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가정(聖家庭)이라고 하면 부모 자녀 모두가 신앙을 갖고 성당을 잘 다니는 가정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성가정은 주님을 모시고 사는 모든 가정입니다. 미혼모의 가정, 조손 가정, 외짝 신자의 가정, 배우자를 잃은 가정, 자녀를 얻지 못한 가정, 그리고 홀로 사는 이의 삶의 자리도 주님을 믿고 살아간다면 성가정입니다. 구성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가족들이 어떻게 주님의 뜻대로 사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이제 오늘날 가정은 과거의 가정의 형태처럼 구성원을 갖추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혼인하기가 어려워졌고 자녀를 낳아 기르기에도 어려운 상황이 되었습니다.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와 악으로 인해 일반적인 가족 구성원을 갖추고 살기가 참으로 어려워졌습니다. 그런 가운데 교회가 과거의 생각에 젖어 성가정이라는 호칭을 현실을 이해하지 못한 채 그대로 사용한다면 그것은 또 다른 소외와 배척을 일으키는 꼴이 되고 맙니다. 교회는 가정들의 가정입니다. 우리 교회 안에 어떤 가족과 가정들이 있습니까? 참으로 다양하고 또 복잡한 상황을 안고 사는 이들이 교회-본당이라는 가정 안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교회와 본당을 이루는 구성원이고 예수님의 지체입니다. 그들을 어떤 편견이나 고정관념으로 배제하거나 소외시켜서는 안 됩니다.
다만 교회는 그들이 어떤 상황에 어떤 모습으로 있든지 하느님을 알고 섬기며,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도록 믿음의 양식으로 먹이고 신앙의 가르침과 돌봄으로 양육하며, 하느님과의 소중한 사랑의 관계를 자신의 삶에서도 연장하여 살도록 이끌어주어야 합니다. 가정들의 가정인 교회의 구성원인 우리의 삶을 오늘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세세히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형제 여러분, 하느님께 선택된 사람, 거룩한 사람, 사랑받는 사람답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동정과 호의와 겸손과 온유와 인내를 입으십시오. 누가 누구에게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참아 주고 서로 용서해 주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입으십시오. 사랑은 완전하게 묶어 주는 끈입니다.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다스리게 하십시오. 여러분은 또한 한 몸 안에서 이 평화를 누리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감사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 가운데에 풍성히 머무르게 하십시오. 지혜를 다하여 서로 가르치고 타이르십시오.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느님께 시편과 찬미가와 영가를 불러 드리십시오. 말이든 행동이든 무엇이나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면서,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십시오.(콜로 3,112-17)”
이와 같이 우리는 육(肉)의 관계로만이 아니라 믿음(신앙)으로 맺어진 관계로도 가정과 가족을 이루어야 합니다. 하느님 나라에서 우리 모두는 같은 성령 안에서 예수님을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의 자녀로 살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사랑의 서약과 인연으로 맺어진 가정과 가족은 바로 그 하느님 나라에서의 가족의 삶을 본받아 이미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성가정(聖家庭)’이란, 바로 그런 삶을 살고 있는 모든 이의 가정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바로 바오로 사도의 가르침에 따라 주님을 믿으며 성가정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이며 그 가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