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유(隱喩)로서의 바위에 대한 단상(斷想)
부산에 낙향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처가 식구들과 부산의 영험한 산이라는 고당봉(姑堂峰)에 올라간 적이 있었습니다. 한국의 명산에는 신성함을 느끼게 하는 바위들이 많은데 고당봉 또한 그러하였습니다.
고당봉(姑堂峰)이라는 이름 자체가 중국 신화인 마고(麻姑) 할멈을 연상케 하는 것도 있지만 고당봉에는 고당샘과 금샘이 있어 옛날부터 고당봉을 신성시함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고당봉이 아니라도 한국에는 산의 정상에 창세신(創世神)인 마고 할멈에 대한 산이 더러 있습니다. ‘마고(麻姑)’가 태초의 우주만물 및 인간을 창조한 신(神)이며 마고성(麻姑城)은 지고지순한 신인(神人)들이 조화로운 삶을 사는 천인합일의 이상향으로 생각해왔습니다.
태백산의 마고탑(麻姑塔)이나 지리산의 노고단(老姑壇), 장산의 마고당(麻姑堂) 또한 마고 할멈을 숭배하는 곳입니다. 마고 할멈은 대지신(大地神)이며 그리스 신화의 가이아(Gaia)와 로마 신화의 테라(Terra)와 같은 인류 초기의 창세신화로 보아도 됩니다.
그래서인지 고당봉 바로 아래에는 고모당(姑母堂)이라는 산신당이 있었습니다.
이 고모당에는 무당이나 보살들이 밤낮없이 기도하며 스님들도 정성껏 당제를 모신다고 합니다. 년 중 내내 무당들이 점거하고 있지만, 이 당집은 범어사에서 세웠으므로 당연히 주인은 범어사로 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불교와 무속 신앙이 혼재하며 따듯하게 만나고 있음도 신기한데 이는 고당봉에 어린 신령한 양기(陽氣)의 영험으로 설명할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은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신(神)에 의지하여 삶을 영위하는 존재입니다.
과학 또한 시적(詩的) 영감 없이는 이루어 낼 수 없는 영역입니다.
천재 물리학자 파인만도 일찍이 “장미를 볼 때 나는 시인이나 화가가 장미에서 보는 것과 같은 아름다움을 보지만 동시에 꽃의 색깔이 곤충을 유혹하기 위한 것이며, 자연선택을 통해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에서도 시적 영감을 얻는다.”라고 말했습니다.
현대 물리학이 밝혀낸 물질의 종류도 우주에 있는 물질의 4% 정도라고 합니다.
대부분이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로 존재합니다. 광막한 우주에서 우리의 존재는 참으로 미약하기 그지없는 유한한 존재입니다. 삶 자체가 고(苦)라는 것을 2500년 전 불타는 깨달았으며 인간은 치유와 회복이 필요한 존재이며, 그것은 일체 집착에서 벗어나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인간에 대한 가장 보편적인 학명을 호모사피엔스(Homo sapiens)라고 하지만 더불어 종교적 인간이라고 여겨 Homo religious라고도 합니다. 종교적 인간(Homo religious)이란 말은 루마니아 출신의 종교학자 밀치아 엘리아데가 인간의 속성에 대
-1-
한 깊은 성찰 끝에 인간을 규정한 개념어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엘리아데는 본래 호모렐리기우스( Homo Religius)라는 라틴어로 표현하였으나, 정신분석학자인 칼 융도 인간의 정체성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보편적인 속성으로 여겼습니다. 이 말이 영어로 표현한 것이 Homo religious가 되었습니다.
신(神)과 인간이 만나는 대표적인 공간이 산(山)입니다.
모세(Moses)가 타지 않는 불붙은 떨기나무 아래에서 여호와를 처음 만난 곳이 호렙산이었습니다. 모세가 두려워 누구시냐고 물으니까 여호와가 말하기를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I am who I am)”이라고 그의 존재를 밝힙니다.
그렇게 스스로 있는 자를 히브리어로 야훼(Yahweh)라고 부릅니다.
