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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꿈돌이 어린이날을 앞두고…. 띄우는 글
幸福한 삶 粱南石印
아빠, 엄마의 농장주인 가정이란 케이지 안에 부모라는 이름의 아바타로 사육되는 아이들.
꿈꾸지 않으면 사는 것이 아니라고. 별 헤는 맘으로 없는 길 가려 하네. 사랑하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라고. 설레는 마음으로 낯선 길 가려 하네. 배움이 있다는 건 꿈을 꾸는 것이며. 가르친다는 건 희망을 심어준다는 것. 어느 노랫말 가사처럼 아이들이 이상의 꿈과 자아실현을 위한 목적지 흔들림 없이 찾아갈 수 있도록 바른 가치관과 정체성 자아존중감 잃지 않도록 바른 길로 인도하는 어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신록이 우거진 산과 들녘 위 파란 하늘에 悠悠自適(우유자적)하는 엄마구름 아기구름 만들어 내는 경이로운 자연의 아름다운 풍경을 맞이하며 가을의 풍요를 기약하는 싱그럽기만 한 5월의 하늘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푸른 초록이 내 몸과 마음속에도 물들어 푸르러지고 있음에 행복을 느끼어 감사해야 하는 이즈음 어린이를 온실 속의 화초처럼 과보호가 아닌 한 인격체로서 인정함에 존중하고 상전처럼 떠받들지는 못할망정 자기 삶에 걸림돌이라 생각하고 아무런 대응 능력이 없는 어린이에게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도 하루 세끼 꼬박꼬박 곡기 축내고 희희낙락거리며 사는 인면수심의 탈을 쓴 인간 말종들의 행태에 분노를 느끼어! 이글을 2008.04.월 말경에 지었던 글입니다.
며칠 있으면 모두의 꿈나무이자 인류 미래의 희망인 어린이만을 위한 어린이날을 맞이합니다. 우리나라와 지구촌에 사는 모든 사람의 미래는 몸과 마음이 건강한 어린아이에게 달려있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어린아이들에게는 늘 쾌적한 환경 속에서 공부(성적:순위:등수)보다는 친구들과 어울리며 때론 코피도 터지고 팔꿈치 무릎도 까지고 땅에 뒹굴며 뛰어놀도록 꿈을 키워주는 노력에 더욱더 많은 관심과 배려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부족한 긴 글을 띄워 봅니다.
어린이는 어른의 거울이라는 했습니다. 거울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가감 없이 투영하는 물체로서 어른들이 하는 일거수일투족의 행동과 뱉어내는 말들 있는 그대로 아이들 인격 형성 과정에 투영되어 머릿속에 각인되는 것입니다.
하루가 멀다고 벌건 대낮에 학교 주변에서 초등학생까지 포함된 집단 성폭행이 벌어지는 경천동지할 일이 횡행하는 현실 사회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지 지각 있는 사람들 참담한 장탄식에 안타까워하는 보도 접하고 그러잖아도 사회가 어두운 이때 도대체 어디에서 희망을 찾아야 하는지 암울하기만 할 뿐입니다.
TV 등 각종 매체 뉴스는 고사하고 오락프로 하나까지 사랑하는 자녀들과 함께 시청하기가 민망한 사건·사고들이 넘쳐나는 날들 이천 년 초반 어느 외국 대사가 임기를 마치고 본국으로 돌아가면서 한 KBS TV 인터뷰 내용은 낯 뜨겁기 그지없는 내용으로 부끄러운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었습니다.
그 인터뷰 내용은 한국을 떠나가는 것이 못내 아쉽다는 말에 아주 재미있는 소설을 읽다가 소설 속의 절정에 이르러 책장을 덮어야 하는 아쉬움이 있다는 인터뷰 내용입니다.
늘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으며 살아 있는 생물처럼 생동감이 넘쳐나는 나라, 늘 긴장이 연속된 날들, 사는 것이 귀찮거나 힘들어하는 사람은 한국에 한 번 가볼 것을 권하겠다고!
교통지옥에 언제 어디서 어떤 차가 끼어들어 덮칠지 모를 만큼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연속된 긴장, 그러면서도 역동적인 한국 사회, 하루가 다르게 변모하는 한국 사회, 넘어질 듯 넘어질 듯하면서 굴러가는 사회, 긍정보다는 부정적인 내용이 많았던 인터뷰 기사 그렇게 끝맺음하였습니다.
