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연약함을 솔직히 고백하는 신앙인이 되십시오.
요한복음 18:12-18
예수님은 베드로를 많이 사랑하셨고
베드로는 마고의 귀를 자를 만큼 예수님을 사랑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둘의 관계에 커다란 벽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첫 번째로, 예수님이 끌려 가실 때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라고 부인합니다.
요한복음 18장 17절
문 지키는 여종이 베드로에게 말하되 너도 이 사람의 제자 중 하나가 아니냐 하니 그가 말하되 나는 아니라 하고
여기서 우리는 베드로의 대답에 집중해야 합니다.
베드로가 주저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단호히 대답합니까?
베드로는 나는 아니라고 단호하고 확실하게 대답하고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원래부터 단호하고 확실한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마태복음 26장 33절을 보면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
그는 결코 버리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했습니다.
그리고 마고의 귀를 자를 때도 그는 단호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할 때도 너무나 단호합니다.
왜냐면 부인하는 그의 언행 속에서 조금의 주저함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의 마음 가운데 혹시 예수님이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알지 않을까?
걱정하거나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베드로는 지금 무엇을 걱정하고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습니까?
신학자 칼빈은 이 본문을 주석하면서 이런 글을 남겼습니다.
겨우 한 여자의 음성이 베드로를 겁에 질리게 했다.
다른 모든 사람이 주를 버려도
나는 끝까지 따르겠다던 호기로운 베드로는 어디로 가고
한 여자의 음성에 겁에 질렸습니다.
예수님을 체포하러 달려들던 무리를 향해 칼을 빼 들며
예수님을 지키려 했던 강심장 베드로는 어디로 가고
베드로는 지금 겨우 한 여자의 음성 앞에서 무릎 꿇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라는 겁니다.
뜨겁게 찬양할 때 우리는 오직 주님만 따르겠다고 약속합니다.
그리고 그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님의 말씀을 좇겠다고 눈물을 쏟으며 고백합니다.
그런데 삶의 현장에서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서 있습니까?
지역 주민의 말 한 마디에 무릎을 꿇지 않았습니까?
세상의 흐름과 가치관 앞에 너무 쉽게 무너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처럼 성경에 소개되고 있는 베드로가 바로 우리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말씀 앞에서 진실해야 합니다.
하나님! 제가 베드로였습니다. 제가 부인했습니다. 제가 모르다고 했습니다.
말로는 주님을 따르겠다고 하면서도
상황이 조금만 어려워지면 주님을 부인했고
상황에 따라 살았습니다.
이제 자신하던 나의 고백과 다짐이 아니라
나의 연약함을 고백하며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