우리나라에서 인지 종교학자로 대표적인 사람이 구형찬 박사인데, 종교문화의 진화적 발자취를 연구하고 있으며 대표적인 작품도 『신과 인간이 만나는 곳, 산』이며 산에 깃든 신성한 기운을 종교의 뿌리라고 생각한 듯합니다.
민속신앙은 기복(祈福)과 분리될 수 없는데, 이른바 제도종교인 고등종교들 즉 불교와 기독교 등에서도 복을 기원하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심오한 철학을 가진 종교라도 기복과 주술성(呪術性)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지상의 모든 생물이 진화의 과정을 밟아왔듯이 인간은 생존을 위하여 종교라는 독특한 정신세계를 더듬어 왔습니다. 불교와 기독교도 우리의 민속신앙과 교류하며 뿌리내릴 수 있었습니다.
보통 산의 정상(頂上) 부분에는 기암괴석이 많은 것은 그곳이 신과 인간이 만나는 곳이기 때문이라고 신성시하게 됩니다. 이 바위는 종교에 연연하지 않는 이에게는 모자 바위지만 무속인에게는 장군봉이고, 불자들에게는 관음봉이 됩니다. 관점에 따라 이름도 달라지는 것이지요.
바우는 바위의 방언으로, 장구한 세월을 버티어낸 생명력으로 우리 조선에서는 우직해 보이는 캐릭터에 이러한 이름을 갖다 붙이기를 좋아하여 머슴이나 천민들의 이름에 많이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전라도 광주에는 말바우라는 오래된 재래시장이 있습니다.
제가 개인적인 사연으로 광주의 영락공원 납골당에 두세 달에 한 번 정도 들러서 제 아내와 함께 추모를 하는 경우가 있어, 마치고 나오는 길에 말바우 시장에 들러 다른 데서는 맛볼 수 없는 순대와 새끼보 내장을 곁들어 왁자지껄한 시장에서 술 한잔 걸치며 마음을 달래기도 합니다.
말바우 시장의 이름은 임진왜란 때 전라도 의병장인 김덕령 장군의 활약을 추모하며 만들어진 지명이라 합니다. 우리는 의지할 데 없는 민초들이 임진왜란이라는 유례없는 고초를 겪으면서 나름대로 영웅서사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순신 장군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경상도에서는 곽재우 장군이 홍의장군이라는 이름으로 혁혁한 공을 세웠듯이 전라도에서는 김덕령 장군이 대표적인 의병으로 말바우
-2-
지역에 그가 활약한 흔적을 남겼습니다. 말의 발굽을 힘차게 도약한 자국이 바위에 있어서 ‘말바우’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합니다.
이렇게 바우, 아니 바위는 우리 민초들의 가슴에 토속적인 무속이 깃든 우리 역사에 각인된 문화적 유전자로 자리 잡았습니다. 하나의 밈(meme)이 된 것입니다.
우리 한반도(韓半島)에 사는 민초들이 공동체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게 된 것도 이런 민담이나 설화와 전설들이 살아서 우리의 정신을 만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한반도에 우리 정체성을 만들어 온 중요한 세 가지를 들자면 신라가 삼국통일을 이룩한 것과, 우리 정신의 뿌리를 기록한 삼국유사 그리고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를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일연(一然)의 속명은 전견명(全見明)으로 고려 중기 13세기에 활동한 대학자이자 고승입니다. 학문이 깊었고 말년에 청도 운문사에서 선종(禪宗)을 크게 일으켰으며 삼국유사를 집필하였습니다. 이는 고조선부터 삼국시대에 이르기까지 개국 신화와 민담과 설화를 집대성한 것으로 우리 공동체의 뿌리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밝혀낸 것입니다.
“일연(一然)은 부서질 수 없고 불에 탈 수 없는 것들에 관해 썼다. 이것은 당대의 야만에 맞서는 그의 싸움이었다” 그렇습니다. 우리 정신의 뿌리는 부서질 수 없고 불에 탈 수 없는 것입니다.
