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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들의 이야기⓺ ------------------------------
아합(3) : 하나님의 심판⓶
2400908낮 (왕상21:17-19,22:29-40)
(왕상21:17-19)<17)여호와의 말씀이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18)너는 일어나 내려가서 사마리아에 있는 이스라엘의 아합 왕을 만나라 그가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러 그리로 내려갔나니 19)너는 그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죽이고 또 빼앗았느냐고 하셨다 하고 또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개들이 네 피 곧 네 몸의 피도 핥으리라 하였다 하라>아멘
(왕상22:29-40)<29이스라엘의 왕과 유다의 여호사밧 왕이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가니라 30)이스라엘의 왕이 여호사밧에게 이르되 나는 변장하고 전쟁터로 들어가려 하노니 당신은 왕복을 입으소서 하고 이스라엘의 왕이 변장하고 전쟁터로 들어가니라 31)아람 왕이 그의 병거의 지휘관 삼십이 명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작은 자나 큰 자와 더불어 싸우지 말고 오직 이스라엘 왕과 싸우라 한지라 32)병거의 지휘관들이 여호사밧을 보고 그들이 이르되 이가 틀림없이 이스라엘의 왕이라 하고 돌이켜 그와 싸우려 한즉 여호사밧이 소리를 지르는지라 33)병거의 지휘관들이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 아님을 보고 쫓기를 그치고 돌이켰더라34)한 사람이 무심코 활을 당겨 이스라엘왕의 갑옷 솔기를 맞힌지라 왕이 그 병거 모는 자에게 이르되 내가 부상하였으니 네 손을 돌려 내가 전쟁터에서 나가게 하라 하였으나 35)이 날에 전쟁이 맹렬하였으므로 왕이 병거 가운데에 붙들려 서서 아람 사람을 막다가 저녁에 이르러 죽었는데 상처의 피가 흘러 병거 바닥에 고였더라 36)해가 질 녘에 진중에서 외치는 소리가 있어 이르되 각기 성읍으로 또는 각기 본향으로 가라 하더라 37)왕이 이미 죽으매 그의 시체를 메어 사마리아에 이르러 왕을 사마리아에 장사하니라 38)그 병거를 사마리아 못에서 씻으매 개들이 그의 피를 핥았으니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거기는 창기들이 목욕하는 곳이었더라 39)아합의 남은 행적과 그가 행한 모든 일과 그가 건축한 상아궁과 그가 건축한 모든 성읍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40)아합이 그의 조상들과 함께 자매 그의 아들 아하시야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아멘
지난 시간의 말씀을 되새겨 봅니다.
먼저, 이스라엘의 왕정시대의 계보를 봅시다.
사울->다윗->솔로몬->남북분열->
북왕국 이스라엘 초대왕->여로보암->나답->바아사->엘라->시므리->오므리->아합
지난 시간에 북왕조 이스라엘 왕 7대왕인 아합왕 (2)번째 시간으로 아합왕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하여 알아보았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하는 자, 교만하여 악을 행하기를 가볍게 여기는 자를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이 아합왕과 이스라엘에 어떤 심판을 내리셨나요? 지난 시간에 배운 말씀을 살펴볼까요?
1. 3년 반 동안 이스라엘에 비와 이슬이 내리지 않는 심판
이것은 결국 비와 풍요를 가져다주는 신이라고 믿는 바알과 아세라에 대한 심판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2. 아람나라의 침략이었습니다.
1차 침략과 2차 침략 일부를 알아보았습니다. 1차 침략한 아람나라를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승리하도록 아합의 손에 아람나라를 붙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선지자를 통하여 해가 바뀌면 아람나라가 다시 공격해 올 것을 말씀해주시고, 잘 대비하라고 일러주셨습니다.
“왕은 가서 힘을 기르고 왕의 행할 일을 알고 준비하소서. 해가 돌아오면 아람왕이 왕을 치러 오리이다 하니라(왕상20:22절)
지난 시간 여기까지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지난 시간이어 아합왕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하여 계속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셨듯이 마침내 해가 지나고 아람왕의 대군이 2차 침공을 단행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번에도 아람군대를 다시한번 이스라엘의 손에 붙이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양군이 서로 대치한 지 7일째 되던 날 벌어진 전투(아벡전투)에서 이스라엘군은 하루에 아람군 10만 명을 죽이는 엄청난 전과를 올립니다. 거기다 도주하다 무너지는 성에 깔려죽은 아람군이 2만7천명이나 되어 도합 13만에 달하는 아람군이 궤멸되었습니다.
