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서는 두 개체가 하나 되는 것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결혼하여 부부로서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한 몸이란 육체적 결합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몸이란 단어가 전인적인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다르게는 한 영, 한 인격이라고 사용할 수도 있는 말이라는 것입니다. 몸(육)이란 육체성을 강조하는 전인을 가리킵니다. 영이란 성령님의 좌소를 강조하는 전인을 가리키고 혼이란 인격성(지정의)을 강조하는 전인을 가리킵니다. 부부에게는 성적관계를 통한 육체적 결합이 있기에 몸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가 각각의 인격체이지만 성경은 한 몸(사람, 분)이라고 말씀합니다. 각 개체가 상호공재 또는 상호침투한 것이 아니지만 한 몸(사람, 분)이라고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찌로다”(창 2:24)에서 둘(남자와 여자)은 구분을, 한 몸은 분리되지 않음을 의미한다고 보는 것은 전혀 하자가 없다고 여겨집니다. 이는 예수님의 말씀을 통하여 확증되어집니다. 예수님은 결혼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둘이 아니라 한 몸이기에 사람이 나누지 못한다(마 19:6)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누지 못한다는 것은 이혼하지 못한다는 것으로서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결혼을 통하여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지는 복은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복은 기계적인 것이 아니고 사명이 뒤따르는 것입니다. 음행한 연고 외에는 이혼할 수 없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마 5:32)은 음행에 의해서는 이혼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두 사람이 한 몸이 되는 복을 얻었다면 혼외정사인 음행으로 인해 분리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음행으로 인해 주어진 복을 저버리지 않아야 합니다. 사명을 따라 생활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복과 사명의 온전한 결합을 추구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는 성도의 모든 삶과 관련한 성경적 원리입니다.
부부가 한 몸이 되는 것은 구분되는 두 개체에 대하여 한 분이라고 하는 것에 대한 성경에서의 표현 양식입니다. 숫자적인 1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연합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성경이 삼위이시면 한 분이신 하나님을 말씀하실 때에 한 분이 숫자적인 1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 성경적인 근거는 없다고 하겠습니다. 페리코레시스를 말한다고 하더라도 숫자적인 1이 되지 않는 것은 자명합니다. 성자와 성령이 페리코레시스하신 성부, 성부와 성령이 페리코레시스하신 성자, 성부와 성자가 페리코레시스하신 성령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있어서 한 분이란 사람과는 비교할 수 없이 완전하게 연합하신 성부와 성자와 성령님을 가리키는 성경적 표현이라고 하겠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삼위일체에 대한 정의와 같이 “그 본질과 능력과 영원성에 있어서 동일하시다”는 것입니다. 첨가하자면 그 뜻과 말씀과 행하심에 있어서 조금의 분리도 없으시기에 삼위이시지만 한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한 분’이라는 표현은 수적인 개념이 아니라 관계적인 개념입니다.
이러한 개념은 성경이 쓰일 당시의 이방인들의 신관과 비교하면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방인들에게 있어서 신들은 각각 따로따로이면서 계급에 의한 복종의 관계이었습니다. 서로 다른 개체라면 그 자체로 그들에게는 다신론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반면에 성경의 하나님,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각각 구분되시는 분이시지만 그것으로 인해 세 신으로 이야기되지 않습니다. 숫자적으로는 1이 아니지만 관계적으로는 한분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성경적 증거
바울 사도는 "이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에 거할 때에는 주와 따로 거하는 줄을 아노니"(고후 5:6)라고 말씀합니다. 바울 사도는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에는 주와 따로 거한다고 말씀합니다. 주님은 하늘 보좌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하늘 보좌 곧 하나님 아버지의 우편에 계십니다. 이는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거한다는 성경의 증거들과 모순되는 표현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영이시며, 주의 영이십니다. 성령은 그 본질과 능력과 영원성에 있어서 성부와 성자와 동일하시고 그 뜻과 말씀과 행하심에 있어서 완전히 일치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령님의 내주하심으로 성경은 우리 안에 그리스도께서 계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성령님만 내주하시기에 주님이 이 땅에 거하는 우리와 따로 거하신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상호공재를 통한 분리되지 않음이 성경의 가르침이라면 결코 쓰일 수 없는 말씀입니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분이 성령님만이라고 하더라도 상호공재로 인하여 주님도 거하시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몸에 거할 때에는 주와 따로 거한다는 말씀이 성립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나님과 함께 춤을
교의는 사고(논리)가 아니라 성경 본문에 의해서 결정되어야 합니다. 한쪽으로 편향된 이해가 아니라 전 성경에 대한 바른 이해에 근거하여 형성되어야 합니다. 페리코레시스는 “안에 있다”에 대한 성경적인 이해를 가지지 못한 상태에서 주장되었고 전 성경적인 이해와도 동떨어진 것입니다.