저는 교통사고 이후 예전처럼 산을 즐겨 타지는 못하지만 우리 친구들 가운데 유난히 산을 좋아하여 등산하는 모습을 보면 부럽기도 하면서, 한편으로 산이라는 물리적 공간은 ‘신과 인간이 만나는 곳’이라 여겨 친구들의 영혼은 순수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저는 그런 바위에 관하여 쓴 글 중에 특히 유치환 선생의 일체(一切) 감정이 배제된 시(詩) 바위를 좋아합니다.
“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아예 애련(愛憐)에 물들지 않고/ 희로에 움직이지 않고/ 억년 비정(非情)의 함묵(緘默)에/ 안으로, 안으로 채찍질하여/ 드디어 생명도 망각하고/ 흐르는 구름/ 머언 원뢰(遠雷)/ 꿈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 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그러나 그러한 유치환 선생도 천삼백 년 전의 어느 석공(石工)이 다듬은 바위를 보고 통곡(痛哭)했습니다. 깨뜨려도 소리하지 않겠다던 시인(詩人)이 통곡한 것입니다.
바로 토함산에 있는 석굴암 대불입니다.
샤카족(族)의 성자가 도달한 정신세계인 정각(正覺)의 순간을 포착한 화강암으로 된 이 조각은 어느 석공이 제작한 것인지 아직도 잘 모릅니다. 8세기 중엽 통일신라시대의 불심이 깊었던 재상 김대성이 불국사와 석굴암을 건축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현진건의 소설 무영탑(無影塔)을 통하여 석가탑을 조각한 아사달과 아사녀의 애절한 이야기에서 이름 없는 석공의 흔적을 유추할 뿐입니다.
-3-
김종해 시인의 작품 무영탑에서도 그 아련함을 짐작할 뿐입니다.
“잠 오지 않는 이국(異國)의 밤/ 서라벌 달빛은/ 아사달의 손가락 마디마디 맺혀/
아리따운 아사녀의 혼불을 밝히고/ 돌 하나하나마다 눈물인 듯/ 무영탑은 소리
없이 제 그림자마저/ 지우는구나”
종교예술이든 순수예술이든 바위에 새긴 조각에는 작가의 혼(魂)이 들어간 것이나 마찬가지로 생각됩니다. 한 소녀가 르네상스 시대의 어느 조각가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아저씨, 왜 그렇게 열심히 돌을 두드리세요?” 조각가 아저씨가 이렇게 말합니다. “ 저 바위는 그냥 돌덩이가 아니란다. 저 바위 안에는 천사가 들어 있어. 지금 나는 잠자는 천사를 깨우는 중이야.” 이 석공이 그 유명한 미켈란젤로였습니다.
제가 이렇게 바위에 대해 간절한 마음을 갖는 것에는 미국 사우드 다코다 주(州)의 러시모어산의 큰 바위 조각상을 보고 감동과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러시모어산이라는 큰 바위산에는 아시다시피 오늘의 자유민주주의를 주도하는 미국을 있게 한 거인들의 얼굴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바로 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에이브러햄 링컨, 시어도어 루스벨트입니다.
미국이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그런 큰 위인들을 배출한 것은, 미국의 지향점이 세계의 지향점과 일치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미국이라고 영광의 역사만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모든 나라와 마찬가지로 어두운 역사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특히 우리는 박근혜 정권 탄핵부터 문재인 좌파정권을 거치면서 우리의 국운이 사그라지고 있음을 보아야 했습니다. 선진국과 후진국은 잘살고 못사는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어두운 역사를 극복하고 국운을 살려내었느냐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어떤(?) 가치와 정치 지향점이 그 어두운 역사를 극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오늘의 빈곤한 우리 정치 현실과 비교하면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그것은 자유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한 시민들의 공공선(公共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러시모어산의 거인들의 모습에서 그 정신을 보았기 때문에, 존경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어떤 연유로 그 영화를 보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라는 스릴러 영화를 보게 되었습니다. 사실 그 영화의 줄거리와 의미를 알지도 못하면서 단지 그 배경이 된 러시모어산의 큰 바위 조각상을 보고 미국에 대한 경외심을 가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무려 14년에 걸쳐 제작된 이 조각상을 보면서, 저는 또한 미국의 웅장한 자연과 미국이 꿈꾸는 이상을 비할 데 없이 표현한 드보르자크의 『신세계로부터 (from the New World)』라는 교향곡을 떠올리곤 합니다.
