정신분석을 비판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욕망이란 어떤 활동을 생산하려는 의지이고, 따라서 성욕 이전에 생산적인 힘 그 자체와 결부돼 있다.
욕망이란 항상―이미 사회적으로 투여되는 것이란 점에서 사회적 욕망이고, 다양한 방향을 향해 뻗어나가는 것이란 점에서 분열적이다.
그것이 오이디푸스 삼각형 안에 갇히는 것, 가족적 영역에 갇히는 것은 자본주의에서 나타나는 특별한 현상일 뿐이라는
것이다.
또한 미셸 푸코는 환자의 고백을 요구하고 그것을 들어주며 그것을 통해 감춰진 오이디푸스적인 (악한!) 욕망을 찾아주는
정신분석가의 구실이, 17세기 이래 강화된 고해제도 아래서 신자들의 성생활에 대한 고백(고해)을 요구하면서 그들의
악한 욕망을 드러내고 성적인 욕망을 통제하려고 했던 사제들의 구실과 동일하다고 비판한다.
그런 점에서 정신분석가란 근대의 사제라는 것이다.
이제는 정신분석학으로 사회적 욕망 해석한다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정신분석학은 여전히 수많은 영역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것은 무의식과 욕망에 관한 사유를 가능하게 했다는 점에서, 무의식에 대해 말하려는 한 피할 수 없는 통과점이 된
것이다.
물론 거기를 어떤 식으로, 어떤 방향으로 통과할 것인가는 다른 문제지만 말이다.
2. <구조언어학> - 기호의 약속, 말이 통하네!
사회적 관계를 맺어주는 언어의 과학… 다양한 말글살이는 구조 밖에 존재
‘구조’라는 말은 약간이라도 심각한 말을 하거나 글을 읽을 때면 쉽사리 부닥치는 단어다.
‘사회구조’ ‘정신구조’ ‘경제구조’ ‘심리구조’ 등등. 그래서 매우 익숙한 말이지만, 사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를 물으면 대답
하기가 그리 쉽지는 않다.
언어에 대해서도 이런 말은 사용된다. ‘언어구조’. 구조언어학이란 쉽게 말하면 이 ‘언어구조’를 연구하는 언어학을 말한다. 확실히 구조언어학은 언어구조를 연구하는 중요한 방법을 보여주었다.
그렇지만 그저 그뿐이라면 그런 언어학이 ‘구조주의’라고 불리는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냈다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
그것은 언어에 대한 연구였지만, 언어의 영역을 넘어서 사용할 수 있는 아주 새로운(당시에는 ‘과학적인’이라는 말이
선호되었다) 사고방법을 제시하고 있었다.
만일 개를 개라고 부르지 않는다면…
구조언어학의 탄생지점에 있는 사람으로 흔히 꼽히는 사람은 스위스의 언어학자 페르디낭 드 소쉬르와 프라하 학파의
야콥슨과 트루베츠코이 등이다.
1915년, 바이이와 세쉬에는 제네바대학에서 행한 소쉬르의 ‘일반언어학 강의’의 노트들을 정리해서 <일반언어학 강의>라는 제목의 책을 펴낸다.
강의를 직접 듣지 않았을 뿐 아니라, 자기 나름대로 편집해서 후일 많은 비난을 받았지만, 어쨌든 이 책은 이후 구조언어학의 태동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고, 구조주의자들의 필독서가 되었다.
다른 한편 구조언어학의 직접적 창시자인 야콥슨과 트루베츠코는, 한때 문학작품이 다루는 내용보다는 문체나 언어적 표현 등에 주목했던, ‘러시아 형식주의’에 속했던 러시아인이다.
체코슬로바키아로 이주한 그들은 다른 체코슬로바키아 언어학자들과 함께 프라하 언어학회를 결성하는데,
이들이 후일 ‘프라하 학파’라고 불린다. 그리고 이 학파가 구조언어학의 본산지가 된다.
구조언어학이 새로이 제시한 것은 무엇인가? 먼저 그것은 언어학의 대상을 하나하나의 기호나 개별적인 문장이 아니라
언어를 사용하는 사회적 규칙, 사회적 약속으로 정의한다.
언어는 모두 사회적인 약속이요 규칙이다. 내가, 가령 지나는 행인만 보아도 마치 도둑인 양 몰며 시끄럽게 짖어대는 저
피곤한 동물을 개라고 부르기 싫다고 다르게 부른다면, 부르는 건 자유지만 남들이 그걸 알아들을 순 없을 것이다.
