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마냥 깊어만 갑니다. 그리고 그 가을이 지나가는 이맘때면 꼭 우리 귀에 들려오는 노래가 바로 <고엽>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고엽>을 부른 가수이자 배우였던 이브 몽땅과 샹송 <고엽>에 관한 얘기를 올려봅니다.
* <고엽>의 가수, 이브 몽땅
이브 몽땅(1921~1991)을 생각하면 여러 가지 모습이 동시에 떠오릅니다. 그는 배우이자 가수이고 투사였습니다. 본명이 ‘이보 리비’인 그는 이탈리아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몽땅의 가족은 그가 두 살 때 이탈리아의 무솔리니의 독재정치 체제를 피해 프랑스 남쪽 항구 도시인 마르세유로 몽땅 이주했습니다.
1932년 어린 이브는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누나의 미용실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미용 일에는 큰 관심이 없던 그는 낮에는 미용실에서 일하고 밤에는 동네 살롱에서 노래를 했습니다. 나이를 먹으면서 점차 덩치가 커지면서 노가다 판에서 막일을 하면서 식구들을 부양했습니다. 1938년 동네의 카페 콩세르(오늘날 음악다방 같은 곳)에서 노래하게 되면서 이름을 이브 몽땅으로 바꾸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그는 독일군을 피해 파리로 떠났습니다. 파리는 대도시이다 보니까 독일군 등쌀이 덜 심했습니다 그는 서는 무대마다 환호를 받았고 극장식당 <물랭 루즈>에서 에디뜨 삐아프와 공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거기에서 두 사람은 서로 첫눈에 반했습니다. 이후 삐아프는 몽땅에게 무대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씩 가르쳐 주었습니다.
삐아프와 함께 영화 <밤의 문〉에 출연했지만 영화는 실패했고 그들은 헤어졌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에 삽입된 '고엽'은 후일 불후의 명곡이 되었습니다. 이 노래로 그는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고, '고엽'은 1949년 ‘Autumn Leaves'라는 제목으로 불리며 많은 영미권 가수들의 애창곡이 됩니다. 이 노래는 1946년에 몽땅의 친구이자 시인인 자크 프레베르의 시에 조제프 코스마가 곡을 붙인 것이다.
1949년 8월 몽당은 배우인 시몬느 시뇨레를 만나 1951년 결혼에 이릅니다. 시뇨레와의 만남은 그를 여러모로 변화시켰는데,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되어 프랑스 공산당에 동조한 것도 변화 중 하나였습니다. 영화와 노래에서 맹활약을 하던 그는 1959년 드디어 미국행을 단행하였고 대성공을 거두고 마릴린 먼로와 영화를 함께 찍으면서 둘 사이에 염문이 떠돌기도 했습니다.
* 에디뜨 삐아프와 다정했던 한 때
그는 1968년 공산주의와 단절을 선언한 이후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는 인권 운동에 관심을 갖게 됐고, 1981년 폴란드의 반공산주의 노동자 단체와 그 지도자인 레흐 바웬사를 위해 투쟁에 참여하였습니다. 그는 정치에 관심을 가졌으나 결코 정치인은 아니었고, 단지 평화 운동가였습니다.몽땅은 노동자 출신이고 그는 그 사실이 자랑스럽다고 했습니다.
그의 노래에서 주인공은 주로 노동자 계층입니다. 당시 노동자들은 전쟁 후 파괴된 프랑스를 재건하는 힘든 업무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사회 제도 덕분에 전보다 나은 혜택을 받는 계층이 되었습니다. 그는 무대에서는 단순하고 온화한 스타일을 추구했습니다.
* 왼편부터 시몬느 시뇨레, 마릴린 몬론, 이브 몽땅
그는 1945년 첫 번째 리사이틀에서 넥타이와 양복 상의 없이 바지와 밤색 셔츠의 단순한 차림으로 목 단추를 풀어헤친 채 관객들 앞에 섰습니다. 이런 노래와 그의 모습이 그 시대의 구미와 맞아 떨어졌습니다. 이제 모자, 양복, 넥타이를 갖춘 멋쟁이 댄디 스타일은 대로에서 산책을 즐기는 선반공 같은 프롤레타리아 층의 몽땅 스타일로 바뀌었습니다. 그는 새로운 무대 룩을 창조한 것입니다.
1960년대 이후 몽땅은 영화에 더 많은 비중을 두긴 했지만 배우와 가수, 평화 운동가로서의 역할을 조화롭게 이어갔습니다. 그러나 1985년 9월 그의 아내 시뇨레가 죽자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그는 더 이상 노래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공산주의에 대한 실망과 좌절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강연을 하는 한편 영화와 TV를 오가며 분주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 마릴린 몬로와...
1991년 11월 9일 그가 죽었을 때 프랑스의 모든 텔레비전 방송과 라디오 방송은 정규 프로그램을 중단하고, 그가 출연했던 영화와 그의 대표적 샹송 <고엽>을 방송했습니다. 미테랑 대통령도 “그와 함께 우리시대의 위대한 목소리와 배우로서의 뛰어난 재능이 사라졌다”고 그의 죽음을 슬퍼했습니다.
이브 몽땅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국민가수이자 영화배우였지만, 그는 인기 있는 단순한 대중예술인에 머물지 않고, 자신의 에술적 재능을 사회적 약자를 위해 사용한 프랑스 최고의 대중예술인이었습니다.
* 2년 전 여름 빠리에서 빈둥거릴 때, 몽파르나스 묘지의 이브 몽땅과 시몬느 시뇨레의
합장 무덤 앞에서...
* 샹송 <고엽>
불후의 명작으로 뽑히는 샹송 <고엽>은 시인 쟈끄 프레베르의 시에 조셉 꼬스마가 작곡한 곡입니다. 차분하고 친숙한 멜로디에 사랑과 이별과 인생을 진지하게 그려낸 서정적인 가사는 <고엽>이 50여 년을 넘어 지금까지도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고 있는 이유입니다.
<고엽>은 원래 1945년에 만들어진 곡이었으나, 1946년 마르셀 까르네 감독의 영화 <밤의 문>에 출연한 이브 몽땅이 직접 영화 속에서 불러서 유명해졌습니다. 이브 몽땅 이외에도 <고엽>을 즐겨부르던 가수는 쥘리에뜨 그레꼬가 있었습니다.
1950년 세계적인 명곡으로 자리를 굳힌 <고엽>은 대중음악의 본 고장 미국으로 건너갔습니다. 미국에서 <Autumn Leaves> 제목으로 영역되어 빙 크로스비가 노래했으며 1955년에는 존 윌리엄스의 피아노연주가 담긴 레코드가 백만 장이나 팔리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