삼위일체론에 있어서 “분리되지 않는다”는 페리코레시스에 의해서 성립되는 교의라고 할 수 없습니다. “분리되지 않는다”는 필연적으로 페리코레시스를 요청하지 않습니다. 삼위가 그 본질과 능력과 영원성에 있어서 동일하시고 그 뜻과 말씀과 행하심이 완전히 일치하시기에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삼위 하나님의 연합 나아가 일치와 함께 겸손을 넘어서는 자기를 비움을 배워야 합니다. 성자는 자기를 비움으로 사람이 되셨고 구속 역사를 완성하셨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는 그 모든 사역과 자신의 전 인격에서 모든 영광을 성부께로 돌리셨습니다. 성령님은 공생애에서 예수님을 인도하시고 다스리시어 구속 역사가 성취되도록 역사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이후에는 기꺼이 주의 영으로서 주님의 것을 가지고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일하시고 계십니다. 삼위 하나님께서 존재와 본질에 있어서 조금의 차이도 없으심에도 너무나도 멋지고 황홀한 춤을 추시는 것입니다. 그 춤은 삼위 하나님만의 춤이 아니라 우리의 춤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연합 나아가 일치, 하나님 앞에서 겸손을 넘어서는 자기를 비움으로.
삼위일체란 단어 자체가 성경에 없는 신학 용어라는 것은 아실테고요. 삼위일체에 대한 풀이가 다양할 수 있는데, 중요한 것은 언제나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개념이 정립되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체'를 숫자적 '1'로 보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에 부합되는 신학적 이해인지 아니면 성경의 가르침과 무관한 신학적 이해인지 살펴야 합니다.
'일체'의 근거는 성경이 말씀하는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인데, 과연 그 말씀이 숫자적인 개념이 담긴 표현인지 아닌지를 살펴야 하겠지요. 저는 그 말씀이 숫자적인 개념이 담긴 표현은 아니라고 보는 것입니다. 성경의 용례를 살필 때에 숫자적 개념의 표현이 아니라 관계적 개념의 표현이라는 것입니다.
신학적 개념은 성경에 부합되는 것이면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그렇지 않으면 선입견에 다름 아닙니다. 성경의 가르침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을 가로막는 장애물인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바른 이해와 바른 평가라고 여겨집니다. 성경에 근거하여. 위의 글은 '일체'에 대한 신학적 이해가 아니라 성경적으로 어디가 어떻게 잘못되었다는 방식으로 평가되어야 할 것입니다. 위의 글 자체에 대하여.
삼위일체란 우리가 성경에 나와있는 하나님에 대하여 사람으로서 표현 할 수 있는 최상의 표현을 한 것입니다. 이것을 또 다시 해석하고 가르치려 하는것은 또다른 혼란만 가중 시킵니다. 그것은 해석 되어 지지도 않을뿐더러 해석 보다는 그냥 믿음으로 받아 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해석은 되어지지 않더라도 믿음을 통하여 깨달아 지기는 합니다. 그것을 논리적 잣대로 해석을 하려다 보면 또 다른 논리를 불러오고 그러다가 본질은 흐려지게 되는 것이며 현란한 수식어만 남발하게 됩니다.0301님의 말씀이 핵싱인것 같습니다.
