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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복음 14장 26-27절 은혜와 진리의 가치6-제자됨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나면 누군가로부터 배우고 영향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영향을 받으면 그때부터 자신에게 영향을 준 사람과 행동이 닮아갑니다. 갓난 아기가 이 세상에 태어나 한 살이 되고 두 살이 되면서부터 그 아이는 자신을 키우는 자기 엄마 아빠의 행동과 말을 유심히 보고 듣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때부터인가 그 말과 행동을 본 받습니다.
예전에 바닷게 엄마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하루는 자기 아들게가 자꾸만 옆으로 걷는 것을 본 엄마게가 아들게에게 말합니다. “얘야 너는 왜 맨날 옆으로만 걸어 똑바로 걸어야지” 그런데도 아들 게가 자꾸만 옆으로 걷는 것을 본 엄마게가 큰 소리치면 말합니다. “똑바로 걷지 못해? 잘 봐 내가 시범을 보일 테니 나를 따라 해봐” 그러다니 열심히 걷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니까 아들게가 말합니다. “엄마도 옆으로 걷잖아요”
이것은 단순히 웃자고 만든 이야기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아이는 어른의 행동을 닮는다는 교훈을 주자고 만든 이야기일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식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훈계하기 전에 자기가 먼저 바로 살아야 자식들이 바로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이는 아빠 엄마의 말만이 아니라 엄마 아빠의 정신을 배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명이 6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세워나가시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신명기 6장 4-9절입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이 말씀을 보면 7절을 보면 자녀 교육을 어떻게 시킨 것인지에 대한 말씀입니다. 뭐라고 하십니까?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여러분은 여러분들의 자녀들에게 이렇게 부지런히 가르치고 계십니까? 여러분들이 집에 앉았을 때든지, 누워있을 때든지, 일어날 때든지 간에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가르치며 이 말씀을 강론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여러분들이 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오늘 가서 여러분들의 자녀들에게 가르친다고 합시다. 그러면 여러분들의 자녀들이 여러분 앞에 앉아서 가만히 듣고 있을까요? 하니면 “그만하세요”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자기 방으로 가든지 밖으로 나갈까요? 이것은 부모를 향한 자녀의 존경심과 연관이 있습니다. 부모를 존경하는 자녀들은 부모의 말을 경청하고 듣습니다. 그러나 부모를 존경하지 않는 자녀는 부모가 말할 때 듣는 둥, 마는 둥 하거나 아니면 듣기 싫어서 그 자리를 피합니다. 그러면 그 존경심이 어디서 나올까요? 여러분의 삶의 태도에서 나옵니다. 자녀들은 부모인 여러분의 정신에 영향을 받고 삶의 태도를 보면서 성장합니다.
여러분들이 자녀와 말하는데 가만히 앉아 듣는 다면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서 살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아니면 여러분들에게 야단맞는 것이 두려워서 일수도 있습니다. 부모가 두려움의 존재라면 어쩔수 없이 들을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그의 마음은 밖으로 가출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자녀가 여러분들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달게 들으면서 귀를 기울이고 있다면 그 이유는 여러분이 무서워서라기 보다는 여러분의 인격이 자녀에게 큰 선한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런 자녀들이 부모를 존경하면서 순종하는 가정들이 얼마나 될까요? 여러분들의 가정이 이런 은혜와 진리 안에 있는 가정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자녀들에게 집에 앉아 있든지, 길을 갈때든지 누워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든지 부지런히 하나님의 말씀을 강론하며 가르치라고 말씀하시기 전에 전제조건을 여러분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사실 이 전제조건은 여러분들이 7절의 말씀대로 모든 상황에서 자녀에게 가르치는 그것보다 우선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4-6절입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여러분의 자녀가 여러분들을 볼 때 여러분들이 유일하신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살고 있는 경건한 삶의 모습을 보고 있다면, 그리고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굉장히 사랑하여서 날마나 성경을 펼쳐 읽고 묵상하면서 그 말씀을 그날에 순종하고 실천하면서 산 후에 저녁에 가족들이 모두 모여 앉았을 때 오늘 하나님과 함께 살았던 이야기를 들려준다면 여러분들의 자녀는 여러분들안에서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여러분들이 들려주는 살아 역사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들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고 말과 행동이 다른 모습을 본다면 그리고 교회와 가정과 사회에서 전혀 다르게 사는 모습을 본다면 자녀들은 여러분들을 위선자로 볼 수도 있습니다. 위선자는 자녀에게 감동을 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경건한 사람은 자녀에게 감동을 주며 기꺼이 부모를 닮은 신앙의 삶을 살려고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녀들을 하나님 앞에 세우기 전에 먼저 자신의 삶을 하나님 앞에 세워야 합니다.
