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 말부터 6개월간 휴가를 받아, 아내와 딸과 함께 스위스 제네바에서 시작하여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약 1200 킬로의 도보순례를 했다. 두 달여 동안 한국 음식과 한국이 미치도록 그리웠고, 내 나라 내 땅을 밟지 않고 타국의 땅을 밟는 것
이 도리가 아닌듯하여, 순례 이후의 일정을 취소하고 미리 예약했던 비행기표도 포기하며 급하게 한국으로 돌아왔다. 몽생이님의 잊지
못할 도움으로 울릉도, 제주도를 거쳐 땅끝마을에서 국토 순례도 했다. 그리고 이곳 호주에서도 틈이 있을 때마다 트렉킹을 하고 있다.
이런 일을 가능케한 것은 내 손안에 담긴 조그만 가민 60csx와 이곳 카페의 덕분이 아닌가 싶다. 아직도 GPS 초보자이지만, 큰 용기를
내어 처음으로 산행기를 올려 보고자 한다.
이곳 호주는 지금 한 여름이다. 모처럼 맞이하는 연말 휴식기간을 기해서 가족과 함께 멋진 트렉킹을 하고 싶었다. 타스마니아나
뉴질랜드를 계획했으나, 장기간 집을 비울 수 있는 여건이 되질 않아 대신 호주에서 가장 높은 코스키우쯔코 산(2228m)을 중심으로
펼쳐진 Australian Alps로 가기로 했다. 산행을 위해 모든 준비를 마친 후에 일정을 잡으려 하니 그곳의 날씨가 좋지 않아 한 주를 무척
힘들게 보냈다. 마냥 기다릴 수가 없어 날씨가 어떻든 12월 28일 출발하기로 했다.
드디어 그날이 되어,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밖을 보니 비가 오고 있었다. 5시쯤에 출발했다. 비가 억수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이길 저길
약간 헤매다가 M5에 접어들어 달리는데, 폭우로 앞이 안 보일 정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모두 앞으로 있을 산행에 이미
흥분과 기대감으로 충만했다. 캔버라 조금 못 가서 비가 서서히 걷히기 시작했다. 실은, 비가 내리지 않는 곳으로 우리가 가고 있었다.
8년 만이라 캔버라를 관통하며 구경도 좀 할까 했으나, 바쁜 일정으로 그럴 수 없었다. 캔버라 외곽도로를 택해 계속 달리기로 했다.
한참 가니 아담한 Cooma라는 마을이 나왔다. 그곳에 Scotish Restaurant(맥도날드?)에서 아침을 들고, 우리를 태우고 이곳까지 온
제레미(우리 차 이름)도 시장하다고 하여 기름을 마음껏 사주었다.
그곳에서 약 1시간을 가니 길목에 있는 국립공원 간이사무소에서 차 한 대 당 하루 16불이라는 입장료를 받았다. 약 10여 분을 더 가니
Thredbo(쓰렏보)라는 아름다운 산악 마을이 나왔다. 우리만 왔나 했더니, 이미 수 백 대의 차량이 여기저기에 주차해 있었다. 이곳이
이렇게 인기가 있는 줄 몰랐다.
12시 반쯤 Thredbo Chairlift 장에 도착하니, 10여 명의 한국인들도 보였다. 이곳에서 민박하고 이곳저곳을 구경하고 있다고 했다.
그곳에서 약 20분간 리프트를 타고 도착하니, 바람의 색깔이 다르다. 걸어서 올라올 때 약 2시간이 걸리는 거리다. Crackenback Lift
바로 옆에서 우린 2박3일의 일정으로 30여 킬로의 트랙킹을 시작했다. 조그만 고개를 넘으니, 펼쳐지는 풍경에 입이 딱 벌어진다.
야, 이래서 이곳이 알프스라고 하는구나! 나무가 자라지 않기 때문에 산은 자신의 모든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산정까지의 산행은 크게 힘들지 않다. 그러나 호주 알프스 트렉킹은 얘기가 다르다. 철저한 준비가 없이 시작했다간 생명에 큰 지장을
가져올 만큼 위험한 산이다. 한여름인데도 불구하고 우린 겨울 산행처럼 준비했다. 산에서 4계절을 모두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년, 이시기엔 기온이 영하 4~6도였었다.
