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신] 인간시장(3권) 40. 이상한 곳 Ⅱ

[물 안 개]

이상한 곳 2. 나는 밖으로 나왔다. 그녀와 새끼손가락을 걸고 나온 것이었다. 어떤 수를 쓰더라도 그녀를 구해내고 싶었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그녀의 억울한 사정을 풀어줄 결심이었다. 골목길로 나섰다. 장경철. 그는 어떤 사내일까? 가엾은 여자의 돈을 7천여만 원씩이나 게눈 감추듯 먹어치운 사내. 본명이든 아니든 나와 종씨라는 사실이 기분 나빴다. 잡히기만 하면 장씨성을 못 쓰게 하든지 광화문 사진현상소 아저씨처럼 그 사내의 가슴에 죄명을 써서 광화문 한복판에 세워 놓든 할 참이었다. 장경철의 사진 백장을 복사하러 갔다. 광화문의 괴짜 할아버지 가게 앞엔 특유의 할아버지 수법으로 진열된 사진이 걸려 있었다. 그 할아버지에게 사진 현상을 의뢰한 뒤에 시일이 훨씬 지나도 찾아가지 않았다가는 날벼락을 맞기 십상이었다. 안 찾아간 사진은 다음과 같은 하소연의 사연을 써붙이게 되기 때문이었다. '상기 본인은 생활형편이 극심하게 어려워 죽도 제대로 먹을 수 없는 사람이어서 사진을 찾아가지 못합니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모두 그 글귀를 보고 웃을 수 밖에 없게 만들었다. 그런 괴상한 광고판이 나붙으면 며칠 못 가서 사진 임자가 찾아가게 마련이었다. "뭐 할라고 이까짓 걸 백장씩이나 만들어?" 할아버지의 퉁명스러운 말이었다. "나쁜 놈이라 찾아내려고 그래요." "살인 강도라두 되나?" "그것보다 더 치사한 친구예요." "어떤 놈여?" 나는 할아버지에게 대충 얽혀든 얘기를 노려보았다. "상통부터가 그런 짓 하구두 남을 눔이구먼. 이런 자식은 불알을 발라놔야 하는 겨. 씨알머리를 없애야지. 쥑일 눔 같으니." 그러면서 할아버지는 내게 묘한 수법이 있다고 했다. "어떤 방법인데요?" "내 신속하게 백장을 뽑아 줄 테니 학생이 큰 베니어판 한장하구 확대사진 값만 내라. 내가 광화문 한복판에다 큼지막하게 써 붙여 놓으면 제까짓 놈이 안 찾아가진 못할 거 아니겠어? 학생이 여기 지켜섰다가 멱살을 잡으면 될거구만." "정말 그래주시겠어요?" "그런 눔 내가 안 잡구 누가 잡아. 서울눔덜 도적놈을 봐두 외눈 하나 깜짝 않는 뽑은 장사여." 나는 기꺼이 할아버지에게 베니어판 값과 대형 확대사진 값을 내놓았다. 할아버지는 신바람이 났는지 내게 가게를 맡기고 나갔다. 원판사진이 없기 때문에 정교한 촬영실에 가서 크게 확대하는 작업을 하겠다는 거였다. 할아버지는 아직도 나를 학생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정의감이고 나발이고 저 살기에만 바쁜 서울놈들, 말로는 뭐가 어떻게 인간다운 게 어떻고 떠들면서 눈깔 내려감고 다니는 졸장부들에 비하면 괴상한 할아버지야말로 진짜 정의감이 투철한 양반이었다. 하나님. 봤죠? 늙어도 저렇게 늙는 맛이 있어야 하는 겁니다. 곤죽이 되어 분노할 줄도 모르고 기침이나 하는 건 추하게 늙는 거라구요. 얼마나 추한 늙은이가 많은지 하나님은 잘 아실 겁니다. 쪽바리들에게 나라 팔아먹은 치들도 어른입네하고 큰 소리치며 잘 처먹고 있죠. 쪽바리들이 우리나라를 아주 먹어 치우려고 가르친 식민지 사관에 빠져 들어가 우리나라 역사를 개판으로 써갈긴, 저 혼자 석학인 줄 아는 멍청이들은 해수기침하며 살죠. 눈꼽만큼 권력이나 돈이 있다고 어깨에 힘주며 잘난 척하는 늙은이들은 제 배때기 채우는 일만 기능 보유자가 된 걸 하나님은 아시겠죠. 사진현상소 할아버지는 베니어판 위에 큼직한 그 특유의 글씨로 이렇게 썼다. 사업을 하던 중 사업에 실패하여 아래의 사진을 찾아갈 수 없는 딱한 사정입니다.' 