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깨질 콩 바심
황 장 진
콩의 원산지는 중국의 만주와 한반도다. 약 5,000년 전부터 심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삼국시대 초기부터 기르기 시작했다. 유럽에서는 18세기에 이르러서야 키웠다. 널리 콩 농사를 짓기는 20세기부터다.
콩은 갈색이나 회색의 짧은 잔털로 덮여 있다. 꼬투리의 색깔은 밝은 노란색에서부터 회색, 갈색, 검은색에 이르는 어두운 색까지 여러 가지다. 씨는 둥글거나 타원형이다. 노란색, 초록색, 갈색, 검은색을 띠거나 반점이 있다. 노란색이거나 옅은 노란색을 띤 것은 가공용이다.
지름이 5-7mm인 씨들은 콩가루와 콩기름을 만든다. 채소로 이용되는 것은 대개 초록색이다. 뿌리에는 뿌리혹박테리아가 있어서 공중의 질소를 마시고 살기에 메마른 땅에서도 잘 자란다. 보리, 밀 등과 2모작을 하거나 옥수수, 수수 등과 섞어서 가꾸는 데도 알맞다.
완두콩, 대두, 검정콩(흑대두), 서목태(쥐눈이콩), 서리태(속청), 강낭콩 등 그 종류도 많다. 식물성 단백질의 최고봉으로 ‘밭에서 나는 고기’라고도 한다. 두부, 된장, 청국장, 국수 등 여러모로 쓰인다.
5월 11일, 검은 비닐을 씌운 2,100평방미터 양지바른 밭에다 두 집 가족 넷이서 작은 발걸음 간격으로 노란 콩 3알씩을 심었다. 이에 앞서 망을 만들 때는 밑거름으로 복합비료를 뿌렸다. 풀매기는 한 번 밖에 안 했다. 심은 다음, 손이 별로 가지 않았는데도 무럭무럭 잘 자랐다. 인삼을 심었던 땅이라 땅심을 다 빼앗겼을 텐데도 말이다.
산 밑이라서 고라니가 들어오지 못하게 여러 군데에다 때가 지난 가로막으로 울타리를 쳤다. 덕분에 녀석들 난장판은 보지 못했다.
이슬비나 장대비가 제 때 내려 줘 무럭무럭 잘도 자랐다. 나중엔 키 크기가 코밑까지 오는지라 이러다가 너무 웃자라지 않나 걱정도 되었다. 남보다 좀 일찍 심었기에 더했다. 농약 한 번 안쳤는데도 잎에 구멍하나 안 뚫리고 말끔했다. 고마운 햇빛과 맑은 솔향기와 바람, 보송보송한 땅의 품속에서 콩은 무성한 잎 숲에 가려져서 토실토실 잘도 익어갔다.
10월 13일, 심은 지 다섯 달 만에 베기 시작했다. 콩도 낫을 잘 갈면 들깨처럼 잘 베어지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줄기가 얼마나 딱딱한지 낫을 밑동에 대고 앞으로 휘어서 몇 포기씩 꺾어야만 했다. 포기마다 콩이 주렁주렁 탐스럽게 매달려있다. 덩치가 큰지라 널따란 두 밭 데기도 넷이서 부지런히 베어나가니 쉬 훤해졌다. 단을 일일이 묶지 않고 꺾은 데로 제자리에 한 무더기씩 펼쳐 놓기만 하면 되니까 아주 쉬웠다. 허리를 펴 하늘을 쳐다보니 구름 한 점 없는 파란하늘이다. 따가운 해만 수고한다면서 응원의 빛을 내리 꽂고 있다.
10월 26일, 안개 자욱한 이른 새벽부터 콩 털기를 시작한다.
타작마당은 멍석보다 널따란 덮개 4개를 펼쳐서 웬만한 농촌 집 마당넓이보다 더 널찍하게 만든다. 둘레에는 마른들깨포기들을 날라다 고여서 둑을 만든다. 그 위를 창문 가리개와 보자기들을 넓게 펼쳐 깐다. 참새 콩새 까막까치들의 먹이조차 생각지 않고 인색하다.
누워서 팔자 좋게 해바라기하던 콩 포기들을 한 아름씩 안아 와 이삭이 마주보도록 8줄 가로띠로 얇게 깐다.