“나는 그대를 사랑해”라는 말이 너무 상투적이어서 싫다고 가령 “니구 고투하 란살까”라고 말한다면, 아무도 그 말을 알아
듣지 못할 것이다.
불만스러워도 남들이 알아듣게 하려면 문법이라는 사회적 약속과 규칙에 따라야 한다.
그래서 소쉬르는 언어란 사회적 규칙이라고 했고, 이 사회적 규칙으로서 언어를 ‘랑그’라고 불렀다.
그런데 특정한 대상에 대해 어떤 기호를 사용할 것인가 하는 것은 자의적이다.
우리는 저 동물을 ‘개’라고 부르지만, 굳이 그렇게 부를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모두가 그걸 “쭈꾸”라고 부르기로 약속했다면, 우리는 그 동물을 ‘쭈꾸’라고 부르고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기호는 그것이 지시하는 대상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걸 소쉬르는 ‘기호의 자의성’이라고 부른다.
한편 기호는 이미 존재하는 다른 기호들과 관계 속에서 사용되고, 그것과의 관계 속에서 의미를 갖게 된다.
다시 말해 어떤 기호의 의미는 다른 기호와의 관계 속에서 결정된다.
관련된 기호들이 달라지면 의미도 달라진다.
예를 들어 영어의 ‘머튼(mutton)’은 불어 ‘무통(mouton)’에서 나온 말이다.
그런데 불어 무통은 살아 있건 죽었건 모든 양을 가리키지만, 영어에서는 그 말이 들어오기 전에 양(sheep)이란 말이 있었
기에, 무통은 죽은 양, 즉 양고기를 가리키는 데만 사용되었다.
새로운 기호가 이미 사용되고 있던 기호들과의 관계 속에서 다른 ‘의미’를(소쉬르는 이를 기호의 ‘가치’라고 불렀다) 갖게
된 것이다. 이는 기호의 의미를 다른 기호와의 관계에서 보아야 한다는 중요한 사고방법으로 이어졌다.
이런 생각은 ‘음소’라는 개념으로 이어진다. 음소란 언어적인 소리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인데, 발음기호로 표시하는 b와 v,
a와 e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가령 vavo라고 하든 babo라고 하든 우리는 모두 ‘바보’라고 알아듣는다.
왜냐하면 우리 말에서는 b와 v가 구별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비슷한 소린데도 우리는 ㅃ과 ㅍ을 구별하지만, 영국인들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이 두 소리가 영어에서는 구별되는 특질을(‘변별자질’이라고 한다) 갖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변별자질은 다른 소리와 관계 속에서 대립되는 특질을 가질 때 나타난다.
즉 다른 소리(ㅂ)와 대립적인 관계 속에서만 우리는 ㅃ을 알아듣고 사용한다.
이런 생각은 나중에 구조주의의 중요한 사고방법으로 이어진다. 그에 따르면 어떤 것도 다른 것과의 관계 속에서 그 의미가 결정된다(달라진다).
예를 들어 흑인은 백인들과의 특정한 관계 속에서만 노예가 된다. 관계가 달라지면 그들의 의미는 달라진다.
어떤 문장들의 의미는 다른 어떤 문장들에 끼어들어가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이처럼 어떤 것도 그것을 둘러싼 관계 속에서 그 의미가 결정된다는 식의 생각을 ‘관계주의’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관계가 의미를 규정…규칙적 언어 배열
구조언어학은 작은 영역에서는 이런 새로운 방법으로 음소나 기호의 이론을 펼쳤다면, 더불어 언어구조를 파악할 수 있는 새로운 틀을 제시했다.
그것은 마치 데카르트 평면의 x축과 y축처럼 단어들의 배열이 이루어지는 두 축을 찾아낸 것이다.
가로축은 예컨대 “나는 그 여자를 죽도록 사랑했다”처럼 단어들이 서로 일정한 규칙에 따라 배열되고 결합되는 축이다.
이를 결합축(결합체)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여기서 ‘나’라는 말은 ‘너’나 ‘그’, ‘개’, ‘갈릴레이’ 등과 같은 다른 말로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그 여자’도 마찬가지다. ‘사랑했다’ 역시 ‘미워했다’ ‘슬퍼했다’ ‘먹었다’ 등으로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이처럼 가로축의 각 자리에 있는 단어들은 다른 단어로 얼마든지 대체될 수 있는 단어들의 계열을 갖는다.
