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 초록빛 숲길을 따라서 가사문학을 보다
멀지도 않으면서 낯설게 들려오는, 가혹하지도 않으면서 참담하게 다가오는 심훈의 소리가 어느 교육방송을 통해서 들려왔다. 귀청의 얇은 가로막이 실금가고 왕창 뚫리는 새로운 각인의 청파 “낯선 곳을 가는 것은 새로운 탄생이다”라는 말이었다. 이렇듯 간혹 떠나려는 여행의 열망도 삶의 무게에 무참히도 짓눌려버려진 일상의 현주소를 그대로 듣고 느끼는 순간이다.
유월의 녹음은 생명체들의 터전이 된다. 그래서 탄생의 합창이 여기저기 울려 퍼지는 신록의 행진이라고들 말한다. 그 자연의 순리 속으로 의령문인협회의 문학기행도 서로의 어깨를 부딪기며 발걸음을 같이하는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
물론, 신록의 가로수 길을 걸으며 앞서간 옛 문인의 시향을 찾아가는 시간인 이번 기행도 앞서 오월에 답사의 순서를 밟고서 시작하는 거지만 새벽안개가 몽실 피어오르듯 또다시 신선하게 다가서는 것은 열세 명의 동료와 색다른 즐거움이 기대되는 동행의 기쁨이라 그럴 것이다. 어렴풋한 낯선 길도 낯익은 길도 진득한 진국의 건더기가 남아있어 더 깊고 넓고 높은 여유가 아름답게 발하는 신록의 빛 행진대열이 미로가 되어 걸어가는 그런 기쁨이다.
전남 담양이라면 대나무와 그 소쿠리를 생각나게 하는 지난 유년시절, 사람과 사람사이 소중한 인연의 추억을 간직한 느낌이라서 더 정겹게 다가온다. 담양에서 온 두 분의 아주머니가 우리집 건넛방에 세 들어서 소쿠리를 파는 것과 전라도 사투리가 왁자하던 한지붕시절 모습이 촛불그림자처럼 일렁거린다. 촛불 속에서는 “빨주노초파남보”를 들여다보는 것과 비슷한 신비한 기억이다.
의령과 진주에서 생활거주지가 달라 각자 출발한 일행은 섬진강휴게소에서 합류해 동행으로서 이곳 선상을 기점으로 길게 펼쳐진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속에는 오가는 들뜬 이야기들의 속력이 한발 앞선다. 그만큼 왁자한 웃음꽃이 차라리 차량을 견인한다고 봐도 된다는 뜻이다. 정오경 담양군에 들어서고 얼마안지나 죽녹원과 관방제림을 연결하는 담양천다리는 여기가 종착지임을 낯익은 척 반갑게 마중을 나온다.
점심식사는 예약한 근처 식당에서 담양이 자랑하는 지역먹거리 대나무통밥과 떡갈비에 곁들인 수두룩한 반찬이 전라도밥상의 맛깔과 푸짐함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맛있어하는 동료틈사이로 잠시 답사임원이 안도하는 눈웃음이 오고간다. 다행이다.
식사 후 답사 때 가사문학관 관광해설사가 추천한 죽녹원 옆 소담한 미술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지붕에 고양이 떼와 참새 떼 모형에 실물인가 의심해가며 각종 설치미술 아트예술품을 관람하는데 그중 윤종호 작가 작품에 폐 플래카드를 활용한 것이 인상 깊다. 버려지고 쓸모없는 것이 예술로 재탄생하는 ‘자아의 인식’을 그대로 그려내고 있어 사회의 경각심을 표현해내고 있다.
다음은 죽녹원을 거닐면서 선비 절개의 상징으로 숲의 곧음에 바로 서니, 가사문학 어우러진 정자와 새로운 전망대에서 가슴을 내미는 바람이 댓잎에 머물러 선다. 곧고 바름이 질서로 기준이 되는 나라, 그 속에서 바람처럼 유연성을 가미한 조화가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대나무는 속이 비었기에 흔들려도 부러지지 않는다. 비운다는 것은 또 채움이 있다는 희망이라서 그 교훈 속에 서있는 것이다. 대대로 전해진 지역 대나무정신이, 방치된 30ha의 대나무밭을 새롭게 가꿔서 2003년도 개장해 관광지로 거듭나려는 사람들의 의지가 숲의 행진인 관방제림, 메타세쿼이아로 이어지는 최고의 아름다운 길, 파노라마처럼 보이는 불멸자산으로 수많은 사람이 행복해하는 계산을 가늠이나 할 수 있을까.