그러니 여러분 아이들부터 잡아주려고 하지 마시고 여러분 자신부터 하나님 앞에서 바로잡아야 합니다. 하루 온종일 하나님이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하나님과 함께 사는 그리스도인의 가정이 복이 있고 자손 천대까지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그 이유는 바로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말씀하시면 그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아무런 주저함없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순종하고 복종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게 삶을 사신다면 여러분의 자녀들은 하나님과 함께 살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참신하고 복된 가정이 아주 많은 것은 아니지만 간간히 나타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만 신앙생활하는 것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의 자녀 역시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예수님께서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시는 삶을 살도록 돕고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을 인도하시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자녀들도 만나주셔서 인생을 복되게 살게 하실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만나주셨던 하나님이 이삭을 만나주시고, 또 야곱을 만나주신 것처럼 말입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신 은혜와 진리로 여러분들에게 임하는 제자도의 원리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제자도가 가정에서부터 먼저 시작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그러한 살아있는 생명의 말씀인 은혜와 진리가 가정을 넘어선 공동체요. 가정의 연장선이 되는 공동체가 되게 하기 위해서 세우신 예수님의 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의 제자들을 자신의 가족이라고 증거하신 것입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한 집안에서 하나님 나라의 말씀을 가르치고 계실 때 어머니와 형제들이 예수님을 집으로 모시고 가려고 몰려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 앞으로 갈 수가 없어서 사람들에게 부탁해서 “우리 형님께 우리가 왔다고 전해주시오”하고 말을 전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이 사람은 예수님께로 다가가서 “당신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당신을 찾고 있습니다”하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 사람을 보면서 “누가 내 어머니며 형제들이냐? 내 어머니와 형제들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이 사람들이 내 어머니요 내 형제니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까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제자인 교회는 바로 예수님의 가족의 연장선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만큼 제자가 된다는 것은 예수님의 가족으로서 다시 태어난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장 12절에서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하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의 제자가 되는 것이 결코 쉬운 길만은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인 누가복음 14장 26-27절을 보면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는 말씀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여러분들에게 하신 말씀을 가만히 주의 깊게 읽어보면 이렇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여러분 예수님께 오는 자가 적을 까요? 아니면 많을까요? 예수님이 이 세상에 계실 때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아왔고 예수님을 따라다녔습니다. 누가복음 12장 1절을 보면 “그 동안에 무리 수만 명이 모여 서로 밟힐 만큼 되었더니 예수께서 먼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외식을 주의하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에게 나오는 자들이 무려 수만 명이 되었습니다. 그들 가운데 예수님의 핵심 제자들은 적게는 열 둘이지만 그 외에도 70인의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나중에 보면 가룟 유다의 빠진 직분을 대신할 사람으로 세운 후보도 두 사람이 있었고, 엠마오로 가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던 제자들 역시 70명의 제자들 중의 두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수만 명의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아왔고 예수님을 따라다녔지만 그들 가운데는 제자가 아닌 사람들이 제자인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았습니다. 더 정확하게 이야기한다면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을 받기 위해 모였던 120명의 사람들 외에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제자의 자격에 합당한 사람들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예수님의 제자의 자격이 될 수있을까요? 만일 수만 명의 사람들 가운데 예수님의 제자가 겨우 120명 뿐이라면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의 가치는 제자가 되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과 비교해볼 때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영광이요 명예가 되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 영화롭고 명예로운 제자의 직분을 갖기 위해서는 반드시 버려야할 것과 취하여야 할 것이 있음을 예수님은 누가복음 14장 26-27절에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 같이 읽어볼까요.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여기 예수님의 말씀은 충격적입니다. 가족도 미워하고 자기 자신도 미워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지 않는 자 역시 예수님의 제자가 될수는 없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33절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예수님은 지금 여러분들에게 그리고 자신의 삶을 온전히 예수님께 드리고 제자로써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너희가 내 제자가 되려면 내게 나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 반드시 가족들도 미워하고 너 자신의 목숨도 미워하고, 하나님이 너에게 주신 그 십자가를 반드시 져야 하고, 거기다가 너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어” 하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면 여기서 가족들을 미워하고 자기 목숨을 미워하고 십자가를 져야하고 자기 재산을 버리라는 말씀은 여러분 모두가 가족과의 의를 다 끊고 빈털터리로 살아야 한다는 말씀일까요? 그러면 여러분들은 예수님께 이렇게 말씀하지 않으시겠습니까?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살수 있을까요?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이것입니다. 마가복음 10장 27절입니다.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이 말씀이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내가 무엇을 해야만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하고 묻자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준 후에 너는 나를 좇으라”고 하셨을 때 그가 근심하면서 물러가고 난 후에 하신 말씀이라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가 떠나자 마자 제자들에게 “낙타가 바늘 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더 어렵다”고 는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놀란 제자들이 “그러면 누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지요?”하고 물었을 때 예수님이 대답하신 말씀이라는 것을 잘 아실 것입니다. 하나님 만이 다 하실 수가 있으십니다. 믿으십니까?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 하나님만을 믿고 의지하십시오.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를 구하십시오. 그러면 예수님의 제자다운 삶을 살도록 도우시고 인도하실 것입니다.
