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는 암기력은 좋지 않지만, 기억력 하나는 정확하다. 술을 마셔도 필름이 끊긴 적이 거의 없고, 남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은밀한 부분까지 저장해놓곤 한다.
나는 어제 밤 9시쯤 집에 와서 쇼파에 그대로 뻗어버렸다. 깨어나니 그 과정의 여러 부분이 잃어버린 필름처럼 조각나고 없었다.
어제로 돌아간다.
땡볕이 내리쬤다. 친구 따라 갔다가 식당에서 추어탕에 소주 한 병 마셨다.
친구가 어떤 회사 면접을 보러 간 동안 나는 아는 동생을 만나 회에 소주 한 병을 함께 마셨다. 배불렀지만 매운탕 받으려고 밥 한 공기 시켰다.
면접이 끝난 친구를 다시 만나 대패 삼겹살에 소주 한 병 마셨다. 친구는 술을 먹지 않고 된장찌게와 밥을 먹었다. 이때쯤 나는 취해서 제법 철학자가 돼있었다. 허공에 낱말들이 떠돌았고 어떻게 집에 왔는지 자세히 기억 안 난다.
2
작가지망생 카페 넋두리란에 오렌지님의 소개팅녀에 대해
'팔목엔 큼지막하니 타투를 하고 초면에, 만난지 10분도 안되었는데 클럽갔다가 백인한테 따먹힐(참한 얼굴에서 나온 단어라고는 믿을 수가 없는)뻔했다고 스스럼 없이 내뱉은 여자'였다고 한다.
나는 직접 보진 못했지만 이 여자에게 매력을 느꼈다.
첫째, 타투. 타투가 아니라 헤나면 즐.
둘째, 양공주와 달리 클럽에서 양키를 뿌리친 점.
셋째, 욕을 스스럼없이 내뱉는 쿨한 여자
넷째 , 이 모든 것을 커버하는 참한 얼굴.
3
자우림의 '오렌지 마말레이드'라는 노래가 떠올랐고, 제목은 그걸로 한다.
나, 이상한 걸까?
어딘가 조금 삐뚤어져 버린 머리에는
매일매일 다른 생각만 가득히.
나, 괜찮은 걸까?
*
* 가사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