이는 보다시피 세로축을 그리면서 가로축과 교차하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이 축을 계열축(계열체)라고 부른다.
그런데 가로축의 말들은 서로 긴밀히 연관되어 있어서 ‘그 여자를’이란 말을 생략해도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있다.
이처럼 가로축에서 단어들은 긴밀한 연관성(이를 인접성이라고 부른다)을 갖고 결합된다.
반면 ‘그 여자’와, 그것을 대체할 수 있는 ‘그 개’나 ‘저 빵’은 유사성을 갖고 있다. 즉 세로축에서는 유사성 연관에 따라
단어들이 다른 단어로 대체된다.
야콥슨은 인접성 연관에 따른 단어들의 결합을 ‘환유’라고 불렀고, 유사성 연관에 따른 단어들의 대체를 ‘은유’라고 불렀다. 이는 언어학이 시학 내지 수사학으로 나아가는 문턱을 형성하는 개념이 되었다.
이러한 사고방법은 이후 구조주의에서 구조라는 개념을 발전시키는 데 중요한 또 하나의 재료가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에 망명했던 클로드 레비 스트로스는 거기서 야콥슨과 만났고, 그에게서 구조언어학을 배웠으며, 그것을 인류학 내지 인문과학에 이용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수학이 거기서 또 하나의 중요한 구실을 한다.
많은 사람들은 이런 구조언어학의 방법이 사변을 통해 진행되는 다른 철학이나 실증주의적 방법과 달리 과학적이라고 확신했다.
“단어의 의미는 사용법에서 나온다”
구조언어학은 언어를 기호(기표)들의 집합체로만 다룬다.
그것이 구조언어학의 고유성이고 ‘장점’이기도 했다.
그러나 대개 그렇듯이 결함과 ‘단점’이 나타나는 곳은 바로 그 장점이 뻗어나간 곳이다.
일단 그에 따르면 우리는 언어를 배우는 것이 불가능하다.
단어의 의미를 배우려면 관련된(사실 무한히 많은) 다른 단어들을 이미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또 구조언어학자들은 사회적 약속에 대해 강조하면서 개별적인 발화가 갖는 특성은 언어학에서 제외해버렸다.
그러나 예컨대 우리는 ‘오늘밤’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전혀 다른 수많은 의미를 만들어 전할 수 있다.
어조를 바꾸고, 말투를 바꾸고, 음고를 바꾸면 전혀 다른 기호가 된다.
이는 다른 기호들을 수반하지 않으며, 다만 발화 방식을 바꿈으로써 진행된다.
사실 “시원하다”라는 하나의 단어도 얼마나 다르게 사용될 수 있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김치찌개를 먹을 때, 사우나에서 나올 때, 화채를 먹을 때 등등.
이런 점에서 단어의 의미는 그 단어의 사용법이라는 비트겐슈타인의 말이 더욱더 설득력이 있다고 보인다.
같은 단어도 다른 방식으로 사용하면 다른 의미를 갖는 것이다.
‘강아지’와 ‘개새끼’의 차이는 기호들의 상호관계보다는 차라리 언제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이 더 적절
하지 않을까?
하지만 이는 구조언어학으로선 다루지 않는 것이다.
사실은 우리의 삶은 이런 식의 용법에 더 익숙하고 가까운데, 과학이 된다는 것은 이 세계로부터 이토록 멀어져야 하는
것일까? 우리에겐 소중한 많은 것들을 이렇게 버려야 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꼭 그러면서까지 과학이 되어야 하는 것일까?
3. <모더니즘> - 상식을 거부하는 다른 느낌!
실험정신으로 무장한 예술·사상적 전위 형성… 당대에는 빛을 보지 못한 저주받은 존재
번역하면 ‘근대주의’ 내지 ‘현대주의’가 될 말인 모더니즘은 문학이나 예술에서 주로 사용되었던 개념이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말을 떠올린다면, 그게 단순히 예술 영역에서 일어난 특정한 사조를 지칭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포스트모더니즘처럼 이 말 또한 모호한 외연을 갖는다. 그것은 근대(modern)라고 불리는 역사적인 경계와 관련된 것이다(그러나 이 모호함에 대해서는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 쓸 때 다시 언급할 것이다).
전통적 관행? 그런 건 없는 거야
모더니즘이란 말에 담길 것이 가장 먼저 출현한 곳은 회화였다.
