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잠 못 이루었다고
얼굴에 검버섯 꽃이 만발하였나
전생에 무슨 업이 많아
육신이 이리 고달픈지 모르겠다며
서럽게 돌아누운 어머니 등 모서리
낙엽 타는 냄새가 진동한다
색동저고리 빛바래기도 전
어려운 살림살이 도맡아
칠십 평생 부려 먹었으니 어디가 성하랴
관절마다 속 단풍이 들고
가슴 속 울화가 열 꽃으로 피니
부귀영화도 피 같은 자식도 소용 없다
하늘을 보면 쑹쑹 구멍 난 자리마다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
생을 붙잡고 있는 입술이 파랗다
웃자란 은사시나무
여자의 눈썹이 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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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장에서
문수병원 지하 장례식장 안
긴 세월 단역배우로 열연 한
영정사진 속 주인공
이승에서 마지막 공연중이다
아등바등 살아온 칠십 평생
무슨 미련이야 있으라마는
서너 달만 아파 누워 있어도
호상이라며 간간이 들려오는 소리
평생 앓은 종양 때어 내 듯하다
군상처럼 서있는 근조만이
상갓집이라 일러주며
카세트에서 흘려 나오는 염불
망자를 위로하는 밤
민망한 조위금 삼가 명복을 빈다.
길 건너편 엠에스 병원 분만실
신인 배우 탄생을 알리는 축포소리
전기 줄에 졸고 있던 까마귀 한 마리
북녘 하늘로 날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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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가면/김광련
산이 호수를 감싸고 있는
작은 산골 마을에는
풍경이라는 정겨운 이름을 가진 카페가 있다.
동동주에 파전이 유난히 맛있는 그곳은
철마다 다른 분위기로
연인들을 유혹하는 아름다운 호수가 있다.
그리고 창 밖 바라보며
사색하기 좋은 통나무 의자도 있고
물안개를 넣어 끓인 수제비도 있고
그리움 한 조각 띄워 우려낸 커피 맛이 일품이다.
간혹 낚시꾼들이 찾아와
세월 낚으며 만단 시름 내려놓고 가기도 하고
함께 온 아낙네들 봄 캐기에 분주하다.
문수산 자락 끄트머리
석양이 노닐다가는 그곳에 가면
마음 하나만으로 봄을 가득 담아 올 수가 있다
덩달아 추억도 함께 따라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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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오련(子午蓮) / 김광련
태양을 품고 한낮에 피었다
밤이면 오므리고
속은 비고 밖은 곧으며
연근 감춘 줄기 가시 숨어있다
진흙 속에서도 꽃 피우며
붉은 옷 입어도 요염하지 않고
고귀한 자태 멀수록 향기로워
아마 꽃 중에 자색꽃이라.
빗방울 굴리는 잎 가장자리
보석으로 치장할 줄 알고
바람 불면 푸른 내 비단치마
살짝살짝 들추며 향내 품긴다.
물결 지나간 구멍사이
바람소리 들려오면
가슴속에도 숭숭 소리가 난다
맘 속 상처가 불쑥불쑥 나올 때마다
피어나는 꽃.
심청이 볼그레한 뺨처럼
피어나는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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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사/김광련
안개 자욱한 문수산 자락
굽이 돌아 백두계단 오르면
세속의 때, 번뇌 망상 사라지고
세파에 시달린 육신
감로수 한 잔에 말갛게 씻기우니
여기가 바로 극락이로세
문수사 큰스님 우렁찬 목탁 소리
팽 나뭇잎 우수수 떨어져
때아닌 노란 눈꽃 경내에 휘날리고
무지의 회색 나비들
아무것도 가진 거 없는 부처님더러
복 달라 명 달라 엎드려 조아리고
담장 위 청설모는
무슨 염원 있어 설법 듣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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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목/김광련
깊은 산중 고목 한 그루 서 있네
밑동 겹겹이 쌓인 세월
거북등같이 갈라진 껍질
어머니 거친 손마디 같네
주렁주렁 가지마다
알록달록 푸른 잎 돋아나
새소리 끊이지 않아
모두 부러워하던 때 있었네
세월만은 견딜 수 없음인가
회오리바람에도 끄떡없던 고목
다섯 가지 하나 둘 떠나갈 때
생살 찢어지는 아픔
속으로 삭혀야만 했었네
애지중지 하던 잔가지 하나
심하게 요동친다
우우
어디선가 들려오는 빈 울음소리
늘어만 가는 옹이 옹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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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김광련
일찍 아침 산책 다녀와
한 아름 진달래꽃 건네주는 남편
자 이거 봐
뭐 떠오르는 시상이 없나
봄을 전하는 남편도 벌써 시인이다
얼굴 붉히는 진달래
꽃보다 더 찐한 사랑 전한다
가슴 들여다보는 눈망울에도
연분홍 꽃이 활짝 핀다
남편은 나의 봄
꽃향기로 시어 읊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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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으면 참 좋겠어/김광련
