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eet People-Elizabeth Stone, 실비 오는 소리에
실비 오는 소리에
님이 올 것 같아서
부시시 잠 깨어나서
먼 길을 바라보네
바람 부는 소리에
님일 것만 같아서
살며시 귀 기울이면
들릴 듯 들리지 않네
그리운 나의 님아
언제나 오시려나
나의 기다리는 마음
그대는 정녕 모르리라♪
1970년대가 저무는 해에 우리나라 가요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여자가수 이영화가 데뷔곡으로 부른 '실비 오는 소리에‘라는 노래 그 노랫말입니다.
부슬부슬 내리는 실비와 그리운 님을 기다리는 마음이 어우러진 그 잔잔한 분위기가 좋아서, 저 참 많이도 듣고 또 부르곤 했었습니다.
그런 추억이 있었기에, 그 실비가 내리는 날이면, 저는 언제나 그 노래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요 며칠 새에도 계속 실비가 내렸습니다.
2018년 4월 23일 월요일인 오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침부터 실비가 내렸고, 한낮을 지나 오후에도 계속됐습니다.
오후 3시쯤에 그 실비 내리는 길을 달렸습니다.
올림픽대로를 반포대교 남단에서 들어서서 동쪽으로 쭉 달렸고, 그 끝나는 지점에서 중부고속도로로 접어들었고, 하남IC에서 국도로 빠져나와, 또 얼마를 달려 다다른 곳이 있습니다.
그렇게 모두 한 시간 가량 걸려 다다른 곳은, 바로 하남시 남쪽 외곽의 어느 한적한 마을에 자리 잡은 기독교장로회 동부선린교회였습니다.
전해드릴 보따리가 있어 사람을 찾았는데, 아무도 없었습니다.
교회 본당으로 들어가는 문도 잠겨 있었고, 이곳저곳에 서너 개 있는 쪽문도 다 잠겨 있었습니다.
부슬부슬 내리는 실비를 맞으며 교회 건물 주위를 한 바퀴 돌았습니다.
‘계세요? 계세요?’ 그렇게 소리도 질러봤습니다.
아무런 반응이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언제 올지도 모를 사람을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도 없었습니다.
법무사인 제가 운영하고 있는 서울 서초동 우리들 법무사사무소 ‘작은 행복’의 일거리가 있어서 퍼뜩 사무소로 되돌아가야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할까 고심하고 있을 때, 그때 교회 본당 출입문 옆쪽에 우편함이 제 눈에 딱 띄었습니다.
마침 잘 됐다싶어서, 그 우편함에 제가 들고 간 보따리를 담아 넣었습니다.
그리고 발걸음을 돌이켰습니다.
혹 전달되지 않을까 염려되어, 그 교회 담임이신 곽선근 목사님의 핸드폰으로 문자메시지를 띄워 보내드렸습니다.
이렇게 썼습니다.
‘곽 목사님, 엘리자베스 스톤여시님께 드릴 것이 있어 교회를 찾았는데, 아무도 안 계셔서, 교회 우편함에 꽂아놓고 갑니다. 꼭 전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바로 이겁니다.’
그리고 제가 우편함에 꽂아놓은 보따리를 사진으로 찍어 덧붙여 드렸습니다.
곧 답이 왔습니다.
이러셨습니다.
‘네^^ 누구라고 할까요?’
질문을 하셨으니, 제가 또 그 답을 해야 했습니다.
이리 했습니다.
‘기원섭 법무사입니다. 저는 예장 서울시민교회 집사입니다. 언제 기회가 닿으면 교회로 찾아뵐 게요.’