통상 현대회화의 출발점으로 삼는 1906년은 피카소의 그림 <아비뇽의 아가씨들>이 그려진 때다.
아프리카 조각을 연상시키는 것을 아가씨의 얼굴로 그려놓고, 등에다 얼굴을 붙여놓은 이 그림은, 피카소라는 사람이 데생도 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는 비난을 낳았지만, 사실 그는 여러 방향에서 본 형태를 하나의 시점에서 볼 수 있게 만듦으로써, 하나의 시점에서는 오직 하나의 면, 한 가지 형태를 볼 수 있을 뿐이라는, 회화의 오래된 전통을 깬다.
투시법(회화에서는 ‘원근법’이라고 잘못 불리고 있지만)이라는, 사물을 보고 그리는 오래된 방법이 거기서 깨지고 만다.
이런 시도의 단서는 사실 고흐나 세잔 같은 후기 인상주의 화가들에게도 있었다.
고흐는 애시당초 사물의 정확한 묘사나 재현에는 관심이 없었고, 저기 불 같은 삼나무처럼 끓고 있는 자신의 열정을 표현
하는 그림을 그렸고, 세잔은 색채와 형태의 관계를 표현하는 데 필요하다면 투시법도 위반하면서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이들은 사물을 정확하게 재현하는 방법인 투시법과 대결하겠다는 것을 명시하거나 목표로 한 바 없다.
그러나 피카소나 브라크, 혹은 마티스 등은 그것을 투시법에 대한 대결로 이해했으며, 그것을 더 밀고 나가 투시법이 깨진 공간 속에서 그림이 어떻게 그려져야 하는가를 고심했다.
그래서 종종 입체파 혁명은 세잔에 대한 피카소의 ‘오해’에서 비롯했다고 농반진반으로 얘기된다.
이후 회화는 사물의 정확한 재현이라는 오래된 강박에서 벗어나, ‘추상 충동’(예를 들면 입체파)이나 ‘감정이입 충동’(예를
들면 표현주의)에 따라, 색채와 형태의 구성물로 그려지게 된다.
이후 그림을 이해하는 건 그만두고, 그게 뭘 그린 건지 이해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 된다.
재현에 반하는 저항은 비슷한 시기에 문학에서도 나타난다.
의식이나 정신의 무질서하고 혼란된 움직임을 그대로 따라가면서 즉각적으로 기록하고자 했던 제임스 조이스나 세심하게 재구성된 기억의 여행을 통해서 ‘잃어버린 시간’(지나간 시간)을 되찾고자 했던 마르셀 프루스트, 혹은 서로 인접하여 있는 사무실들로 둘러친 둘레를 갖는, 그래서인지 접근하고자 해도 접근할 수 없는 중앙을 갖는 법과 관료제가 지배하는 근대적 ‘성’을 묘파했던 프란츠 카프카 등이 그렇다.
사물 세계의 법칙적 질서나 그 속에 존재하는 주인공인 ‘나’들의 삶을 재현하려고 했던 근대적 서사는 이들과 더불어 근본적인 동요를 경험하게 된다.
재현적인 내러티브를 조직하던 선형적인 시간의 흐름과 잘 정돈된 공간의 질서는 깨지고, 주제도 줄거리도 사라진다.
그 대신 사물의 표면을 스치며 지나가버리는, 붙잡을 수 없는 현재나, 그 현재를 따라 우리로부터 아스라이 멀어져 가버린 과거가, 때론 과거를 현재로 불러내는 기억의 선을 따라, 때론 미래를 현재로 이끄는 욕망의 선을 따라 되살아난다.
“되찾은 시간” 혹은 위반하기 전에는 알 수 없는 코드(법조문! 규칙!)들로 짜여진 세계, 그래서 나를 위해 마련된 문 앞에서도 들어가지 못하고 주변만을 서성대는 ‘나’의 우화적인 삶이 표현적 힘을 갖고 되살아난다.
물론 그것을 이해하고 거기서 재미를 느끼며 감동을 얻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 되었지만.
음악에서 모더니즘은 약간 다르다.
왜냐하면 음악은 근대음악의 경우에도 어떤 것을 단순히 재현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지진 않았기 때문이다.
서양의 근대음악은 ‘조성’이라고 부르는 형식에 바탕하고 있었다.
그러나 바그너를 필두로 하여, 드뷔시나 스트라빈스키, 쇤베르크 등에 이르면 조성 전체가 깨지고, 나아가 ‘박자’라는 시간적 형식도 깨진다.