천여 장의 사진 중 몇 장을 간추려 산의 모습을 소개하려고 한다. 이번 트렉킹에선 빙하가 만들어 놓은 여러 호수를 만나게 될 것이다.
첫 번째 만나는 호수가 쿠타파탐바(Cootapatamba)이다.
많은 등산객이 산을 훼손시키기 때문에 Crackenback Lift 에서 0.5킬로 이후부터 Rawsons Pass(로선 패스)까진 metal
walkway를 깔아 놓았다. 그 밑으로 동물들이 닦아 놓은 길들이 많이 보인다. 이런 것을 보아 호주의 자연보호 정책은 본받을 만하다.
더운 날씨에 무거운 배낭을 지고 힘들게, 아주 힘들게 코스키우쯔코 정상에 올랐다. 앞으로의 산행이 촉박해서 정상에서 오래
머물 수 없었다. 일반 등산객은 이곳에서 다시 왔던 길로 내려간다.
산정에서 내려오다 왼쪽으로 조그만 길을 따라가면 Muellers Pass (뮐러 패스)로 가는 길이다. Saddle 에서 왼쪽으로 가면
Mt Townsend(타운센 산, 2209m)이나, 그곳으로 가는 길이 보이지 않는다. 간신히 길을 찾아 왼쪽 언덕길로 내려오면
Wilkinsons Creek (윌킨슨 크릭)이다. 물이 풍부한 조그만 여울 옆에 텐트를 쳤다. 서서히 몰려오는 먹구름에 빨리 텐트를
쳐야했다.
텐트 위에 saddle로 다시 올라가야만 원래의 길을 만나게 된다. 아침에 일어나 열심히 오르니, 길이 시작되는 곳이 보인다.
그곳에서 한참 걸으니, 왼편으로 두 번째 호수인 Albina (알비나) 호수가 보인다. Northcote 산(노스코트, 2131m) 을 끼고 도는
Northcote Pass 길은 차마고도의 길과 같다. 이번 트렉킹에서 가장 인상 깊은 길이었다. 저 멀리 보이는 길이 가슴을 뛰게 한다.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조심스럽게 그 길에 접어들고 있다.
왼편으로 수직 고도 120여 미터의 경사가 보인다. 캥거루가 다닌 길은 아니지만, 밑으로 구르면 non-stop이다. 저 밑에 검정 실처럼
보이는 개울이 보인다. 조심스럽게 길을 따라오는 아내와 딸이 안쓰럽다. 나 때문에 사서 고생을 하니...
잘 걷고 있나 뒤 돌아 살펴보는 나의 모습에 회한이 서려 있다.
힘든 길을 걷는 우리에게 아름다운 Alpine 꽃들이 위로를 전해 준다. 낮은 지대에선 볼 수 없는 매우 아름다운 꽃들이다.
어려운 환경을 견디고 이기기 위해 군더더기가 전혀 없다. 아주 단순한 모습에 청아한 꽃을 피우고 있다. 이런 모습이
너무 감동적이다. 하얀 꽃을 피운 식물이 Alpine sunray(Leucochrysum albicans ssp alpinim)이고, 보라색 꽃을 피운
식물이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Feldmark eyebright (Euphrasia collina ssp lapidosa)라고 한다.
그 길을 벗어나자 조금의 여유로 주변 경관을 즐길 수 있었다. Mt Lee(2105m)를 지나, Carruthers Peak(카루써 정상, 2145m)로
가는 길이다. 오른편에 바로 Club Lake가 있다.
잠시 호주 알프스의 경관을 즐기며,
Carruthers Peak로 가는 길이 여간 가파르지 않다. 뒤에 펼쳐진 산들이 병풍과 같다. Uphill에서 무척 힘들어 하는 아내를 보며
격려라도 해야지...
