껌 주워 씹은 사연
세상에 남이 씹다 버린 껌을 주워 씹어본 사람 있을까?
1997년 12월 29일 일요일 아침 8시경 수원 예술회관 근처에서 남이 다 씹고 손으로 돌돌 굴려 도로변 재떨이 위에 버린 껌을 주워서 더러운 줄도 모르고 열심히 씹었던 사연을 써볼까합니다.
양복에 넥타이 까지 두른 그 당시 내 모습을 버스를 기다리던 몇 명의 시민들이 보았는데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는 지금도 그 껌의 주인을 찾으면 술한잔 대접하고 싶은 심정이다.
나에게는 딸이 둘 있는데 큰딸은 공부를 제법 잘해서 과학고를 나와 KAIST를 졸업했는데 같은 피를 나눈 형제인 동생은 공부하고는 담을 쌓고 춤추고 노래하는 것만 좋아했다. 아마 아빠를 닮은 모양이다.
초등학교 4학년때 KBS울산방송국 어린이 합창단에 입단하여 아주 좋아라하고 노래만 부르던 딸아이 눈에 당시 반주를 하던 C실내악단의 플루트연주자가 무척 우아하게 보였던지 플루트를 배우겠단다.
공부 못하는게 그거라도 하겠다니 대견스러워 40만원 짜리 악기하나 사고 대학원생이던 그 연주자를 찾아가 레슨을 받기 시작했는데 진도가 무척 빨랐고 음악적 재능도 있단다.
그런 딸아이에게 자그마한 변화가 생겼는데 치아를 교정하기 위해 이빨에 쇠조각 같은것을 붙혀 놓으니 플룻의 취구와 부디쳐 고통스러워 하면서 연습도 레슨도 게을리 하게 되었는데 내가 만드는 대금의 음정을 맞춰 보기 위해 가끔 불어보는 대금은 입술이 안아프댄다.
그 뒤로도 틈틈이 대금을 불다가 아글씨 이 어린것이 대금의 헛바람 소리에 매료가 되어버린 보양이었다.
중학교에 입학 하던해 왠만한 가곡정도는 연주를 할 수 있게 되었고 스승의 날에는 전교생 앞에서 연주도 하고 선생들의 관심도 받게 되자 공부는 더욱 뒷전이고 아주 제 키만한 정악대금을 끼고 살면서 한다는 소리가 책은 펼치기만하면 졸리운데 대금은 밤새워 불으라 해도 불겠단다.
그래 제 하고 싶다는대로 수연장지곡 상영산 타령 군악등을 가르켜주었다. 2학년때에는 울산시 국악경연대회에 참가를 하고 싶은데 지정곡이 염불도드리이니 가르켜 달란다.대충 지도를 해줬더니 나가서 상을 받아왔고 대회만 있으면 참가하고 3학년때는 도대회에 나가 장원을 했다.
고등학교를 부산예술고등학교 국악과에 응시를 했는데 실력이 좀 딸리는것 같아 나는 몰래 만파식적의 발생지인 경북 대왕암을 찾아가 이견대에서 막걸리와 북어를 놓고 몇날 몇일을 새벽마다 제를 올리면서 딸의 합격을 빌었다. 시험날 딸의 엄마꿈속에 그응답이 왔다. 높은산 봉우리에 크고둥근 달이뜨고 그속에 수염이 하얀 할아버지가 정좌하고 대금을 불고있더란다.
은근히 합격을 예견했고 예상대로 합격을 했다
고등학교 1학년때 전국학생 국악경연대회에서 장원을 하고 크고 작은 대회마다 상을 휩쓸고 다니다가 2학년 12월 29일에는 경기국악제에를 참가하게 되었다.
상금이 백만원이나 되는 지금까지 참가한 대회중 제일 큰대회이고 사회도 유명한 방송국의 국악프로 아나운서가 보는등 지방에서 참가하는 딸아이는 위축 될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는 나도 좀 신경을 써준다고 연습과정을 체크했는데 어디하나 나무랄데없는 실력으로 현재 대학생들과 견주어도 전혀 손색이 없는데 악기가 좀더 청아한 소리를 내주었으면 좋겠다 생각하고 대회전날 연습후에 벌의 밀로 악기 취구 뒤쪽을 채운것을 파내고 음의 반사를 더 맑게 내고자 쎄루로이드 판을 접착제를 이용하여 붙혀 보았다. 소리가 한결 맑고 컸다.
다음날 새벽 4시에 부산을 출발하여 경연장인 수원 예술회관에 도착하니 춥기도 하고 하여 연습을 시키지않고 참가자 56명의 순서추첨엘 참가했다.
행인지 불행인지 제일 첫 번째 연주자로 결정이 되어 옷을 갈아입고 악기를 꺼내어 청을 점검하고 연습을 시작하더니 딸아이의 얼굴이 울상이되며 새파랗게 질린다.
아빠 대금이 전혀 소리가 안나.
부랴부랴 살펴보니 아뿔사 연습을 오래하여 퉁퉁불은 악기에 접착 해놓았던 쎌루로이드판이 밤새 마르면서 떨어져 버린것이었다.