또 하나의 기사는 2003년여 경우로 기억합니다. 당시 한국 경제신문인지? 매일경제신문인지? 기억은 정확지 않으나 어린이날 특집으로 신문사 주최 전국 초등생을 선발해 리조트에서 합숙하다 마지막 날 부모와 합류하기로 하고 여러 유익한 프로그램 중, 중간까지의 대본을 주고 이후부터 반을 편성해 토론하며 줄거리를 만들어 하나의 연극을 완성하라는 문제를 주었다는 기사였습니다.
연극 중간까지 줄거리 내용은 백수라는 이름을 가진 아버지가 엄청난 재산을 가진 자신의 아버지에 기대어 호의호식하며 놀고먹는 백수였다 합니다.
어린이날이 되어 백수의 초등생 아들이 백수인 아버지께 컴퓨터를 사달라는 얘기를 하자 백수 아버지는 당연한 듯 갑부인 아버지께 당신의 손자가 컴퓨터를 사달라고 하니 돈 좀 달라고 하였습니다.
갑부 아버지는 백수인 아들에게 호통을 치며 네 나이가 몇 살인데 언제까지 이 늙은 아비에게 손 벌리고 백수로 지낼 것이냐! 호통을 치며 오늘 네게 돈을 주는 것이 마지막이니 어떤 일이 있어도 다시는 내게 찾아와 손을 벌리지 말아라.
여기서부터 아이들이 함께 지혜를 모아 대본을 만들어 연극을 완성해 가는 내용이었는데 놀랍다 못해 충격적인 것은 아이들이 의논해 완성한 작품의 내용이었습니다.
천진난만한 아이들 머리에서 어찌 그리도 끔찍한 생각을 하였을까! 쇠망치로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한 과히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아이들이 이어간 연극의 대본은 갑부인 할아버지가 돈을 주지 않겠다고 하자 청부 살인 업자에게 할아버지를 죽여 죽여줄 것을 청부 유산을 받으면 된다는 줄거리였습니다.
한데 할아버지를 해치는 것도 기가 막히고 끔찍하지만 엄청난 갑부인 것도 부족해 할아버지를 해치기 전에 생명보험을 들어 놓고 해치면 보험금을 타게 되니 더 많은 유산을 받게 된다는 경천동지할 줄거리였습니다.
이어지는 내용이 더욱더 충격적인 일로 연극을 끝맺고 각반에 아이들이 이어간 연극에 내용을 토론하고 가장 잘된 연극을 뽑으라 하자 모두가 백수에 아들이 보험을 들고 청부살인으로 유산을 받게 될 연극을 가장 우수한 작품으로 뽑았다는 내용입니다.
그날 저녁 부모님들이 아이들과 합류해 위와 같은 내용을 선생님이 학부모에게 설명하자 모두가 하나같이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충격 속에 어쩌다가 아이들이 저 지경까지 되었는지 모르겠다고 이구동성으로 망연자실하며 할 말을 잃었다는 기사로 끝맺음하였습니다.
서두에 밝혔듯이 아이는 어른의 거울이라 했습니다. 세상 때 하나 묻지 않은 천진스러운 아이들이 그런 끔찍한 일들을 어찌 알았겠습니까?!
눈만 뜨면 끔찍한 사건 사고들이 넘쳐나는 세상, 돈에 눈먼 어른들이 제작 아이들을 미치게 하는 각종 게임은, 게임이 아니라 비록 가상 속이지만 괴물이나 사람 죽이는 것들뿐, 인격이나 가치관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아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판단하고 절제하기에는 매우 부족한 우리의 꿈나무들, 그저 호기심 많은 성장기 어린이가 자극적인 유해 환경과 낯 뜨거운 각종 음란물에 노출되어 옳고 그름에 판단할 능력이 부족해 흉내 내고픈 철부지들을 돈벌이에 희생양으로 삼는 어른들만 있을 뿐입니다.
흔히 밥상머리 교육이라는 옛 어르신들 말씀은 뒤로하고 “윤리와 도덕이란 훈육은 온데간데없고 과정보다 결과만 중시하는”“가정이나 사회 학교가 삼위일체로” 하나 된 교육풍토가 빚어낸 참담한 결과가 아닐까요?!
상대방을 짓밟고서라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오직 1등만 강요하는 풍토, 하나의 결과물을 얻기 위해 무슨 짓을 하더라도 오직 1등만 하면 잘못은 덮어두고 칭찬받는 풍토, 가정과 사회와 학교가 공범이 되어 티 없이 맑고 밝게 뛰어놀며 꿈을 먹고 자라나야 할 이 땅에 사는 어린이의 책임일까요?!