왕상20:29-30절입니다.
<29)진영이 서로 대치한 지 칠 일이라 일곱째 날에 접전하여 이스라엘 자손이 하루에 아람 보병 십만 명을 죽이매 30)그 남은 자는 아벡으로 도망하여 성읍으로 들어갔더니 그 성벽이 그 남은 자 이만 칠천 명 위에 무너지고 벤하닷은 도망하여 성읍에 이르러 골방으로 들어가니라>
3년간 이어진 한국전쟁에서 전사한 국군이 약25만 명 정도라는데, 아람군은 하루에 13만 명이 죽었으니 정말로 엄청난 대승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하시지 않고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기적적인 승리였습니다.
무참히 패배한 아람군대는 완전히 전의를 상실했습니다. 이제는 국가의 존망이 걱정되는 상황입니다. 다급해진 아람의 벤하닷왕과 신하들은 굵은 베로 허리를 동이고 테두리를 머리에 쓰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아합왕 앞에 찾아와 엎드렸습니다. 얼마 전까지 ‘네 재산과 아내와 네 자녀들은 다 내 것이다’라고 오만방자한 모습은 사라지고 참으로 비굴한 모습을 보이는 벤하닷 이었습니다.
문제는 어리석은 아합이 이들의 비굴한 연극에 속아 넘어갔다는 사실입니다. 두 차례의 승리가 모두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것을 잊고, 한껏 교만해진 아합은 이들의 속임수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아람왕 벤하닷을 ‘나의 형제’라고 말합니다.
아람왕 벧하닷이 아합왕이 자기를 형제라고 불러주니 이때다 싶어 벤하닷은 ‘네 맞습니다. 벤하닷은 아합왕의 형제입니다.‘라고 매달리기 시작합니다. 이에 우쭐해진 아합은 통큰 영웅인 것처럼 호기를 부립니다.
이에 벤하닷은 패전국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인데도 대단한 양보를 하는 것처럼...그동안 빼앗은 성읍들을 다 돌려주겠다고 하고, 자기 나라 수도에(다메섹) 아합을 기념하는 거리까지 만들어주겠다고 합니다. 그러니 아합이 기분이 너무나 좋았습니다. 그리하여 아람과 조약을 맺고 아람왕 벤하닷을 놓아주고 말았습니다.(왕상20:34) 하지만 이것은 지극히 아합의 인간적인 생각이었지 하나님의 뜻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람나라와의 전쟁에서 두 번이나 승리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지하라는 메시지요, 이참에 하나님을 모독하고 교만한 아람의 벤하닷을 죽여 악의 불씨를 없애길 원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의외의 축복을 주실 때에는 뜻이 있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라는 메시지입니다. 인간적인 수단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라는 메시지입니다. 그래서 절망적인 상황가운데서 승리하게 해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아합왕은 승리했을 때 정작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고 인간적인 호기를 부리며 아람의 벧하닷과 조약을 맺고, 그를 놓아준 것입니다.
아합왕은 하나님이 막강한 적을 자신의 손에 붙이시겠다는 그 약속을 믿음으로 끝까지 붙잡지 못했습니다. 뜻밖의 승리와 상대의 비굴한 굴복에 잔뜩 고무되어 인간적인 타협을 했습니다. 그것이 재앙의 원인이었습니다. 이렇게 살아남은 아람은 훗날 두고두고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올무가 되었습니다.
아합이 이런 어리석은 결정을 하게 된 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영적으로 무지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육체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고전2:14)
영적으로 무지하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도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여 축복을 온전히 누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마7:6)고 하셨습니다.
자기 맘대로 벤하닷을 살려준 아합에게 즉시 하나님의 심판이 선포됩니다. 축복의 말도 선지자를 통해서 왔듯이 심판의 말도 하나님의 선지자를 통해서 선포되었습니다.
