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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사랑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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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엔n 스크랩 멕시코 엔세나다에의 짧은 여행, 그리고 모순에 대한 단상
권종상 추천 0 조회 372 11.09.04 06:01 댓글 10
게시글 본문내용

 

엔세나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연결된 '바하 캘리포니아'의 크루즈 항구이며 꽤 크다는 도시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카니발 크루즈 라인은 이 도시에서 가장 큰 '밥줄'의 하나였습니다. 크루즈 세째 날, 아버지의 칠순이기도 했던 이날 카니발 파라다이스 호가 엔세나다 항구에 기항했을 때 가장 눈에 먼저 뜨인 것은 거대한 멕시코 국기였습니다. 선실에서 데크로 올라와 커피를 한잔 하며 뱃전을 따라 걸으며 이 낮선 곳을 눈에 담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가장 먼저 느낀 것은 약간의 후덥지근함이 섞인 아침 안개였는데, 이것 때문인지 날씨는 춥지도, 덥지도 않았고, 마치 차양처럼 멕시코의 햇볕을 가리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남의 땅까지 왔으니 선택 관광을 하나 하자 하여 생각한 것이 이곳에서 버스를 타고 45분쯤 간다는 '라 부파도라 La Bufadora' 관광이었습니다. 태평양의 거센 파도가 절벽을 때리면 그것이 바닷가 절벽에 난 틈을 통해 천연의 분수가 되어 거세게 올라와 볼거리가 된다는 이곳에 오는 것도 1인당 34달러씩의 관광료를 내야 했고, 우리 가족 모두가 버스로 옮겨탈 시간이 되어 배를 나서며 승선카드를 제시하고 나가자 멕시코 전통 복장을 한 여성들이 함께 사진을 찍자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일종의 장사속인 셈이죠.

 

이곳에 오기 전, 이미 엔세나다 크루즈 관광을 한 적이 있는 루디 아저씨는 "아이들을 꼭 데리고 배를 나가라" 고 말해준 적이 있습니다. 제 3세계의 실상을 제대로 보여줘야 우리 아이들이 얼마나 좋은 곳에 살고 있는지를 실감한다는 게 루디 아저씨의 말이었는데, 그때와는 달리 크루즈 선착장은 이미 '통제구역'이 되어 있었습니다. 사방엔 철조망이 쳐져 있고, 정해진 곳으로만 나가야 하는 것이 마치 삼엄한 국경선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관광객들이 버스를 타러 나가기 위해서는 일종의 '시장'을 지나야 했는데, 그것 역시 멕시코 일반인들의 출입은 통제된 곳임을 나중에 알았습니다. 역시 장삿속으로 멕시코의 전통 시장처럼 꾸며놓은 것이었죠.

 

하긴 관광 일정 모두가 샤핑과 연관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어디 가나 마찬가지겠지만, 여기서는 그게 조금 더 심했습니다. 라 부파도라라는 곳으로 향하는 동안 버스 안에서 보는 풍경은 우리의 1960-70년대의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어렸을 때, 공항동에 살던 제가 시내로 나갈 때 버스 안에서 보던 풍경과 멕시코 엔세나다의 풍경은 그대로 겹쳐지고 있었습니다. 간혹가다 눈에 띄는 신문팔이 소년들은 위험한 길가로 달려나와 신문을 팔았고, 우울한 얼굴의 상인들이 관광객들을 기다리곤 했습니다. 그들의 얼굴은 밝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습니다.

버스가 구비구비길을 돌아 부파도라라는 곳에 들어섰을 때, 그곳은 꽤 활기찼습니다. 관광객들이 쓰고 가는 돈은 사실 멕시코 화폐단위인 페소로 따지면 엄청난 돈이 됩니다. 그곳에서 사진만 찍고 나오려 했지만, 우리는 그 분위기 때문이기도 했고, 또 어떤 집에서는 장사보다는 기도에 더 관심이 많은 것 같은 아주머니 한 분을 보고(묵주를 돌리는 모습이 참 경건해 보였습니다) 그 집에서 묵주를 몇 개 사기도 했습니다.