나는 할아버지에게 사진값을 지불하고 나왔다. 손빠른 애들 두어 명을 잠복 근무시킬 생각이었다. 사진은 속성으로 뽑아졌지만 대형 사진은 내일 아침부터 광화문 중심가에 내걸릴 예정이었다. 운대가 맞으면 그 할아버지 덕분에 쉽게 찾아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속성으로 뽑은 사진을 알 만한 곳에 돌리도록 했다. 그런 제비족 근성이 있는 녀석이라면 돌아다니는 곳이 빤했기 때문에 사진 나누어주기는 어렵지 않았다. "사진 찾으러 오는 놈이면 무조건 잡아채라. 본인이 나타나지 않고 다른 녀석을 보내기 십상이니까 무조건 잡아둬라. 이건 있겠다. 만약 이번 일을 실수하면 너희들은 골로 갈 줄 알아." "걱정마요, 형 이런 자식은 안 놓쳐요." 두 녀석에게 단단히 교육을 시켜 광화문 할아버지 가게에 숨겨 놓았다. 시간이 얼마나 오래 걸릴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에 비상연락망과 비상대기조로 나누어서 중심가와 영동 일대에 배치를 했다. 이튿날부터 나는 정신없이 돌아다녀야만 했다. 춘삼이 형이 내준 차를 타고 다녔지만 불편한 게 많았다. "너두 운전이나 배워둬라. 이럴 때 긴요하게 써먹을 수 있잖아. 내 말 안 듣더니 결국 그 꼴 아니냐." 춘삼이 형 말에 귀가 솔깃해졌다. 자동차 운전쯤은 해둬야 될 것 같았다. 그것도 시험을 치른다고 하니까 어딘지 걸리는 데가 있었다. 시험이라면 주눅부터 들었다. 어려서부터 시험봐서 떨어지는 일에 이골이 나서 그런 것 같았다. "면허증 없어서 그렇지 운전이야 그만 아닙니까." "우리나란 실제 운전보다 면허증 따는 게 더 중요한 나라라는 걸 잊지 마라. 형식은 중요한 거니까." 나는 속셈으로 면허증을 하나 따서 썩은 차라도 끌고 다닐 생각을 했다. 광화문 할아버지 가게 앞은 볼 만했다. 베니어판 전면에 백상지 두 장을 붙이고 그 앞에 장경철이란 사내의 대형 사진이 두 장이나 나란히 붙어 있었다. 아무리 확대해서 커서 원판 확대 같지는 않았다. 할아버지는 내 손을 쩔쩔 흔들며 웃었다. 앞니 두 개가 빠져서 흉해 보였다. 나는 녀석만 잡으면 괴짜 할아버지에게 이빨을 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사진 한장 더 뺐지. 그런 눔은 빨리 알여져서 소문에 귀가 간질거리면 빨리 찾아오는 법이거든." 할아버지는 큰 사진을 가리키며 꼭 잡힐 거라고 했다. "고맙습니다. 할아버지." "고맙긴. 사진 찾으러 오면 내가라두 그냥 안 둘겨." 비슷한 녀석을 보았다는 보고도 들어왔고 영동 근처에서 어슬렁거린 적이 있었다는 얘기도 들어왔지만 현재 녀석의 거처는 알수 꼭 닷새가 지났다. 나는 초조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춘삼이 형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제비족 애들과 여자를 등쳐 먹는 애들을 죄 쑤셔보았지만 그런 녀석은 없었다. 나는 점심 때쯤에 Y여관을 한 번 더 찾아가 미스 황에게 거짓말을 했다. 녀석의 거처가 확인되어 제주도로 잡으러 갔으니 며칠 더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 "이왕 왔느니 날 가지세요. 차라리 그게 맘이 편할 것 같아요. 제가 갚을 게 아무것도 없잖아요." 그녀는 옷을 벗으려고 했다. 나는 그녀를 갖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것이 사람의 탈을 썼다는 기본양심인 것인지 모른다. 초저녁이었다. 광화문에서 잠복하고 있던 녀석에게서 연락이 왔다. "본인이냐?" "아녜요. 와서 뗑강을 놓던데요. 