말씀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그를 놓아준데 대한 책임으로 아합은 자신의 생명을 대신 내놓아야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합왕은 이 무서운 심판의 말씀을 듣고 “근심하고 답답하여 했다”(왕상20:43절)고 했습니다. 원어에는 “분노했다”는 의미도 담겨 있습니다. 아합은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듣고도 근심하고, 답답하고, 분노했을 뿐, 죄를 깨닫고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지적하시는 것은 그를 정죄해서 멸망케 하려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죄를 깨닫고 회개함으로써 멸망에서 구원을 얻게 하기 위한 질책인 것입니다.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꼐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사55:7)
아합은 하나님에 대하여, 영적인 일에 대하여 무지했기에 이런 사실을 모르고 근심했을 뿐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아합처럼 회개해야할 때 근심만 하는 사람이 아닌가? 돌아보아야 합니다.
왕상 21:1절을 봅시다
<1)그 후에 이 일이 있으니라 이스르엘 사람 나봇에게 이스르엘에 포도원이 있어 사마리아의 왕 아합의 왕궁에서 가깝더니>
아람나라와의 2차 전쟁이 앞전에 드린 말씀처럼 끝난 후에 있었던 일이라는 것입니다.
앞에서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은 이세벨과 아합의 죄악상에 대해서 살펴보았죠?^^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은 이 일로 하나님이 진노하셔서 아합왕에게 엘리야선지자를 보내셔서 하나님의 심판을 예고하십니다.
21:21-24절입니다.
<21)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재앙을 네게 내려 너를 쓸어 버리되 네게 속한 남자는 이스라엘 가운데에 매인 자나 놓인 자를 다 멸할 것이요 22)또 네 집이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집처럼 되게 하고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의 집처럼 되게 하리니 이는 네가 나를 노하게 하고 이스라엘이 범죄하게 한 까닭이니라 하셨고 23)이세벨에게 대하여도 여호와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개들이 이스르엘 성읍 곁에서 이세벨을 먹을지라 24)아합에게 속한 자로서 성읍에서 죽은 자는 개들이 먹고 들에서 죽은 자는 공중의 새가 먹으리라고 하셨느니라 하니>
엘리야를 통하여 하나님의 심판의 예고를 들은 아합이 이렇게 합니다.
왕상21:27-30절입니다.
<27)아합이 이 모든 말씀을 들을 때에 그의 옷을 찢고 굵은 베로 몸을 동이고 금식하고 굵은 베에 누우며 또 풀이 죽어 다니더라 28)여호와의 말씀이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29)아합이 내 앞에서 겸비함을 네가 보느냐 그가 내 앞에서 겸비하므로 내가 재앙을 저의 시대에는 내리지 아니하고 그 아들의 시대에야 그의 집에 재앙을 내리리라 하셨더라>
아합이 진심으로 회개하고 스스로를 겸비하게 하니 하나님께서 아합에게 내리시려던 재앙을 아합 때가 아니라 그의 아들 때에로 유보시키십니다.
아합이 진심으로 회개하는 모습을 보시고 얼마나 기쁘셨던지 심판을 전하라고 한 엘리야에게 즉시 이 말씀을 하시는 것을 봅니다.
참으로 하나님은 대단하신 분이십니다. 아합은 그 죄악을 생각하면 도저히 하나님의 자비를 받을 자격이 없는 자입니다. 갈멜산에서 분명한 증거에도 회개하지 않았던 아합, 아람과의 싸움에서도 2번이나 기적 같은 승리를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불순종하여 아람왕 밴하닷을 살려주었던 아합 입니다. 죄 없는 나봇을 죽이고, 포도원을 빼앗은 죄악을 범한 아합왕 입니다.
몇 번씩 그 끔찍한 죄를 지은 아합왕 이건만 그가 말씀 앞에서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애통해하자 자비를 베풀어 심판을 연기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무리 악한 죄인이라도 죄인이 징벌 받아 멸망당하는 것을 원치 않으심을 알 수 있습니다. 오히려 악인이라 할지라도 다 하나님 앞에 나아와 회개하여 구원 받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징벌은 구원을 위한 것입니다.
