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시 구파발 역에서 ㄱ님과 ㅂ님을 만났다. ㅈ님은 못 오신다.
긴 파발마에서 많은 사람들이 내린다. 구파발은 옛 역원의 하나였다.
파발마는 봉화와 함께 옛날 교통과 통신의 수단.
북한산성 가는 길 왼편에 있는 흥국사에 들렀다.
조선 궁궐 상궁들에게 휴가를 주어 선학을 익히던 곳.
음식점 "너른마당"에서 우리밀 국수를 먹고 서삼릉에 갔다.
희릉, 효릉, 예릉 (중종계비, 인종비, 철종과 철인왕후)이 있는 곳.
우리는 예릉 정자각 옆 시원한 그늘 박석에 앉아서 이야기 꽃을 피웠다.
광해군과 연산군을 어떻게 차별화 할 것인가
세조와 단종의 죽음을 이해하는 시각에 대하여..등
즉석에서 벌어진 세미나지만 짧은 가방끈을 이어가며 진지하다.
어느 왕은 밉고 어떤 임금은 존경스럽고 누구는 불쌍하고...
이야기가 개인적 선호로까지 이어지며 끝이 없다.
ㄱ님은 소현세자가 불쌍하단다.
인조반정이 일어난 후 병자호란 때 봉림대군과 함께
청나라에 인질로 잡혀 갔던 분.
청국 심양에 머무르는 동안 조선을 대표하는 외교권을 행사했던 분이며
시대의 조류였던 청국의 문물을 받아들이고자 했던 분이다.
반청친명 정책을 고수하던 조정에의해 독살 되었을 가능성을
인조실록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시신 屍身의 구혈 九穴에서 출혈 出血하고 있었으며 진흑 塵黑으로 변해 있었다."
소경원, 그 분의 묘소가 여기 있다.
가 볼 수 없다. 비공개 지역이기 때문이다.
해설사를 만났다.
토박이 사람으로 몇번의 이야기 후에 우리도 해설사임을 알자
대접이 융숭하다. 매점에서 빙과를 사주며 퇴근시간을 기다려 달란다.
서삼릉은 이백여만평이었으나 종마장 종축장 한양 골프장등으로 짤려 나가고
칠만여평만 남아 이제는 이십만평의 서오릉 보다 작단다.
십여대의 손바닥만한 주차장 공간을 넓히고 잃어버린 문화재 공간을
다시 찾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그 분의 안내로 원당에 있는 고려 마지막 왕, 공양왕릉을 찾았다.
여러가지 이야기 끝에 자기는 불꾼이라 했다.
아니 불꾼이라니요 ? 봉화대를 지키는 사람이란다.
자기가 발굴한 봉화터가 이 근방에 있기도 하지만
전국적으로 봉화대를 발굴 복원 유지하는 모임이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삼천리, 금수강산이다.
북방 세 곳 (경흥, 강계, 의주) 남방 두 곳 (동래, 해남땅끝)
모두 다섯 곳에서 한양으로 봉화를 보내왔다. 조선 팔도 고금 총람도에 의하면
한양에서 경흥까지가 이천이백리, 해남 땅끝까지는 천리이다.
모두 합쳐서 삼천이백리, 수를 놓은 듯 아름다운 우리 강산이다.
목멱산, 목멱산신이 사시던 곳, 지금의 남산에는
다섯기의 봉화대가 있었다. 조선 국경 다섯 곳에서 오는 국가의 안위를
궁궐에 계신 임금이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다.
변경의 국방을 담당하는 통신수단 핫트라인인 셈이다.
지금은 남산에 한기만 복원 되어 있다.
첫댓글 눈에 본듯 자상한 필체에 새삼 경의를 표합니다. 불꾼 이야기는 정말 새롭습니다. [d^^b] 이모티콘이 기다려집니다. 감사합니다.
감사 합니다.
아항!. 서삼릉이라니 반갑고 또 반갑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우리 만나서 기~~~~~ㄴ 이야기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