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교자본과 본국 간의 관계는 많은 굴곡이 있습니다. 잘 알다시피 처음 동남아로 이주한 화교는 국법을 어긴 죄인이었기 때문에, 행정적으로도 그렇고 심정적으로도 관할과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네덜란드가 자바 중국인들을 2만여명이나 학살했지만 청조는 it's not my business라고 했던 일은 잘 알겁니다. 하지만 19세기 말에 주권국가 개념이 들어오면서, 청조도 국적법을 만들고 해외주재/거류 국민이라는 개념이 처음으로 형성되기 시작합니다.
19세기 말, 20세기 초는 서구와의 접촉 과정에서 지연(동향), 혈연관계가 제1 아이덴티티였던 중국사회에서 "중국인"으로서의 국가의식이 싹트는 시기이지요. 그 과정에서 화교들도 처음으로 중국 본국에 대해서도, 고향을 넘어선 국가의식이 생겨나기 시작하는데, 거기에는 같은 화교출신으로 혁명운동에 투신했던 손문의 영향이 가장 컸습니다. 손문은 혁명운동의 경제적 기반을 화교에서 찾았으므로, 이들의 국가의식을 진작시킴으로서 자연스럽게 화교와 중국 본국의 끈을 강화시키는 작용을 했지요. 한편 맥락은 다르지만 청말 미국에서 광산, 철도노동자로 일하던 화교 노동자에 대한 대량 학살이 발생하고 이민제한법 등이 통과되면서, 국내에서도 화교를 "동포"의 문제로 관심을 가지고 반미 보이콧 운동이 조직되기도 합니다.
그래도 화교의 현지에서의 경제적, 정치적 처우 등에 대해 중국정부는 사실상 무관심했습니다. 손문이 정권을 잡은 것이 아니라 국내 군벌정권이 돌아가면서 북경에서 정부를 세웠던 탓도 있지요. 그러다 1928년, 손문이 남긴 국민당이 정권을 장악하면서 많이 달라집니다. 당내에 교무위원회가 생겨나 해외화교들에 대한 관리와 국가의식 고양에 조직적으로 관여하기 시작하였고, 국내 건설에 화교자본을 유치하기 위해서도 화교사업을 매우 중시합니다. 또 국민당 원로 중에는 청말부터 손문의 오른팔로 일한 화교출신 국민당 활동가가 적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면 실업부 부장, 요즘말로 상공부 장관을 지냈던 진공박 같은 인물이 그렇지요.
덕분에 1930년대 화교사회에는 동향집단간의 조직체를 넘어선 중화상회 등의 상위 대표기관이 조직되는 등 민족주의가 크게 고양이 됩니다. 특히 1937년 중일전쟁의 전면화 이후, 재정수입이 극도로 위축되었던 국민당 정부에 막대한 해외송금을 해 준 것도 미국, 동남아시아의 화교였습니다. 때문에 일본이 동남아시아를 침공한 후에는 가장 처절한 보복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요. 지금도 인구의 80%가 화교로 유명한(나머지 20%는 말레이인과 이슬람을 믿는 인도인 등) 싱가폴의 경우 연일 유력화교들이 집단으로 체포되어 돌에 몸이 묶여 수장되는 참극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중일전쟁이 끝나고 국공내전, 다시 공산당의 승리와 대만 국민당 정권의 수립, 냉전이 이어지면서, 화교사회도 크게 충격을 받습니다. 한국의 재일교포사회와 마찬가지로 좌,우파로 갈려서, 국민당계열과 공산당계열로 나뉘어 분열과 반목을 거듭하게 되지요. 하지만 수적으로는 역시 국민당의 훈도를 받았던 이유, 대부분 상업자본인 화교들의 반공적인 정서 등의 이유로 국민당계열이 압도적이었습니다. 대만의 국민당 정권 역시 화교들의 관리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화교의 자녀들, 화예들을 대만에 불러 재교육시키고 대학진학을 시키는 등 세심한 정책을 폅니다. 한국의 화교도 대부분 대만국적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러다가 중국이 개혁개방 이후 사실상 자본주의화의 길을 걷게 되면서, 많은 경제적 기회들이 대륙에 생겨나게 되고, 자본 유치를 위해 중국공산당 역시 일반 외국자본과는 다른 특혜조치를 화교자본에 부여하게 되지요. 실제 개혁개방 초기, 지금까지도 홍콩을 경유한 화교자본의 대륙투자가 중국 경제성장의 중욯나 엔진이 되고 있습니다. 화교자본 역시 경제적 기회를 놓치지 않았지요. 요즘 중국 대학에 가면 예전 대만의 대학에서처럼 많은 동남아시아 화교들의 자녀들이 보통어를 공부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생김새는 환경과 혼혈에 의해 동남아시아인과 별 차이가 나지 않지만, 엄연히 "중국인"이라는 자의식이 있지요. 그렇기는 해도, 화교의 현지화 역시 동남아시아 현지 국가들의 강압적 회유적 정책과 맞물려 크게 진전되어, 아버지, 조부 세대와 달리 지금의 화예들 중에는 ethinicity에서 Chinese라도 국가의식은 가지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합니다.
이상 대체로 이야기를 했지만, 사실 연구가 많습니다. 논문도 좀 있는데 일본어라서... 전문 서적이 아니고 고급교양서라면 전에 추천했던 스털링 스그레이브의 "중국인 이야기-보이지않는 제국, 화교"(프리미엄북스)를 추천합니다. 근데 이 책은 1년 전 종호가 발표할 때 참조하지 않았나??? 일본어 논문은 원하면 줄께요.
첫댓글 ㅎㅎㅎ 감사합니다. 1년전에 제가 발표했던 주제는 '정화의 해외원정'이었는데요..^^ 그건 아마 명봉이일 겁니다. 그리고 일본어 논문은 제가 일본어를 배운뒤에 받으러 가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