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여행 (2023. 10. 3 화)
아침에 리조트에서 일어나 햇반을 덥히고 생선찌개를 끓여서 아침을 먹고 9시에 문을 연다는 천마총에 갔습니다. 대능원 주위를 헤매다가 카페 골목에 주차하고 걸어서 대능원 후문쪽으로 갔습니다. 천마총으로 들어가는 샛문이 있었지만 전기작동이 안된다고 9시에 문을 열지 못해서 대능원 후문으로 들어갔습니다.
대능원 지역은 아름답게 꾸며져 있었습니다. 1970년 대에 박대통령이 경주관광종합계획을 세우고 가장 큰 고분 제98호분(황남대총)을 발굴하려 했다네요. 그러나 학자들이 고분 발굴 경험이 없어서 끝 번호의 고분(제155호분)을 발굴했다네요. 1973년 4월 6일 발굴을 시작하여 7-8월 두 달 사이에 천마총 금관(국보 제188호), 천마총 관모(국보 제189호), 천마총 금제 허리띠(국보 190호), 경주 천마총 장니 천마도(국보 제 207호) 외에 보물 및 부장품 11297점이 나왔다고 하네요.
( 천마총 장니 천마도, 국보 제207호)
발굴은 그해 12월 4일 마무리 되었다네요. 천마총은 황남대총보다 작지만 큰 무덤이네요. '돌무지 덧널 무덤'. 나무로 덧널이라는 방을 만들고 그 밖을 돌무지로 쌓고 방안에 널과 부장품 상자를 넣었네요.
두 개의 문이 있는 입구로 들어갑니다. 발굴 당시의 모양이 잘 꾸며져 있으나 너무 화려해서 실감이 덜하게 느껴졌습니다. 번쩍거리는 금관, 금 허리띠, 금붙이 등이 아니라 발굴 당시의 모양대로 꾸몄으면 더 실감이 났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신라에는 왜 이리 금관이 많을까요? 경상도 근방에 뛰어난 금광도 없을 터인데 이 금들은 어디서 왔을까요. 현재까지 6개의 금관이 발굴되었다고 합니다. 물론 쉽게 순도 높은 금을 얻을 수 있는 사금에서 얻었을 것이라는 설명이 있습니다.
10시에 문을 여는 경주 국립박물관에 갔습니다. 잔디밭에 늘어선 돌불상 비석들이며 소나무 숲 안의 작은 삼층 석탑, 에밀레 종이 퍽 편안한 느낌을 줍니다. 에밀레 종 (성덕대왕 신종)은 성덕왕의 손자 혜공왕이 성덕왕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771년 완성했다고 합니다. 꼭대기 부분의 장식, 용뉴의 용은 사실대로 표현되어 있고 몸통에는 보상화 무늬가 3단으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1300년 전에 이렇게 크고 아름다운 종을 주조할 수 있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위대한 선조들의 기술과 예술에 감탄하게 됩니다.
소나무 숲속의 작은 삼층 석탑은 낡고 틀어지고 볼품 없지만 그 자유로운 모습에 나는 감동합니다.
토기들, 금관, 철갑옷, 금으로 만든 박쥐 모양의 형상, 승리의 여신 나이키처험 보이는 날개, 토우 등, 유물도 전시방법도 놀랍고 신선했습니다. 박물관 밖 복도의 벤치에 앉아서 느굿하게 주위의 숲을 보는 것은 마음에 치유를 주는 것 같았습니다.
이제 바삐 서둘러서 하회마을과 함께 '한국의 역사마을'로 UNESCO에 등재된 양동마을로 갑니다.
양동마을은 경주시 동북방 16km에 있는데 조선시대의 마을 그대로 남아있는 곳입니다. 월성 손씨와 여강 이씨의 집성촌입니다.
입구에서 노인들이 걷기가 힘들다니까. 차를 타고 들어가라고 하네요. 마을 초입에 차를 세우고 마을을 조망합니다.
(무첨당이 있는 지역)
개을이 흐르고 건너편에 이언적 선생이 어머니를 모시고 있던 동생에게 지어주었다는 집, 향단과 손중돈 선생이 손소 공으로부텨 분가하여 살던 집, 관과정이 앞에 보이는데 멀리서 보는 것으로 만족했습니다.
(향단이 있는 지역)
심지어 바로 뒤에 이향정 고택이 있는데 작은 찻집에 주저앉아서 노구의 피로를 달랬습니다.
(이향정 고택) (지역의 인식에 착오가 있다면 댓글로 바로잡아 주시기 바랍니다)
찻집에서 화분도 하나 사고 선물할 가방도 샀습니다. 이제 귀가할 시간입니다. 현풍까지 내려가서 OO곰탕집에서 꼬리곰탕을 사먹고 먼길을 달려갈 것입니다. 참 좋은 여행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