지금 국정에 참여하는 지도자에게 전하는 빈 가슴 대나무의 가르침이 아닐까.
우리 일행이 묵어야하는 숙소는 메타프로방스마을이다. 옆길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가 이국적으로 늘어서 있어 그 연출에 맞추어 빨간지붕 하얀 벽체 건물로 남프랑스 고유의 주거지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 건립된 풍광이다. 펜션과 상가, 그리고 연인들이 추억을 남기는 사랑의 열쇠 등 갖가지 체험테마를 조성해서 영락없는 남프랑스 어느 시골마을에 와있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얼른 숙소에 짐을 풀어놓고 메타세쿼이아가로수길이 물고선 관방제림의 후미부터 시작과 나란히 흐르는 담양천을 거슬러 오르는 자전거 공용 길을 걸었다.
숙소 메타프로방스마을에서 관방제림, 국수거리, 죽녹원으로 이어지는 코스다.
관방제림은 1648년 담양부사 성이정이 담양천의 범람에 의해 농사와 생활의 피해를 줄이는 강구로 제방을 쌓고 느티나무를 심었다는 것인데 수령이 3~4백년을 웃돌고 있다. 위대한 토목공사였다. 대략 1km거리, 뚝방길 따라 하천에는 생태의 수생식물, 안쪽에는 벼농사 모가 초록빛으로 반짝거린다. 비석이 서있는 입구 맞은편 노천 숲 카페처럼 국수거리가 있어 국수와 막걸리를 간단히 먹고 숙소로 돌아오는 관방제림 뚝방길엔 백혈병어린이돕기 1인 콘서트가 열리고 있었다. 아마추어 무명가수는 기타를 치며 신청곡도 받아가며 노래를 부른다. 아름다운 선율이 퍼지는 뚝방 숲에는 해질녘 노을마저도 땅거미속으로 소리없이 내려앉아 빈 객석을 채우는 관객일 뿐 어느 누구도 마음을 등지고 살고 싶은 사람 없듯이 하찮은 벌레 한마리 풀 한포기 시선들이 덩달아 모여든다. 사람의 아름다운 마음이 있기에 풍광도 노래도 아름다울 수 있으리라.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은 2.3km 수령은 40~50년 정도로 몸체는 미끈한 청춘의 맵시를, 연록의 신록은 그의 머리카락, 잘 조성된 공원화가 이채롭다. 7080시절 젊은이의 마음을 적신 비운의 요절가수 김정호의 동상과 그의 노래 “하얀나비”가 새겨져있다.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이 모인 가로수길은 천국의 문을 들어서는 다다미처럼 열릴 듯 미로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파르테논신전을 비롯한 불가사의한 건축물과 얘기가 같이 등장하고 들려줄 것 같은 환영이다.
그 격정을 이기지 못한 몇몇 마음 맞는 이는 심연의 메타세쿼이아가로수길에 디오니소스의 영역으로 들어섰다. 태양의 신 아폴로가 빛과 이성의 신이라면 디오니소스는 어둠과 본능의 신이다. 아폴로가 건전한 모범의 객관적 기준이 면 디오니소스는 술과 욕망과 주관적이며 창작적이다. 창작성이 문인이 가져야할 에너지이기에 디오니소스에 더 가까운 건 어쩔 수 없는 게 아닌가. 그래서 누군가는 시를 쓰려면 연애하고 술도 마셔라는 이야기와 같은 맥락이다. 신이 아닌 인간은 그런 신을 섬기는 불완전한 개체로서 빛과 그림자의 양면성을 동시에 지녀야 살아 갈수 있다. 빛만 있어도 살수 없으며, 어둠만 있어도 살수 없듯이 각자의 영역에 따라 조절하며 살아야 한다는 깨우침이다. 그날 밤도 일상의 빛에서 타들어가는 갈증에 어둠을 마시면서 목청껏 노래하고 고함치던 객기는 문학도로서 타락하지 않은 자유이자 즐거움의 쾌락이 아니었겠는가.