거의 정상에 오르기 전에 가쁜 숨을 몰아 쉬며 걸음을 옮긴다.
정상에 오르다 호주 알프스를 감상하는 딸의 모습이 잘 어울린다.
Carruthers 정상에서 북쪽으로 펼쳐진 산군의 모습이 너무 멋지다. 그곳을 내려와 Blue Lake로 가는 중간에서 만년설을
조심스럽게 밟고 지나간다. 옆으로는 non-stop 미끄러짐이다. 미끄러지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상상하기조차 겁난다.
눈 녹은 물이 청량하게 흐른다. 그냥 마셔도 좋은 물이다.
유명한 Blue Lake이다. 5개 호수 중에 가장 차고, 깊고, 아름다운 호수이다.
Snowy River를 건널 때 조심해야 한다. 물이 불면 절대로 건너선 안된다. Woolworths (월워쓰 슈퍼)에서 우리가 늘 사 마시던
Snowy Mountain 물이 바로 이 물이다. 사실 우린 이 물병을 5~6개나 가지고 갔었다. Club Lake에서 내려오는 물이 Snowy River에
합류하는 지점이 바로 Charlotte Pass (샬럿 패스)로 가는 시작점이다.
강이나 물에서 2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텐트를 쳐야 한다. 아무도 없는 평야에 우리의 텐트가 쓸쓸하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텐트 밖에 수분이 얼었다. 간략한 아침을 들고 샬럿 패스를 힘겹게 올랐다.
대피소와 같은 Seamans Hut (시멘스 헛)이다. 처음으로 건물을 보았다.
그곳에서 다시 Rawsons Pass로 돌아와 내려오다 보이는 풍경이 새롭게 느껴진다.
국립공원 관리원들도, 이렇게 좋은 날씨는 보기 드물다며, 우리가 아주 lucky 하다고 할 정도로 날씨는 좋았다. 날씨가 매우 좋아,
우린 거의 50시간 동안 그늘을 볼 수 없었다. 산이 자신의 알몸으로 우리를 맞이해 주었듯이 우리 또한 마땅한 shelter 없이 그대로
자연에 드러내 주었다. 우리의 얼굴은 너구리처럼 새까맣게 글렀고, 제대로 먹지 못하고 강행군한 몸은 지칠 대로 지쳤다. 아름다운
풍경은 우리에게 상응하는 대가를 요구했다. 해가 뜨자마자 달려드는 수도 없는 파리떼, 눈이고 코고 막 들어오려고 한다. 얘기하다
보면 입속에 파리를 씹을 때가 여러 번 있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무서웠던 것은 보통 파리보다 훨씬 큰 Tabanids(마치플라이)였다.
소가죽으로 만든 등산화를 마치 소인 줄 착각하고 달려들어 무척이나 무서웠다. 길에서 겸손한 뱀도 만났다.
물론 뱀보다 "악! 뱀이다!"라는 아내의 비명에 더 놀랐지만 말이다.
Thredbo에 내려오자마자 쉴 틈도 없이 바삐 서둘러 시드니로 돌아와야 했다. 쿠마에서 차에 주유하고, 슈퍼에서 1리터짜리 주스
2개를 사서 모두 정신없이 다 마셨다. 시간이 없어, 빨리 먹을 수 있는 Subway에 가니 연말이라서 그런지 떨어진 재료가 여럿이다.
미안하다며 원하는 것을 두 배로 채워주겠다고 했다. 허기진 배를 채우고 우린 발길을 재촉했다. 집이 그립다. 빨리 집에 가서
샤워도 하고...
Double Demerit 기간(벌점 배가 기간)임에도 규정속도 110킬로의 길을 요령껏 달려 집에 도착하니, 밤 10시쯤이었다. 차고에 차를
대며, 창고를 보니 늘 있었던 열쇠가 없고 뜯겨 있었다. 창고 안에 있던 박스가 해쳐져 있고... 드디어 무슨 일이 있었구나 싶어 급하게
집으로 올라가니 다행히 집은 무사했다. 왕복 1000 킬로의 운전을 비롯 우리의 산행을 지켜주시고, 또한 집을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했다. 어떤 물건이 도난당했는지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아 일단 자전거 Chain lock로 걸어 놓았다.