대지에 내리는 봄비처럼
우리 사랑도 파릇파릇
새싹이 돋아나면 좋겠어
살랑거리는 산들바람처럼
우리 가슴에도 움찔움찔
꽃봉오리 하나 영글면 좋겠어
약속하지 않아도 때가 되면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 오듯
내 사랑도 돌아오면 좋겠어
아카시아 피어나는 숲속 길
너와 손 잡고 콧노래 부르며
하염없이 거닐어 봤으면 좋겠어
정말 그랬으면 참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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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란/김광련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형체도 모양도 없는 것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못하고
어느 곳을 헤매고 다니고 있는가
번뇌 망상에 사로잡힌 영혼은
가지 말아야 할 길을
너무 많이 가버린 것은 아닌지
되돌아갈 길조차 알 수가 없어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가도 모르고 와도 모르니
마음 한 조각 뜬구름처럼 떠도네
그대 수많은 인연으로 인해
슬퍼하거나 괴로워하지 마라
어차피 인생이란
홀로 왔다가 홀로 가는 거
누구나 홀로 갈 수밖에 없는 그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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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산책/김광련
신선한 밤 공기에 샤워를 하면서
하루를 조용히 마감한다
밤 산책의 매력을 느껴 보았니?
이토록 좋은 운동을 난 보지 못했다
사십 넘은 내 피부를 아기처럼 곱다고
부러운 시선을 한 몸에 받던
그 베일을 이제야 벗긴다
오늘도 문수 경기장 호수 정기를 뽑아 마셨다
비가 내려 더욱 운치가 있어 상큼했다
내일을 가뿐히 맞이할 수 있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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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진공 청소기/김광련
삼호초등 3학년5반 교실
빨간 고무장갑에 앞치마 두른 어머니들
이마에 복사꽃 같은 구슬땀 열렸다.
볼 간질이는 명주바람
졸고 있는 커턴 사이로
봄 햇살 한가로이 빗질하고 있다.
운동장의 병아리들 깔깔거리는 소리
피아노 건반 위를 또르르륵 구르고
세탁한 걸레들 창가에 앉아 찜질하고 있다.
삼호초등 3학년5반 새싹들 텃밭에
빨간 고무장갑에 앞치마 두른
진공청소기 같은 저 환한 미소!
금싸리기처럼
금싸리기처럼 쏟아져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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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대의 봄/김광련
태종대 앞 바다에 무지개가 떴다
푸른 물보라 헤치며
봄을 힘껏 밀어 올리고 있다.
오륙도 굽이굽이 마다
수많은 상춘객들 추억 만들기 바쁘고
바다의 전령사 갈매기
봄 실어 나르기에 여념 없다
십 년 만에 꽃놀이 나선 맏며느리들
주름진 얼굴 해풍에 씻어
바윗돌에 새겨두고
새처럼 훨 훨 날아 오른다.
6000원의 유람선에 봄 싣고
울렁거리는 마음
만개한 벚꽃처럼 활짝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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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김광련
곤히 자고 있는 남편을 유심히 내려다봅니다
수염이 많아 산적이라고 놀려도
멋쩍게 씨익 웃는 남편
피곤했는지 코고는 소리에 이불자락이 들썩거려
숨막힐까 염려스럽습니다.
문득, 저 남자 먼저 죽고 나면 나 어쩌지
언제나 바다가 되어 준 사람인데
가슴에 나는 파도소리는 어디에서 들으며
혼자서 잘 살 수 있을까 반문해 보다가
서글픈 마음에 눈물이 납니다.
만일 내가 먼저 죽고 싶다하면
편안한 마음으로 고이 보내줄 수 있는지
얼큰한 찌개에 소주 한 잔 하면서 말해 볼까
아니면 팔베게하고 누워 조용히 말해 볼까
그러다 정말 먼저 가게 되면 저 남자 어쩌지
먼저 가는 사람이 행복이라고 하는데
나 발길 안 떨어져 어떻게 가지
멀리서 새벽 여는 발자국소리 들려오는데
남편 코고는 소리는 아직도 요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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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면 여자는 다시 태어난다
詩/김광련
봄이 오면 여자는 다시 태어난다
해묵은 가지마다 물이 차오르면
여자의 가슴은 오르가즘
개울 물소리,새싹이 움트는 소리
볼을 간질이는 봄바람에도
동백꽃 붉은 열정만큼이나
온몸은 열꽃으로 피어난다.
갖가지 피어난 꽃들의 향연 속에
사랑과 희망을 새기며
장미향으로 물들어 가는 여심은
꽃잎 한 잎 한 잎 떨어질 때마다
가슴속 흐르는 강물은 한없이 깊어만 간다.