어디 아합왕 뿐이겠습니까? 사도 바울도 자신을 “죄인 중에 내가 괴수”(딤전1:15)라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 다 한 꺼풀 들춰보면 부끄러움을 감출 수 없는 죄인들입니다. 아합을 생각하면 하나님의 자비가 불공평해보이기도 하지만, 그게 그 아합이 나라고 생각하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아합이나 우리나 다 하나님의 용서를 간절히 필요로 하는 죄인입니다. 문제는 과연 진정으로 회개하느냐 안 하느냐 입니다. “하나님 우리의(나의) 죄를 용서 하소서!”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겸비한 마음이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2차 전쟁에 승리한 이스라엘... 하나님은 아람왕을 죽이고 아람을 진멸하기를 원하셨지만, 아합은 그들의 비굴한 연기에 속아 빼앗긴 땅을 다시 돌려주겠다는 아람왕의 말을 믿고, 조약을 맺고 아람왕을 살려 보냈잖아요...그런데 과연 아람왕이 돌아가서 이 약조를 지켰을까요? 아니요.. 아람왕은 처음부터 돌려줄 생각이 없었던 것입니다. 3년이 지나도 아람왕이 약속을 지키지 않자 이번에는 아합왕이 아람을 치기로 결심합니다. 아람왕이 가만히 있었을까요? 3년 동안...복수의 칼을 갈았겠죠...이때 남쪽 유다왕이 여호사밧이었는데... 여호사밧은 하나님을 잘 섬기는 그런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아합왕이 함께 아람을 치자는 제의에 수락하고 남북이 연합으로 아람나라를 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 이유는 서로 간에 사돈관계를 맺었기 때문이었습니다-훗날 이스라엘의 우상숭배가 유다에게까지 미치게 되어 이스라엘의 악한 행위를 유다가 그대로 답습하게 되는 치명적인 결과를 낳고 맙니다.... 여호사밧의 큰 실수...악인이요, 우상숭배자요 하나님께 불순종하는 자와 사돈관계를 맺은 것...재앙의 씨를 뿌린 결과가 됩니다)
아합은 3년 동안 약속을 지키지 않고 빼앗긴 땅을 돌려주지 않자 전쟁을 통하여 뺏긴 땅을 찾아오려고 전쟁을 일으킨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과 아람과의 3차 전쟁이 벌어지게 됩니다. 실은 안 해도 될 전쟁을 3년 전 아합의 불순종으로 아람왕을 살려준 것 때문에 다시 전쟁을 하고, 수많은 젊은이와 백성들이 전쟁으로 희생당하게 된 것입니다
이때 여호사밧은 하나님께 이 전쟁에 대하여 기도해 봤냐? 선지자들에게 물어봤냐? 그랬더니 아합은 전혀 그런 사람이 아니잖아요? 하나님을 섬기지도 않고 바알을 숭배하는 사람이 물을 리가 없죠... 그래서 아합은 할 수 없이 선지자들을 불러 모으게 됩니다. 400명의 선지자들을 불러 모았으나 모두가 다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힌 자들이 아니라 아합왕에게 아부하는 거짓선지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이 전쟁은 당연히 아합이 듣고 싶은 말...승리요 평안이라고 말합니다.
남유다 여호사밧왕은 이상한 눈치를 채고, 여기 이외에 또 하나님께 물을 여호와의 선지자가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아합왕이 말합니다. ‘미가야’라는 선지자가 있는데...내게 대하여 길한 예언은 하지 않고 흉한 것만 예언하기 때문에 그가 미워 부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나쁜 짓만 하는데 길한 예언이 나갈 수 없는 것은 당연하거죠...
여호사밧은 미가야 선지자를 불어오게 합니다.
미가야가 올 때까지 계속해서 거짓선지자들의 대표 시드기야는 이 아람과의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고 예언을 거듭 반복합니다. 거짓선지자들은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말을 하면서 그것이 마치 하나님의 뜻 인양 포장합니다. 안전하지 않은데도 안전하다고 말하고, 멸망 할것이 뻔한데도 잘될 것이라는 말로 헛된 기대감만 부추깁니다. 그래서 이들의 말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좋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자 일수록 이 거짓선자의 말을 찰떡같이 받아드립니다.
우리는 영분별을 가지고 이들을 물리쳐야 합니다. 믿음에 기초한 긍정의 힘은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거짓에 기초한 거짓 평화와 약속은 물리쳐야 합니다.
렘23:16-17절입니다.
<16)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 그들은 너희에게 헛된 것을 가르치나니 그들이 말한 묵시는 자기 마음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니라 17)항상 그들이 나를 멸시하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평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며 또 자기 마음이 완악한 대로 행하는 모든 사람에게 이르기를 재앙이 너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였느니라>
미가야의 이름의 뜻은 ‘여호와 같은 이가 누구인가’입니다. 이 암울한 아합왕 시대에 엘리야와 같이 이스라엘에게 참 하나님 말씀만 전하는 참 선지자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미가야를 데리러 간 사람은 미리 선지자 미가야에게 길한 예언을 하도록 압력을 넣습니다. 모든 선지자들이 이 전쟁은 승리하고 안전하다고 했으니 너도 딴소리 말고 그러게 하라....
