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11월 3일 경상남도 거제시 일운면 지세포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함경남도 북청군 출신 한의사이고, 어머니가 함경도에서 시집살이를 했다가(친정은 충청북도 제천) 6.25 전쟁 때 남편과 헤어져서 월남한 후 같은 실향민 출신이었던 아버지(아버지도 북에서 가정을 꾸려 홀로 월남했다)와 재혼하여 강산에의 누나와 강산에를 낳았다고 한다. 형제는 친누나에 어머니가 함경도의 첫남편 사이에서 낳은 이부형까지 합쳐서 2남 1녀이다. 그 외 한 번도 안만났지만 북에 남겨진 여러 이복형제들이 있다고도 한다.
사족으로, 아버지께서는 1966년, 그의 나이 만 3살 때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아버지의 특별한 추억이나 기억이 거의 없다고 한다. 그 뒤로 어머니께서는 앞에 상술하듯이 전 남편 사이의 아들 1명과 두번째 남편 사이에 얻은 1남 1녀, 총 3남매를 홀로 키웠다고.
본명은 강영걸로, 할아버지와 수박에서 애틋한 추억을 밝히기도 했던 할아버지가 사내답게 자라라고 지어준 이름이라는데, 이를 한자로 풀어서 영걸로 호적에 올린 듯하다. 당사자는 음악을 시작하고 우리말 사내를 본명처럼 쓰고 다녔고 이 사내를 산에로 착각하고 팬이 보낸 편지 때문에 산에로 바꿨다고 했는데, 1997년 교통사고를 낸 후 음주 측정을 거부한 것이 기사화되면서 이 본명이 알려지게 되었다. 본명을 갖고 온 6집 제목 <Vol. 6 강영걸>은 이런 내막을 어느정도 담고 있다.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경희대학교 한의예과에 82학번으로 진학했으나 경제적인 문제, 학문에 대한 흥미 저하, 문화적 충격 등 복합적인 이유로 한학기씩 두 번 다니다가 중퇴하였다. 이후 본격적으로 음악에 투신한 듯.
음악 스타일로는 일상의 소재들이나 세상 이야기를 걸쭉하게 늘어놓는 가사의 전달력이 일품이다. 강산에의 7집이자 셀프타이틀 앨범인 <Vol. 6 강영걸>의 수록곡 '와그라노'나 '명태'는 이런 강산에의 강점이 잘 나타난다. 가벼운 듯하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철학적인 내용들은 덤.
강산에
춘수
두만강 푸른물에 노젖는 뱃사공을
불수는 없었지만 그노래만은 너무
잘 아는건 내아버지 레파토리
그 중에 십팔번이기 때문에
십팔번이기 때문에
고향생각 나실때면
소주가 필요하다하시고
눈물로 지새우시던
내아버지 이렇게 얘기했죠
죽기전에 꼭한번만이라도
가봤으면 좋겠구나
라구요.......
눈보라 휘날리는 바람 찬
흥남부두 가보지는 못했지만
그 노래만은 너무 잘 아는건
내 어머니 레파토리 그 중에
18번이기 때문에
18번이기 때문에
남은 인생 남았으면
얼마나 남았겠니
하시고 눈물로 지새우시던
내 어머니 이렇게 얘기했죠
죽기전에 꼭 한번만이라도
가봤으면 좋겠구나
라구요
첫댓글 강산애님의 노래는
부루기가 좀 어려운노래인데
춘수님도 도전햇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