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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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1:5,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2024.5.19.
여러분은 성령을 받았습니까? 또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았습니까? 사도 바울이 예베소에 가서 그 곳 어떤 제자들에게, 바로 신자들에게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그들은 성령이 계신 줄도 듣지 못했다고 말합니다. 예베소의 이 제자들은 ‘요한의 세례’만 받았을 뿐, 성령의 세례를 받지도 못하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그들에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그들에게 안수하자,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고, 그들이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기 시작했습니다.
행 19:2, 이르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르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
이 사건은 오늘날 교회의 현실을 단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성령으로 살지 못하고 늘 죄와 싸워 패배하는 그런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시는 경고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성령으로 살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에베소의 어떤 제자들처럼,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고, 오직 자기 욕심과 탐욕 때문에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수님 믿고 천국 가야지’이런 말도 어쩌면, 여러분의 탐욕인지 모릅니다. 천국 가고자 하는 자기 욕심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기쁘게 예배하고, 이웃과 세상을 섬기면서 사는 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의 행복인 줄 믿습니다. 늘 말씀 드리는 것처럼, 아브라함에게 주신 축복의 말씀은 ‘여러분으로 말미암아 땅의 모든 민족이 복을 받는 것입니다’. 나만 복 받고 나만 천국 가는 것이 아니라 모든 백성이 천국 가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성도의 삶인 줄 믿습니다.
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야 합니까?
첫째. 성령세례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입니다.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 것은 받아도 되고, 안 받아도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성령으로 세례를 받지 않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이 말이 무슨 말씀입니까? 십자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더 이상 자기 마음대로 살 수 없고, 오직 성령이 가르치시는 대로 살아야 하는 사람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성령으로 살도록 성령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성령으로 살아가는 확실하고 확고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것이 성령세례입니다.
행 1:4–5, 4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예수님은 부활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분부하셨습니다. ‘분부하다’(파란겔로)는 ‘명령하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야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 그러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 것은 예수 십자가로 완성되는 새 언약입니다.
렘 31:31–33, 3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32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3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성령세례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는 진정한 축복의 약속입니다. 성령세례는 인간의 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대로 살아가는 축복입니다.
둘째. 성령세례는 예수님이 주시는 세례입니다.
성령세례는 요한의 세례와 비교가 됩니다. 요한의 세례는 물세례입니다. 예수님의 세례는 성령세례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면서 장차 구원자 되신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요한의 세례와 성령의 세례가 자주 비교가 되었습니다.
마 3:11,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세례자 요한은 물 세례는 ‘회개하게 하기 위한 세례’라고 못을 박아 버립니다. 물 세례는 그 이상의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물론 예수님의 이름으로 여러분이 물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 세례는 요한의 세례와 전혀 다른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주는 물 세례는 죽음과 생명을 상징하며, 또 교회의 정식 회원이 되었다는 증표이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요한의 세례는 회개의 세례입니다. 세례 요한은 말합니다. 예수님의 세례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 것이다’고 말입니다. 예수님이 베푸는 세례는 성령의 세례, 곧 불세례입니다. 여러분의 모든 옛 사람과 사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죄까지도 다 불태워 버리는 세례입니다. 오직 성령으로, 하나님의 뜻과 일에 열정적으로 살아가게 하는 세례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모든 신자는 성령세례를 받았고, 그렇기 때문에 더 이상 자기 마음대로 살 수가 없는 사람, 오직 성령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성령충만함으로, 기쁨충만함으로, 감사충만함으로 살아가는 성령의 사람들입니다. 회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더 적극적으로 살아가게 하는 세례입니다.
행 1: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셋째, 성령세례를 받은 사람은 권능을 받아 살게 됩니다.
예수님이 성령세례를 받으라고 명령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제자들의 관심은 이스라엘의 회복, 곧 언제나 이스라엘이 로마로부터 독립될 것이라고 예수님께 묻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그것은 너희 알 필요가 없다고 말해 버립니다. 사실 예수 믿는 신자들이 알 바 없는 것들에 너무나도 관심이 많고, 또 거기다가 목숨을 바치거나 십자가를 지려 합니다. 이런 모든 것들이 예수님을 믿는 신자들에게 있어서 다 쓸데없는 짓이며 죄가 되는 것입니다.
행 1:6–7, 6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7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그렇다면 진짜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는 신자들이 알아야 하고, 또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야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제자들의 질문을 내팽개치고나서 하시는 말씀이 성령이 너희에게 임할 것이고, 권능을 받아 예수님의 증인된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행 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오직’(알라), ‘그러나, 오직, 도리어’무슨 말씀입니까? 여러분의 주 관심사와 전혀 다르게, ‘그러나, 도리어, 오직’ 성령이 임해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성령의 권능으로 살아가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그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삶이 소개됩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증인 된 삶’입니다. 성령세례를 받으면 자기 멋대로, 자기 권능만 믿고 살던 사람이 이제는 성령이 이끄는 성령의 권능있는 삶을 살게 됩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었을 때에, 성령을 받았습니까? 아직도 성령이 있음도 알지 못하고 있습니까?(행 19:2). 여러분이 아니라 성령이 이끄는 삶이 권능받고, 축복받는 삶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