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링조어의 마지막 여름을 적은 소설로 보인다.
헤세는 이 소설을 통해서 무엇을 말하고자 했을까? 나는 무엇을 느끼는 것일까?
예술은 어떤 것일까? 생각하는 바를 표현하는 것이다. 생각은 늘 움직이는 것이고 고정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생각을 표현해야만 할 때,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음악, 미술, 그리고 글 (내가 아는바, 수식도 표한 될 수 있을 것이나 이를 예술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등등. 그러니 표현된 것은 이미 지나간 것이고, 진실이 아니며 죽은 것이다.
회화는 고작 몇 가지의 색으로 그림을 그려야 하고, 생각하는 바를 완벽하게 표현할 올바른 색과 구도와 모양, 디테일을 찾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만족할 만한 작품은 있을지라도 완벽한 작품은 존재하지 않는다. 문학적 표현이란 것에도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알고 있는 질서, 내가 알고 있는 방법, 내가 이해하는바, 그것만을 고집한다면, 표현에 한계가 있는 것이고 이는 진실을 추구하는 것, 내 생각을 올바르게 표현하는 것을 포기하는 것일 것이다. 이를 헤세는 질서, 모든 기존 질서에서 벗어나는, 즉 몰락해야 바람직한 창조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겠느냐고 말하는 듯하다. 나를 정성스럽게 표현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노력(연구)이 필요하다.
마지막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클링조어는 무질서와 혼돈, 그리고 더러움으로 작업공간을 채웠다. 자신을 돌아보지 않은 것일까? 작품에 몰두한 것일까? 그리고 그 작품은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다고 한다. 완성하기는 한 것일까?
내 안의 것을 드러내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사람은 표현할 수 있는 가능한 방법을 찾아서 표현해야 살아있음을 증명할 수 있다는 것일까?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이 예술이나 문학적인 방법 외에는 없을까? 그렇지 않다고 본다. 내가 속한 환경에서 나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 임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은 아닐까?
헤세의 입장에서, 클링조어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다면 나는 어떤 것 또는 행동이 나의 마지막 여름을 아름답게 채울 수 있을까.
몇 번을 읽어야만 일 푼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 듯한 내용으로 느껴졌는데, 성급하게 글을 남겨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