직접 만나 뵙지 못하는 것이 참 아쉽기는 했지만, 그래도 제가 보따리에 담아 드리는 선물이 곽 목사님을 통해서 전해지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 생기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제가 서울남부지방법원 집행관으로 일하고 있을 때, 그 경험담을 담아서 펴낸 ‘집행관일기’라는 책 한 권, 제가 10년 째 참여하고 있는 우리들 독서클럽 ‘Book Tour’모임에서 500회 모임 기념으로 2016년 11월에 펴낸 ‘영혼으로의 책 여행’이라는 책 한 권, 제가 존경하는 김성호 전 법무부장관께서 이끌어 가시는 재단법인 행복세상에서 재단 설립 10주년 기념으로 2017년 12월에 펴낸 ‘걸어온 10년, 나아갈 10년 행복한 동행’이라는 책 한 권해서, 모두 세 권의 책이 제가 드리는 선물입니다.
그동안 사흘을 우리 한국에서 머무시고 내일 새벽이면 사시는 곳 미국 코네티컷 주로 돌아가신다고 하셨는데, 비행기를 타시고 태평양 그 너른 바다를 건너가시는 그 먼 길에 심심치 않게 틈틈이 읽어보시라는 뜻에서, 그 책 선물을 드리게 된 것입니다.
2018년 올해로 여든 나이가 되신 걸로 알고 있는데, 불현듯이 오셨다가 황급히 가실 수밖에 없는, 그 빡빡한 일정으로 인해 몸이 불편하지 않으실까 염려가 됩니다.
만약 그러시면 당장 꺼내 읽지 마시고, 편한 쉼이 있는 집까지 그냥 들고 가셔서, 거기에서 간간히 펼쳐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특히 제가 펴낸 ‘집행관일기’는 짧은 글 72편을 모아놓은 에세이집입니다.
제가 스스로 평하기를 ‘남대문시장 순대국밥집 아줌마도, 지게꾼 아저씨도 쉽게 읽을 수 있는, 글로 쓴 만화책’이라고 했습니다.
한 편 한 편 읽으시면서, 제가 그 현장에서 느꼈던 감동을 같이 느낄 수 있으시면, 참 좋겠습니다.
언젠가 부군 되시는 Greg Stone님의 페이스북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습니다.
표지사진을 올려놓고 계셨는데, 여고 선생님으로 보이는 분을 중심으로 해서 여학생 여섯이 빙 둘러 앉은 흑백사진이었습니다.
놀라운 사진이었습니다.
그 한 장의 사진에 담긴 의미를 생각해봤습니다.
뒷줄 왼쪽에 앉은 여학생이신 것 같은데, 손을 꼽아 셈해 보니 거의 한 갑자의 세월도 더 된, 그러니까 그때가 6.25전쟁 직후인 것 같았습니다.
부군께서 그 오랜 세월 동안 그 사진을 품고 있었다는 것은, 지극한 사랑이 아니고서는 가능한 일이 아니겠다싶었습니다.
참으로 존경하는 마음이, 제 가슴에 파고들었습니다.
제 이 마음을, 부군께 전해주시기 바랍니다.
또 있습니다.
그때가 저 지난해이니까, 2016년 7월의 일이었습니다.
저와 가까이 지내는 조선오페라단 최승우 대표가 창작오페라 ‘선비’의 미국 뉴욕 맨해튼 카네기홀 공연과 관련하여 미국을 자주 드나들 때의 일입니다.
그때 최 대표가 뉴욕 어느 교회에서 목요 음악회를 연 적이 있습니다.
그 음악회에 발걸음 해주시면 참 영광이겠다 싶어서, 그 즈음에 간간히 소식을 전하던 페이스북 메시지로 그 소식을 알려드리고, 가능하시면 발걸음 좀 해주시라고 제 뜻을 전해드렸었습니다.
제 그 뜻을 존중하셔서, 코네티컷 주에서 뉴욕까지는 하루 종일을 달려야 하는 먼 길이었음에도, 멀다 하지 않으시고 부군과 함께 음악회가 열리는 그 교회까지 발걸음 해주신 것을 제가 알고 있습니다.
최 대표가 그 사실을 제게 메시지로 전해왔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그 메시지 전문입니다.