청이나 아교등은 준비를 해왔지만 벌집의 밀(다른이들은 그냥쓰는 법밀을 나는 여러번 정제를 하여 흰색으로 만들어쓴다)은 준비하지 않았다.
남은 시간은 10분. 대회를 포기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딸아이는 빈사상태이고 엄마도 안절 부절 못하며 날보고 원망이다
어떻게 좀 해봐요?
앞뒤 가릴 겨를이 없던 나는 밖으로 나가 무조건 슈퍼마켓으로 뛰어갔다.
근처에는 문을 연 가게도 없다.
버스 정류장에 사람들이 옹기 종기 모여있고 그앞엔 커다란 스텐 재떨이가 설치되어 있었다. 언듯 보니 누가 씹던 껌을 손으로 콩알 만하게 빚어 예쁘게 붙혀 놓았다.
저거면 되겠다 싶어 얼른 집어들고 보니 딱딱하게 굳어 녹일만한 시간은 없고 해서 입속에 집어 넣고 열씨미 씹으며, 강한 의혹의 시선들을 뒤로하고 대회장으로 뛰어가 쎌루로이드판을 떼어내고 껌을 채워 가까스로 수리를 마치고 예선에 참가 할수 있었다.
비공개 예선이 끝나고 12명이 겨루는 본선에도 올랐다. 대강당에서 겨루는 본선에서도 첫 번째로 연주를 하였는데 연습때 보다 훌륭한 연주였고 악기또한 원하는 소리를 내주었다.
다음날 있었던 시상식에서 영예의 대상을 차지하여 상금도 백만원이나 탓으니 그 껌주인 술한잔 사줘야 되지않을까?
2008.11.14 술챈논네씀
첫댓글 역시 논네님 대단하시네요.대금을 하시다니 기회가 있으면 꼭 한번 듣고 싶네요.그리고 11년 전 아버지의 정성으로 따님의 장원 입상 늦게나마 축하드립니다.제 친구 아들 녀석도 대금을 하는데 지금 어디에 근무하는지 모르겠네요. 그녀석도 대금에 미쳐 서울대 국악과까지 졸업했는데 지금 나이가 29살 정도 되었거든요
제 막내딸과 동년배같습니다. 동기의 대금잽이중 서울에서 핵교 댕긴사람은 거의 다 아는 사람입니다.서울대 다녔으면 정악쪽이 강할것이고..이름대면 알겠네요..
부전여전입니다^^ 훌륭하신 아버지에 그 따님들입니다.세상 어느 자식이 부모를 위해 그같은 행동을 하겟습니까 그게 부모들에 자식에 대한 사랑이겠죠.그런 부모님의 사랑을 받고 자랐으니 훌륭할 수 밖에요.남들이 부러움을 살 만큼 가르키고 키워 놓으셨으니..그 보다 더 보람된 것이 어디있겠습니까.따님들 역시 부모님을 닮아서 훌륭히 자라 주었으니 논네님은 세상에서 아주 값진 보석을 지니신 듯 행복해 보입니다.늦은 인사지만 축하 드립니다*^^*
에~효.. 그래 키워 놨더니 저혼자 큰줄 알고.. 개시키만 이뻐라합니다.. 훗딱 치워 버려야 할낀데... 즈이 아부지가 개 잡아 먹을 까봐 집에도 잘 안와요... 개도 날보면 왈왈거리고..
ㅎㅎㅎㅎㅎ논네님땜에 잠이 확달아납니다~우스워서...
그껌 주인은 바로 여기있는 제비인지도 모릅니다....십여년전에 수원 예술회관 근처에 단물만 빨아 먹고 붙여둔 기억이~~~~ㅎㅎ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혹여 늦게 강남가시다가 하늘에서 뿅~~ 떨어트리셨는지.. 우짜튼 술은 사겠습니다
참 대단한 순발력 입니다. 그런생각을 하기도 힘들지요. 그때도 술첸논네요. 아님 술첸 젊은이 하여간 대단혀요.
저는 껌을 안좋아 합니다. 내가 안좋아하니까 아이들도 덩달아 껌을 안씹어요~~
논네님의 글을 읽노라니 괜스레 눈물이 핑 돕니다. 세상부모의 마음은 다를바없는데 남의 자식들은 수월하게 잘 커간다고 느꼈던적도 있었거던요. 자식이 뭔지...자식이 아니라면 누군가 씹다가 버린껌을 내입에 넣고 씹을수 있엇겠습니까? 그래도 딸은 부모의 마음은 헤아린다던데~~~
ㅎㅎ 부모가 아니라 엄마겠지요..
아녀요. 부모맞아요. 지도 울아버지 딸이잔아요. 딸은 엄마가 되면 부모의 마음을 알기 시작한다구요^^
제비도 딸 없어요.........고추만 둘~~~~무상화님처럼....ㅎㅎㅎㅎ
으이그^^제비님도 **탱이~클났심더^^
역시 부모입니다....... ..정말 그 껌 주인을 찾으면 대포 한잔 사드려야 할것 같습니다 버리고 가지 않았다면. 그런 기쁨이 없을텐데말입니다........역시 버린 분 복마이 받고 . 꼭꼭 씹어서 아이 것 수리해 주신 ..논네님 .늘 건강하세요
우리 딸도 이글을 첨본 모양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