-4-
제가 20대 초반이었을 무렵, 우연히 부유하게 살던 먼 친척의 집에서 ‘신세계’ 교향곡을, 그때만 해도 우리와 차원이 달랐던 일본의 NHK 교향악단의 연주로 제작된 LPG 판을 스테레오 앰프로 들으면서 음악이 표현하는 위대함에 압도당했던 적이 있습니다. 당시의 저는 학업을 계속할 형편도 안 되는 어정쩡한 낭인 시절이라 가슴에만 묻어 두었습니다.
미국이 성취한 업적은 우리와는 너무 달랐기 때문에, 그저 먼 나라의 이야기로만 생각했던 것입니다. 아마 러시모어의 조각상은 나다니엘 호손의 『큰 바위 얼굴』이라는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된 것이 아닐까 하고 짐작할 뿐입니다.
그런 미국과는 대조적으로 문재인 정권의 4년은 우리의 국가관과 정신을 황폐하게 만들어 나갔습니다. ‘우리의 국운은 여기서 끝나는 것인가.’라고 여길 정도로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그 정권은 너무나 위선적이어서 배신감이 들었을 정도였습니다.
그가 취임사에서 밝힌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 그리고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를 보게 될 것입니다.”라는 말은 우리의 가슴을 뛰게 했습니다. 그것이 위선적이라는 것이 얼마 가지 않아 그 정체가 드러났습니다.
우리는 사기를 당한 기분이었습니다.
“정치인들은 기저귀와 같다. 자주 갈아줘야 한다.” 유머와 페이소스를 함께 가지고 있는 작가 마크 트웨인의 말입니다. 어느 날 그가 칼럼을 통해 “모든 미국 정치인은 개자식이다”라고 일갈하자 항의와 사과 요구가 빗발쳤습니다. 이에 그는 “어떤 미국 정치인은 개자식이 아니다.”는 문장으로 절묘하게 응수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정치가 얼마나 세계의 관심과 비판을 받고 있는지는 ‘내로남불’이라는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다”라는 뜻이 미국 언론과 대영백과사전에서는‘Naeronambul’이라는 고유명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80년대의 386운동권이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거치면서 486운동권, 586운동권으로 진화하면서 그들만의 카르텔을 만들어 나갔습니다.
21대 국회에서는 문재인 정권하에 180석이라는 거대 여당을 만들어 냈습니다.
국회는 당연히 오만과 독선, 입법 폭주라는 도떼기시장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러나 국민의 간절한 열망이 하늘에 닿았는지 우리는 새로운 인물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본래 정치와는 무관한 주목 받지도 못했던, 단지 불의한 당대의 권력과 맞섰던 검사들에게서 나왔습니다.
미당 서정주 시인의 『자화상(自畵像)』이라는 시(詩)에는 “나를 키운 건 8할이 바람이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강렬한 생명의 욕구를 표현한 것이지요. 그와 같이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장관을 키운 건 8할이 역설적으로 운동권 좌파 정권이었습니다.
대표적인 장관이 조국. 추미애, 박범계 법무부 장관과 국회의 최강욱, 김남국, 이수진, 김의겸 의원 등입니다.
-5-
한동훈 장관이 조선 제일 검(檢)으로 한직으로, 한직으로 떠돌다가 법무부 장관으로
입각할 때에도 우리 국민들은 그의 사람 됨됨이를 잘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국회 법사위에 출두하여 민주당의 집요한 공격에 맞서는 그의 순발력과 언어구사력을 보면서, 그의 내공이 평소 독서량이 많지 않으면 만들어질 수 없다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그가 4월 10일 총선을 앞두고 국민의 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습니다.