사진 맡긴 적이 없다면서 누가 맡겼느냐, 얼마냐, 꼬치꼬치 캐묻곤 찾아가는 것 챘어요. 녀석이 안 불어요." "이쪽으로 데리고 올 수 있냐?" "그러죠." "빨리 와. 절대 놓쳐선 안 된다." 십분쯤 뒤에 청바지 차림의 사내가 내 앞에 앉았다. 다부진 어깨와 부리부리한 눈빛으로 보아 건달밥을 먹는 것 같았다. 춘삼이 형과 애들이 슬그머니 나가 버렸다. 내 성미를 알기 때문에 자리를 피해준 것이었다. "누가 시켰는지 순순히 말하면 살려주겠다. 그 사진 임자, 지금 어디 있는지 말해라." "모른다. 넌 누군데 함부로 사람을 않으면 골통이 나갈 거다." 제법 배운 말씨였다. "임마, 좀 놀아봤으면 사람 보는 것부터 좀 배워라." 나는 녀석을 묶은 줄을 풀어주었다. 녀석이 제법 발길질을 했다. "귀엽게 노는구나. 후회하게 해줄게." 나는 상대가 안 되는 줄 알면서 모지락스럽게 걷어차 버렸다. 녀석은 버둥대다가 고꾸라졌다. 관절이 꺾어 의자 위에 거꾸로 세웠다. 녀석은 삼분을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미아리 번개 형님이 시켰읍니다." "이 자식들이 걸핏하면 번개자 붙이네. 임마 개나 걸이나 번개냐?" "...... ." 녀석은 대꾸가 없었다. 나는 두어 번 더 걷어찼다. "왜 찾아오라더냐?" "누가 봤대요. 그래서 형님이 나더러 찾아오랬습니다." "번개가 그 쪽 왕초냐?" "아닙니다. 큰 형님은 따로 있습니다." "누구냐?" "도깨비 형님입니다." "마빡에 점 있는 치 말이냐. 왼도끼 쓰는 친구." "맞습니다. 도깨비 형님 알면 난리날 겁니다. 풀어주는 게 신상에 좋아요." "번개가 도깨비 직속 똘마니냐?" "그런 셈이죠." 아마 도깨비 밑에서 빌붙어 그 그늘로 껍죽대는 녀석일 것 같았다. 나는 청바지를 애들을 몇 보내준다는 걸 거절했다. 녀석을 옆에 앉히고 내가 직접 운전을 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마작판을 벌이고 있던 패들이 갑자기 칼을 빼어들었다. "장난하면 손 벤다. 번개가 누구냐?" 가운데 앉아 있던 사내가 여유만만하게 일어섰다. 반나체의 계집애들이 사내 숫자보다 한 명이나 더 많은 방이었다. "형씨 왜 찾으슈? 내가 번개올시다. 어디가 간지러우슈? 좀 긁어드릴까." 날카로운 칼 끝이 나를 향했다. 나는 말장난할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짜고짜 녀석의 턱을 걷어찼다. 그 순간 다섯 명의 사내들이 돌진해 들어왔다. 마작판으로 쓰던 테이블로 녀석들을 나는 번개 녀석을 끌고 나와 수챗구멍 속에 거꾸로 박았다. 수채 구정물을 잔뜩 들이켠 녀석이 넋을 놓고 주저앉았다. 녀석은 그래도 입을 열지 않고 버티기만 했다. 관절을 꺾어 뒷좌석에 태우고 돌아왔다. 춘삼이 형 입장과 나중에라도 도깨비가 시비를 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난지도 아래 백사장으로 끌로 나갔다. 녀석은 한풀 꺾이는 기색이었다. 바른 말을 할 리 없었다. 녀석이 먹고 사는 방법을 털어 보일 위인은 아니었다. 그런 식으로 굴러먹은 녀석들의 특징은 쓸데 없는 의리가 강하기 마련이었다. 동업자를 밀고하는니 차라리 죽을 수 있을 만큼 강한 사내들이었다. 웬만한 녀석이면 관절을 꺾으면 굴복했을 주인과 얽힌 흥정은 토해내지 않으려고 했다. 나는 녀석을 모래와 쓰레기가 뒤엉킨 바닥에 거꾸로 박아 버렸다. 숨도 못 쉬고 뒤뚱거리던 녀석이 납작 엎드렸다. "형님, 살려주쇼." 모래와 쓰레기 더미에서 나온 오물이 코와 입 속에 가득 채워진 채 녀석은 말했다. "아까도 말했지만 난 장총찬이란 놈이다. 소문 들어서 알겠지만 그냥 대충 넘어가는 놈이 아니다. 도깨비 아니라 도깨비 할애비라도 내 손에 걸리면 뼈만 남길 거다." 