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시하늘 원문보기 글쓴이: 보리향/이온규
생의 중심에서 밀려나 변방의 그늘 속에서 살아가는 소외된 이들의 누추한 삶의 풍경을 따스한 감성의 필치로 그려온 문성해 시인의 세번째 시집 『입술을 건너간 이름』이 출간되었다. 5년 만에 새롭게 선보이는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도시의 후미진 외곽 지역을 들여다보면서 슬픔조차도 주린 배를 채워주지 못하는 상처투성이의 안쓰러운 삶의 순간순간들을 읽어내며 삶의 진면목을 사유하는 존재론적 성찰에 이른다. 대상을 바라보는 세밀한 관찰력과 선명한 이미지가 투명한 언어에 실려 반짝이는 가운데 섣부른 수식이나 과장 없이 냉정한 시선으로 그려내는 삶의 다양한 무늬들이 뭉클한 감동을 선사하며 잔잔한 울림을 자아낸다. | ||
제1부
삶의 비애를 넘어가는 애틋하고 간곡한 목소리 오늘 나는/썩은 사과를 먹는 사람//사과 속에 깃든/벌레의 하늘과 땅과/벌레의 과거와 미래를 먹는 사람/벌레의 낮과 밤과/벌레가 피해 다닌 무서운 길들을 먹는 사람/벌레가 그토록 아끼던 희디흰 도화지를 더럽히는 사람/벌레를 파내고/벌레만 제외된 모든 세계를 먹는 사람//사과 한알의 별이 우주 속에서 폭발한 오늘/나는 나의 세계를/둥글게 베어 먹는 거대한 입을 바라본 사람(「일식」 전문)
땡볕에 오글오글 쪼그리고 앉은 저 여인들/며칠 뒤면 시작되는 꽃 축제로 급하게 투입된 저 꽃들/호미와 모종삽을 든 꽃/저린 다리를 수시로 접었다 폈다 하는 꽃/작업반장의 눈을 피해 찔끔 하품을 하는 꽃/맘속에 수만가지 생각이 들끓는 꽃/하루 삼만원 일당을 받는 꽃/그 일당으로 밀린 공과금 내고 나면 없다는 꽃/아직 다섯시간은 더 쪼그리고 일해야 하는 꽃/누렇게 이가 썩고 입안에 하얀 구혈이 난 꽃/한번도 꽃인 적 없던 꽃들이/알록달록 차양 모자를 받쳐 쓰고/새로 외국에서 들여왔다는 꽃모종을 심고 있다(「당신들이 꽃이에요」 부분)
꼬리 없는 개의 꼬리 있던 자리/한쪽 다리 없는 사내의 다리 있던 자리/오늘 아침 해머로 쓰러진 건물의 자리//꽃이 지고 난 자리/저수지의 물 마른 자리로/차곡차곡 차들어오는 것이 있으니//물결처럼 소슬히 밀려들어오는 이것을/나는 공중이라 부르니//공중은 사라지지 않는 것/밀가루풀처럼 빽빽히 찬 것//그러한 힘으로/저 가련한 이들의/꼬리며 팔이며 다리 있던 자리에//빼곡히 그것이 돋아올랐으리라/나는 믿고 또 믿는다(「공중」 전문)
|
첫댓글 3권째 시집 발간을 축하 합니다~~
이런 시를 보면 더욱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인데....... ㅎ 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