복음자랑님이 올리신 글에 부부일심동체가 나옵니다. 우리는 부부는 한몸을 이루는 것을 알지만 하나님을 여러몸으로 나누고 삼위라고 하는 것은 올바른 해석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천지의 주재이신 유일하신 한분임을 믿는 것이 우리의 신앙의 근본이되고 뜻을 정하신 아버지(성부) 그 일을 성취하신 아들(성자) 또한 그 일을 보증하시는 성령이 된 흐름을 볼 때 양태론으로 잘못 번져갈 수 도 있는 부분입니다. psh0301님과 만천님과 아니그담님이 지적하신 "믿음"으로 결론 지을 수 밖에 없는 현 성경의 해석들의 모호함들을 억지로 짜 맞추려다 이단시 되버리는 현실정을 볼 때 복음자랑님이 올리신 글은 여전히 이해불가한 "삼위삼체" 이죠.
이해가 안되는 것이 성령으로 거듭난 자들의 믿음인 것은 옳습니다만 실상 어찌보면 이 믿음을 증거할 언변들이 부족할 뿐 이들은 믿음에 관계된 것을 나름대로 열심히 성경구절과 함께 성경을 증거하려 하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학적 용어와 학문으로 가득이나 단순하고 명료한 성경의 해석은 믿음으로 이해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저런 글들로 오히려 혼란만 가중 되어지는 일은 저나 복음자랑님이나 그 누구도 보탤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예정론에 관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음자랑님의 말씀을 사모하시는 열심은 충분히 잘 알수가 있는데 성령은 오직 성령으로만 해석되어지는 책이라면 성경대로 해석하여 함께 은혜가 되어야 성경적이죠.
/하나님은 유일하신 한 분이십니다. 다만 그 하시는 일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으로 나뉠 뿐입니다/ 이렇게 글을 올리면 신학 좀 한 사람들은 당장에 양태론을 거론하지요. 전 개인적으로 '어찌보면 성경의 자유한 해석을 가로 막고 있는 것이 신학과 교리가 아닐까' 하고 심히 우려하는 입장입니다.부부(남녀)가 한몸을 이루는 것은 모든 살아가는 일을 한몸처럼 같은 동질의 사고와 행동을 하란 의미일진데, 엄연히 숫자로도 2 입니다만 하나님은 한분이십니다. 일체란 뜻은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니라(요10:30)의 말씀을 한번 묵상 해봄이 좋을 듯 싶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와 나는 하나라고 말씀하셨는데 아버지와 아들의 차이점도 우리가 다시 점검해봐야 할 문제이고 짚고 넘어가야 할 것들을 빼버리고 부부일심동체처럼 아버지와 아들을 하나다라고 억지로 짜 맞출 경우에 진정 성령으로 거듭난 이들은 진리의 영이 안에 계심으로 이러한 신학적 해석은 오히려 반감을 사게하며 입술로든지 마음으로든지 정죄하고 비판하는 죄를 범하게 하는 일을 초래할 뿐입니다. 이곳은 각자의 예배당도 아닌지라 평소 의문을 가지게 하는 자신의 복사의 설교내용이나 자신이 읽은 성경의 깨달음이 다를 때 질문하여 바른 신앙관과 더 큰 능력의 말씀을 소유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는 공간입니다.
김폴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삼위일체를 주장하는 이들 중에는.. 이것이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고 주장하는 자들 엄청 많습니다. 그러면서.. 자신도 모르는 것을 가지고 이단어쩌구 저쩌구 하지요.. 제가 말씀드리죠.. 칼빈의 신학이론은 어거스틴의 신학이론을 거의 모방한 수준인데요.. 어거스틴과 칼빈의 삼위일체론은.. 한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은 세인격이요 세분의 신이라는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이는 삼신론입니다.. 근데 삼신론이라는 말이 거북스러우니까.. 핑계를 대고 포장을 시켜(=말을 복잡하게 어려운 어구를 써) 삼신론이 아니라하지만 내용이 삼신론입니다.
