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텔레비전의 ‘생로병사의 비밀’ 프로그램에서 건강에 좋다는 ‘와인’편이 방영이 되어서 그런지 마트의 와인 매장에 비교적 많은 사람들이 몰려 각국의 다양한 포도주를 열심히 고르고 있었습니다.
전에는 주로 프랑스나 이탈리아, 칠레산 포도주를 소비자들이 많이 선호하였다는데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산 포도주가 와인 품평회에서 1등에서 5등까지를 석권했다는 보도가 있은 후부터는 자연히 캘리포니아산 포도주가 더 많이 팔린다고 합니다.
그런데 ‘10인 10색’이란 말이 있듯이 포도주들도 제각기 다양한 색깔과 맛을 내고 특히 ‘척박한 땅과 조건에서 자란 포도로 만든 포도주가 최고의 포도주’란 말을 듣고 나니 포도주 고르기가 더욱 어려워지고 또 신중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아무튼 ‘마주앙’이든 ‘홀로앙’이든 하루에 포도주 한 잔씩을 보약으로 드시길 권합니다. 그리고 ‘최고의 포도주’(?)로 품평을 받은 주님의 성혈을 잘 담지도 또 지키지도 못한 우리들의 ‘깨진 성배’(?) 신앙을 반성하면서 오태진님의 신문칼럼과 포도주 지키기에 관한 영화 ‘산타 빅토리아의 비밀’을 소개합니다. 가브리엘통신
<‘파리의 심판’ 그 후 30년>
1976년 5월 24일 파리에서 프랑스 와인 판매상인 영국사람 스티븐 스퍼리어가 와인 품평회를 열었다. 프랑스인 8명을 포함한 1급 감정가 9명이 상표를 가린 ‘카베르네 소비뇽’ 품종 레드와인들을 마셔본 뒤 촌평을 했다. “이건 분명코 캘리포니아 와인이군. 향기가 없어.” 그건 보르도 명품 ‘바타르 몽트라셰’였다. “프랑스의 장엄함”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1위에 뽑힌 건 알고 보니 캘리포니아 와인이었다.
스퍼리어는 프랑스 와인 홍보행사쯤으로 품평회를 했다가 당황했다. 몇몇 심사위원은 불과 10년 전 산업생산을 시작한 풋내기 캘리포니아 와인을 자기가 선택했다는 데 울분을 터뜨렸다. ‘타임’ 기자가 이 ‘파리의 심판’을 세계에 전했다. 프랑스 와인업자들은 “사기극”이라고 분노했다. 스퍼리어는 1년 동안 프랑스 포도원 시음 여행을 금지당했다. 프랑스 ‘르 피가로’와 ‘르 몽드’는 서너 달 뒤에야 “웃기는 결과”라고 보도했다.
꼭 30년 만인 지난 24일 스퍼리어가 재대결 자리를 만들었다. 런던과 캘리포니아 와인 명산지 나파밸리에서 진행한 품평에서 캘리포니아산은 1~5위를 휩쓸었다. 보르도의 자랑 ‘샤토 무통 로쉴드’는 6위였다. 한 프랑스 심사위원은 30년 만에 다시 참가해서도 캘리포니아산을 보르도산으로 헛짚었다. 그는 “귀국하면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스퍼리어는 “보르도는 캘리포니아를 이길 수 없다”며 “완벽한 승리”를 선언했다.
세계시장에서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신세계 와인’들이 보르도가 상징하는 ‘구세계 와인’을 몰아붙이고 있다. ‘파리의 심판’은 미국·칠레·호주·남아공 같은 ‘와인 신세계’에 큰 자극과 용기를 줬다. 저마다 와인산업을 키우고 품질을 높이는 데 투자했다. 나파밸리 인근 UC 데이비스는 와인 양조학의 세계적 명문대가 됐다.