일주일 동안 머리를 감지 않고 밖에 나가도 조금도 부담이 없는 곳에서 살고 있다고 자랑을 했던 곳인데... 왜 그곳에 사느냐며 걱정을
하던 주위 사람들의 그 걱정이 그대로 우리에게 일어났으나, 그래도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만 든다.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이번 트렉킹을
해 배우고 느낀 바가 더 크기 때문이다.
앞으론 이렇게 힘든 산행은 하지 않겠노라고 산속에서 투정부리며, 남편의 마음을 돌이키게 해달라고 기도를 해야겠다고 말했던 아내가,
집에 돌아와 샤워한 후 다음 산행 일정은 어떻게 되느냐고 물으니 도대체 내가 종잡을 수 있어야지...
추신: 트랙로그 자료는 어떻게 요리해야 할지 몰라 올리지 못했습니다. [고수님들처럼 지도와 함께 올리거나, 구글 맵으로 표시도 하지
못해 부끄럽지만 요청이 있어, 참조하시라고 track raw file을 올립니다.]
Australian Alps Track.gpx
카페 방장님, 그리고 모든 회원들께 신년 인사를 드립니다. 건강하고, 평안하며 복된 한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첫댓글 호주에는 사막만 있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멋진 곳도 있다니 놀랍습니다. 좋은 곳 소개시켜 주어서 감사합니다.
아,정말 멋지네요,부럽습니다. 오붓하게 가족 트레킹이라.........트랙은 가능하시면 gpx 파일형태로 올려주시면 후답자들의 활용이 편리할 것입니다.60csx이니 날짜별로 저장된 것이 있을텐데요.
호주의 크기가 남한의 약 80배가 된다고 합니다. 이런 광대한 땅에서 열대림, 사막, 알프스, 광야, 평원 등 다양한 모습의 자연을 접할 수 있습니다. 부탁하신 track file 을 올렸습니다. 가실 때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아~! 가슴뛰게 벅찬감흥이 전해져오네요.
전에 소개된 적 있지만 가민기기를 가졌다면 호주는 http://www.gpsoz.com.au/tracks4australia/ 사이트에서 전체지역 지도를 얻을 수 있죠. 한글판처럼 맵소스에서 지도를 등록하고(무료, 암호없음) 지역별 혹은 전체지도를 업로드 가능합니다. 이미 아시는지 혹은 도움이 되시라고.
트랙을 구글어스에 올리고 기행문 코스대로 따라가니 실감나게 구경 할수 있군요..
흥미진진한 산행기 잘 보았습니다. 정말 부럽습니다! 시두니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가족과 함께하는 좋은 산행기 잘보았습니다.
마치 제가 다녀온듯 합니다 광할하고 시원하게 펼쳐진 평원과 장쾌함이 호연지기를 느끼게 하는군요.
호주는 이민가고픈 나라죠. 다만 그나라가 저를 안 받아줄 뿌운~ ^^; 지난 3월에 시드니에 여행을 다녀왔는데 정말 좋더군요. 또 가보고픈 나라입니다. ^^
호주의 이민문호가 점점 좁아들고 있는 추세입니다. 호주를 천국으로 여기는 분들을 보았습니다만, 호주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세상에서 한국이 가장 살기 좋은 나라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공기와 푸른하늘 그리고 살벌한 범죄가 조금 꺼리는 부분이지만, 그래도 내나라 내조국이 최고라고 느끼고 있습니다. 여러나라에서 살아 보았지만, 60을 바라보는 사람의 회향본능이 작용해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과년한 딸도 "아빠 한국이 너무 좋아!" 하고 난리입니다. 대형슈퍼에서 시식도 다양하게 할 수 있지... 최첨단의 테크놀로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이곳 슈퍼에서 시식이라곤 시리얼 정도 밖에 먹은 적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