이른바 무조음악이 시작된다.
쇤베르크는 무조음악을 더 한층 밀고 나가 ‘12음 기법’이라는 새로운 작곡법을 제시했는데, 이는 보통 ‘주제’(가령 베토벤
<운명> 교향곡의 ‘빠바바 밤’ 같은 것)라고 불리는, 재현과 관련된 최소한의 요소마저도 제거해버린다.
이후 ‘추상적 구조’를 추구하는 음악과 ‘표현적 능력’을 추구하는 음악이 현대음악의 커다란 두 방향을 이루게 된다.
이제는 음악도 듣기 힘든 것, 아니 때론 고통스런 것이 된다.
골치 아픈 재해석… 먼저 느낀 자들의 고통
이런 점에서 모더니즘은 한마디로 말해 “골치 아픈 것”이다.
그것은 알아보기 힘든 그림을 그리고, 알아듣기 힘든 곡을 만들며, 알아먹기 힘든 시나 소설을 쓴다.
하지만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이전에 사람들은 무언가를 재현하는 것, 그래서 그걸 보거나 들으면 무언가를 떠올리는(표상하는) 데에 익숙해져 있었고,
따라서 보거나 듣고서도 어떤 것을 떠올리기 힘들면, 골치 아프고 어려운 것, 불편한 것으로 간주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반면 모더니즘은 어떤 모습을 표상하기(떠올리기)보다는 어떤 강렬함을 느끼게 하려고 한다.
혹은 단순한 하나의 형태를 떠올리기보다는 형태들이 뒤집히거나 뒤섞이는 복합적 양상을 느끼게 해주려고 한다.
그래서 그것은 골치 아프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의 작품을 보면서 무언가를 명확하게 떠올리려 하는 노력만 접어둔다면, 대신 그것을 통해 우리의 신체를 울리는 어떤 것을 느끼고 체험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골치 아플 거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잘 ‘느끼는’ 사람과 못 느끼는 사람은 어떤 차이가 있냐고?
그건 강렬도의 차이다. 표현된 무언가를 강렬하게 느꼈다면 그건 그 작품을 잘 알게 된 것이고, 그게 약했다면 아직도 잘
모르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모더니스트들은 상투적인 형태나 상식화된 스타일을 깨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고자 한다.
그들이 보기에 그런 실험정신이 없는 예술은 (모던) 예술이 아닌 것이다.
그들이 스스로를 ‘아방 가르드’(전위)라고 부르고자 했던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그들은 시대를 앞서가며, 남들이 아직 느끼지 못한 것을 앞서 느끼고, 그것을 표현하고자 했다.
골치 아픔 내지 난해함이라는 문제는 바로 이런 사정에 연유하는 거라고 그들은 생각한다.
따라서 그건 시간이 좀 지나면 익숙해 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때 그들은 생소하고 익숙지 않은 무언가를 또다시 앞서 느끼고 표현하려 하겠지만.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이 ‘저주
받은 존재’라고 생각했다.
언제나 비난받고 외면당할 저주받은 운명.
물론 지금은 저주받은 존재가 아니라 위대한 예술가요 심오한 사상가로 존경받고 있지만.
더불어 대학의 중심에 자리잡고 앉아, 많은 대학교수들을 먹여 살리고 있지만.
근대의 정치는 ‘대의’(representation)라는 형식을 특징으로 갖는다.
이른바 국민의 이익을 대의하는 국회의원이나 그들로 구성되는 국회가 그렇고, 역시 국민을 대표하는 존재로서 뽑히는
대통령이 그렇고, 그가 지휘하는 정부가 그렇다.
비슷하게 근대의 예술은 ‘재현’(representation)을 특징으로 갖는다.
줄거리를 통해 사건을 재현하고, 그것을 통해 삶이나 세계의 법칙을 재현하는 소설이 그렇고, 대상을 정확하게 재현하려는 그림이 그렇다.
반면 모더니즘은 지금까지 본 것처럼 이러한 재현에 맞서 싸운다. 그것은 재현하려 하기보다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체험하는 세계를 다른 방식으로 표현(expression)하려 한다.
그것은 무언가를 떠올리게 하려 하기보다는 무언가를 느끼게 하려고 한다. 혹 그것이 재현하려는 경우가 있다면, 그것은
재현할 수 없는 어떤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모더니즘은, 모던(근대적)이라는 말과 정 반대로 모던한 방법, 모던한 예술에 반대하며,
그것을 넘어서려 한다.