드디어 남정네 둘이서 도리깻장부에 힘을 주어 내리치기 시작한다. 플라스틱 도리깨는 도리깻열이 물푸레나무나 대나무인 것 보다 가볍다. 대여섯 번은 툭툭 맥없이 내리치고, 서너 번은 탁탁 힘차게 휘갈긴다. 콩알들이 껑충껑충 뛰어오른다, 우수수 떨어진다, 콩알콩알거린다. 같은 방향으로 나란히 서서 치는 것보다 맞도리깨질이 더 효과적이다. 도리깨소리 장단도 맞추기 좋고, 꾀를 부릴 틈이 없어진다. 서로 장단을 맞추려고 아랫배에 힘을 주면서 맘속으로‘하나 둘, 하나 둘’하면서 혼을 쏟는다. 보리타작 할 때는 도리깨소리를 한다는데 콩 타작 할 때는 왜 그 소리가 없을까? 한 마당을 털고 나면 눈 속으로 짠 물이 스멀스멀 기어든다. 소매로 얼른 훔친다. 도리깨꼭지도 힘이 들었던지 꼭지가 느슨하게 풀려있다. 뱅뱅 돌려서 꼭꼭 조인다. 한마당 도리깨질을 끝내고 숨을 고를 때는 손속 빠른 안사람들이 얼른 와서 콩 포기를 뒤집어 가지런히 뉘여서 펼쳐 준다.
땀이 들어 갈 때쯤이 되면 콩 무더기 위로 올라서서, 자고 있는 공기를 휙휙 가른다. 이렇게 세 차례나 뒤집어 때리고 두드려도 겹쳐져 숨어있던 파란 꽁 포기들은 통통배하나 열지 않고 약을 올린다.
“용용! 죽겠지?”
할 수 없이 두 차례 더 뒤집게 해서 콩 대궁이 부러지고 콩 깎지가 떨어질 때 까지 매운 맛을 단단히 보인다. 비록 숨이 차오르고 이마에선 땀이 줄줄 흘러내려도….
콩은 베어서 깔아 놓고 서리를 서너 번 맞고, 첫눈이 내릴 때까지 말려야만 잘 털어진다는 데, 이 농사가 처음이라 애꿎은 팔들만 주인 잘못만난 턱을 톡톡히 한다. 아내들은 이렇게 한 것도 못 미더운지, 방망이대신 나무막대기로 허물허물해진 콩 포기를 일일이 다시 두드려서 모두다 쭉정이를 만든다.
콩 포기와 깍지를 알뜰히 걷어내고, 쓰레받기와 바가지 바람에 찌꺼기와 먼지를 날려 보낸다. 선풍기나 부채가 아쉽다. 키질을 부지런히 해서 알뜰히 모은 콩을 바가지에 그득 담는다. 미끄러져 엉덩방아 찧지 않으려고 엉금엉금 기어 다닌다. 자루마다 끈을 겨우 여밀 수 있을 정도까지 가득 채운 다. 지스러기나 반 토막이 많지 않아 다행이다.
콩 털기에 무려 사흘이나 걸렸다. 아버지 어머니시대 농법의 맛을 톡톡히 봤다. 탈곡기나 선별기, 트랙터를 동원하면 단 하루면 끝나는 일이다. 하지만 그걸 빌리려면, 콩이 여러 말 나가니, 아까워서 안 되지.
바른 손바닥에 옹이까지 박혔다. 부인들은 허리가 하도아파서 진통제를 먹었다나. 날마다 새벽 별 보고 달려와서, 저녁달이 빙그레 웃을 때까지 땀을 흘렸으니, 아무데고 아프지 않는다면 사람이 아니겠지.
하지만 다들 두 줄로 꼿꼿이 서있는 콩 자루에 눈길이 꽂힌다.
탱글탱글 노란 콩이 가득 찬 자루들을 헤어본다.
“하나, 둘, 셋, 넷 …”
“5가마 2말!”
콩알을 한 줌 쥐고 살펴본다. 하나같이 다람쥐 눈알같이 반들거린다.
정의 눈, 연의 입, 천의 얼굴이 내 밀짚모자창처럼 둥글둥글해진다.
얼치기 농부들의 올챙이배가 불룩불룩해진다.
아픈 데, 어디더냐? 통통한 자루 안고 내딛는 발걸음, 어찌 이리 가벼울까? ^*^
첫댓글 콩은 바짝 언 날 털어야 하는데, 힘으로 밀어 부쳤으니 온 전 한게 다행입니다.
무식하면 몸이 고
프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