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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자의 미학 - 하이쿠의 성인 마쓰오 바쇼
마츠오 바쇼(松尾芭蕉, 1644-1694)의 일생
마츠오 바쇼는 1644년 지금의 미에현 우에노 시(市)인 이가우에노에서
2남 4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원래 마츠오 가는 12세기를 전후해
권세를 떨쳤던 무사 가문인 헤이케의 말류에 해당하는 토호의 한 지족이었으나,
그의 아버지 신분은 하급 무사에 해당하는 농민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이쿠호(俳號)는 처음에 무네후사(宗房), 도세이(桃靑)로 하다가
나중에 바쇼라고 부르게 되었다. 13살 되던 해인 1656년 아버지를 여의고,
19살에 도도번 이가부(藤堂蕃伊賀府)의 사무라이 대장
도도 신시치로가(藤堂新七郞家)에 출사(出士)했다.
또한 그는 자신보다 2살 위이며
도도 가의 상속자였던 도도 요시타다(藤堂 良忠)의 총애를 받으며,
그와 하이카이를 통한 교분을 두텁게 했다.
요시타다가 데이몬 하이카이 시인이었던 관계로,
당시 크게 유행하고 있던 데이몬 하이카이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그러나 바쇼가 23살 되던 해, 요시타다가 향년 25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함으로써,
바쇼는 무사로서의 길이 막히게 되고, 인생 또한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
이후 고향 이가 우에노를 떠나 교토에서 교토의 사원에 머물면서
와카학(和歌學), 의술, 신도, 불교 등을 배웠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나
확실하지는 않다.
29살 되던 해(1672년), 이가 우에노의 신사 덴만 궁에
자신이 편집한 홋쿠아와세(發句合: 2수의 하이쿠를 비교하여 평한 다음
우열을 가린 것)『가이오호이』를 봉납했다.
이로써 하이카이 시인으로서 출발하는 스스로의 결의와 성공을
신사에 기원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봄, 에도에서『가이오호이』를 출판했다.
30세부터 37세까지는 주로 에도에서 생활하면서 당시에 유행하던
단린 하이카이(교토를 중심으로 한 언어 유희적인 경향의 하이카이)에 탐닉해 있었다.
31세 때, 교토의 하이카이 종장 기타무라 기긴(北村季吟)으로부터
렌가 하이카이 작법의 비전서(秘傳書)『우모레기』를 전수 받았다.
비전서를 전수 받았다고 하는 것은 하이카이 시인으로서,
그리고 그것을 업으로 하는 하이카이 지도자로서 독립을 인정받았다는 것을 의미했다.
또한 33세 때 하이카이 친구 소도와 함께 출판한
『에도양음집(江戶陰陽集)』에 수록된 작품들은
바쇼가 당시에 유행하던 단린 하이카이에 탐닉해 있었음을 엿보게 한다.
37살이 되던 해인 1680년, 시정을 벗어나 후카가와에서 은둔 생활을 시작했다.
다음 해 제자인 리카(李下)가 그가 머물던 오두막의 정원에
파초를 심었던 것에서 후카가와의 오두막을 '바쇼 암(庵)'이라고 불렀으며,
그의 호가 바쇼인 것도 여기에서 유래한다.
또 바쇼 암 근처에 임재종 묘심사 파의 숙박소인 임제암이 있었는데,
그곳에 가시마 곤폰 사(鹿島 根本寺)의 주지승 붓초가 머물렀던 인연으로,
이즈음 그로부터 참선을 배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후 4년여 동안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특히 노자와 장자, 이백, 두보, 한산,
백낙천, 소동파 등의 중국 시인의 시와 사이교 등
일본의 전통 시가에 심취해 있었으며, 이 시기의 그의 하이카이의 특징은
노장(老莊)취미와 한 시조를 도입한 격조 높은 새로움에 있었다.
41살이 되던 1684년, 바쇼는
들판의 해골로 / 뒹굴리라 다짐하고 떠나가자니 / 바람은 살을 에이는도다라는
하이쿠를 읊으며, 이제까지의 은둔 생활을 박차고『노자라시 여행』의 길을 떠났다.
이 후 1687년 8월『가시마 모데(鹿島詣)』여행,
10월『오이노 고부미(おいの小文)』1688년 『사라시나 기행(更科紀行)』
1689년『오쿠노호소미치(おくのほそ道)』에 이르기까지,
그의 생활은 거의 여행과 은둔의 연속이었다.