따라서 모더니즘은 ‘근대주의’로 번역될 수 없다. 그것은 대개 근대주의라기보다는 차라리 ‘반(反)근대주의’기 때문이다.
반복되는 세상사, 그래도 차이는 있다
이렇게 볼 때 모더니즘은 흔히 하는 비난처럼 퇴폐적인 데카당스가 아니라 전투적인 ‘전위’들이었다.
그들은 심지어 현실에 대한 직접적 비판을 하지 않는 경우에조차 이 현실의 커튼으로 가려진 것을 들추어내고, 눈에 보이는 세계를 전혀 다른 측면에서 보게 하려는 것이란 점에서 강렬한 비판이다.
물론 그들의 실험이 언제나 성공하는 것은 아니며, 그들이 새로이 찾아낸 것이 언제나 삶에 도움이 되는 건 아니라고 해도 말이다.
어차피 세상사는 반복인지 모른다. 가령 화이트헤드는 플라톤 이래 서양의 철학사는 플라톤에 대한 주석의 역사였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만약 그 ‘주석’들이 그저 플라톤의 단순한 반복이었다면, 2000년을 계속해서 반복될 수 있었을까?
차이를 만들지 못하는 것은 그처럼 반복되지 못한다.
그러한 차이가 없다면 반복되는 세상사는 지루하고 견디기 힘든 것일 될 것이다.
그렇다면 반복되는 세상사에 차이(difference)의 틈새를 만들고, 다른(different) 측면에서 보고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려는
것은 반복에 덤으로 추가되는 사소한 조건이 아니라, 반대로 반복되는 세상사를 유의미하게 만드는 결정적 조건이라고 해도 좋지 않을까?
그렇다면 차이를 만드는 작업의 그런 가치를 찾아냈던 모더니즘을 ‘저주받은 운명을 자임하는 시대착오적 전위’라고 비난
할 건 없지 않을까?
4. <포스트모더니즘> - 이성의 지배는 정당한가
삶의 근본에 의문 던지며 사고의 전환 추구… 거들떠보지 않았던 것들의 미덕 찾아
걸프전이 한창일 때, 대표적인 포스트모더니스트 중 하나인 보드리야르는 그 전쟁이 ‘시뮬레이션’이라고 주장해 약간의
소란을 야기한 적이 있다.
그것은 미사일이 날아가고 전투기가 폭격을 하는 것이 모두 다 모니터상에 나타난 계기를 통해 컴퓨터로 조작된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런 과정이 TV로 생중계방송됐다는 점에서 시뮬레이션 게임과 다를 바 없다는 주장으로 간주되었다.
그가 말하는 시뮬레이션이란 “원본도 사실성도 없는 과잉실재(hyper-reality)를, 모델을 통해 만들어내는 작업”이었기에,
그것은 마치 실제 전쟁은 없고 상상적인 게임과 같은 전쟁의 모사물만이 있다는 주장처럼 들렸다. 그래서 폭격과 미사일로 죽어가는 이라크 국민을 생각했던 모든 진지한 사람들은 그 ‘철없는’ 발언에 한결같이 분노를 표시했다.
총체성의 붕괴와 합리성의 해체
하지만 그의 말을 조금 진지하게 이해해준다면, 이라크 전쟁은 그런 전쟁이 사실은 항상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유별난 전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디즈니랜드가 ‘실제의’ 나라, ‘실제의’ 미국 전체가 디즈니랜드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서 거기 (따로) 있듯이.
그리고 감옥이, 사회 전체가 감옥이라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거기 (따로) 있듯이”.
동시에 그것은 미국의 지배에 저항하거나 거슬리는 자는 누구나 저렇게 되리라는 것을 알리기 위한 하나의 시뮬레이션
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말의 진의야 알 수 없는 것이지만, 이전에는 공격을 하는 전쟁국이 전쟁의 규모와 참상을 은폐하고 감추려 했다면,
이 전쟁은 오히려 광고처럼 선전하고 전쟁의 과정을 중계방송하도록 했다는 점에서 확실히 다르다.
그리고 그것은 TV나 라디오, 신문 등의 매체가 스타라고 불리는 대중의 영웅들을 매일매일 만들어내는 방식을 그대로 똑
닮았다. 덕분에 야구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 나 같은 사람도 유명 야구선수의 사생활에 대해서까지 알게 된다.