정치 경험도 연부역강(年富力强)한 사람이 그 직책을 맡기까지 고심이 깊었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그가 단순한 공명심에 들떠 그 직(職)을 수락하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합니다.
법무부 장관으로서 국회 법사위와 본회 국정감사에 출두하면서 함량미달(含量未達)의 국회의원들이 어떻게 국회에 입성했는지 그는 납득할 수 없었으며,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수락한 것이라는 심리적 궤적을 그려볼 수 있습니다. 제가 보는 견지는 그런 가운데 그의 시대적 소명을 가슴 깊이 느꼈을 것이고, 그리하여 아마 위선적인 운동권 청산과 토착비리 척결을 시대적 소명의 가치로 내걸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왜냐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쌓아 올린 정치권력이 토착비리를 토대로 만들어진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우리 역사에 각인된 오래된 문화적 유전자 속에 클라이언틸리즘, 즉 패거리 주의라는 당쟁의 논리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입니다.
조선시대의 정치는 학문의 계보가 정치적 계보가 되는 사이비(似而非) 지식인들의 세계였습니다. 그 정치적 계보가 당쟁을 이끌어 왕권과 신권의 대립이 조선을 몰락의 길로 몰고 갔습니다.
아마 한동훈 장관은 로마제국의 역사에도 조예가 깊었을 것이라고 짐작해 봅니다.
대영제국의 수상 윈스턴 처칠도 에드워드 기번의 저서 『로마 제국 쇠망사』의 애독자였습니다. 아니면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읽어 보았는지도 모릅니다.
클리엔테스(Clientes) 라는 라틴 말이 있습니다.
로마 공화정 시대부터 로마 귀족의 예속 평민이나 하급 군인들이 추종자들이 되었으며 귀족은 하나의 후원자 역할을 했습니다. 지금은 영어에서 클라이언트(client)라는 고객이나 의뢰인을 가리키는 법률적인 말로 변화되었지만 로마 시대에는 보호자와 피보호자의 관계로 그들의 정치적 동지나 경제적 후원을 위해 결속력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천년의 역사를 관통하는 시오노 나나미의 대하 역사서 『로마인 이야기』에는 당시의 클리엔테스 관한 이야기가 더러 나옵니다. 카이사르가 “주사위는 던져졌다. 원로원의 음모로부터 나의 명예와 존엄을 지켜달라.”라고 외치며 루비콘강을 건넜을 때 단 한 사람만 빼고 모두가 그를 따랐다고 합니다.
그 한 사람이 13년 동안 카이사르와 고락을 같이한 군단 지휘관 라비에누스인데, 사실 그는 카이사르의 정적이었던 폼페이우스와 클리엔테스 관계였다고 합니다. 클리엔
-6-
테스는 이렇게 로마 사회에서 사람과 사람을 결속시키는 묵시적인 관례였습니다.
말론 브란도가 주연한 영화로 유명한 『대부(代父, Godfather)』에도 마피아 세계의 인간적 결속을 의미하는 것 또한 클리엔테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마피아가 시칠리아에서 생겨나 미국에 정착한 것도 옛날의 로마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과 사람이 파트론(후원자)과 클라이언트(추종자)라는 보호자와 피보호자의 관계로 결속되어있는 것을 클라이언틸리즘(Clientilism)이라 합니다. 한 지방의 영주와 그 땅에서 생업을 하는 주민들의 관계가 대표적인 클라이언틸리즘입니다.
조선시대의 사색당파 또한 클라이언틸리즘으로 보아야 이해가 됩니다. 그들은 정적을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몰아 성리학의 정통성은 자신이 속해 있는 학파에 있다고 여겨 부관참시(剖棺斬屍)까지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현대사회에도 클라이언틸리즘은 곳곳에 존재합니다.