이들 여행 속에서 그는 각지의 하이카이 시인들과의 만남의 장을 열어,
자신의 하이카이를 전파해 갔다.
5개월이 더 걸려 6,000여리의『오쿠노호소미치(おくのほそ道)』의 긴 여행을 끝낸
바쇼는, 이 여행이 끝나고 나서 2년도 더 지난 다음 에도로 돌아왔다.
이 동안 쇠약해진 몸으로 교토와 오사카 등지를 전전하면서
많은 문하생들을 맞아들이는 한편, 그들과의 교류를 활발히 함과 동시에
여행을 통해 체득한 자신의 하이카이를 작품화했다.
그러던 1694년 10월14일,
여행길에 병드니 / 황량한 들녘 저편을 / 꿈은 헤매도다라는 하이카이를
세상에 남기고, 여행지였던 오사카에서 51세의 나이로 임종을 맞았다.
지금도 많은 이들이 바쇼의 방랑 여정을 따라 그의 시를 음미하고 있으며,
세계적으로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에즈라 파운드, 옥타비오 파스 및 비트 제너레이션 작가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일본을 대표하는 대형 서점 기노쿠니아(紀伊國屋) 신주쿠 본점에 가면
2층에 시집 코너가 있었다.
코너에는 어른이 양팔을 벌린 크기 정도의 책꽂이 2개가 있었다.
이 중 하나가 전부 하이쿠 매대다.
나머지 하나에는 일본 현대시를 비롯한 전 세계 시인들의 시가 꽂혀 있다.
전체 시집 매대의 절반을 차지할 만큼 하이쿠 비중이 높다.
그 하이쿠 매대를 조금 더 들여다보면
꽂혀 있는 시집의 절반 이상이 바쇼의 작품이다.
서점 진열대에서 확인되듯 바쇼는 하이쿠의 완성자이자 지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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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천년간 일본 최고의 문인은 누군가?'라는 설문조사 결과’
2000년 아사히 신문
1위 나쓰메 소세키 : 근현대 일문학의 아버지로 추앙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2위 무라사키 시키부 : 일본 헤이안시대의 궁녀 <겐지모노가타리>
3위 시바 료타로 : 역사소설의 대가 <나라 훔친 이야기>
4위 미야자와 겐지 : 일본 최고의 동화작가, <은하철도 999>
5위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 일본 최고의 권위 "아쿠타가와 상"
6위 마츠오 바쇼 : 하이쿠의 성인
7위 다자이 오사무 : 다섯번의 자살시도 자화상 <인간실격>
8위 마쓰모토 세이초 : 사회파 추리소설의 아버지 <점과 선>, <눈의 벽>
9위 가와바타 야스나리 : 노벨문학상 <설국>
10위 미시마 유키오 : 전후 문학 최고의 백미 <금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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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잎 하나가 떨어지네 / 어, 다시 올라가네 / 나비였네
"너와 나의 삶 / 그 사이에 / 벚꽃의 삶이 있다."
"손에 잡으면 / 사라질 눈물이여 / 뜨거운 가을 서리."
구구한 설명이나 묘사는 없다.
뭔가 아련하게 천천히 밀려오는 감동. 이것이 하이쿠의 미학이다.
하이쿠는 중세 이후 일본 문학을 대표하는 시 장르다.
일본어 기준으로 5·7·5의 음수율에 전체 17음절로 구성된 시다.
시 속에 계절을 나타내는 시어인 기고(季語)가 반드시 들어 있어야 한다.
하이쿠는 원래 장시의 앞부분을 칭하는 말이었다.
15세기에 유행하던 장시 하이카이렝카(俳諧連歌)의
첫 번째 구(句)를 홋쿠(發句)라고 했는데,
바쇼가 본격적으로 이 부분만을 따로 쓰기 시작했고
이것이 하이쿠의 전형이 된 것이라는 게 정설이다.
자수와 소재의 제약이 가혹하다 보니 하이쿠는
점점 고도의 상징성과 여운에 기대는 형태로 발전해 나갔다.
하이쿠의 성인 마쓰오 바쇼의 작품 감상
말은 터벅터벅
그림 속의 나를 보는
여름 들판
들판의 해골을
생각하니 뼛속에
스미는 바람
말에서 잠 깨어
꿈결에 달은 멀고
차 끓는 연기
달 없는 그믐
천년 묵은 삼나무를
껴안는 폭풍
손에 잡으면
사라질 눈물이여
뜨거운 서리
죽지도 못한
나그네 잠끝이여
저무는 가을…
하이쿠를 완성시킨 일본 시인 바쇼(芭蕉·1634∼1694)의 파초사랑
일본의 전통적인 짧은 정형시 ‘하이쿠(俳句)’.
