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2일
평생 살아온 모습대로 그려지는 초상화
문은희 한국알트루사여성상담소장
60년대 미국에 유학 갔습니다. 그 때는 우리나라가 전쟁 끝나고 얼마 되지 않은 때여서 그랬을까, 바다건너 멀리서 온 학생이라, 가족을 그리워 할 거라고 측은히 여겼었나봅니다. ‘맞아주는 가족’ (host family)이 되려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결혼하기 전 남편 (그때는 남자 친구)을 위한 그런 가족이 있었습니다. 유대인 사업가 집이었는데 그 집에서 만난 화가와 정작 그 가족보다 더 오래 친구로 지내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결혼했을 때 자기의 그림을 선물해 아직도 귀히 가지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좋아했던 화가가 렘브란트여서 그의 그림도 언제나 그림의 초점에 빛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주말에는 뉴욕에 있는 렘브란트 그림이 많은 미술관에 우리를 데리고 가기도 했습니다.
우리도 렘브란트를 좋아했는데 더 좋아하게 되어 큰 화집도 사서보고, 원화는 가지지 못해도 사진 본을 사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내가 학위 하러 간 대학의 미술관에도 그의 초상화가 있어서 틈틈이 시간 내서 편안하게 앉아서 보며 머리를 식히기도 했습니다. 어린 화가의 초상화부터 젊은이 때 얼굴도 보고, 늙은이로 바뀐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었습니다.
나도 “네가 어렸을 때는 예뻤었다” 말하는 어른들을 만나며 자랐고,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을 훌쩍 넘기고 다시 만난 친구 남편이 한 “모두들 변했다”는 한숨 섞인 말을 듣기도 했습니다. 허기야 우리 성경공부를 지도해주셨던 안목사님을 전철에서 아주 오랜만에 뵈었는데, “어머나! 엄마 얼굴이네!” 내 어머니를 아시는 분의 반응이었습니다. 우리가 살아온 세월이 우리의 초상화를 만듭니다.
밤늦게 하는 TV 프로그램에서 시골에 혼자 남겨져 농사지으며 사시는 할머니들의 삶을 보여줍니다. “아이들이 보면 어쩌나!” 하면서 두 손으로 주름지고 기미낀 얼굴을 가립니다. 정작 클로즈-업 되어 찍힌 험하디 험한 손을 들키고 맙니다. 한 쪽 손등에는 낫에 찍혀 난 상처가 두드러져 보입니다. 허리가 ‘ㄱ'자로 꺾기고, 고무신도 무겁다며 신발을 신지 않고 밭을 매고, 풀을 뽑고, 고추를 따고, 배추를 심습니다. 그러면서 할머니의 기쁨은 아들 딸, 손주에게 먹거리를 보내주는 것뿐이랍니다. 어머니들에게 ’일하는 것‘이 유일한 삶의 방식이라도 되는 듯 보여줍니다. 벽에 걸린 결혼사진과 가족사진에서 세월을 거쳐 산 할머니들의 초상화를 봅니다.
그런데 어디 시골 사시는 분만 그럴까요? 우리 아이들이 학교 다닐 때에는 학교 급식이 아직 생기지 않아서 도시락을 몇 개씩 싸주는 것이 엄마들의 일이었습니다. 영국에서 내가 학위 할 때 우리 아이들이 대학 갔기에 남편은 “당신은 새벽 일찍 일어나 도시락도 싸주지 않고, 엄마 구실 한 게 없다”라는 말을 농담반 진담반 합니다. 어머니의 역할은 아이들을 위해 힘들게 일하는 것인데 그런 고생을 하지 않았다는 뜻을 은근히 말하는 겁니다. 요즘 엄마들은 도시락을 싸지는 않겠지만 아이의 공부를 위해 모두들 열심히 애쓰고 있는 것이 농촌에 남겨진 할머니들과 버금가는 삶의 태도로 보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의 학원비를 벌기 위해 돈 되는 일은 가리지 않고 한다고도 합니다.
아침 신문에 실린 기사 <네델란드의 치매 마을 ‘호그벡’>을 읽었습니다. 거기에 가 본 우리네 정치인들이 우리도 그렇게 해보자 합니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우리의 ‘치매 안심 마을’ 이랍니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관계자의 말을 빌리면 “사실상 간판 내걸기에 가깝다”며 그곳에 비해 아직 요원한 모양입니다. ‘일’이 온통 ‘마음’의 영역을 뒤엎어 놓아 우리는 돈 되는 ‘일’, 먹거리 만드는 ‘일’에만 평생을 걸고 살면서 늙은이가 됩니다. 마음이나 영혼이 없이 몸으로만 사는 듯해서 서글픕니다.
한제선님이 좋아하는 돈톤 와일더(Thornton Wilder)의 <싼 루이 레이 다리>에 나오는 말을 소개합니다. “이 세상 사람들을 두 가지 사람으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사랑한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사랑해본 적도 없는 사람이다.... 사랑할 품이 없는 사람 (바로 사랑으로 고통을 겪을 품이 없는 사람)은 살아 있다고 할 수 없다. 그리고 죽은 후에 다시 부활하지도 못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내 가족만을 생각하고 사나?” “사랑하는 이웃의 범위가 얼마나 비좁은가?” “나를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하는가?” 묻게 됩니다. 와일더의 책 주인공은 자기 가족도 아니고, 자기를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을 사랑하다가 죽습니다.
첫댓글 저도 렘브란트 그림 참 좋아하는데..
선생님은 그의 자화상을 직접 보셨군요..
갖고계신 그 화가 친구분의 그림이 궁금합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