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초
박연숙
차에서 내린 남편이 트렁크에서 낫을 꺼내들고 잰걸음으로 산을 오른다.
“저 양반 조카들이 벌초를 다 해 놓았다는데 왜 저리 급해......”
산소에 도착하자 남편은 봉분에 듬성듬성 몇 개 있는 잡풀이 거슬리는지 부지런히 베고 주변의 잔디를 베어내고 고르고 하면서
‘봉분만 잘 깎으면 되는게 아니고 묘역 주변을 잘 정리해야 하는데 이렇게 처삼촌 벌초하듯이 해 놓으면서 내가 하려고 하니 못하게 하고’ 하면서 중얼거린다.
우리 시댁은 문중 산소가 청송과 포항 두 곳으로 나뉘어져 있다. 그런데 시아버님께서 살아 생전에 당신께서는 문중산으로 가지 않겠노라고 선언하시면서 동네 산에 묘자리를 미리 봐 두셨다. 그 이유는 문중산에는 이미 조상님들이 좋은 자리를 다 차지하고 계셔서 그 자리에 계속 묘를 쓰면 자손들이 잘 풀리지 않는다는 지관의 말때문이었다. 그 말에 동조하신 사촌 아주버님도 돌아가시면서 시아버님 묘 아래쪽에 천년집을 정하시고 나란히 누워계신다.
해마다 추석 명절 2주 전 일요일에 온 집안 조카들이 모여서 두 패로 갈라 벌초를 하는데 해가 갈수록 직장 일이나 여러 가지 개인사로 참여율이 낮아져서 힘들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동네 산에 있는 두 기 만이라도 조카들 힘도 들어주고 또 시아버님 묘소이니까 남편이 맡아하기로 하고 수년째 해오고 있었다. 그런데 제작년 벌초 때 몸살이 난 상태에서 하다가 더운 날씨에 탈진을 해서 본의 아니게 사촌 아주버님 산소는 하지 못하고 우리 큰집 조카에게 연락해서 하라고 했다.
다음 주에 큰집 조카와 사촌 아주버님의 아들인 오촌 조카 둘이서 피곤한 몸으로 한 기를 마무리하는 내내
“당숙께서 우리 아버지 묘는 하지도 않고 할아버지 묘만 하고 갔다.”
고 계속 섭섭하다고 툴툴거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올해는 아예 큰집 조카가 자기들이 다 하겠다고 하면서 작은아버지는 힘드시니까 내려오시지 말라고 미리 연락이 왔다.
“조카야, 그렇게 섭섭하게만 생각말고 한 기라도 힘을 보태고 싶어서 그러는데 너희들이 조금이라도 덜 힘들잖아.”
“다른 친척 어른들도 참여도 안하시고 우리 집에선 둘이나 참여하는데 작은아버지 욕먹는 것 저 듣기 싫 어요.”
그래서 올해는 벌초를 조카들에게 맡기고 추석날 성묘하면서 이런 에피소드가 생기게 되었다.
옛날엔 한 마을 모두가 집성촌으로 이루어져 오순도순 사이좋게 살면서 네일 내일 가리지 않고 서로 도우며 정답게 살았지만 지금은 가족이라도 직장 때문에, 학교 때문에 여기저기 흩어져서 일년에 추석 명절 ,설 명절 , 생신 등 두 서너 번도 제대로 못보는 바쁜 세상이 되었다. 집안에 대소사가 있어도 멀리 사는 친척들은 이런 저런 일로 자주 참석하지 못하고 고향이나 고향 가까이 사는 친척들은 많은 일을 감당하게 되어 명절이 되면 형제간에 우애를 나누는게 아니고 오히려 큰 소리를 나누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친척들이 모여 벌초하는 일도 점점 어려워지고 잡음이 생기게 되었다. 매년 참가하는 사람만 참가하고 집마다 참가 숫자도 틀리니 불평불만이 쌓이고 서로 감정이 상할 때도 있다. 그 점에선 우리도 너무 미안하다 우리 아이가 유학 중이어서 한번도 벌초에 동참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리 집안은 서로 감싸주고 도와주며 잘 해 나가고 있다.
염치가 없어서 벌초 대행업체에 맡기자고 의견을 내었지만 조카들이 조상님 산소를 남의 손에 맡길 수 없다며 할 때까지는 계속해 보겠다고 하며 벌초 때는 현금이나 두둑이 하사하라고 하니 고맙고 기특할 뿐이다. 조카들도 그렇지만 그 아래 세대들은 낫 한번 잡아보지 않은 아이들이고 예초기를 무슨 사자, 호랑이 보듯 무서워 하니 얼굴도 보지 못한 조상들에게 얼마나 애착을 가지고 이 일을 해 나갈 수 있을까?
집집마다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다 산소에 대한 고민을 가지고 있다.
우리도 이젠 살 날 보다는 죽을 날을 계수하는게 더 빠른 나이가 되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우리의 천년집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등산을 가도 훼손된 묘나 저절로 삭아져가는 묘를 보면 눈에 들어오게 되고 보기가 안타깝고 우리 일이 아니라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을까는 생각이 든다.
뉴질랜드에 갔을 때에 야산 꼭대기에 공동묘지가 있고 그 바로 옆으로 고급 주택가가 형성되어 있었다.
기이해서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죽은 자는 말이 없잖아요. 이 분들은 조용한 주택지를 가장 선호한답니다.”
죽은 자의 구역과 산자의 구역을 완전히 격리하는 우리 동양인의 사고와는 너무나 다른, 죽음도 삶의 연장으로 생각하는 그들의 생각에 신선함을 느꼈다. 우리 후손들에게 효를 제대로 가르치고 전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라의 미래를 생각하고 자연과 공존해야 살아갈 수 있는 우리 인간을 위해서도 우리 장묘문화의 개선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첫댓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장묘문화 전반에 걸친 의식의 변화가 필요한 시기인 듯 합니다.
시대에 걸맞는 문화를 같이 고민할 때인듯 합니다.
접근성,사후관리,비용,산자와의 교감등의 문제일 듯 합니다.
벌초에 대한 얘기가 나올때 마다 조상에 대한 죄를 짓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벌초에 대한 부담을 안 갖게 하는 장묘 문화로 바뀌어야 한다는 뜻에 공감을 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최상순드림
오랫동안 내려온 장묘문화! 바꿔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그래도 조상을 숭배하는 정신문화는 훼손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