5-7-5 음률의 17자에 촌철살인의 묘사와 감정을 드러내야 하는 장르로 유명하다.
바쇼는 ‘도우세이(桃靑)’이라는 호를 ‘바쇼(芭蕉)’로 바꾸었고
자신이 사는 암자도 ‘바쇼안(芭蕉庵)’이라고 불렀거니와,
이어령은 ‘파초’야말로 바쇼의 하이쿠론 그 자체라고 보았다.
바쇼는 만년에 파초를 사랑한 까닭을 자세하게 써넣은 ‘파초를 옮기는 말’에서,
재목으로도 쓸 수 없고 어쩌다 피는 꽃도 아름답지 않은데
잎만 넓은 그 파초에게서 “풍우에 쉬 씻겨짐을 사랑할 뿐”이라고 적었다.
파초에 태풍 불고
물대야에 빗소리
듣는 밤이여
하이쿠의 바이블로 여겨지는 마쓰오 바쇼의 4계를 노래한 대표작 4편
봄
우수(雨水) 지나면 경칩이다. 놀랄 경(驚), 숨을 칩(蟄)!
그러니까 삼월 초순의 경칩은 겨우내 얼어 있고
숨어 있던 모든 것들이 놀라 뛰쳐나오는 무릇의 봄, 바야흐로 봄을 예고한다.
오래 묵은 연못에 개구리가 뛰어들며 내는 물소리를 떠올리다보면
이 경칩이라는 말이 떠오르곤 한다.
봄이 오는 소리, 그 들리지 않는 소리를 바쇼는 개구리의 몸으로 듣고 있다.
생명의 살갗과 정지된 물의 심연이 맞닥뜨리며 울리는 찰나의 소리,
촌음(寸陰)의 개구리 시간이
유구(悠久)한 연못의 시간을 일깨우는 생생과 상생의 소리이다.
하이쿠를 대표하는 시이다.
여름
여름의 깊은 초록에 둘러싸인 산사는 적막할 것이다.
이 적막한 정적을 날카롭게 울리는 매미 소리가 더욱 서슬 푸르게 한다.
짝짓기 상대를 부르는 수매미 울음소리에
여름 절집의 고요와 한적이 대비적으로 강조되고 있는 셈이다.
초록이 짙고 매미 소리가 짙어 그 짙음이 뚝뚝 배어나는 듯하다.
배어나서는 커다랗고 메마른 바위에 스며드는 듯하다.
사랑의 소리, 생명의 소리는 그렇게 수천만 년을
단단히 웅크리고 있던 바위를 적시고
깊숙한 바위의 마음에까지 가 닿는 것이리라.
가을
하이쿠는 감각의 향연이다.
들리는 것으로 들리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표현하는 아이러니의 노래다.
이 감각의 향연 속에 통찰과 사유와 깨달음이 새겨져 있다.
바쇼는 가을을 입술 끝에서 시린 촉각으로 읽어낸다.
입술에 침이나 바르고 거짓말을 하라는 말이 있다.
욕망이 담긴 말일수록 그 말이 나오는 입술 끝은 촉촉이 젖어 있기 마련이다.
말보다 침묵을, 머리보다는 감각을, 인위보다는 자연을 먼저 헤아려볼 일이다.
입술 끝에 맺히는 욕망의 뜨거운 말을 제어하는 것은
입술 끝에 와 닿는 가을 찬바람이다.
그러니 말을 내뱉기 전 가을 찬바람 먼저 들이쉬고 볼 일이다.
다급히 말 먼저 뱉고 나면 가슴까지 시리게 될 것이다.
말하려는 입술은 늘 젖어 있기 마련이다.
겨울
한겨울이다. 재 속의 화롯불은 사그라지고 눈물은 끓어오른다.
슬픔의 눈물이 떨어져 화로의 불을 꺼뜨리기라도 하듯,
아니 떨어진 눈물이 화로의 불 속에서 끓기라도 하듯,
마음의 불이 뜨겁게 타오르기 때문에 화로의 불이 점점 사그라지는 것일까.
화롯불이 사그라질 때까지 화롯불을 바라보며
슬픔을 가누고 있는 감각적 표현이 압권이다.
