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 유남호 감독(53)에게 있어 2004년은 롤러코스터를 탄 한 해였다. 결과적으로 하늘을 향해 내달리는 기분좋은 휘파람을 불었지만….
유 감독은 짧은 듯 길어 보이는 1년동안 4가지 직책을 거쳤다. 변신에 변신을 거듭했다. 기아에서 2군 감독으로 시즌을 시작한 그는 1군 수석코치에 이어 감독 대행, 그리고 결국 시즌 종료후에는 감독직을 맡게 됐다. 큰 틀에서는 ‘백업’에서 ‘주전’으로 연착륙하는데 성공했다.
그는 2003년 말 15년여를 코치로 지내며 친정팀이나 다름없었던 기아에 2군감독으로 복귀했다. 2003시즌 도중 삼성 김응룡 감독과 불화를 겪은 뒤 결국 인연을 끊고 씁쓸하게 야인생활을 했던 그에게 기아가 손을 내밀었다. 2003년 말 김성한 전 감독과 2년 재계약을 한 기아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포석으로 유 감독을 백업멤버로 선택한 것이었다.
기아는 2004시즌을 앞두고 거포 마해영 심재학을 영입하며 야심차게 새시즌을 준비했다. 출발은 좋았다. 시범경기에서 역대 최다승(10승1무2패) 타이 기록으로 1위를 차지했고 정규시즌 우승에 대한 꿈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정작 뚜껑을 열어본 정규시즌 성적은 기대를 밑돌았다.
기아 프런트는 6월 21일 팀이 중간 순위 6위까지 곤두박질치자 첫번째 칼을 뽑아 들었다. 서정환 수석코치와 유남호 2군 감독을 맞바꾸며 분위기 쇄신을 꾀했다. 유남호 수석코치는 제자이자 후배 코치로 7살 아래의 김성한 전 감독과 불안한 동거에 들어갔다. 그러나 김성한 감독-유남호 수석코치 체제는 오래 가지 않았다.
구단은 후반기 개막과 동시에 팀이 5연패에 빠지자 7월 26일 김 전감독을 총감독으로 일선에서 물러나게 했다. 대신 유 수석코치를 감독 대행으로 승격시켰다.
유 감독은 시즌 중반에 ‘감독대행’으로 팀의 지휘봉을 잡으며 45경기에서 26승1무18패(승률 0.591)의 성적을 냈다. 선수단 융화와 경기운영 능력에 있어 좋은 점수를 받으며 4위로 포스트시즌 진출을 이끌었다. 두산과의 준플레이오프에서 2전패로 허망하게 물러나 아쉬움을 줬지만 나름대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결국 기아는 10월 13일 유남호 감독을 2대 사령탑으로 정식 선임했다. ‘대행’ 꼬리표를 떼어주고 2년간 총액 4억5000만원(연봉·계약금 각 1억5000만원)에 정식감독 계약을 했다.
유 감독은 감독으로 취임한 이후 “이름값에 의존하는 야구는 않겠다”며 무한경쟁을 통해 기아를 새롭게 탈바꿈시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정식 감독으로 그가 그릴 새시즌 그림이 궁금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