오늘날 매우 똑똑한 교인들은 예수님의 이 요구가 자신들을 향한 말씀이 아니라 이 시대에 복음을 전하면서 사는 선교사들이나 목사들, 그리고 주의 종으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 하시는 요구라고 생각하면서 자신들이 쳐놓은 울타리를 보존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복음을 전하라고 부르심을 받은 선교사나 목사들이나 주의 종으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만을 위해 쓰여진 책은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겠다고 하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이 기록하라고 주신 하나님의 살아있는 생명의 말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제자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자신을 향해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대답해야할 의무가 있습니다. 여러분의 대답도 “아멘”입니까?
그런데 여기서 여러분들이 너무 극단적으로 해석하지 말아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미워하라고 하신 가족이나 자신에 관한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성경을 해석하실 때 이 한 구절만 보면 안됩니다. 성경 전체에서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같이 들여다보아야 합니다. 성경만큼 가족을 사랑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며, 자식을 사랑하라고 강조하는 다른 경전이 없을 것입니다. 성경만큼 결혼을 거룩하고 숭고하게 말씀하시는 종교경전도 역시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본다면 이 말씀은 어떻게 해석을 해야할까요?
이 말씀은 조금 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가족들이라도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을 막거나 방해한다면 그들을 미워하라는 말씀입니다. 이는 예수님을 더 사랑하라는 반의법을 쓰신 것입니다. 가족보다 에수님을 더 사랑하라. 그리고 가족 때문에 예수님이 맡기시는 일을 뒤로 미루거나 거부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적어도 여러분들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로 작정했다면 그렇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로 결단을 하고 또 그 결단을 실행하는데 있어서는 여러분의 결심만으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성령의 역사가 동반되어야 가능합니다. 성령이 아니면 여러분들의 육신적인 것을 넘어서서 예수님이 여러분들을 위해 열어놓으신 좁은 문으로 들어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좁은 길을 갈 엄두를 낼 수가 없습니다.
십자가를 지라는 문제도 그렇고, 또 그렇게 자기 소유를 버리라는 말씀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주님의 것이며 주님의 뜻을 행하도록 구원하시고 인도하신 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인들인 여러분들을 보시면서 날마다 십자가에 짖눌려 매일 같이 죽어라 죽어라 하면서 곤고함 가운데 살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여러분들에게 지라고 주신 십자가는 교회에서만 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물론 교회에서 여러분들이 져야하는 사명의 짐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다가 아닙니다.
예수님이 여러분들에게 지라고 하시는 십자가는 여러분의 가정이나 직장이나 사업장에서도 그리스도의 제자답게 하는 것이 포함됩니다. 여러분들이 만나는 사람들, 그리고 사람들의 공동체 속에 들어가서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바로 십자가를 지는 삶입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십자가를 지는 삶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보십시오. 불의한 고발자들과 불의한 재판자들의 손에 넘겨지셨습니다. 거기에 불의한 군병들의 손에 넘겨져 아무 저항도 하지 않으시고 채찍에 맞으셨습니다. 사람들은 없는 죄를 만들어 예수님께 덮어 씌웠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아우성 쳤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미 자신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셔야만 하나님이 받으실 영광이 있으며 하나님의 백성들이 죄로부터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서 좁은 길을 걸어가는 하나님의 아들의 모습이며 또한 하나님의 자녀요, 백성이요, 일꾼으로 부르심을 받으신 여러분들이 걸어가야 할 길입니다.