정계와 관료사회뿐만 아니라 재계와 연예계 그리고 체육계에도 이 클라이언틸리즘은 끈질기게 존재합니다. 정경유착뿐만 아니라 일본에서 보듯이 정치인, 기업인, 관료간의 철의 삼각 구조라는 것도 존재합니다.
유럽의 강국들과 일본이 식민국가를 확장해나갈 때 식민 종주국과 피식민지 엘리트 사이에도 우정이라는 이름의 그물망 같은 클라이언틸리즘이 존재합니다. 피식민지로 나라는 뺏겼지만 그나마 망국의 지배계급이라는 것을 종주국으로부터 보장받고자 함입니다. 그 후손들은 아직도 친일과 반일로 나누어 끈질긴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지역감정이라는 것도 일종의 클라이언틸리즘입니다.
자기 지역의 맹주에게 무 조건적으로 복종하며, 자기 지역의 맹주가 정권을 잡을 경우 허상이든 실상이든 정권을 자기와 동일시 합니다. 참으로 끈질긴 경상도 정권, 전라도 정권입니다. 거기에 대한민국의 정권은 설 자리가 없습니다.
이런 정치문화에서는 정책정당이라는 것이 나오기가 어렵게 되어 있습니다.
지역 맹주들이 자방관료와 토착비리를 만들면 결국 정치부패의 다이나미즘이 기승을 부립니다. 이런 곳에서는 정직한 삶이 불가능해집니다. 결국 지방관료들은 지역 맹주의 머슴이나 하인과 같은 존재로 전락하게 됩니다.
이렇게 클라이언틸리즘은 부패의 네트워크를 확장해나가게 됩니다.
운동권 정권의 위선과 토착비리를 이야기하다 보니 이야기가 길어졌습니다만 다행스러운 것은, 한동훈 법무장관이 운동권의 카르텔과 토착비리를 간파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운동권 정권의 청산과 토착비리를 척결하는 것이, 얼마나 절실한 문제인지를 그는 알고 있으며 그런 소명의식에 국민의 힘 비대위원장을 맡은 것으로 생각됩니다.
법무부 장관으로서 국회 법사위와 국회 본회 국정감사에서도 그의 뛰어난 순발력과 언어구사력은 언론의 조명을 받기에 이르렀습니다. 언론은 아이돌급 인기를 조명하면서 그의 어릴 적 모습과 고교시절과 대학시절의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주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제가 인상 깊게 본 것은 어린 소년시절에 카톨릭 성당에서 외국인 주임
-7-
신부의 미사에 복사(服事)를 맡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복사는 신부가 미사 집전을 할 때 신부를 보좌하는 평신도를 말하며 대개 신심 깊은 집의 어린 소년들이 그 직을 수행합니다.
그 모습을 보니 문득 영화 『시네마 천국』에서 주인공으로 나오는 어린 토토가 성당에서 복사직을 수행하다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신부님한테서 야단맞는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전시(戰時) 중이라 아버지는 참전 중이었으며 홀어머니와 살고 있는 개구쟁이 토토는 동네 유일한 영화관의 영사기사인 할아버지와 친구가 되어 성장해가는 모습과 함께 헐리웃 영화가 상영되면서 시네마 천국을 만들어 갑니다.
저는 한동훈의 어릴 적 복사직을 한 경험도 그의 정신세계에 많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여겨집니다. 그의 겸손은 꾸민 것이 아닌 어릴 적부터 몸에 배어 있는 것으로
보이며, 사회적 약자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가진 것도 볼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가 계속 낮은 자세로 국민 속으로 뜨겁게 다가갈 것이라고 봅니다.
그와 더불어 비대위의 구성원들도 그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지지하고 있음을 봅니다.
윤재옥 원내대표와 김예지 의원 그리고 장동혁 의원 등이 환상적인 조합을 이루고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김예지 의원은 시각장애인으로 안내견 조이를 데리고 국회에 출근하며 의정활동을 합니다. 그녀는 장애인이지만 불굴의 의지로 숙명여대 피아노 학과를 수석으로 입학했으며 미국 위스콘신 대학교에서 피아노 연주 교습법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재원이기도 합니다. 그녀로 인하여 한동훈과 비대위의 진정성을 볼 수 있습니다.
