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여자가 나타났다면 별일이 일어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냥 한 사람이 더 늘었다는 의미밖에 없겠지요. 그런데 여성들만 있는 곳에 남성이 등장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오고 모두가 달라졌다,’는 말이 의미 있게 다가옵니다. 중년 이상의 나이든 교장선생님과 20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젊은 선생님 그리고 십대 후반에서 초반 고만고만한 학생 5명, 모두 해서 7명이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신학교라고 합니다. 시간에 맞게 일정한 교육과정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나름 재주가 있는 사람은 악기도 연습하며 배웁니다. 간간이 포성이 들려오기는 하지만 대단한 사건 없이 그저 평범한 일과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남북전쟁이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곳은 남부 지역입니다. 남자들은 전장에 나가고 갈 곳 없는 여자들의 피난처이기도 합니다.
어느 날 어린 에이미가 숲으로 버섯을 따러 갔다가 북군 병사를 만납니다. 부상병입니다. 다리를 다쳐서 움직이기 불편합니다. 에이미를 의지해서 신학교까지 간신히 와서 쓰러집니다. 교장선생님과 모두가 모입니다. 난감하지요. 적군입니다. 별 소문 다 듣고 있는 중입니다. 북군이 들어오면 약탈을 한다든지 여자는 겁탈을 한다든지, 전쟁 통에 흔히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아무튼 두렵게 하는 적군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빨리 아군 수비대에 알려야 하는가? 상태를 보니 넘겨주면 끌려가다 죽을 것 같습니다. 더구나 그리스도인으로써 도리가 아니라는 결론을 냅니다. 일단 부상을 치료하는 것을 우선하자고 결정하고 집안으로 옮깁니다.
아마도 학생들은 남자를 이렇게 가까이 본 경험이 없을 것입니다. 하기는 지나가는 병사들을 멀찍이 보기는 하였을 것입니다. 학교 앞으로 가끔 지나가니까요. 교장은 일단 방에 가두고(?) 치료를 행합니다. 그리고 옷을 벗기고 온몸을 닦아줍니다. 얼마 만에 보는 남자였을까요? 깔끔하게 옷을 갈아입혀줍니다. 치료는 잘 진행됩니다. 여태는 교장선생님만 담당하여 치료를 해주었습니다. 그러나 틈새로 여자들이 드나듭니다. 말도 나눕니다. 북군 병사 존은 목숨을 건졌습니다. 모두가 은인이기도 하지요. 그런데 따지고 보면 적진입니다. 전쟁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는 잘 모르지만 안전한 곳은 아닙니다. 여태 지내온 것으로는 이 여자들이 넘겨주지는 않을 듯합니다.
하기는 그들 속에서 의견이 나왔습니다. 이제 웬만큼 상처도 나았는데 어쩔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그 사이 그들 사이에 이상한 기류가 흐르고 있는 것입니다. 몸 좀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방치해둔 정원도 손질하고 나름 일도 해주고 있습니다. 물론 존에게는 선택권이 없습니다. 잘 압니다. 나가라면 나가야 하지요. 고민되기는 하지만 교장의 결정에 따라야 합니다. 살려준 것만도 감사하고 아무 탈 없이 함께 지내게 해준 것도 감사합니다. 남군 병사들이 집에 들렀을 때도 그들에게 넘겨주지 않았습니다. 이래저래 신세를 진 사람입니다. 그러면서도 이들 가운데서 흐르고 있는 감정을 느끼고 있습니다. 어쩌면 남자로써 스스로도 행복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나이든 여성들 사이에서 남녀의 감정이 보다 진하게 흐르게 되어 있습니다. 교장선생님, 중년의 도도한 여인이면서도 아직 이성에 대한 감정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공동체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최대한 자기감정을 절제합니다. 한창 성숙한 선생님은 가능하면 이곳을 떠나고 싶어 합니다. 어쩌다 전쟁에 휘말려서 그 자리에 묶여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마침 함께 할 만한 동지가 생긴 셈입니다. 더구나 자기를 알아주고 사랑한다고 고백까지 했습니다. 아버지가 계신 곳까지만 간다면 일자리도 마련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음 씀씀이도 괜찮은 사람이라 판단됩니다. 인생의 반려자로서도 손색이 없으리라 생각하고 있는 듯합니다. 무서운 것은 새파랗게 젊은 이십대 초 아니면 십대 후반의 거침없는 돌격이지요. 잘 되어가는 듯하다가 한 순간 무너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깨끗한 저택이 신학교 겸 기숙사입니다. 안에도 깨끗하고 깔끔하게 잘 정돈되어 있습니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지내다가 어느 날 낯선 남자의 등장으로 여자들의 모습이 달라집니다. 치장도 달라지고 모습도 달라집니다. 그야말로 꽃으로 피어나지요. 어른 아이 차이 없습니다. 우리의 본능인가요? 이성에게 잘 보이려는 욕망입니다. 최대한의 절제 속에서도 보이지 않게 뜨거운 감정이 교류합니다. 눈빛에는 그 마음이 그대로 담기지요. 남자로서는 행복한 고민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조심할 때가 바로 그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여자의 시기 질투 속에는 칼날보다 무서운 독침이 서려 있습니다. 어찌 보면 전장에서보다 더 위험한 처지에 놓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자신의 처신에 생명이 달려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교장선생님이 모인 자리에서 물었습니다. 이 사람이 우리 안에 들어온 사건이 도대체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고 무엇을 교훈하는 것일까? 경건한 그리스도인들이 흔히 하는 ‘큐티’라는 것이 있습니다. 성경을 묵상하고 그 말씀을 어떻게 삶에 적용할까 고민하는 것입니다. 비슷한 광경이지요. 아군을 위해서도 기도하고 비록 적이지만 부상당한 병사의 쾌유를 위해서도 기도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자기네 공동체에 해를 끼칠까 염려된다면 어떻게 하지요? 어차피 적이지 않았는가? 그렇게 생각하고 처리하면 될까요? 이제 없었던 일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다시 예전의 생활로 돌아갈 것입니다. 영화 ‘매혹당한 사람들(The Beguiled)’를 보았습니다.
첫댓글 좋은글 감쏴~~~
감사합니다. 복된 연휴와 행복한 명절을 빕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