‘끓는 소리’는 무엇인가 끓어오르는 모양과 그 소리를 환기하는데,
그것도 ‘눈물 끊는 소리’라는 탁월한 표현을 통해
그 슬픔이 가누기 어려운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점점 꺼져 가는 화롯불은 소멸을 향한 시간의 경과를 나타내는 지표인바,
이 시는 친지의 죽음을 추모하며 그의 유가족에게 보낸 조문의 시로 알려져 있다.
하루 종일 화롯불 앞에 앉아 달래야 했던 애끓는 슬픔을 함께 나누고자 했을 것이다.
이 뜨거운 슬픔 때문에 겨울이 더욱 춥게 느껴진다.
일본의 하이쿠와 마츠오 바쇼
일본의 하이쿠 : ▷하이쿠란….
하이쿠(俳句)는 17자로 된 일본의 짧은 정형시로
와카(和歌)와 함께 일본 시가문학의 주요 장르다.
대개 첫째 줄 5자, 둘째 줄 7자, 셋째 줄 5자이다.
전통적 하이쿠는 계절을 상징하는 계어(季語)가 있다.
또 짧은 시를 여운 없이 읽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기레지(切字)를 넣어 끊어줌으로써 영탄이나 여운을 준다.
예컨대 『∼や(∼이여)』 『∼かな(∼로다)』 『∼けり(∼구나)』와 같은 것이다.
하이쿠에서 기레지는 짧은 시의 공간을 확장하는 역할을 한다.
위에서 소개된 번역시 들에서 느낄 수 있듯이 하이쿠는
주해 없이는 이해하기 곤란한 논리의 애매함을 지니고 있다.
의도적으로 논리를 무시하고 애매모하게 쓴다고도 할 수 있다.
육하원칙에 따른 사실의 진술은 논리적이지 않으면 통하지 않는다.
하지만 가족처럼 공유하는 부분이 많은 사이는 간단한 명사만 나열해도 충분히 통한다.
이때 형식논리는 오히려 거부된다.
하이쿠도 그와 같다…
하이쿠는 원래 여러 명이 모인 문예 공동체(렌가)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서로 공감하는 부분을 과감히 생략할 수 있었다.
하이쿠는 일종의 점의 배열이라 할 수 있다.
인간에게는 점을 연결해서 하나의 선이나 공간으로 느끼는 감각이 갖추어져 있다.
최소한의 적절한 소재, 즉 점의 배치만 있을 뿐이지
슬프다든지 아름답다든지 하는 서술을 과감히 여백 처리해 버리는 것이다.
생략이 많은 표현, 다양한 해석과 함축이 있는 표현일수록 하이쿠적 효과가 살아난다.
그 여백은 독자의 상상력으로 메꾸어져서 비로소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는 것이다.
(시적 여백의 미)
우리나라에 전통 정형시로 시조가 있다면,
일본에는 와카(和歌)라고 하는 문예장르가 있다.
와카는 5-7-5-7-7로 된 일본의 전통 시로,
이것은 중세 전란기에 지방을 떠돌던 문인들에 의해
5-7-5와 7-7로 나누어져 번갈아 읊는 렌가(連歌)의 형태로 발전하게 된다.
렌가가 근세에 들어 대중성을 얻기 시작하면서
5-7-5형식이 단독으로 읊어 지게 되는데,
그 형식이 문예형식의 하나로서 위치를 확립하고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는 한편,
이 시대 문학의 중심을 차지하는 데에 절대적인 역할을 한 것이
하이카이 시인 마츠오 바쇼(松尾芭蕉, 1644-1694)였다.
그는 모든 문물이 도시로 향하고 일찌기 자본주의적 성향을 띠기 시작한
17세기 에도시대에 저 변방으로의 고된 여행을 통하여 하이카이 문예를 완성해 갔다.
따라서 일본인에게 있어 바쇼의 이미지는 오로지 하이카이와 여행으로
평생을 일관한 속세를 초월한 여행 시인의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그의 모습은 현대 일본인들이 가장 동경하는 것이기도 하다.
오늘날 하이쿠는 일본이라는 고향을 떠나 전 세계를 무대로 지어지며 읊어지고 있다.
단지 작가들만이 창작을 독점하는 시문학이 아닌
일반인들의 생활 속에서 창작되고 애송되는
그야말로 살아있는 시로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첫댓글 하이쿠 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함께
마츠오바쇼의 사계절작품 잘보고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드립니다.
마츠오바쇼의 작품을 자두 감상하고 있습니다.
그러시군요
하이쿠의 성인이라고 하지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