국회의 대정부 질문에서 김예지 의원은 ‘코이의 법칙’이라는 환경에 따라 크기가 달라지는 물고기 코이에 대한 이야기로 여야를 막론하고 기립박수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장애인 연합회(전장연)에서 출근길 지하철을 점령하여 장애인의 통행할 권리에 대하여 투쟁을 할 대 시민들은 많은 불편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이준석 대표가 “아무리 장애인이라도 시민들의 출퇴근을 볼모로 삼아 행하는 집회의 자유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며 토론의 대가답게 장애인과의 토론을 제안했습니다.
그러자 김예지 의원은 이준석의 토론 제의를 한마디로 일축했습니다.
“숨 쉬는 권리는 토론배틀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하여 토론 전문가 이준석을 머쓱하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한동훈을 정치 초년생이어서 ‘어떤 아포리즘으로 국민에게 다가갈까?’ 하며 조바심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함께 가면 길이 됩니다”라는 절묘한 말로
시작하여 국민을 놀라게 하였으며 그때까지 생소했던 “동료 시민 여러분”이라는 말로 국민 속으로 뜨겁게 다가갔습니다.
또한 그는 시적인 감성의 언어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 4월 10일 이후의 제 인생의 항로는 생각한 바 없으며, 4월 10일까지 저의 에너지를 다 소진할 것”이라고 결기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목련이 피는 4월 10일 에 바로 이 자리에서 동료 시민을 뵙기를 원합니다.”라고 호소했습니다. 저는 과문한
-8-
지는 몰라도 근자에 이런 감동적인 웅변을 들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는 총선에 출마하지도 않고 비례대표로도 이름을 올리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는 방문하는 곳마다 인파를 몰고 다니는 아이돌 정치인이 되었습니다. 그의 행보를 보면 조력자도 없이 연설문을 직접 쓰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출근 시의 기자들의 질문에도 막힘없이 답변하는 것을 보노라면, 뛰어난 지능을 가진데다 문제의 핵심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나올 수 없는 말이라 평소 독서량이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그는 준비된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정치인들에게서 제일 진부하다고 느끼는 것 중의 하나는 그들은 걸핏하면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운운하며 국민에게 다가간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누렇게 변색 된 오래된 흑백사진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한동훈은 그것부터 깨트렸습니다.
그는 “동료 시민 여러분(My fellow citizen)”이라고 하며 시민들 앞으로 다가갔습니다. 그의 이미지가 신선하게 느껴지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그의 말대로 여의도 문법이 아닌 오천만 국민의 문법으로 이야기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는 ‘시민(citizen)’이라는 집단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적어도 그 역사를 알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도시는 사람들이 모여 시장(市場)을 만들어 가면서 생긴 말입니다.
서구(西歐)의 중세도시들이 봉건시대의 대척점에서 “도시의 공기는 자유를 만든다”라고 한 것은 상인과 수공업자들이 모여 봉건시대와 농경사회의 주종관계(主從關係)를 떠나 그들만의 조합인 길드(Guild) 제도가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길드 제도에서 자유가 싹트기 시작했고 결국에는 자본주의와 시민혁명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동료 시민이라는 말은 자유를 상징하는 언어가 되었습니다. 한국은 짧은 시간에 압축적으로 왕조국가의 신민(臣民)에서 시민국가를 이룬 나라입니다.
동료 시민이라는 말은 아직도 생소하지만 자주 쓰다 보면 우리의 정신에 내재화 될 것입니다.
말하자면 하나의 밈(meme)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많은 사람이 같이 가면 길이 됩니다”라는 한동훈의 말은 이러한 언어에도 적용된다고 봅니다. 큰 바위 얼굴을 생각하며 그의 성공과 무운을 기원합니다.
2024년 3월 1일 사이버 총무 김 정 율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