금방 불 것처럼 하던 녀석이 또 뜸을 들였다. 독종이었다. 나는 녀석의 사타구니를 걷어찼다. 녀석은 뱅글뱅글 맴을 돌다가 고꾸라졌다. "말할게요, 제발...... ." 약점이었다. 아랫도리를 흔들어서 사기쳐 먹고 사는 족속들의 공통점이었다. "천사장한테 들었습니다. 그 친구가 돈이 꽤 많다는 걸 말입니다. 그래서 제가 졸랐습니다. 섭섭하게 하진 않겠다고 말입니다. 우리 부탁을 거절할 수 없는 형편이라서...... ." 녀석은 체념한 듯 주절주절 늘어 놓았다. 교묘한 수단으로, 돈을 번 불행한 여자들을 농락하고 돈을 알겨내는 데 전문가였다. 그렇게 번 돈은 노름이나 다른 계집질로 탕진하는 패거리 가운데 하나였다. 여관 주인 사내도 꽤 알차게 실속을 차린 셈이었다. 일시불로 천오백만원을 받았으며 미스 황이 일년 동안 버는 돈을 챙기기 위해 그런 비열한 수단을 쓴다는 게 드러났다. "가자. 가서 네 아가리로 다시 씨부려라." 나는 준비해 가지고 갔던 녹음테이프에 녀석의 말을 남김없이 담았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다 되돌려 드리겠습니다. 제발 살려주세요." "무슨 재주로 그 돈을 다 내놓겠다는 거냐?" "통장에 든 거 해약하면 됩니다." "장기예금이냐?" "예, 그렇습니다." "웃기는 놈이구나. 그 짓해서 장기예금 드는 놈도 있구나. 미스 황 말고 몇 건이나 했나?" "...... ." 녀석은 대꾸하지 않았다. 아마 그런 식으로 등쳐서 먹고 사는 전과기록이 수없이 많은 입놀림이 녀석의 재산인 것 같았다. "우선 미스 황 돈을 내일까지 해오도록 해라. 그 돈이 도착할 때까지 넌 내가 보관해 주마." "그렇게 하겠습니다. 약속을 꼭 지키겠습니다. 전화만 걸게 해 주시면." "얕은 수가 나한텐 안 통한다. 그 점을 명심한다면 네 방식을 따르겠다." "고맙습니다." 나는 우선 녀석이 경찰에 넘어가기 전에 미스 황의 돈을 찾고 싶었다. 그런 뒤에 여관 주인과 묶어서 넘길 생각이었다. 이런 부류의 사내들을 풀어 놓으면 또 숱한 피해자가 생기는 건 빤한 이치였다. 그렇다고 어디를 병신으로 만들어 풀어줄 수는 더욱 없었다. "내일 아침 11시까지 현금으로 내 앞에 개인적으로 쓴 것과 다시 아파트를 살 수 있도록 오른 값을 부담한다는 조건이다." "좋습니다. 대신 저를 풀어주는 것도 약속하시겠죠." "물론이지, 나도 사내니까." 그러나 내 속셈을 녀석이 알 수는 없었다. 돈을 다 찾은 뒤엔 반드시 도깨비 왕초의 시비가 뒤따르게 될 것을 예상해서 녀석을 경찰서에 넣을 수 있는 명분을 만들 수 있었다. "장소는 내일 아침에 정하기로 한다. 알았지?" "예." 밤 사이라도 무슨 일이 생겨서는 안 되었다. 그래서 만약의 습격 사건을 방지하기 위해 돈 받는 장소만은 내일 아침에 다시 가능하면 사람 눈에 뜨이지 않는 넓은 장소로 정할 생각이었다. 녀석을 안심할 만한 곳에 감금시킨 뒤에 나는 소형녹음기 한대를 들고 Y여관으로 달려갔다. 녀석의 전화 때문에 도깨비 일파가 날뛰는 경우엔 Y여관 주인도 튈 수가 있는 일이어서 서둘지 않을 수 없었다. Y여관 뒷골목에 차를 세워놓고 들어갔다. 중년 여자가 반갑게 맞았다. "어머나 또 오슈 닳겄네. 아무리 젊은 삭신이래두." 점심 때 다녀간 나를 대번에 알아보고 하는 소리였다. "미스 황 있어요?" "애고, 뭐가 못 잊어 오셨나. 한 삼십분만 기다리슈." "천사장님은 계세요?" "아슈? 안채에 있는데...... ." 나는 성큼성큼 걸어 안채 쪽으로 갔다. 대청에 앉아 텔레비젼을 보던 사내가 문을 열어주었다. "누굴 찾으슈?" 퍽 건방져 보였다. 나는 좀 머뭇거리며 대청으로 올라섰다. 사내가 나를 노려보았다. 인상이 수더분하지는 않았다. "천사장 계슈?" 나도 건방지게 나갔다. 