이 때 미가야는 “나는 하나님이 말씀하라 시는 대로 말할 뿐”이라며 일언지하에 거절합니다. 아마도 여호사밧 앞에서 체면을 세우려는 아합왕의 사주가 있었을 것입니다. 미가야에게 이런 압력을 넣었다는 것은 아합은 이미 하나님의 음성에는 관심이 없음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아합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든 이미 아람과의 전쟁을 하기로 결정한 상태고 그것을 번복할 의사가 전혀 없습니다. 그저 자기는 왕이니 자기가 결정하는 대로 선지자들도 그대로 동조하는 말을 해주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거짓선지자들만 이스라엘 나라에 판치는 것입니다.
아합왕 앞에 선 선지자 미가야는 아합왕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해줍니다,
15절입니다.
<15)이에 왕에게 이르니 왕이 그에게 이르되 미가야야 우리가 길르앗 라못으로 싸우러 가랴 또는 말랴 그가 왕께 이르되 올라가서 승리를 얻으소서 여호와께서 그 성읍을 왕의 손에 넘기시리이다>
거짓선지자들이 하는 말 그대로 흉내를 내어 싸우러 가면 여호와께서 승리하게 해주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자기 주위를 거짓선지자들로 둘러싼 아합왕을 비꼬아 준 것입니다, 누가 들어도 그 말투는 아합왕을 조롱하는 말투였습니다. 미가야의 태도에서 진실이 없음을 감지한 아합은 약이 올라 당장 여호와의 이름으로 진실을 말하라고 다그칩니다.
“그래요? 그러면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그대로 전해드리지요”
미가야는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가감 없이 전합니다.
미가야의 예언의 요점은 이스라엘을 목자 없는 양으로 비유하여 아람과의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패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에 아합왕은 화를 내며 미가야 선지자는 자신이 예상한대로 항상 흉한 소식만 전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미가야 선지자는 아랑곳없이 하나님이 보여주신 환상을 계속 말합니다.
미가야 선지자가 본 환상은 하늘나라 어전회의 장면이었습니다. 결론으로 얘기하면, 거짓선지자들의 예언에 속아 아람과의 전쟁을 일으키는 아합이 전사할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이미 하나님이 아합을 ‘길르앗 라못’에서 죽게 하게 하기로 뜻을 세우셨다는 사실입니다. 이미 하나님이 결론을 내리셨으므로 문제는 이것이 어떻게 집행되느냐 뿐이었습니다.
둘째, 그 과정에서 승리를 예언하는 400명의 선지자들이 거짓을 말하는 영에게 이용당한다는 사실입니다. 즉 거짓말하는 영까지도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에 따라 움직이며 그분의 뜻을 이루는데 사용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왕상22:20-22절입니다.
<20)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가 아합을 꾀어 그를 길르앗 라못에 올라가서 죽게 할꼬 하시니 하나는 이렇게 하겠다 하고 또 하나는 저렇게 하겠다 하였는데 21)한 영이 나아와 여호와 앞에 서서 말하되 내가 그를 꾀겠나이다 22)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어떻게 하겠느냐 이르되 내가 나가서 거짓말하는 영이 되어 그의 모든 선지자들의 입에 있겠나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꾀겠고 또 이루리라 나가서 그리하라 하셨은즉>
역사는 His-Story 즉, 그분의 스토리 인 것입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잘난 척 해도 역사는 하나님이 세우신 결론으로 하나님의 방법대로 흘러가게 되어 있습니다.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 불순종한 아합왕의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었던 것입니다.
미가야가 하나님이 보여 주신 환상을 통해 거짓선지자들의 실체를 밝히자 모두가 경악했습니다. 거짓선지자들의 우두머리격인 시드기야는 미가야에게 다가와 미가야의 뺨을 치며 욕을 합니다. 아합왕은 분노하여 미가야 선지자를 옥에 가두고 고생의 떡과 물을 마시게 합니다.
아마도 미가야는 이미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전하면 이렇게 될 것을 예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후회 없이 하나님의 사명을 다했습니다.
