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너가, 요리도 해?”
“(하.) 야, 내가 이래 봬도 꽤 쓸만하다, 너? “
“(하.) 알았어. 믿어보지, 한 번. 가자구!”
그렇게 동호네집으로 왔다. 지난번에 부축해 준 수위아저씨는 보이지않고, 다른 아저씨가
앉아 있었다. 동호를 보자마자 의자에서 약간 일어나서는 모자를 들어보였다. 동호도 까딱
고개로만 인사를 했다. 요원도 덩달아 목례를 했다. 여자를 데리고 오는 동호의 뒷모습을
아저씨는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집안은 깨끗했다. 현준이 오피스텔도 깨끗했지만 말이다. 여긴, 어머니가 입원하시기 전까진
둘이 같이 살았으니, 좀 더 정리된, 포근한 느낌이 드는 게 특징이었다. 그렇지만, 어머니가
안계신 그 자리가 너무 크게 느껴지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들어가자마자 거실의 소파에
털썩 주저앉은 요원을, 동호는 따뜻한 눈매를 하고 미소지으며 바라보면서 자켓을 벗는다.
“뭘 먹고싶어, 요원씨?”
“하. 먹고싶다면 다 만들어주나, 동호씨?”
“하하. 좋아, 그럼 이 넷중에 하나 선택해. 김치찌개. 된장찌개. 콩나물국밥. 마지막으로
라면밥.”
“라면밥은 뭐냐? 라면밥은. 음… 김치찌개? “
“아… 안타깝다. 지금 김치가 똑 떨어졌네? 어쩌지?”
“아.. 그럼… 된장찌개? “
“(안타깝다는듯이) 아, 어쩌냐? 된장도 똑 떨어졌는데?”
“하… 그럼, 콩나물국밥은? “
“(한숨) 하... 미안하다. 콩나물도 그만…”
“(황당) 하….. 그럼, 라면밥이나 주시죠?”
“아, 그럴래? 그거라면 있다. 조금만 기다려.”
동호는 신난듯이 팔을 걷어부치면서 주방으로 들어간다. 룰루 랄라 노래까지 부르면서 물을
개스불에 올려 놓더니, 냉장고에서 식은 밥을 꺼낸다. 또 뭐 다른 반찬 없나 이것 저것
살펴보다 보니, 냉장고에선 삐-삐- 소리가 나고, 한 참 소리가 나는데도 문을 닫지 않자,
도대체 동호가 뭘 찾는건가 하고 요원도 주방으로 들어와 본다.
“뭘 찾는데 한참을 그러고 있어? “
“어? 어… 뭐 반찬 없나 하구.”
“반찬이 뭐 필요있어? 그냥 계란 하나 넣으면 되지. “
“아, 그럴래, 그럼? 그래도 … 손님인데..”
“치. 왜 갑자기 안하던 짓 해? 손님 좋아하네. 김치도 없는 주제에.. 이리 비켜봐. 계란이랑,
뭐 파 있으면 금상첨화구.. 또… 어라? 이건 무말랭이네? 이건 김치 대신에 먹을 수있겠다.
이거랑… 또… “
혼자 중얼거리며 냉장고를 마치 자기집처럼 뒤지고 있는 요원을 동호는 뒤에서 물끄러미
보고 있다. 이것저것 다 꺼내니, 그래도 밑반찬이 꽤 된다.
“야, 물 끓잖아! “
“어? 어… 알았어 잠깐.”
이제서야 라면 봉지를 뜯으려고 하는 동호.
“어이그. 이리 내 놔. 느려 터져가지고는. 미리미리 봉지 뜯어서 준비를 해 놔야 될거
아니야, 준비를? 으이그…”
요원은 동호를 제껴놓고 자기가 앞치마를 두르고 라면을 냄비에 부셔 넣고는 파를 송송
썰기 시작했다. 흥얼 흥얼하면서 파를 써는 요원의 뒷모습에 동호는 지금까지 자기가
얼마나 외로웠던가를 느꼈다. 스르륵 끌려들어가듯이, 가만히 그런 요원의 뒤로 다가가서는,
두 팔로 요원의 어깨를 잡았다. 엉? 하고 파썰기를 멈추는 요원의 가슴 앞으로 동호의 두
팔이 뻗어나와, 요원의 허리 춤을 꼬옥 안았다. 동호는 이마를 요원의 뒤통수에 겹쳐왔다.
동호의 숨결이 요원의 뒷 목에 간헐적으로 느껴진다. 요원은 어찌해야 할 지 몰라 칼을
놓고 그냥 가만히 서 있었다.
“(한숨) 하……. 잠깐만 이러고 있어도 돼?”
“(눈만 껌뻑 껌뻑) ……..”
“엄마가 입원하신 후에, 정말 힘들었다. 이 집이 그동안 얼마나 쓸쓸하고 휑해는 지, 너가
여기에 이러고 있으니까 알겠다.”
요원은 칼을 놓고 몸을 돌려 동호를 마주 보았다. 동호는 눈물이 글썽거리려고 하고 있었
다. 요원은 주춤 주춤 오른손을 뻗어 동호의 옆머리를 쓰다듬었다.
“오늘, 같이 있어달라고 하면, 그건 .. 무리겠지?”
여전히 요원을 안은채 동호가 말한다. 같이 있어달라구? 그건 무슨 뜻일까?
“오늘은 혼자있으면 외로울거 같아서. 아니다……. 하아. 못들은 걸로 해.”