세르베투스의 말대로.. 칼빈과 어거스틴의 삼위일체론은 머리세개달린 괴물론이 정확한 표현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몇분인가? 이것은 하나님은 한분이라 해야합니다.. 이런 사실에 근거해.. 다양한 견해들이 있는데.. 양태론이라는 것도 있고 단일신론(유대교)이라는 것이 있는데.. 둘다 옳지 않습니다.. 교리사에서의 양태론은 본질의 양태론이므로.. 부연설명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것을 본질적양태론이라하여 구분시키는 용어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옳은 것인가? 이 문제는 하나님은 한분으로써 사역적 양태론이 옳은 것입니다.
사역적 양태론은 본질적 양태론과도 다르고 유대교사상의 단일신론이라는 개념과도 다릅니다. 그러나 삼위일체론은 여호와증인처럼 넘 심하게 빗나가지 않는 이상... 십자가의 도와 거듭남과 구원의 도에는 영향을 거의 미치지 않는 관계로 이 이론에 넘 왈과불과할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반드시 알아야합니다.. 근데 이 교리에 목숨거는 것을 보면.. 정말 중요한 것이 뭔지를 모르는 것이며.. 헛된 교리적 열망에.. 목숨을 거는 허망한 마음인 것입니다..
완벽 그 자체인 사도 바울을 통하여 가르쳐 주신 말씀들, 맞습니다. 맞고요. 그 말씀들의 한 내용을 설명해보시지요. 하나님 아버지, 주 예수 그리스도, 성령 하나님. 그리고 "하나님은 한분이시라." 이 모두가 사도 바울을 통하여 주님께서 주신 말씀에 포함되어 있는데, 어떻게 받아야 하는 것인지요?
첫댓글 삼위 심체란 해석 밖에 안되는 것 같습니다
삼위일체란 단어 자체가 성경에 없는 신학 용어라는 것은 아실테고요. 삼위일체에 대한 풀이가 다양할 수 있는데, 중요한 것은 언제나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개념이 정립되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일체'를 숫자적 '1'로 보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에 부합되는 신학적 이해인지 아니면 성경의 가르침과 무관한 신학적 이해인지 살펴야 합니다.
'일체'의 근거는 성경이 말씀하는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인데, 과연 그 말씀이 숫자적인 개념이 담긴 표현인지 아닌지를 살펴야 하겠지요. 저는 그 말씀이 숫자적인 개념이 담긴 표현은 아니라고 보는 것입니다. 성경의 용례를 살필 때에 숫자적 개념의 표현이 아니라 관계적 개념의 표현이라는 것입니다.
신학적 개념은 성경에 부합되는 것이면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그렇지 않으면 선입견에 다름 아닙니다. 성경의 가르침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을 가로막는 장애물인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바른 이해와 바른 평가라고 여겨집니다. 성경에 근거하여. 위의 글은 '일체'에 대한 신학적 이해가 아니라 성경적으로 어디가 어떻게 잘못되었다는 방식으로 평가되어야 할 것입니다. 위의 글 자체에 대하여.
삼위일체 는 믿음으로 성령충만 받으므로 확실해집니다.
삼위일체란 우리가 성경에 나와있는 하나님에 대하여 사람으로서 표현 할 수 있는 최상의 표현을 한 것입니다. 이것을 또 다시 해석하고 가르치려 하는것은 또다른 혼란만 가중 시킵니다. 그것은 해석 되어 지지도 않을뿐더러 해석 보다는 그냥 믿음으로 받아 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해석은 되어지지 않더라도 믿음을 통하여 깨달아 지기는 합니다. 그것을 논리적 잣대로 해석을 하려다 보면 또 다른 논리를 불러오고 그러다가 본질은 흐려지게 되는 것이며 현란한 수식어만 남발하게 됩니다.0301님의 말씀이 핵싱인것 같습니다.
현란한 수식어??? 아주 맘에 드는 표현이오...도대체가 무신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있으야지라...