어차피 이런 사내는 내게 대접받기는 글렀다. "어디서 오셨나?" 미심쩍었든지 이렇게 엉거주춤 물었다. "올 만한 데서 왔으니까 좀 앉읍시다." "그러슈." 애가 너무 당돌하게 나오니까 아떤 목적으로 어디서 나왔는지 감을 못 잡는 눈치였다. 법을 어겨가며 이상스런 짓을 하는 사람들은 나처럼 당돌한 사내에게 함부로 대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보아하니 혼자 잘 먹고 잘 사는 것 같소. 장사 잘 되슈?" 천사장이란 사내가 벌큼벌큼 웃었다. "보다시피 파리 날리잖소. 이 짓도 못해 먹을 짓요. 그런데 어디서 오셨소? 첨인 것 같소." "이 양반이 단골손님도 몰라 보고 첨이라니." "그러지 말고 차근차근 얘길 합시다. 난 정말 뉘신지 모르니까 하는 소리요." 사내가 능치고 나왔다. 나는 집안을 주욱 훑어보고 가볍게 웃었다. "돈벌이가 좋은 것 같아서 내가 이 여관을 살까 하고 왔시다." "이 사람이 장난하나." "얼마면 팔겠소?" "어디서 왔냐잖소? 사람이 유하다고 장난하면 쓰겠소. 나 천갑영이라고 합니다. 이짓 해서 밥먹기도 힘든 사람이오. 때려칠 수도 없고." "세무서서 나온 건 아니니까 죽는 소리 마쇼." "그러면 어디서 왔소?" "이 여관 사러 왔다잖소. 얼마면 팔 거요? 돈 천이면 될 거 아뇨?" "...... ." 어이가 없는지 대꾸하지 않았다. 담배 케이스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내게 "흔해 빠진 양담배 안 내놓고 왜 이 담배를 내놓는 거요? 내가 순산 줄 아슈?" "이 양반아, 어디서 왜 나왔는지 말해야 상대를 할 거 아냐?" 믿는 데가 있는지 언성이 높았다. 보통 성깔은 아닌 것 같았다. 그 정도 배짱없이 그런 변태업소를 차리지도 못할 것이고 몸 팔아 목구멍에 풀칠하는 여자의 등을 쳐먹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되게 뻐시네. 귀퉁배기 맞으려구." 내 말도 꽤 매웠다. "뭐라구? 너 뭐하는 자식야." "이 여관 사러 왔다잖소. 이런 여관하려면 귀먹어야 되는 거라면 난 일찌감치 포기하겠시다." 내가 시비조로 나간다는 걸 사내는 알고 어떻게 골려줘야 할지 내 머릿속이 복잡했다. "이 자식이 어디 와서 행패야, 행패가. 뒈지고 싶어 환장했나. 이런 자식들 보기 싫어서 이 짓도 못해 먹겠네." 사내는 내가 관공서에서 나온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아챘다. 큼직한 주먹으로 탁자를 쳐가며 눈을 부라렸다. 보통 성깔 있는 사내는 아닌 것 같았다. "나 같은 놈 보기 싫으면 집어치우슈." "너, 어디서 굴러먹다 왔냐? 뼉다귀가 성하려면 썩 꺼져." 사내가 엄포를 놓았다. "형씨, 내 성깔은 굉일인 줄 아슈 ? 이거 왜 이래. 나도 쌀밥 먹고 살자 이거야. 형씨 혼자 고기 씹어먹는 거 못봐 주겠단 말씀야." "어허!" 사내의 턱을 갈겼다. "이 새끼 죽인다!" 사내가 탁자를 번쩍 들었다. 찻잔이 쏟아졌다. 시끄러운 소리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나는 탁자 든 사내의 아랫배를 걷어찼다. 사내가 뒹굴었다. 밖에 있던 험상궂은 사내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한발짝만 들어서면 턱주가리를 뽀개 버린다." 내가 소리쳤다. 사내들이 주춤거렸다. 쓰러졌던 사내가 꿈틀거리며 일어섰다. 다시 걷어찼다. 사내가 뒤로 벌렁 자빠졌다. 사내들이 칼과 방화봉을 들고 들어섰다. 나는 볼펜을 쳐들고 말했다. "눈깔 빠지기 싫으면 토껴라. 말귀 못 알아 먹는 놈은 입원할 테니까." "어쭈." 사내들이 뭉텅이로 덤볐다. 간단하게 때려 뉘었다. 