배우나 정치인은 차라리 고전적이다. 이젠 의사와 교수까지도 대중매체의 시뮬레이션 과정을 통해 스타로 재탄생한다.
이런 현상은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단어를 듣고 가장 자주 떠올리게 되는 사례다. 하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이 ‘뜨게’ 된 계기는 아마도 ‘총체성’의 붕괴, ‘합리성’의 해체와 결부되어 있다.
각각의 부분들을 하나의 유기적 전체의 일부로 만드는 그런 통일성이 불가능하게 되었다는 선언, 이성의 빛이란 이름으로 미세한 삶을 통제하는 섬세한 권력과 통제의 망을 발명한 계몽적 이성에 대한 비판이 그것이다.
가령 모든 사회운동은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조직을 통해서 총체적인 통일성을 획득해야 한다는 생각, 이성이란 이름으로
행해진 정념과 감정에 대한 억압이나, 문명의 이름으로 행해진 ‘야만’에 대한 비난이 그런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리오타르는 이런 비판을 철학적으로 확장하여 전세계적인 ‘유행’이 되게 만든 장본인이다.
그렇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은 철학 이전에 예술에서 발생했다. 특히 그것이 가장 먼저 태어난 곳은 건축의 영역에서였다.
20세기 초반에 국제주의 양식이라는 이름으로 확산된 이른바 ‘모더니즘’ 건축은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설리반)는 명제와 “더 적은 것이 더 많은 것이다”(미스 반 데어 로에)라는 슬로건을 원리로 새로운 건축운동을 진행시켰다.
그들은 그리스·로마풍의 고전적 건축양식을 절충적으로 사용하면서 거창한 장식으로 사방을 둘러친 19세기 건축에서 허장성세와 허영심을 읽어낸다.
그들은 장식을 비판하면서(“장식은 죄악이다”), 기능에 적합하며 구조적 힘을 드러내는 육면체의 콘크리트 박스들로
도시를 채우고 다녔다.
우리가 사는 아파트나, 어디 가든 즐비한 직육면체형의 수많은 건물들을 보면, 그들의 ‘모더니즘’ 운동이 얼마나 성공적
이었는지 잘 알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건축에서 이러한 모더니즘은 문학이나 미술 등에서의 그것과 크게 다르다.
시간적 및 공간적인 통일성이 지배하는 세계, 하나의 원리나 규칙이 지배하는 합리화된 세계에 대한 비판으로 진행된 다른 예술의 모더니즘과 반대로, 건축의 모더니즘은 단일한 원리, 강력한 총체적 통일성, 불필요하거나 통일성을 깨는 모든 요소의 배제라는 근대적 합리주의의 땅 위에 서 있었다.
나아가 그들은 그러한 합리성으로 건물은 물론 도시와 세계를 재구성하고자 했다.
그래서 벤튜리처럼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의 원조가 된 사람은 단일성 대신에 복합성을, 통일성 대신에 모순과 갈등을 강조
하며, 라스베이거스 거리에서 새로운 건축의 요소를 발견했다.
그는 “더 적은 것은 많은 것이다”(Less is more)라는 슬로건을 “더 적은 것은 지루한 것이다”(Less is bore)라는 말로 바꾸어 버렸다.
70년대 중반이 되면 과거의 장식들은 물론 리본이나 인형까지 장식으로 채용한 새로운 건축가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이후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 건축에 대한 비판으로 널리 확장된다.
예술양식에 적용된 시뮬레이션들
더불어 문학에서 모더니즘을 비판하는 사람들, 미술에서 모더니즘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나타난다(하지만 여기서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경계선은 건축에서와 다르다는 것을 잊으면 크게 헷갈리게 될 것이다).
그들은 예술의 숭고함이나 작가의 독창성에 반대해서, 앤디 워홀처럼 모나리자 대신에 마를린 먼로의 핀업 사진을 판화로 찍어대고, 남의 작품을 뒤섞어 쓰기도 하며(패스티시), 이발소 그림 같이 ‘천한’ 것을 작품 속에 끌어들이기도 한다(키치). “나는 마치 미술관에 들어가고 있는 것처럼 온갖 종류의 상점들 사이를 돌아다녔다.
쇼윈도와 판매대에 진열되어 있는 상품들이 귀중한 미술품처럼 보였다.” 팝아티스트의 한 사람인 올덴부르크의 말이다.