이튿날, 그 문을 들어서면 소슬바람에 이끌려서 1시간가량 담양 남면의 한국가사문학관으로 갈수 있다. 가사문학관 본관 옆에는 명창 박동실기념비가 있어 그가 가수 김정호의 외할아버지였다는 것에 눈길을 끈다. 외할아버지는 월북하고 손자는 요절하는 안타까운 마음에 숙연하다. 본관을 들어서자 현관에 걸려있는 대형액자에 담겨진 조선시대 송순의 면앙정가와 송강 정철의 성산별곡이 초기의 한글로 쓰여 값지게 빛나고 있다. 두 시가를 관광해설사의 끼가 담긴 기교넘치는 해설은 코믹한 공연을 관람하는 듯 즐겁다. 이서의 낙지가를 비롯한 송순의 면앙집, 정철의 송강집 등 담양권 18편 가사와 3만 건이 넘는 가사와 관련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가사문학관 근처에는 식영정, 면앙정, 송강정, 환벽당, 소쇄원 등 정자와 원림이 자리해 호남시단의 중요 무대가 되었다. 그 시절 대쪽같은 선비정신이 깃든 사림들이 모순된 현실정치에 대한 낙담으로 국정을 뒤로 초야로 들어 후진양성에 힘써가며 자연을 벗으로 그 빼어난 풍광을 마음에 담아서 시문을 지어 노래하였다. 그런 문인의 체취를 맡으며 문학을 공부하는 학도로서의 자부심과 책임감을 가슴에 새겨본다.
이렇듯 정자와 원림은 문인의 체취로 가득하지만, 영남과 호남은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영남은 풍류와 은신의 유유독행이었고, 호남은 배움을 위해 모여드는 교육장의 성격이라서 그 시절 내놓으라는 스승과 문하생이 원만하게 숙식을 해결하며 학업에 열중할 수 있는 조건인 곡창지역이기에 가능했을 것이고, 따라서 가사문화의 중심지가 되었다고 확신하게 된다.
항상 여행의 마지막이 되면 아쉬움이 인다. 그것은 피로와는 상관없는 채우지 못한 공허에 오는 갈증이다. 그래서 가사문학관 관광해설사에게 돌아가는 길목에 가볼만한 곳을 묻자 고추장으로 유명한 순창군에 강천산 강천사를 추천해 주었다. 그 목적지까지 달려가는 도로에도 온통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가 펼쳐져 끝없음에 쉬 담양 여정의 여운이 우릴 놓질 못하는 우정에 감사했다.
강천산 계곡물과 숲이 어우러지고 폭포수가 심신을 적신다. 맨발로 걸어가는 길 부드러운 흙살을 밟으며 지나는 길옆 물가엔 가족단위로 사람들이 피어난다. 아이들 고사리손이 물장구를 친다. 새싹인들 꽃인들 이보다 아름다울까. 강천사 절집 뒤 협곡엔 출렁다리가 혈관처럼 붉게 이어져 있다. 혈류처럼 사람들이 오가고 그 심신이 자연의 바람에 떠돌다 해탈에 닿으려는 강천사 천년의 불심처럼 휘돌아 솟아오르는 듯 사라져간다. 해부에서 인간생체가 팔딱거림이.
이번 문학기행에서 동행의 벗들은 메타세쿼이아, 관방제림, 죽녹원의 담양과 마지막 순천 강천산 생명의 초록빛을 따라 심신을 재충전하고, 옛 문인의 시향을 찾아나서는 길이 곧 자신의 길이었음을 시문으로 적어가며 되새김질을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쉬며 꿈꾸던 메타프로방스마을, 한 의류점 안에서 쇼핑에 열중하는 여성과 밖에서 기다리며 지루해하는 남성의 차이와 같이 모든 관계에는 서로의 차이가 존재한다. 일반인과 문학인의 차이가 그럴 것이고, 사람마다 성격의 차이도 그럴 것이다. 서로를 인정하면서 동행으로서의 범주를 좁혀가는 그런 문학기행의 성과를 기대해보면서.
일상의 오늘. 난, 담양을 향해 크게 한번 소리쳐 불러본다. 왜냐고요?
아직 그곳에 머무르고 있을 우리들의 영혼을 위해서라 그러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