무신 황당한 소리들이요? 숫자로 1은 아닌데 관계적으로 하나다? 그거이 무신 말이요? 우리같이 쬐금 가방끈이 짧은 사람은 대체 무신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소. 하나이라는 것이요, 아니라는 것이요? 거참 비비꼬아 놓은것도 아니고 복잡허기 짝이 없소그랴...
복음자랑님이 올리신 글에 부부일심동체가 나옵니다. 우리는 부부는 한몸을 이루는 것을 알지만 하나님을 여러몸으로 나누고 삼위라고 하는 것은 올바른 해석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천지의 주재이신 유일하신 한분임을 믿는 것이 우리의 신앙의 근본이되고 뜻을 정하신 아버지(성부) 그 일을 성취하신 아들(성자) 또한 그 일을 보증하시는 성령이 된 흐름을 볼 때 양태론으로 잘못 번져갈 수 도 있는 부분입니다. psh0301님과 만천님과 아니그담님이 지적하신 "믿음"으로 결론 지을 수 밖에 없는 현 성경의 해석들의 모호함들을 억지로 짜 맞추려다 이단시 되버리는 현실정을 볼 때 복음자랑님이 올리신 글은 여전히 이해불가한 "삼위삼체" 이죠.
이해가 안되는 것이 성령으로 거듭난 자들의 믿음인 것은 옳습니다만 실상 어찌보면 이 믿음을 증거할 언변들이 부족할 뿐 이들은 믿음에 관계된 것을 나름대로 열심히 성경구절과 함께 성경을 증거하려 하시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학적 용어와 학문으로 가득이나 단순하고 명료한 성경의 해석은 믿음으로 이해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저런 글들로 오히려 혼란만 가중 되어지는 일은 저나 복음자랑님이나 그 누구도 보탤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예정론에 관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음자랑님의 말씀을 사모하시는 열심은 충분히 잘 알수가 있는데 성령은 오직 성령으로만 해석되어지는 책이라면 성경대로 해석하여 함께 은혜가 되어야 성경적이죠.
/하나님은 유일하신 한 분이십니다. 다만 그 하시는 일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으로 나뉠 뿐입니다/ 이렇게 글을 올리면 신학 좀 한 사람들은 당장에 양태론을 거론하지요. 전 개인적으로 '어찌보면 성경의 자유한 해석을 가로 막고 있는 것이 신학과 교리가 아닐까' 하고 심히 우려하는 입장입니다.부부(남녀)가 한몸을 이루는 것은 모든 살아가는 일을 한몸처럼 같은 동질의 사고와 행동을 하란 의미일진데, 엄연히 숫자로도 2 입니다만 하나님은 한분이십니다. 일체란 뜻은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니라(요10:30)의 말씀을 한번 묵상 해봄이 좋을 듯 싶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와 나는 하나라고 말씀하셨는데 아버지와 아들의 차이점도 우리가 다시 점검해봐야 할 문제이고 짚고 넘어가야 할 것들을 빼버리고 부부일심동체처럼 아버지와 아들을 하나다라고 억지로 짜 맞출 경우에 진정 성령으로 거듭난 이들은 진리의 영이 안에 계심으로 이러한 신학적 해석은 오히려 반감을 사게하며 입술로든지 마음으로든지 정죄하고 비판하는 죄를 범하게 하는 일을 초래할 뿐입니다. 이곳은 각자의 예배당도 아닌지라 평소 의문을 가지게 하는 자신의 복사의 설교내용이나 자신이 읽은 성경의 깨달음이 다를 때 질문하여 바른 신앙관과 더 큰 능력의 말씀을 소유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는 공간입니다.
님의 글이 더 답답하오...콩이라는 것이요, 팥이라는것이요...아니면 그냥 덮어두자는 것이요...아이고 가슴이야!
성경에 있지도 아니하고 ..예수님도 모르고 사도들도 모르는 ...삼위일체라는 말때문에 ...고생들이 많으십니다...더 웃기는 건.. 정체도 모르는 삼위일체를 믿어야만 ㅡ정통이고 ... 이단판정의 기준이라니..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자기들도 모르는 삼위일체를 믿으라..