프랑스는 작년에 대체연료 에탄올을 뽑느라 1등급 ‘AOC’ 와인 1억3000만병을 끓였다. 가격 경쟁력 하락, 수출·내수 위축, 과잉 생산으로 와인값이 물보다 싸진 탓이다. 프랑스는 ‘파리의 심판’이 울린 경고음을 무시한 채 안으로 새로운 연구와 시도를 낡은 법으로 묶고, 밖으로 ‘주는 대로 사가라’식 콧대 높은 장사를 해왔다. 하다못해 상표도 길고 복잡하다. 소비자들은 간명하게 품종쯤만 표기한 ‘신세계 와인’에 손이 더 간다. 요즘 ‘노통’이라는 프랑스 와인이 한국에서 잘 팔린다는데 이름 덕분일 것이다. (오태진 / 조선일보)
영화 <산타 빅토리아의 비밀>
이태리 북부지방의 한 산골 도시 ‘Santa Vittoria’는 代代 孫孫 포도를 재배하여 와인을 만들어 오는 고장으로서 유명한 이 도시의 와인은 이 고장 약 천 여명 주민들에게 생명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런데 파시스트 “무쏠리니“가 실각을 하던 1943년 2차 세계 대전 중의 어느 날, 술에 쩔어 ‘될대로 되라’는 식의 낙천적 삶을 살고 있는 한 와인 판매상 “이탈로 봄볼리니”(안소니 퀸 분)는 엉겹결에 이 도시의 시장으로 추대가 된다.
배운 것이 없었던 그는 나중에 사위가 될 청년 화비오에게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읽어보라는 충고를 받고 열심히 공부를 한 이후, 책에 나온 대로 시의 간부들을 임명하는 등 그런대로 시장의 역할을 수행한다. 그런데 호랑이 같은 부인 로자에게 늘 얻어터지면서도 공짜 포도주로 시민들의 인심을 얻던 그에게 어느 날 예기치 않았던 위기가 찾아온다.
몇 일후면 독일군이 산타 빅토리아에 진주하여 시청 지하창고에 보관중인 유명한 와인들을 모조리 빼앗아 갈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한 “봄볼리니”는 고민 끝에 총 131만병의 와인 중 백만 병을 고대 로마의 동굴 속으로 옮기기로 결정을 하고 이른바 ‘와인 운반 대작전’을 시작한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한 줄로 늘어서서 인간 띠를 형성한 후, 한 병씩 한 병씩, 몇 날 몇 일 밤을 꼬박 새며 모두 옮겨 놓는다. (한편 이 일은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일초에 한 병씩, 네 줄로, 쉬는 시간 없이 밤낮으로 옮겼을 때 29일이 걸리는 어마어마한 양이다.) 그리고 이중벽을 쌓아 빈동굴로 위장을 한 후 이제 “올 테면 오라지”하고 독일군을 맞을 준비를 한다.
한편,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으로 철저하게 정신무장을 한 독일군의 엘리트 장교, “Von Prum" 대위는 ”Yes Sir"를 열심히 외치며 아첨을 떠는 “봄볼리니”와 그가 마을에 있다고 말한 31만병의 와인 중, 몇 병을 갖고 가느냐로 실랑이를 벌이기도 한다. 그런데 우연히 즐거워하며 와인을 운반하는 주민들의 태도를 관찰하곤 속은 것을 눈치채고 시청 간부 두 명을 포함하여 몇 명을 고문하지만 모두가 한결같이 오리발을 내민다.
그리고 마을에서 철수를 해야만 하는 마지막 날 아침, 시청 앞 광장에 모여 있는 주민들에게 “봄볼리니“의 머리에 총구를 들이대며 자백을 강요한다. 그러나 생명과 같은 와인을 지키려는 산타 빅토리아 마을사람들 중에서 나서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고 그들은 끝끝내 백만 병의 와인을 독일군으로부터 지켜낸다.
<성서묵상>
물은 어느새 포도주로 변해 있었다.
물을 떠간 그 하인들은 그 술이 어디에서 났는지 알고 있었지만 잔치 맡은 이는 아무것도 모른 채 술맛을 보고 나서 신랑을 불러 "누구든지 좋은 포도주는 먼저 내놓고 손님들이 취한 다음에 덜 좋은 것을 내놓는 법인데 이 좋은 포도주가 아직까지 있으니 웬일이오!" 하고 감탄하였다. (요한 2, 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