마구잡이로 배운 솜씨여서 볼펜 한자루로 해결할 수 있었다. 대청 마룻바닥에 뻗어누운 녀석들을 한 쪽으로 몰아 놓고 천사장이란 사내를 잡아 일으켰다. "흥정 좀 하실까?" "뭘 요구하나?" "돈." "얼마냐?" "기천만원은 내놔야지. 내 춤솜씨 봤으면 그 정도는 지불할 각오를 했겠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우리 천사장께서야 사람 볼 줄 알겠지." "...... ." 말이 없었다. 쉽사리 대답할 수 없는 "난 강도가 아니올시다. 천사장 당신이 해먹은 것만 찾아가면 그 뿐인 사람이올시다."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이걸 한번 들으시면 아시겠지." 나는 소형 녹음기를 내놨다. 테이프가 돌아갔다. 생생한 현장 녹음테이프였다. 내가 다그치는 소리와 사내가 비명을 지르는 소리까지 다 들어 있었고, 마지막 부분에 미스 황 돈을 챙겨 달아나는 장면까지 다 있었다. 천사장 얼굴이 대번에 실룩거렸다. "아주머니는 가서 미스 황 데려오쇼. 빨리요." 나를 반갑게 맞아주던 여자가 화들짝 놀라서 안으로 들어갔다. 천사장이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타협하면 될 거 아뇨." 좀 죽은 목소리였다. "얼마에 하실까?" "말해 보슈." "에누리 없이 2천만원." "...... ." 천사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가 미스 황한테 빼먹은 액수보다 조금 많았기 때문이었다. "이보슈 천사장. 은행금리는 쳐줘야 할 거 아뇨. 미스 황의 정신적 피해보상은 뺀 거요. 그만하면 더럽게도 많이 봐준 거요. 내 말 알아듣겠소?" "너무하잖소." 그는 시간을 끌자는 속셈인 것 같았다. 사람이 많은 곳이니까 누구라도 천사장과 손이 닿는 패거리들에게 연락해 줄 거라고 내놓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다. 큰 손모가지까지 꺾어 놓으면 그때서야 순순히 돈을 내놓을지 모를 일이었다. "이 녹음테이프 값도 빼준 거요. 내 수고비는 물론이고." "그 자식 어디 있소?" "감옥에 보냈지. 수틀리게 나오면 당신도 보낼 작정이오." 천사장은 미스 황 사건을 부정하지 않았다. 너무 증거가 확실했고 현장에 증인이 있기 때문에 둘러붙일 수 없었던 것 같았다. 미스 황이 조심스럽게 걸어 들어왔다. 밤에 불빛에서 보았던 앳된 여자 모습이 아니었다. 나이에 걸맞게 교태가 흐르는 여인이었다. "미스 황도 한번 들어보쇼. 만약 거짓말이라면 거짓말이라고 하쇼." 잠자코 있었다. 녹음테이프가 돌아갔다. 그녀의 표정이 몹시 참담해 보였다. 그런 어마어마한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는 게 몸서리 쳐지는지 몸을 떨었다. "내 돈만 찾아 주세요. 다른 건 원치 않아요." 녹음테이프를 다 듣고 난 미스 황이 천사장의 눈치를 살피며 이렇게 말했다. "돈을 내놓겠소? 아니면 한번 골로 가보겠소? 돈이 아까우면 골로 가는 게 좋을 거요. 당신같은 사람은 살아 있어봤자 별 뾰족한 게 없을 테니까 일찌감치 가시지." 사내가 눈을 내려깔고 흥정하자는 투로 눈짓을 보냈다. "아까도 말했지만 흥정은 끝났소. 2천만원 내놓든지 당신이 사라져 주든지 둘 중에 "지금 그만한 돈이 없소." 그렇게 나오리란 건 알았다. 남의 피눈물을 짜낼 때는 낄낄거리다가도 제 주머니를 뒤지려고 하면 몸부림치는 게 그런 사내들의 천성이었다. 사기꾼의 특징은 그런 것이었다. 제가 챙긴 돈만 아까운 것이었다. 이런 사내를 법정으로 끌고 가려고 해도 적용할 만한 법조문이 없기 마련이었다. 