해마다 봄이 오면 여자는
영산홍 꽃 봉오리처럼
진분홍빛 립스틱 바르며 거릴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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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숯가마 /김광련
어머니, 숨이 멎을 거 같아요
불침이 여린 살갗을 뚫고 들어오면
아찔한 현기증에 땀방울이
비 오듯 쏟아져 살아 있음을 느껴요.
사방천지가 다이아몬드 빛에요
방금 나온 따끈따끈한 쟤네들은
어디서 팔려 와 뿌리내리는 걸까요
눈부셔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어요.
언제 이리 많은 사람이 왔데요
참숯 냄새가 진동해요
자궁 속을 유영하듯 숯가마로 들어가면
고향에 온 거처럼 편안해요
옹기종기 앉아 영양분 다 빨아 먹어요.
놀라워라, 다 퍼주고도 고귀한 성
아름다워라, 다 내주고도 거룩한
어머니, 한번 들어와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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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김광련
모처럼 친정어머니 모시고 백화점 가서
빛깔 고운 블라우스 한 벌 사드리고
딸아이 브래지어도 하나 샀다.
얘야 나도 브래지어 하나 사다오!
요즘은 할머니들도 다 하더라.
아차! 어머니 가슴에도
나비 한 마리가 숨어 있었구나
일찍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어머니 나비는 죽어 버린 줄 알았다.
다섯 송이 꽃이 어머니의 나비였고
비바람도 거뜬하게 잘 지켜주었지.
어머니 가슴에 날개를 달자
다시 입어본 브래지어가 어색한지
수줍게 웃으시는 어머니 뺨 위로
연분홍 나비 한 마리 날아오른다.
오늘 밤 나비는 꽃을 찾아
지친 날개 접고 꿀맛을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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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얼굴에 꽃이 피네
주름진 얼굴에
꽃이 피네
여름 겨울 없이 나만 보면
검버섯 얼굴에 복사꽃 피네
버선발로 뛰어와
연분홍 꽃 피우네
바람처럼 왔다 가버린 딸아이
뒷모습 바라보며 눈가에
소금꽃 피네
오늘 나는
어머니 얼굴에
꽃피우려 간다네
한달음에 달려가
함박꽃 피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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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선
그녀에게선
향기가 난다
은은한 풀꽃 향기가 난다.
결 고운 억새 같은 모습은
한 마리의 고고한 학
맑은 영혼을 간직한 눈망울은
이슬 머금은 한 떨기 물망초
어느 날부터 그녀에게선
낙엽 타는 소리가 난다
마른 장작 타는 냄새가 난다.
제 몸 불사르는 소리
허수아비 속 울음소리 같기도 하고
핏빛으로 물든 슬픈 눈동자는
허공을 맴도는 외기러기
오늘은
그녀의 향기가 그립다
은은한 풀꽃 향기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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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우깡의 변명
한 때 나에게도 꿈은 있었지
네 입속으로
들어가기 전까지는 말이야
푸른 물살 가르며
유영하는 발레리나처럼
수면 위로 튀어 오르며
비상을 꿈꾸기도 했지
고사리 손안에서
주정뱅이 술안주로
몸이 으스러지는 고통도 겪지만
어쩌다 아가씨 입속에서 녹아내릴 때는
안갯속을 거닐듯 몽롱하기도 했지
내 비록 꿈은 접었지만
슬픈 생은 아니라네
수많은 분신 금빛날개 달고
사랑의 전령사로 방방곡곡 누비고 있지
근데 말이야......
나 새우 맞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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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내리는 날의 연가/김광련
감성을 자극하는 비가
슬픈 음악처럼 내리고 있다.
슬로우 슬로우
이렇게 비가 내리는 날이면
알 수 없는 외로움에
울컥 목이 메여 온다.
모락모락 피어나는 커피 잔 속에
뜬금없이 그대가 웃고 있다
따스한 커피를 마셔도 찬바람이 인다
몇 잔을 마셔도 가슴이 허하다
창문 두드리는 저 빗방울
내 슬픔 알기라도 하는 듯
애처로운 눈물을 뿌려 주니
행여 그대도 나와 같은 마음일까
창가에 앉아 죈 종일 기다려 봐도
그대는 아니오고
먼 산 부엉이만 울어 댑니다.
비 내리는 날이면
여자는 풀잎보다 먼저 젖는다.
슬로우 슬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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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
與傘/김광련
한비문학 시부문 등단
한비문학 운영위원
시인과사색/두레문학/다울문학 동인
울산대학교 시창작과 수료
가장행복한 여인외 다수 작사
첫댓글 드디어 올려 놓으셨군요. 간결 단아한 그 심상이 너무 고와서 고개가 숙여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