 

이곳의 조개구이도 맛보고, 세계 제일의 맛이라는 멕시코산 코카콜라(정확히 시내에서 파는 것의 두 배를 붙이더군요)도 마셨습니다. 여기서 영업을 하는 이들 역시 멕시코 안에서는 또 '선택받은 사람들'이라는 것이 눈에 보였습니다.

 

그냥 아무것도 아닌 부파도라를 보고, 그 시장에서 왁자지껄한 분위기, 호객하는 상인들의 모습에서 다른 것보다도 내 어렸을 적의 모습을 보고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버스를 타고 부파도라를 떠나 다시 배로 돌아오는 길에 보이는 길가에선 정말 너무나 비쩍 마른 소들과 당나귀가 마른 풀을 뜯고 있었습니다. 말들도 미국에서 보던 그런 말들이 아니었습니다. 미국 말보다 작고 비쩍 말라 있었습니다. 동키호테에 나오는 로시난테가 떠올랐달까요.

 

특이한 것은 많은 약국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약국들에선 미국 내에선 처방을 받아야만 살 수 있는 바이아그라(비아그라), 시알리스 등의 '발기부전치료제'들을 열심히 팔고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페니실린이나 마이신들도 팔고 있더군요. 이런 약들은 미국 내에서는 처방전 없이 파는 것이 불법이죠.

 

배로 돌아가는 길에 우리는 엔세나다의 컨벤션 센터에 들렀습니다. 과거에 도박장이었다던 이 컨벤션 센터 역시 샤핑을 할 수 있도록 개조되어 있었는데, 이곳은 박물관이기도 했고 또 오래전엔 선교사들의 근거지인 '미션'이기도 했습니다. 수도사들이 과객들을 맞아 환대해주고 이들이 다음 여행지로 떠나기 전 든든히 먹고 푹 쉬고 떠날 수 있도록 해 주었던 그 전통이 사실은 지금의 '베드 앤 브랙퍼스트' 식 호텔의 효시가 된 것이긴 하죠. 그 앞엔 정말 보기에도 너무 불쌍한 어린 엄마가 녹이 다 슨 열쇠고리를 팔고 있었는데, 관광객들은 의도적으로 그들을 피했습니다. 그런데, 그 젊은 엄마에게 업힌 아기의 모습이 너무나 가녀리고 말라 있었습니다. 일단 우리는 그 안을 관광하고 나오는 길에 다시 그 젊은 엄마에게 가서 조그만 물건들을 사 주었습니다. 우리는 마침 배에서 싸온 샌드위치 두어 개가 그대로 남아 있었는데, 간단한 스패니시를 할 수 있는 아내가 배고파보이는 그 여인에게 "꼬미다(음식)?"라고 물어보며 샌드위치를 보여주자 정말 채 가듯 가져갔고, 이 모습 때문에 아내와 동생은 나중에 다시 배에서 음식을 싸서 이 여인에게 가져다 주기도 했습니다.

 

아이들도 조금은 충격을 먹은 듯 했습니다. 자기들이 미국에서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이 '당연하지 않은 것'임을 알게 된 데서 오는 충격인 듯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것이 혹여 쓸데없는 '우월감'이 될까봐서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지호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이 아이가 다행히 생각이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깊다는 데서 뭔가 안도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른바 북미 자유무역협정 NAFTA 체결 이후, 멕시코나 미국 모두 공공서비스 영역이 사유화되는 부분들이 늘어나고, 사회복지정책이 자유경쟁논리에 밀려 하나둘씩 철폐되면서 두 나라 모두 서민은 더욱 못살게 되고, 부는 더욱 부자들에게 편중되는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애초에 어느정도 복지 영역이 갖춰져 있던 미국은 그 몰락 속도가 더뎠던 반면, 멕시코에서는 미국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그나마 기본적인 것만 갖춰져 있었던 사회복지정책이 사라지면서 중산층붕괴가 더더욱 빨리 진행됐고, 또 값싼 미국 농산물의 대규모 유입이 이뤄지면서 농업이 붕괴되고 농장노동자들도 미국의 저소득 임노동층으로 흡수되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닭이나 소의 도축 노동이었죠. 과거 중산층 직업으로 분류됐던 도축 일에 급속도로 멕시코의 농장노동자들이 유입됐고 결국 이는 멕시코와 미국 모두 해당 기업 노동자들을 중산층에서 하층계급으로 만드는 이유가 돼 버렸고, 이런 일들은 나중에 '백인의 분노'로 일컬어지는 반이민 정서로 미국 안에서 두드러졌지만 사실 그것은 근본 원인을 전혀 잘못 짚은 것이었습니다. 공화당은 반 이민 정서를 자극해 그들의 파이를 늘리려 했지만, 실은 근본적 잘못이 저질러진 것이 바로 레이건부터 시작된 반 복지, 극단적인 친 기업정책 탓이었으니까요.