증거도 없애고 상황도 바꾸어 버릴 수 있는 위인들이기 때문이었다. "이 바깥채가 당신 집이지?" "그렇소." "내가 뒤져보면 그만한 건 나오겠지. 정 안되면 이 여관 팔면 될거고." 나는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갔다. 금고를 가리키며 열쇠를 내놓으라고 했지만 사내는 두어 번 걷어질렀다. 이런 고등사기꾼은 실컷 두들겨 패도 하나님이 웃을 것 같았다. 사내가 고꾸라졌다. 열쇠를 내놓고 번호를 댔다. 금고가 열렸다. 패물과 증권과 현금뭉치가 쏟아져 나왔다. 여러 개의 통장과 도장도 나왔다. 나는 찬찬하게 살펴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증권에 투자한 액수가 일개 변태여관을 하는 사람으로선 너무나 컸다. 통장의 현금도 4천여만 원이나 되었다. "당신 개같이 벌어서 똥강아지처럼 사는군." 나는 사정보지 않고 팼다. 이런 사내는 당분간 기동하기 어렵게 뼈를 주물러 줄 필요가 있었다. 사내가 대굴대굴 뒹굴며 살려달라고 악을 썼다. 보통 끝내기로 아니었다. "미스 황처럼 해 처먹은 건이 또 있지 ? 바른 말 하지 않으면 확 싸지를 거다." "없소. 정말 없소." "있다고 할 놈이 아니지. 이 개뼉다구 같은 자식아. 불쌍한 여자들한테 해 처먹은 것도 정도가 있지. 그렇게 일생을 조져줘야 네가 잘 사는 거냐 말이다. 정당하게 버는 만큼만 벌어 처먹으면 누가 목아지라도 따가냐? 너같이 악독한 놈은 씨알머리를 발라내야 돼. 세상이 좋아서 모가지만은 붙어 있는 줄 알아라." 분통이 터져서 곱게 놔둘 수가 없었다. 몸 팔아 돈 벌려고 나온 여자들에 게 적당히 뜯어 먹는 거야 내가 참견할 일이 아니지만 이렇게 치졸한 현금 수집광은 그냥 두고 싶지 늘씬하게 두들겨 팼다. 이런 사내는 죽어도 과거의 죄악상을 털어놓지 않은 게 특징이었다. 증거도 없어진 지 오래됐고 구체적으로 고발한 사람도 없기 때문에 과거의 죄악은 영원히 감추어질 수 밖에 없었다. "시키는 대로 하겠소." 천사장은 마룻바닥을 엉금엉금 기어다니며 빌었다. 기어다닐 힘을 남겨둔 것은 마지막 마무리를 위한 것뿐이었다. "그럼 이 자리에서 해결하자." "그럽시다." "미스 황, 여기 앉아요. 내가 부르는 대로 받아 써요. 당신도 이의 없지?"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머릿속으로 정리를 하며 천사장이 미스 황의 미스 황이 깨알같은 글씨로 받아 썼다. 천사장이 그 밑에 도장을 찍었다. "다음은 당신이 받아 써." 천사장은 떨리는 손으로 저금통장의 양도증을 썼다. 통장의 비밀번호와 도장을 내놓았다. "내일 은행에서 무사하게 돈을 찾을 때까지 당신은 내 인질야. 미스 황은 운전할 줄 알지?" "네." "그럼 내 차 타고 갔다가 아침에 돈을 찾아 가지고 다시 와요. 차 안에 내 후배가 있으니까 그 녀석이 시키는 대로만 해요. 저쪽에서 받은 통장도 있어요. 어서 나가요." 미스 황은 주춤거리다가 뒷문으로 나갔다. 천사장 표정이 일그러졌다. '마셔야겠어." 천사장은 입술을 깨물고 안방으로 엉금엉금 기어갔다. 술상을 차려온 색시들이 나를 흘끔거리며 쳐다보았다. 천사장은 몸을 가누지 못하고 옆으로 기댔다. "누워 계쇼. 내가 불침번할 테니." 천사장은 할 수 없었는지 약방에 사람을 보내고 길게 누웠다. 시간이 꽤 오래 지났다. 심심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잠을 잘 수도 없었다. 은행에서 돈을 찾은 뒤가 아니면 안심할 수가 없었다. 바깥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천사장 눈빛이 대번에 빛났다. 나는 그런 천사장 따귀를 갈겨 주었다. "싸움질 잘하는 애를 불렀겠지. 시시한 쌈군 불러들였으면 그땐 몇 대 더 맞을 각오나 해라." 