이렇게 자기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맡기신 재물을 어떻게 써야하는 지를 압니다. 재물을 버리라는 말씀이 그냥 흘러가는 물에 버리라는 말씀이 아니지 않습니까? 전도서 11장 1절을 보면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이 실제로 떡을 물위에 던지라는 말씀이 아니지 않습니까? 여러분들이 가지고 계신 재물을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에 사용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여러날 후에 다시 찾게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믿음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신 은혜와 진리를 받은 사람들만이 이러한 헌신이 가능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이 믿어지고 예수님의 약속이 믿어지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여러분 안에서 그 사실을 믿게 하신다면 여러분들은 걱정하지 말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에 드리거나 사용하십시오.
11월부터 우리 교회에서 지방회를 하갰다고 지방회 총무님이 말씀하셔서 이제까지 성도님들이 드린 헌금의 십일조를 따로 모았던 돈을 지방회 때 모이시는 목사님 부부들에게 식사대접을 하기 위해 30만 원을 따로 떼어 놓았습니다. 그런데 베트남 여선교사님 한 분이 크리스마스에 베트남 어린이들에게 베트남어로 된 성경을 선물로 보급하고 싶은데 많은 돈이 필요하다고 하면서 기도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우리 독서 모임에 함께 참여하는 데 12월까지 나눌 12권의 책이 필요한데 그 책을 살 돈의 공급을 위해서 기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그 책을 사려면 적어도 열 두 권을 한꺼번에 사야하기 때문에 10만원이 넘는 돈이 필요했습니다. 택배비는 한국에 있는 그 선교사님의 딸이 베트남에 계신 자기 부모님에게 다녀가면서 책을 사가지고 가서 전해줄 것이기 때문에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저의 마음에 부담이 왔습니다. 그래서 며칠 기도하다가 “주님이 지방회때 쓸돈을 그 선교사님에게 돌리기를 원하시나보다”하는 생각이 마음에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30만원 중에서 20만원은 베트남 아이들을 위한 성경구입비로, 10만원은 선교사님의 책값으로 보내드렸습니다. 그 선교사님은 이 두가지를 다 구비하셨습니다. 그리고 성탄절에 베트남 아이들에게 성경을 나누어준 것을 카톡 사진으로 보내오셨습니다.
그리고 본인이 1년동안 읽을 책 역시 딸이 다 구입해서 베트남으로 가져왔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것이 12월의 일이었고, 그리고 우리 지방회는 2월에 있는데 우리 교회 헌금으로 십일조를 구별하여 모으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에 가망성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방회가 끝나고 지방회의를 마쳤을 때 한 목사님이 “오늘 지방회때 헌금한 것을 제석교회에 돌립시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다른 모든 목사님들도 역시 다들 찬성하셨습니다. 그래서 점심 식사를 대접하고 식사비를 냈는데 우리 교회 재정에서 41,000만 더 추가로 내면 되었습니다. 물론 그것도 하나님이 다 미리 준비해주셨습니다.
주님이 맡기신 재물을 여러분들 것처럼 여기지 마시고 주님의 것이라고 고백하고 사신다면 주님이 원하시는 필요에 따라 여러분들의 삶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돕는데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주실 것입니다. 하나님도, 예수님도 창조주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를 위해 재물을 사용하시는 여러분들의 모든 것을 능히 채우고도 남으실 것입니다. 모든 것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채우시려고 여러분들에게 “그것들을 다 버리고 나를 따라와라” “그런 것에 미련 갖지 말아라”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제자의 길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들을 예수님의 제자로 살게 하시기를 구하신다면 여러분들이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 가운데 사셔야 합니다. 또한 교회의 새신자나 연약한 신자들을 제자로 삼으로면 여러분들이 먼저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 가운데 경건하게 살아야 합니다.
성령이 마가의 다락방에 내리신 이후 초대교회에 모인 수 만명의 사람들 가운데 제자가 아닌 사람들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집에서나 교회에서나 사회에서나 언제나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았습니다. 그들 모두 안에 성령이 내재하셨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여러분들의 전 삶을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도록 인도하십니다. 오늘날도 이런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모든 것을 미워하고 부인하고 버리면서 그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며, 주님의 주권에 달렸기에 주님을 위해 기꺼이 모든 것을 내어드리고 그리스도의 제자다운 삶을 살기 원하며 자기에게 주신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기를 원하시는 여러분! 아무 염려하지 마시고 예수님을 따르십시오.
하나님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주신 은혜와 진리의 능력을 믿고 제자의 길을 가십시오. 예수님이 여러분을 제자로 부르신 이 가치는 이 세상의 그 모든 직분으로 부르신 것보다 훨씬 더 가치가 있음을 아시고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향하여 믿음으로 나아가십시오.
예수님은 요한복음 15장 8절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할렐루야!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일평생 예수님의 제자로 살면서 하나님 나라의 풍성한 열매를 맺으면서 사시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길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