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죽음-3
어제의 이야기를 이어 보겠습니다.
우리는 어째서 우리 조상이나 가족들이 죽어서
천국에 태어나 천상락天上樂을 누리면서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거나,
극락세계에 왕생했다는 생각은 않는 것일까요?
경에는 사후의 행방과 다시 태어날 곳,
그리고 육도오취六道五趣 속을
윤회하는 상황을 미리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에 대해서 이런 경에 이런 게송이 있습니다.
정성안승천頂聖眼昇天 인심아귀복人心餓鬼腹
방생슬개리滂生膝蓋離 지옥족저출地獄足底出
이 게송의 뜻을 풀이 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사람이 죽은 후 신체 중에서 최후에 냉각되는 부위로
그가 어디에 왕생했는지를 알 수 있는데,
죽은 사람은 발바닥부터 머리로 식어 올라가는데
머리 꼭대기가 여전히 따뜻하면 성인의 과果를 이룬 것이요,
몸의 모든 부위가 식었는데 눈이 아직 따뜻하면
영혼이 눈으로 빠져 나간 것으로
그는 틀림없이 승천昇天할 것입니다.
온 몸이 식어 빳빳한데 심장이 계속 따뜻한 사람은
다시 사람의 몸을 받아 태어날 것이요,
몸의 각 부위가 모두 식었는데도
허리 부위가 따뜻한 사람은 아귀에 떨어 질 것이요,
무릎이 따뜻한 사람은
축생도에 발바닥이 따뜻한 사람은 지옥에 떨어 질 것입니다.”
사람이 죽은 다음에
다시 생을 받을 때는 세 가지에 따라 태어난다고 했습니다.
첫째는 업력이 무거운 것에 따라 생을 받습니다.
선근이 깊은 사람은 선도에 태어나 향락을 누리고
악업을 지은 악도를 윤회하며,
고를 받으니 선선과,
악인악과라
즉,
선에는 즐거운 과보가 따르고
악에는 괴로운 과보가 따른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습을 따라 생을 받습니다.
평소에 아미타불을 염송하여 습관처럼 된 사람은
의외의 사고를 당하여 죽게 되더라도
죽는 그 순간 '아미타불'을 염송하게 되면
'아미타불'을 한번 부른 것이
몇 십 년 동안 염송한 것보다도 더 큰 효과가 있어
그 공덕으로 서방 정토에 왕생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셋째는 뜻을 따라 생을 받습니다.
죽은 후 생을 받는가 하면
평소에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것과 큰 관계가 있습니다.
평소에 온 마음으로 간절히 성불하기를 바랐다면
사후에도 이러한 뜻을 쫒아 정토에 왕생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일심으로 천상에 나기를 바랐다면
죽은 후에 이러한 염원을 따라 천상에 태어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평소 수행할 때에
어떻게 생각이 끊이지 않아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떤 업력으로 생을 받든지
대부분 사람들은 사후에도
어두운 터널을 지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한없이
기나 긴 세월을 육도윤회를 하면서 살아 온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종교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신의 섭리에 의해서
생과 사라 결정되어진 것이 아니라
오직 자기 자신의 행위에 의해서
스스로가 지어서 스스로가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불자님들도
이 생과 사의 정체를 바로 알고 깨달아
죽은 후에 후회하거나 악도에 떨어져서
자손들에게 천도해 주기를 바랄 것이 아니라
살아생전에 선업을 많이 짓고
나아가 자신의 정체를 바로 깨달아 가장 이상적인 삶,
즉 생사를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 하루도 승의 블로그를 방문하신 벗님들
모두의 가정에서는 밝고 밝은 행복한 미소가
계속 이어지는 하루가 되시기 바라며
오늘은 소승이 생과 사,
그리고 죽음에 대하여 오늘의 글 마칩니다.
오늘의 따끈따끈한 글을 여기서 마칩니다.
2024년 07월 08일 오전 05:04분에
남지읍 무상사 토굴에서 雲月野人 진각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