어린이는 아닙니다만, 이글을 작성할 당시 어느 외국어 명문고여고생이 자살하였다는 뉴스입니다. 그 학생은 적국 상위 3%로 내의 성적에 아주 우수한 학생이었습니다.
서울대에 무난히 합격할 수 있는 상위 3% 상위권에 든다는 자살한 이유는 모의고사 시험 성적이 만족스럽지 못해 고민하였다고 합니다.
이재까지는 등수와 관계없이 100위안에 들어가는 학생만을 발표했다는데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모든 학생의 등수를 발표해도 된다는 정책을 학교가 반기며 기다렸다는 듯 발 빠르게 따랐다 합니다.
그 학교에 100위권에 들면 전국 상위 3%에 드는 우수한 성적이라 합니다. 그 여고생에 등수는 전교 9등이었다고 합니다. 얼마나 우수한 학생입니까?!
하지만 앞서 본 모의고사는 7등이었답니다. 등수를 발표하면서 등수가 하락한 것에 속상해했다는 친구들 증언에 사고가 난 뒤 학교 측 대응이 학생들에게 더욱 큰 상처를 주었다는 보도가 뒷맛을 씁쓸하게 합니다.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고도 마음이 동해 실없이 웃기도 눈물짓기도 한다는 한참 예민한 사춘기 소녀인 여고생들이 어제까지 함께 학습하던 친구가 하루아침에 싸늘한 죽음으로 곁을 떠나갔음에 받았을 충격 누구의 책임일까요?
석차를 발표한 것이 친구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며 웅성거리자, 학교 당국은 학생들에게 학교의 명예가 실추되니 어디에 가서든 아무 말도 하지 말라는 함구령을 내려 취재조차 어려웠다는 보도를 접하고 또 다른 희생자가 나올 수 있다는 노파심이 들었다면 제가 어리석어서일까요?!
우리 어른들은 이 땅에 어린 천사인 아이들에게 다시는 죄를 짓지 말아야 합니다. 아이들이 잘못했더라도 따뜻하게 감싸 안아주어야 하며 따끔한 회초리로 야단치기보다는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야 할 것입니다.
뭘, 무엇을 어떻게, 왜, 잘못했거나 되었는지 깨우치도록 타이르고 때론 부드러운 사랑에 매(자신이 매를 맞는 심정)로 야단을 친 뒤에는 누구나 어린 시절에는 잘못도 할 수가 있다고 위로하고 포근한 가슴으로 감싸 안아주며 사랑한다고 너는 잘할 수 있다고 네가 최고라고 나는 너를 믿는다고 따뜻하게 감싸 안아 주셔야 합니다,
아이들은 순백에 화선지와 같아서 어느 화가가 어떤 그림을 그리느냐에 따라서 한낮 휴지통에 버려지는 그림도 될 수 있으며 돈으로 매길 수 없는 엄청난 작품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 어른들은 깨닫고 각성해야 할 것입니다.
저 역시 부족함이 많은 어른이며 말과 실천하기가 어렵지만,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주제넘은 소리라 핀잔하지 마시고 너나 잘해라 질타하지 마시고 지금, 이 시각 사랑하는 우리의 자녀가 표현하지 못하고 가슴앓이하고 있는지. 더욱 세심한 관심 속에 잘못된 사랑이 넘쳐 사계절 따뜻한 온실 속에서 무기력하게 자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봅시다.
다시 한번 강조 드립니다. 어린이는 어른의 거울이라 했습니다. 아이는 아빠의 거울이 된다는 것을 명심합시다. 부족한 긴 글 읽어 주신 분들께 고마움을 전하며 행복한 가정을 가꾸고 지키는 것은 세심한 관심과 배려 속에 자상함이 묻어있는 따뜻한 눈길 따뜻한 손길 따뜻한 언어 따뜻한 이해 따뜻한 배려 따뜻한 관심 속에 꿈과 행복이 영글어 갑니다. 모두가 행복한 가족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추신 : 꿈꾸지 않는 어린이는 사는 게 아니라며 별 헤는 마음으로 없는 길 가려 하지, 사랑하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라며 설레는 마음으로 낯선 길 가려 하네, 그 길 끝에 희망이 있음을 확신하기에 희망을 꿈꿨던 마음 흩어지지 않게 앞만 보고 묵묵히 그 길 끝까지 가려내, 행복의 노래를 목이 터져라. 부를 순간을 떠 올리며 용트림을 하지..
♥차갑게 식어버린 아이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준 사람♡i 당신이기에 감사드립니㉢r.♥ 유해 환경으로부터 꿈나무를 지켜 냅시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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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글 감사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빗길 조심하시고요. 즐겁게 지내십시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