‘뉴욕 목요 음악회를 은혜 가운데 잘 마쳤습니다. 지은 지 백년 가까이 되는 건물이라서 울림이 아주 좋았습니다. 뉴욕 공연을 앞두고 먼저 찬양 음악회를 할 수 있게 되니까 가슴 벅찬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살인적인 더위와 트래픽과 싸우면서 온 마음과 달란트를 다하여 하나님께 은혜로운 찬양을 올린 출연진께 하나님의 축복이 가득 차고 넘치실 것을 믿습니다. 우리 기원섭 부회장님 페친 부부가 코네티컷에서 하루 종일 차를 달려 오셔서 같이 사진을 찍었습니다. 먼저 가서 싸우시고 이미 이기시고 예비하신 그 길을 그냥 감탄하고 감사하면서 따라 걸어갑니다.’
덕분에 곧 이어 있었던, 창작오페라 ‘선비’ 공연도 ‘전석 매진’이라는 미증유의 기록을 내며 성황리에 잘 마쳤습니다.
그 공연에 저도 아내와 함께 미국 뉴욕까지 날아갔었고, 간 김에 꼭 만나 뵈려고 했으나, 마침 여고 60년 기념행사와 관련하여 한국으로 떠나시는 바람에, 그 만남은 아쉽게도 불발되고 말았습니다.
그때 제가 딱 짐작한 것이, 서울의 명문 여고를 다니셨다는 것이었습니다.
여고로서 60년이라는 그 긴 연륜은 손가락 꼽아 한둘 정도 밖에 안 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또 아쉬움이 남게 됐습니다.
저는 이번만큼은 꼭 만나 뵙게 될 줄 알았습니다.
바로 엊그저께인 2018년 4월 21일 토요일에, 페이스북 메시지 창으로 제게 이런 뜻을 보내오셨기 때문입니다.
‘제가 가는 교회는”경기도하남시동부선린교회” 곽선근 목사님, 토요일 창립 50주년 예배가 끝나면 저녁만찬이 있으니, 부인과 함께 오셨으면 합니다. 서울에 도착하면 연락하겠습니다.’
참 반가운 메시지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답을 드렸습니다.
‘너무나 귀한 귀국길이십니다. 오셔서 연락주시면, 저도 시간 내서 뵙도록 할게요. 일정이 바쁘실 텐데, 그래도 제가 끼어들 여유를 좀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저는 모레 일요일은 어린이대공원 후문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서울시민교회 2부 예배를 드리러 갑니다. 참고하시라고 알려드리는 겁니다. 뵐 날을 손꼽아 기다립니다.’
그런데 그 이후로 연락이 끊기고 말았습니다.
전화번호도 모르고, 카카오톡 친구도 아니어서, 페이스북 메시지 이외에는 달리 연락할 방법도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방문하시기로 되어 있는 동부선린교회로 전화를 해봤습니다.
그래서 뒤늦게 알게 된 것이, 전화기를 안 들고 다니셔서 연락이 제대로 안 됐다는 것이었고, 또 오시자마자 너무나 빡빡한 일정에 몸이 몹시 편찮으셨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제는 만나 뵈려 해도, 그런 시간적 여유가 없게 되었습니다.
있다고 해봐야, 딱 오늘 저녁시간 뿐이었는데, 그 시간은 오늘 밤으로 우리 막내 만나러 일본 도쿄에 갔다가 김포공항으로 귀국하는 시간과 맞물려 있어서, 아내 마중을 가야하기 때문입니다.
멀쩡한 날이면 또 몰라도, 이렇게 부슬부슬 실비가 계속 내리고 있으니, 아내한테 다른 교통편을 이용하라고 하기도 어려웠습니다.
그렇다고 미국으로의 그 먼 길을 그냥 떠나시게 놔두는 것도, 제 마음에 걸려서, 그렇게 실비 오는 길을 달려 선물 보따리를 들고 갔던 겁니다.
아쉽지만, 그렇게 안녕을 고합니다.
늘 건승하시고, 늘 복되신 나날들이시기를 제 진정한 마음으로 기원합니다.
2018년 4월 23일 월요일 오후 9시, 페이스북 친구 Elizabeth Stone여사에게 띄우는, 저 기원섭의 편지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