 

복지를 축소하고 효율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의 대두는 결국 멕시코 민중을 더욱 가난하게 만들었고 그것은 미국 민중이라 해서 피해갈 수 없는 운명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멕시코의 민중들은 그나마 상대적으로 기회가 있는 (것으로 믿어졌던) 미국으로 국경을 넘었고, 그것은 지금의 미국과 멕시코의 풀리기 힘든 문제가 되어 버렸습니다. 어쨌든, 국가밖에는 믿을곳과 기댈 곳이 없는 사람들이 계속해 늘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국가는 그들에게 비빌 언덕이 되어주기는 커녕, 그들의 등골을 더 빼먹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효율을 이유로 부자들의 세금을 삭감하고, 그만큼의 몫을 중산층과 하층 서민들의 몫에서 빼앗아가기 시작한 것이죠.

 

상대적으로 그들보다는 조금 더 부유하다고는 해도, 미국의 중산층도 계속해 엷어져가고 있고, 국민들이 국가로부터 받아야 하는 복지헤택은 계속 적어져 왔습니다. 그리고 그 복지의 삭감분은, 사실 기업들이 줄어든 소비로 인해 떠안아야 하는 손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장 눈앞에 보였던 떡이 더 커 보였던 기업들은 크레딧카드의 이자라는 쏠쏠한 재미에 쏠려서 그만 그들의 본업을 멀리했다가, 그들의 경쟁자들 - 한국, 일본, 중국 등- 에게 자기들의 영역을 잠식당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기업경쟁력과 국가경쟁력이 동시에 악화됐고, 그 부담은 수익 악화의 형태로, 매출 저하의 형태로 나타났습니다. 기업들이 이미 그것을 깨달았을때는 나락으로 떨어진 후였습니다.

 

어쨌든, 엔세나다에서 본 멕시코인들의 모습은 일견 활기차기도 했지만, 그것은 카니발 크루즈 배가 선택된 그들중의 일부에게 베푼 시혜의 모습이었을 뿐, 그같은 혜택조차 받지 못하는 대부분의 주민들의 모습은 어둡고 무거웠습니다. 멕시코의 경우 지금 사파티스타 봉기라던지, 혹은 마약 이권을 둘러싼 갱단의 난립과 분쟁 같은 것들에서 보듯, 정부가 제 역할을 제대로 못했을 때 그 국민들이 어떤 극단의 상황에서 어떤 식의 선택을 해야 하는지가 그대로 보여지고 있습니다. 미국은 그나마 예전부터 갖춰진 시스템의 역할로 인해 국민들의 불만이 극단적으로 나타나긴 해도 그것이 제한적입니다만 (로스앤젤레스 4.29 폭동 등으로 보여지듯), 영국에서 최근 벌어진 폭동의 예에서 보듯 국민과 정부간의 괴리가 극단화될 때, 그리고 정부가 국민들의 요구에 부응하기는 커녕 계속해서 엇나갈 때, 사회 전체의 모습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날 오후 9시 30분, 우리를 태운 배가 다시 엔세나다를 떠날 때 저는 뒷갑판에서 멀어지는 그 항구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항구였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보이는 불빛들에서 저는 지금의 극단으로 치닫고 있는 잘못된 자본주의의 모습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사회주의로 변화하진 않겠지만, 자본주의는 사회주의에서 빌려온 컨셉트들로 인해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자본주의가 살아남고 싶다면 과거 사회주의로부터 사회 운영의 방식을 배웠던 그 때의 기억을 제대로 되살려내야만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문득 해 봤습니다. 그리고 참 많은 면에서, 지금의 사회는 극단적인 사회적 불평등들이 횡행하던 20세기 초를 닮아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날 이후로 제 여행은 생각할 것이 늘어났고, 조금은 우울해지기도 했습니다.