천사장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지만 천사장이 데리고 있는 애들이 어디가서 쓸 만한 패거리를 불러온 것 같았다. 경찰서에 사람을 보내지 않은 것은 제 발이 저려서 할 수 없었을 것 같았다. 내가 방문을 열었다. 대청 아래에 힘깨나 써보이는 사내들 셋이 서 있었다. 풍채가 만만찮아 보였다. "임마, 가서 주먹 센놈 열 명쯤 더 데리고 와서 깨워라. 느이들 가지고 어디 상대하겠냐." 나는 방문을 쾅 닫았다. "얼씨구...... ." 어떤 녀석인지 헛김 빠지는 소리를 했다. '도끼라도 들고 오든지. 애들은 일찍 자야 큰다." 내가 이렇게 말했다. 대청 문이 열리고 사내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아까 당한 녀석들이 내 실력을 보았기 때문에 조무래기를 데려오지는 않았을 것 같았다. "일찍 자는 게 신상에 좋을 텐데." 나는 방문을 열고 나갔다. 사내들이 말없이 주위를 훑어보았다. 이렇게 서두르지 않는 걸로 미루어 조무래기들은 아니었다. 조무래기들은 폼만 잡고 동작선만 크게 보여주어 겁으로 때려 잡으려는 허세가 심한 법이었다. "한판 춤추려면 마당으로 나갑시다. 보아하니 형씨들 괜찮은 친구 같은데." "그럽시다. 우리 지역에 온 손님인데 마당으로 나섰다. 사내들은 서두르지 않았다. 무기를 빼어 들거나 욕지거리를 하지 않았다. 제대로 솜씨를 익혔거나 덩어리가 큰사내들 같았다. 옷매무새도 보통 신사가 아니었다. "천사장하고 어떻게 되슈?" "형씨는 남의 지역에 와서 왜 이렇게 노십니까. 조용조용하시는게 좋을 거 아닙니까." "그거야 맞소. 천사장 저 친구가 불쌍한 여자들 등쳐먹는 걸 두고 볼 순 없잖소. 우선 춤이나 추고 얘길 합시다. 형씨들도 그래서 왔을 테니까." "잠깐, 형씨가 혹시 할배 아닙니까?" "그렇소. 날 아슈?" "그냥 가겠소." "동주 형 모시고 있습니다." "이 지역요?" "그렇습니다." "그럼 한잔 꺾읍시다. 나도 심심한 판이니까." "우리가 입장이 난처해서 그렇습니다. 천사장 입장도 있고." "무슨 뜻인가 알겠소." 나는 그들과 통성명을 하고 들어왔다. 기대를 걸고 있었던지 천사장이 문쪽에 대앉아 있었다. "다행스럽게 꽤 쓸 만한 친구들을 뒀소." 나는 천사장을 옆에 앉히고 밤새 술을 마셨다. 그래봤자 맥주 대 여섯 병뿐이었다. 더 마시고 싶었지만 이번 일을 그르치고 싶지 않았다. 천사장은 주눅이 들어 제대로 하나님. 불쌍한 사람들 코 베어가는 사기꾼들만이라도 사그리 쓸어가실 의향이 없으십니까 ? 벼락은 뒀다가 뭣에 쓰시렵니까? 콩볶아 먹을 땐 우리집 연탄불 빌어다 쓰시고 벼락 좀 때려 주쇼. 아침 열시쯤 미스 황이 돈을 찾아가지고 왔다. 천사장은 약을 바르고 진통제를 먹었지만 밤새 끙끙 앓았다. 얼굴이 노랗게 뜬 것 같았다. 여자들을 다 모아놓고 보증금과 임대료와 천사장에게 뜯긴 돈을 나누어 주었다. 여자들이 짐을 싸들고 나갔다. 천사장은 내게 각서를 썼다. 결코 여자들을 등쳐먹지 않겠다는 각서였다. 경찰관이 천사장을 데리고 나갔다. 미스 황이 내 팔짱을 끼고 가볍게 걸었다. 우리는 골목 끝까지 그렇게 걸었다.

[나리아리]

속시원하게 혼내주네요^^

[묘안당]

글쎄 이편을 빼먹은걸 모르고...앞뒤가 바뀌어서 갸우뚱하다 들어와 마무리를 잘보고 갑니다...ㅋㅋ 하며튼 김홍신님이 주먹세계를 너무 잘썼어요 총찬이는 싸움에서는 어찌 그리도 멋질까요...ㅋㅋ감사합니다

[미혜]

언제 읽어도 속이 시원 합니다~잘봤어요~!

[새처럼]

좋은글 김사헤요 ^^^

[그리운남촌]

잘 읽고갑니다~~

[기니피그]

감사합니다

[김성갑]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