마가야를 비롯한 많은 하나님의 참 종들은 항상 거짓된 세상으로부터 이런 핍박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말씀했습니다.
마5:11-12절입니다.
<11)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12)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외롭고 힘들더라도 하나님의 진리를 이 패역한 세대 한 가운데서 묵묵히 전해야 합니다. 그로인해 핍박과 환란이 온다 해도 하늘에서 상이 크다는 것을 믿고 기뻐해야할 일입니다.
미가야선지자의 예언을 무시하고 아합은 전쟁에 나서게 됩니다. 아합과 여호사밧의 연합군은 전쟁을 위해 '길르앗 라못'으로 출정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전쟁에 임하자 아합은 미가야선지자의 예언이 자꾸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래서 유다왕 여호사밧에게는 왕복을 입히고 자신은 왕이 아닌 것처럼, 일반 병사복장으로 변장하고 병사들 틈에서 싸웁니다. 적군 아람군사들은 먼저 왕을 집중 타깃으로 공격할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면 죽음을 면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아합의 비겁함과 잔머리는....민망할 정도다)
전투가 개시되자 역시 아합의 예상대로 적은 오직 이스라엘 왕만 찾아 집중공격 합니다. 그래서 아합을 찾던 적의 지휘관이 여호사밧의 왕복을 보고 공격하려 몰려들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사밧이 고함을 치자 그 소리를 듣고 즉시 아합이 아님을 알아 차렸습니다. 공격을 멈추고 아합을 찾아 다들 산개(散開)했습니다.
아합이 변장술로 적의 병사들은 따돌릴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아람군사 하나가 우연히 활을 당겨 쏜 것이 병사로 변장한 아합의 갑옷 솔기, 즉 갑옷 중에서 가장 취약한 이음세에 명중했습니다. 이것을 정통으로 맞추기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무심코(우연히)’란 말을 주목하십시오....아람군사는 전혀 아랍왕을 쏜다고 생각하지도 못하고 쏜 것이지만 바로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아합은 변장까지 하면서 살려고 했지만, 하나님의 섭리는 막을 수 없습니다. 그 어떤 인간의 보호 장치도 말씀의 성취를 막을 수 없는 것입니다.
왕상21:19절입니다.
<19)너는 그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죽이고 또 빼앗았느냐고 하셨다 하고 또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개들이 네 피 곧 네 몸의 피도 핥으리라 하였다 하라>
왕상22:37-38절입니다.
<37)왕이 이미 죽으매 그의 시체를 메어 사마리아에 이르러 왕을 사마리아에 장사하니라 38)그 병거를 사마리아 못에서 씻으매 개들이 그의 피를 핥았으니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거기는 창기들이 목욕하는 곳이었더라>
하나님께서 아합이 나봇을 죽이고 포도원을 빼앗을 때에 엘리야 선지자를 통하여 아합왕에 대한 심판을 예고한 말씀중 “나봇의 피를 개들이 핥은 곳에서 아합왕의 피도 똑같이 개들이 핥을 것이다”는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아합이 죽은 것은 악한 자가 죽는 것이 하나님의 자비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은혜를 거부하고 죄의 길로 가기 때문인 것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은 몇 번씩 아합에게 과한 은혜를 주시면서 하나님께 돌아와 바로서기를 원하셨지만, 그는 회개하지 않고 스스로 악에 팔려 심판을 자초했습니다.
욥36:11-12절입니다.
<11)만일 그들이 순종하여 섬기면 형통한 날을 보내며 즐거운 해를 지낼 것이요 12)만일 그들이 순종하지 아니하면 칼에 망하며 지식 없이 죽을 것이니라>
하나님의 심판은 어떤 인간의 술수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성취됩니다. 기회가 주어졌을 때, 회개하고 돌아오지 않으면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됩니다.
우리는 아합왕을 통하여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 얼마나 악해질 수 있는가? 얼마나 교만해질 수 있는가?를 깨닫게 되며... 아무리 악해도 하나님은 무한히 반복적으로 회개하고 용서받을 기회를 주시는가?... 가치 있는 인생으로 살아갈 기회를 주시는가?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하심을... 그리고 인간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것은 하나님이 무자비 하셔서가 아니라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교만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아멘
*헬렌켈러의 말
<성경에 밑줄 긋는 것도 좋지만, 성경이 당신 위에 밑줄을 긋게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