이런 생각을 이해한다면 시뮬레이션이 포스트모더니즘의 징후적인 현상으로 떠오르게 된 것을 이해하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철학자들은 모더니즘에 대한 이러한 비판을 철학적인 근대주의에 대한 비판과 결합시켰다.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나’라는 주체에 대한 비판, ‘재현’과 ‘진리’라는 개념에 대한 비판, 이성주의에 대한 비판 등이 그것이다.
그리하여 ‘주체’는 처음부터 존재하는 게 아니라 어떤 사회적 관계나 사회적 과정의 결과물로 만들어진다는 생각(“흑인은
흑인이다. 특정한 관계 속에서만 그는 노예(라는 주체)가 된다”),
말이 대상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생각(“기호는 자의적이다”),
그것이 참인가 거짓인가만으로 지식을 다루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며 그 자체로 특정한 종류의 지식을 특권화하게 된다는
생각(가령 임상의학 안에서 한의학은 결코 ‘참’이 아니다),
이성이나 문명의 이름 아래 억압되는 것이 있으며(쇠고기를 먹는 자는 문명인이지만, 개고기를 먹는 자는 야만인이다),
또한 이성의 경계조차 사실은 단일하지 않았다는 생각 등이 그러한 비판을 통해서 새로이 조명을 받게 된다.
이성이나 진리, 혹은 주체나 재현이라는 개념으로 인해 희생되거나 억압돼야 했던 것들이 새로이 드러나게 된다.
쥐구멍에 볕이 들게 된 걸까?
물론 이러한 비판에 대한 반발은 적지 않은 것이었다.
이성이나 합리주의에 대한 비판은 비합리주의 내지 반합리주의라고 비난받았고, 재현이나 진리에 대한 비판은 상대주의라고 비난받았으며, 총체성에 대한 비판은 무정부주의라고 비난받았다.
서구의 근대적 질서, 계몽적 이성이 갖는 ‘반성’의 능력이 이러한 비판을 떠받치고 있는 근대 세계의 거인 아틀라스다.
그러나 반성적 능력을 통해 근대적 이성이 정의되었음을 안다면, 이전에 부족했던 반성을 더욱 가열차게 밀고나가면 문제가 된 모든 것을 그럭저럭 해결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이제는 열심히 하겠습니다”라고 외치는 정치인의 발언처럼 들린다.
근본적인 문제가 제기되었을 때, 중요한 것은 거기에 포함된 어떤 결함을 찾아내어 그것을 반박하는 게 아니다.
반대로 그것이 품고 있는 결함이 어떠하든, 그것을 통해 새로이 사고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새로이 보아야 할 측면은 어떤 것인지를 찾아내는 게 아닐까?
잊혀졌던 것들, 익숙해서 간과했던 것들, 혹은 당연하게 여겼던 부적절한 태도들을 근본적으로 다시 사유하려는 게 아닐까? 그것을 가령 포스트모더니즘의 철학이나 예술, 세계관에 동의하는가 여부를 따지는 문제로만 본다면, 우리는 남들의 얘기
에서 무언가를 배울 기회를 영영 잃고 말 것이 틀림없다.
새로운 방식을 추구하는 아름다움 간직
개인적으로 말하면, 포스트모더니즘 건축은 그다지 매혹적이지 않으며, 포스트모더니즘 예술은 그리 흥미롭지 않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또 아니다.
모더니즘을 좋아한다고 해도, 모든 모더니즘 예술이 좋을 순 없는 것처럼.
그렇지만 적어도 그것이 모더니즘적 건축의 단조로운 형태의 짜증나는 반복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시 사고할 기회를 주었다면, 그리고 그것이 재현이나 독창성 등에 대해, 그에 기반한 저작권 개념 등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시 사고할 기회를 주었다면, 나아가 그것이 근대적 사고방법이나 근대적 삶의 방식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시 사고할 기회를 주었다면, 더불어 소비와 시뮬레이션이 지배하는 시대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시 사고할 기회를 주었다면, 그것이 성취한 결과가 성공적이든 초라하든 간에 우리는 아주 많은 것을 얻은 것이다.
그것이 ‘근대’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수세기에 걸쳐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던 것, 우리 역시 100년 가까이 당연하게 여기던 것에 대해 근본적인 문제를 던진 것이라면, 새로운 삶, 새로운 사고를 향해 나아가려는 희망이 그것을 피해갈 방법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