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문 열기 - 이화은
말끔한 회색 양복 중절모자가 문 앞에서 push push push 연달아 누른다
힘주어 눌러도 문은 열리지 않는다 홀 안의 사람들이 딱하다는 듯 모두 쳐다본다
push push push
손길이 더 빨라진다 그러나 이미 열린 문은 두 번 열리지 않는다
투명 탓이다 거기 투명 문이 있다고 믿은 탓이다 회색 양복 중절모자가 슬퍼 보인다
일 년에 800만 마리의 야생 새떼가 투명 우리 빌딩에 부딪혀 죽는다고 한다 거기 투명이 없다고 믿은 탓이다
투명은 어떤 기척이나 힌트도 없이 다만 투명할 뿐 사람들은 투명을 의심하지 않는다 투명을 투명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회색 양복 중절모자가 보이지 않는다 슬픔은 사람을 희석한다
슬픔에 슬픔이 덧칠해져 희미해지다가 마침내 투명해졌을 것이다
열린 문이 더욱 슬퍼 보인다
회색 양복 중절모자가 어디선가 push push push 슬픔을 누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ㅡ계간 《시인시대》(2024, 가을호) ************************************************************************************* 확실하게 예전보다는 모든 일이 투명해진 것이 보입니다 그 어떤 일도 남들이 모르도록 추진하는 것이 힘겨워졌습니다 게획 단계부터 예단이 앞서거니와 일어나지도 안은 일이 마피 현실인양 펼쳐집니다 전말이 훤히 보이는데도 그게 아니라고 우기는 일도 다반사입니다 촘촘한 법망을 요리 피하고 조리 피하면서 사적 이익추구에만 골몰합니다 매우 엄정하다는 공직선거법 위반조차 벌금 100만원이하면 없던 일이 되어 버립니다 죄는 죄인데도 면죄부가 되는 벌금이라니 상식이 무너진지 오래 되었습니다 블라인드 채용은 사라져야 한다면서 위대한 권력을 쥐려는 이들이 넘쳐납니다 사법체계가 보장하는 3심제도가 최종판결을 미루는 사이에 뻔뻔한 범죄자들이 기세등등하니 이런 꼴불견이 없습니다 지독한 슬픔에 갇히면 눈물도 나오지 않는다지요? 미닫이 문을 여당이 문으로 착각하는 사이에 투명 벽이 세워져 버렸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