자기들도 모르는 삼위일체를 안믿으면 이단이라..허 참..
복음자랑님의 (3)글 올라 오길 기다리시나 봅니다. 다 올라오면 뭐라 다음 꼬리글 다시겠지요
복음자랑님이나 댓글다는 분들이나 ..헤메는것은 피차일반..
김폴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삼위일체를 주장하는 이들 중에는.. 이것이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고 주장하는 자들 엄청 많습니다. 그러면서.. 자신도 모르는 것을 가지고 이단어쩌구 저쩌구 하지요.. 제가 말씀드리죠.. 칼빈의 신학이론은 어거스틴의 신학이론을 거의 모방한 수준인데요.. 어거스틴과 칼빈의 삼위일체론은.. 한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은 세인격이요 세분의 신이라는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이는 삼신론입니다.. 근데 삼신론이라는 말이 거북스러우니까.. 핑계를 대고 포장을 시켜(=말을 복잡하게 어려운 어구를 써) 삼신론이 아니라하지만 내용이 삼신론입니다.
세르베투스의 말대로.. 칼빈과 어거스틴의 삼위일체론은 머리세개달린 괴물론이 정확한 표현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몇분인가? 이것은 하나님은 한분이라 해야합니다.. 이런 사실에 근거해.. 다양한 견해들이 있는데.. 양태론이라는 것도 있고 단일신론(유대교)이라는 것이 있는데.. 둘다 옳지 않습니다.. 교리사에서의 양태론은 본질의 양태론이므로.. 부연설명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것을 본질적양태론이라하여 구분시키는 용어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옳은 것인가? 이 문제는 하나님은 한분으로써 사역적 양태론이 옳은 것입니다.
*참고 : 사역적양태론이라는 용어는 교리용어인 양태론이란 것과 분별되는 용어이기에.. 본인이 정의한 용어입니다.. 그리하여.. 교리사적 양태론을 본질적양태론이라하였고 저의 주장을 사역적 양태론이라 한 것입니다.. 오해 없으시길...
사역적 양태론은 본질적 양태론과도 다르고 유대교사상의 단일신론이라는 개념과도 다릅니다. 그러나 삼위일체론은 여호와증인처럼 넘 심하게 빗나가지 않는 이상... 십자가의 도와 거듭남과 구원의 도에는 영향을 거의 미치지 않는 관계로 이 이론에 넘 왈과불과할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반드시 알아야합니다.. 근데 이 교리에 목숨거는 것을 보면.. 정말 중요한 것이 뭔지를 모르는 것이며.. 헛된 교리적 열망에.. 목숨을 거는 허망한 마음인 것입니다..
신학이라는 자체가 괴물이지요..온갖 론들과 온갖 설들과 온갖 주의들을 짬뽕시킨 괴물..이 괴물의 머리는 로마 카톨릭 --가증한 음녀
주님게서 사도바울을 통하여 가르쳐주신 말슴들은.. 완벽<퍼펙트> 그자체..
완벽 그 자체인 사도 바울을 통하여 가르쳐 주신 말씀들, 맞습니다. 맞고요. 그 말씀들의 한 내용을 설명해보시지요. 하나님 아버지, 주 예수 그리스도, 성령 하나님. 그리고 "하나님은 한분이시라." 이 모두가 사도 바울을 통하여 주님께서 주신 말씀에 포함되어 있는데, 어떻게 받아야 하는 것인지요?
그대로 믿으시면됩니다. 헷갈리 아무런 이유도 찾을 수 없습니다..다만 기록된 가르침[성경]에다가 로마카톨릭이 만든 삼위일체를 들이대면 그때부터 헷갈리게 되어있습니다.
대답은 않고 같은 말만 반복하면 되겠습니까? 하나님은 한분이시라고 할 때에 한분이 숫자적인 1이라는 것입니까? 그래서 성경에서 말씀하는 "성부, 성자, 성령. 그리고 한분"이라는 말씀이 "3=1"을 뜻한다는 것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