동호는 그만 요원의 허리에 둘렀던 손을 풀으려고 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그럴께. “
요원이 말했다.
“(미소) 오늘은 너랑 같이 있어줄게. 그러니까 외로워 하지마, 동호학생.”
요원은 환하게 웃으면서 동호의 머리를 헝클면서 쓰다듬는다. 풋. 동호도 그만 웃어버린다.
동호도 오른 손을 올려 요원의 앞머리를 막 헝클어버린다. 그 순간 파파팍.. 하면서 라면이
넘치려고 한다. 어어어~ 둘은 동시에 라면 냄비로 달려가 라면을 구제했다. 둘이 같이
식탁에 앉아 식은 밥을 말아 먹으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눴다. 밤이 깊어간다. 그래도
엄마한테 한마디 전화는 해야겠다 생각이 들어 핸드폰을 꺼낸다. 진동으로 해 놓은 사이에,
벌써 몇 번이나 현준이한테 전화가 왔었다는 걸 알았다. 문자도 와 있다.
[지금 어디야?]
다음 문자
[아직도 그 자식이랑 같이 있어?]
그 다음 문자
[요원아, 제발 전화 좀 받아]
엄마한테 전화했다. 따르릉
“여보세요?”
“엄마, 나 요원이.”
“어, 언제 들어오니? 오늘 늦니?”
“어… 오늘 철야할거 같아.”
“철야? 또? 에이그…. 알았다. 저녁은 꼭 챙겨먹어라, 알았지?”
“네.”
끊었다. 처음이었다. 엄마한테 거짓말 한거는. 아니, 처음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한도 내에선 처음이다. 그것도, 남자네 집에서 같이 밤을 보내면서 일때문에
그런다고 거짓말 했다. 난 정말 나쁜 년이다. 오늘 만약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도
– 아마 그럴 것이다. 난 … 동호를 믿는다 – 그래도 이건 엄마와 나의 관계에서 치명적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까지라도 해서, 오늘은 동호와 있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앞섰다. 아빠는 호주로 골프여행 가셔서 안 계신다니 마침 잘됐다.
“나, 소파에서 잘게. 이불 하나만 빌려줘.”
내가 먼저 말했다. 그러자
“아니, 너가 방에서 자.”
“싫어. 남자 냄새 풀풀나는 침대에서 자는거 딱 질색이야. “
“(씨익) 처음이 아닌 모양이군.”
“(야려보며) 허. 말 하는 꼬라지 하고는…. 맘대로 생각하셔.”
난 내 맘대로 동호 방에 들어가서 침대 위의 이불 하나를 대충 집어서 나왔다. 소파에 던져
놓고는,
“야, 뭐 볼만한 비디오같은거 없냐?”
라고 말은 해놓고선, 갑자기 지난번 현준이네 갔을 때 사건이 떠올라 약간 불안해졌다.
“어? 별로 없는데. 근데 여기 케이블 테레비 나오니까, 밤새 여기저기서 영화 할거야.
여기에 편성표 있어.”
하면서 신문을 내민다.
“그래? 그러지 뭐. 그럼, 잘 자.”
난 소파에 앉아서 이불을 뒤집어 썼다. 풋. 웃는 소리가 들려 동호를 바라보니,
“이제야 사람 사는 집 같다.”
“그냐? 가끔 불러라 그럼. 내가 알바로 해주마. 음… 시간당 오천원. 어때? 에이.. 너무 싸
다. 하지만 뭐, 밥 먹여주고, 밤새 테레비 보고… 그러면 뭐, 그리 나쁜 것도 아니다.
알았지? 딜 (deal) ? “
“풋. 좋아. 가끔 놀러와라. 풋. 그럼, 잘 자.”
“근데~”
“응?”
내가 부르는 소리에 동호는 가려던 발걸음을 멈추고 날 쳐다본다.
“나랑 요한이 말이야. 왜 알았으면서도 아는 척 안했어?”
“(미소) 글쎄…뭔가 사정이 있을거라고 생각했어.”
동호는 그렇게 사라지고, 난 생각에 잠겼다. 현준이랑은 다른 놈이야. 아마, 양쪽에서 협박
당했으면 난 당장에 때려 쳤을 거야. 난 눈꺼풀이 무거워서 벌렁 드러누워 리모콘을
여기저기 돌리다가 그냥 잠이 들었나보다. 아침까지 깨지도 않고 그렇게 쿨쿨 잠들었는데,
일어나보니 동호방의 침대 위다. 허걱. 이게 무슨 일이야? 혹시? 난 내 옷차림을 보았으나,
어제 입고 잔 옷 그래로이다. 벗겼다가 다시 입힌 흔적 및 기타등등은 없는 듯 하다. 난
부시시 일어나 빼꼼히 방문을 열고 나갔다. 부엌에서 룰루랄라 흥얼거리는 소리와 함께,
앞치마를 두른 동호가 아침을 준비하고 있다.
“어떻게 된거야?”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어? 일어났네? 굿모닝. “
뒤 돌아본 동호가 아침 햇살처럼 상쾌하게 웃는다.
“어떻게 된거냐구?”
“어.. 너무 곤하게 자길래. 소파에서 떨어질거 같아서. 옮겼어.”
“어떻게? 질질 끌고?”
“하하. 아니, 백설공주처럼 번쩍 안아서. 너 꽤 무겁더라?”
출처:죠이꼬의 소설카페
첫댓글 와.. 많이 기다렸어요!!
왓! 많이 올라와 있네요.
방가방가
하룻밤새 많이 올라왔네요..
로맨틱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