 

 

시애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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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1.09.04 07:05

    첫댓글 나프타 협정이 체결되고 멕시코가 미국같이 될날이 멀지 않았다고 꿈에 부푼 시절이 모두 사기였나 봅니다.
    하여간 미국 기업들이 정치인들 관료들 꼬드겨 타국과 무슨 협정 맺기만 하면 기막힌 일들이 벌어집니다.
    그래서 그런지 햇볓이 좋타는 바하 칼리포니아도 뿌연 안개속으로 보입니다.
    어쨋던, 어르신 칠순 잔치에 가족 모두 크루즈 여행이라니 그 자체가 행복이고 값집니다.

  • 작성자 11.09.04 07:28

    예... 사기... 딱 맞는 말씀이랄까요. 쩝.

  • 11.09.04 14:56

    자동차로 여행을 하셔야 조금은 보인담니다 그 넓은 광활한땅 주인들은 미국인으로 바뀌어
    싼 임금으로 도마토 어니언 옥수수 등을 농사하여 미국으로 올리는걸보면 엄청나지요
    새벽부터 일처로 나가는 멕시칸들은 먹고살기위해 일을 한다지만 어느정도지요
    그런것을 볼때 멕시코에서는 농사를지어 팔로가 없는것 입니다
    팔로는 미국사람들이 쥐고있으니 미국 멕시코 나프타 협정은 잘못된것 입니다
    멕시코 사람들의 한탕주의가 만든것 이지요 차로 여행을 했드라면
    좋은것을 볼수있었는데 엔세나다 항구만 보셨군요.....ㅎㅎㅎㅎㅎ

  • 작성자 11.09.04 17:10

    글쎄말입니다... 그냥 버스를 타고 다녔으니.. 언젠가는 한번 직접 운전해서 내려가봐야지... 하는 생각만 해 봅니다.

  • 11.09.05 09:56

    아이들이 팍팍 크는것이 눈에 보입니다.
    엄마는 따라잡고 곧 아빠까지 넘보겠네요.
    가족과 같이 한 멋진 크루즈 여행, 평생 기억에 남겠어요. ^^

  • 작성자 11.09.06 01:27

    예... 아빠보다 큽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평생 남을 추억을 줬다는 것은 분명한 것 같아요.

  • 11.09.05 12:40

    준비도 안하고 소수 대기업만을 위해 무작정,긴급히 체결한 유럽, 미국과의 FTA 협정에 따른 미래 우리 나라 모습일 것같아 우울하군요~

  • 작성자 11.09.06 01:27

    그렇겠지요. 농업은 아마 완전히 작살날 거구요.

  • 11.09.06 07:13

    그래도 바하는 멕시코에서 소득수준이 제일 높고 문맹률은 가장 낮습니다.
    물론 농장의 소유권은 일부 부유한 백인계 멕시칸에게 있지만
    일자리가 있다는 것이 가난한 민중들에게는 숨돌리게 하지요.
    공부하려 하는 젊은이들에게 기회가 주어지는 좋은 교육 체계가
    지역과 나라를 부강하게하는 가장 유효한 길이라 생각합니다.

  • 작성자 11.09.06 07:33

    예... 교육, 사법, 언론... 이 세 개 분야는 미래를 위해 늘 깨끗해야 할, 청정해야 할 분야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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