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내 아들이라
아버지와 아들, 가깝기로 하면 가장 가까운 사이요 관계입니다. 자식은 아버지의 허리에서 나옵니다. 아버지의 몸입니다. 허리에서 나와 어머니의 태에 착상하여 다시 어머니와 한 몸으로 열 달을 지냅니다. 어머니의 몸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와 자녀는 한 몸에서 시작하여 나뉘어진 관계입니다. 그래서 핏줄이고 가족입니다.
이렇게 한 몸이었으나 사랑과 미움 곧 애증의 관계가 켜켜이 쌓입니다. 그러다보면 남보다도 못한 관계로까지 나아가는 수가 있습니다. 가깝기로 하면 가장 가까웠던 아버지와 아들 사이가 가장 멀어진 관계가 되기도 합니다.
피와 살을 섞지 않은 이웃과는 아무리 근접해도 가족이 되지 못합니다. 그들과는 아무리 멀어져도 본디 있었던 그 자리에서 더 멀어지지 않습니다. 멀어지려야 멀어질 것이 없습니다. 그냥 그 자리일 뿐입니다. 그러나 부모와 자식 사이는 그렇지 않습니다. 가장 가까운 ‘한 몸’이었습니다. 그러나 멀어지기 시작하면 ‘이웃’보다 훨씬 더 멀리 관계가 소원해집니다.
하나님은 아버지가 허리에서 자식을 내듯, 어머니가 태에서 자식을 내듯 여섯째 날 사람을 지었습니다. 부모와 자식이 가장 가까이에 있다가 가장 멀리 떨어지듯이, 피조물 사람과 하나님과의 사이가 그렇게 멀어졌습니다. 인류의 첫 조상 아담 하와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 열매를 따 먹음으로써 빚어진 현상입니다.
자식은 부모를 버리기도 하지만 부모는 끝내 자식을 버릴 수 없듯이 하나님은 피조물 사람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밤새워 사립문을 활짝 열어두시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하나님의 기다리심의 역사는 ‘구원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구원사’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의 기다리심에 부응하여 원죄와 자범죄의 울타리를 뛰어넘어 즉 자기중심 이기주의를 초월하여 하나님을 뵙는 이들이 더러 있습니다. 성도입니다. 성도에게 하나님은 귀하게 말씀해 주십니다.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시 2:7)
창조주 하나님의 이 말씀보다 귀한 말씀이 어디에 또 있겠습니까? 본디 사람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니 하나님은 우리를 낳아주신 부모의 진본이십니다. 그분께서 우리를 자기의 자녀로 인정하고 선포해 주십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때에 사람은 근본에 도달합니다. 자신의 진실한 뿌리를 확인하고 창조주를 만납니다. 아버지 하나님으로 예배하면서 비로소 천국을 누립니다. 허위와 가식으로 가려진 세상을 뚫고 진리의 하나님을 뵙습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